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4:39:17

용당포 야마시로호 침몰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상세

1. 개요

1924년 4월 25일 정오경 황해도 해주군 해주읍의 석동(席洞)공립보통학교, 의창학교(懿昌學校), 동아강습소 등 여러 학교의 학생 및 기타 주민을 합해 약 250여 명이 용당포[1]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일본 해군 구축함 우메(梅)와 쿠스노키(楠)를 관람하기 위해 일본식 짐배[2] 야마시로호(山城丸, 44t급)를 타고 우메(梅) 함에 접근하려다 거센 바람으로 충돌, 야마시로호의 밑바닥이 깨져 침몰해 68명[3]이 익사한 사건. # # 총독부는 구축함까지 동원해 사체를 수색했지만 성과가 없자 인천에서 잠수부와 '해녀'를 데려다가 수색했다. #

2. 상세

폭풍·폭우로 여러 곳에서 어선이 침몰한 경우를 제외한 단일 사건으로는 일제강점기 하 조선 최악의 수상 사고였으나 위키백과의 일제강점기 해양 사고 목록에 없다.[4]

문제의 배 야마시로호의 선장 하마자키(濱岐淸二六)는 4월 22일 황해도 겸이포에서 철물을 싣고 용당포에 입항하였다가 25일 구축함이 입항하여 관람자가 많은 것을 보고 청부업자 나가노(永野道助)와 협의, 한 명당 8전씩 받기로 하였다고 한다. 50間 거리에서 닻을 내려야 할 것을 20間 거리에서 내리려다가[5] 폭풍에 쓸려 충돌한 것이라고 한다. # 선장의 증언에 따르면 밑바닥이 깨져 물이 3자나 들어왔는데도 군함에서는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하마자키는 해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금고 1년형을 받았다. #
[1] 해주시의 외항 [2] 문헌에 따라서는 발동선이라고도 한다. [3] 초기 보도에서는 90여명 [4] 1936년의 대안환호 침몰 사고도 있지만 국경하천인 압록강 하구의 만주국 배에서 일어난 사고이며 조선인 승객은 4명이었다. [5] 1間은 약 1.818m이니, 50간은 91m, 20간은 36m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