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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미정/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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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회2. 2회3. 3회4. 4회5. 5회6. 6회7. 7회8. 8회9. 9회10. 10회11. 11회12. 12회13. 13회14. 14회15. 15회16. 16회(마지막회)

1. 1회

회사 점심시간, 다같이 밥을 먹으며 사내 동호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직장 동료들[1] 사이에서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밥을[2] 먹고 있다. 그러다 너네 동호회는 어떠냐고 지희가 물어보고, 수진이 대신 미정이는 동호회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다른 동료에게 지원금도 나오는데 왜 안 하냐는 질문을 받게 되어 "아, 그냥. 배우고 싶은 것도 없고."라고 대답한다. 이후 동호회에 관해 동료들끼리 잡담을 나누는 것을 듣다가 한수진에게 오늘 같이 볼링 동호회에 가자는 제안을 받고 말없이 웃는다.

직후 볼링장 소파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응원하고 있는 모습이 비춰진다. 볼링핀을 쓰러트린 수진을 보며 응원을 하다 고개를 돌리자 동호회의 다른 직원에게 왜 동호회 활동을 아무것도 안하냐는 질문을 듣게 되고 이번에는 "집이 멀어서요."라고 말한다.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산포시요. 수원 근처요." 라고 대답한다. 이후 계속 어색하게 볼링장에 앉아 있다가 차례가 되어 볼링을 치는데 공이 거터에 빠져버린다. 머쓱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기정과 창희가 있는 카톡방에 '나 오늘 늦을 것 같은데'[3]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1분 후 기정에게서는 '나도 늦어. 12시에 강남역에서 봐.'라는, 13분 후 창희에게서는 '나도 늦어. 이따 봐.'라는 답장을 받는다.

이어진 볼링 동호회 회식 자리에서도 대화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며 그저 웃으며 어색하게 있다가 좀 더 있다가 가라는 한수진의 요청에도 이미 집에 가기에 늦었다고 말하고 먼저 일어난다.

회식을 하던 식당을 나와서 기정에게 전화로 어디에 있는지 묻고, 기정이 있는 식당으로 걸어 들어간다. 기정의 옆자리에 앉아서 기정의 친구들과 함께 기정이 말하는 경기도민의 비애 및 소개팅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다. 이후 기정의 이야기는 소개팅남이 애 딸린 홀아비였고, 애가 중2라는 내용으로 옮겨가고 미정은 웃지 않고 듣는 모습이 비춰진다. 그런데 기정과 미정의 술자리 옆에는 애 딸린 홀아비인 미정의 직장 동료 조태훈이 딸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옆에 기정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가족이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챈 기정의 친구들이 열심히 눈치를 주지만 기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하다가 기정이 옆자리를 돌아본 순간 결국 분위기가 싸해진다. 이후 태훈의 누나[4]가 들어와서 오늘이 그 딸의 생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들 침울하게 조경선이 태훈과 조카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앉아 있는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 옆테이블에 호기심이 생긴 조경선에게 "근데 고깃집에서 원래 그렇게 작게 말해요?"라는 말을 듣고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짐을 싼다.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된 미정은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신의 직장 동료인 조태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인사를 한다.

식당 밖에 나와 걸어가면서 기정에게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질문을 듣고 얼굴만 아는 정도인 직장 동료라고 말하고 기정 뒤를 떨어져서 걷는다.

기정과 함께 길에 서서 기정이 창희에게 빨리 오라고 하는 전화를 듣는다. 이후 셋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5] 집 앞에 도착해서는 기정과 창희에게 만원씩 받은 후 카드로 택시비를 낸다. 집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어두운 집에 들어간다. 언니와 같이 방에 들어가서는 핸드폰 충전을 하다가 언니의 "야, 아까 그 사람이 우리 야단친 거 맞지?"라는 말에 "잘못했잖아, 우리가."라고 대답한다. 미안하니깐 내가 줄테니 애 생일 선물이라 하고 상품권이라도 주라는 언니의 말에는 "오버야."라고 말하며 수건을 들고 방을 나간다.

주말 낮, 대파를 수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 큰 물통에 커피를 채우다가 엄마가 돼지 갈비를 삶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김치통을 꺼내 엄마를 도운 후 다시 돌아가 커피 물통에 얼음을 넣는다. 팔토시를 하면서 머리를 하러 서울 간다는 기정을 힐끔 본다. 물통과 모자 등을 챙기고는 신발을 신고 밭에 간다.

이후 밭에 가서 빨간색 꽃무늬 모자를 쓰고 갈색 수건을 목에 두른 후 쪼그려 앉아 땀을 흘리며 수확한 대파를 다듬고 있다.

장면이 전환되고 밭 옆에 펼쳐진 파라솔 밑에 앉아서 가족과 함께 국수를 먹는다. 국수를 다 먹고는 어머니와 함께 먹은 것들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구씨와 함께 집 앞에 있는 평상에 상을 차리고 앉아 돼지갈비김치찜을 먹으면서 전기차를 사고싶으니 허락해달라는 오빠와 절대 안된다는 아버지의 실랑이를 묵묵히 듣다가 다 먹은 식기를 들고 일어난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설거지를 다 하고 수박을 썰고 있는 엄마를 돕기 위해 랩을 뜯다가 아버지가 7시부터 일할 거긴 하지만 구씨에게는 9시까지 와도 된다고 말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큐브 모양으로 썰어 그릇에 담아 랩으로 싼 수박과 반찬통에 든 고구마 줄기 김치 및 다른 반찬을 쟁반에 올려서 구씨의 집에 들고 간다. 평상에 앉아 있는 구씨 옆에 쟁반을 놓고는 구씨에게 "내일은 9시까지만 오면 된대요."라고 말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두환의 카페로 가는 길에 '망했어, 미용실 고소할거야'라고 궁시렁대며 집에 가고 있는 기정을 보게 된다. 두환의 카페에서 두환의 기타 노래 소리를 들으며 그릇을 정리하다가 "먹었으면 그릇 좀 갖고 와."라고 말한 후 그릇들을 챙겨 탁자에 올려 놓고 의자에 앉는다. 이때 두환이 차였다는 소리를 듣고 두환을 바라보고 유기견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소개팅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다. 이후 창희가 차인 이야기를 창 밖을 바라보며 차분히 듣다가 하고많은 동네 중 경기도에서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창희의 말을 듣고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라고 말한다. 분명히 달랐을 것이라고 말하는 창희와 두환의 대답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다. 짐을 싸고 가려는데 엄마와 기정의 말다툼 중 "너만 힘들어? 쟨 안 힘들어?" "쟨 젊잖아!"에서 '쟨'으로 소환되지만 무시하고 가방을 맨 후 7시에 집을 나선다. 현관 계단을 내려오는데 일하러 가는 구씨를 보게 된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던 중 아버지와 구씨가 일하는 산포 싱크대 공장을 멈춰서서 바라보다가 노란 3-1마을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뛰어간다. 버스에서 내려서 당미역으로 걸어 들어간다.

지하철에 서서 가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글귀가 달린 해방교회를 보게 된다.

출근해서는 행복지원센터에 불려가 이번달부터는 저번에 갔던 볼링 동호회에 나가 보는 것이 어떻냐는 소향기 팀장의 권유를 받고 나오는 길에 자신과 똑같이 동호회 가입을 하지 않아 불려나온 조태훈 과장과 박상민 부장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인사한다. 사무실로 돌아가 일한 것을 A4로 뽑아 스테이플러로 찝어 최준호 팀장에게 제출하고 자신의 자리로 가 앉는다. 이때 휴대전화 진동이 와서 확인해보니, 을지로에서 회식을 하자는 카톡이었고 모두 참석하는 분위기에서 을지로에서 집이 너무 멀어서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때 일부러 소리를 내며 미정이 제출물을 첨삭하는 팀장의 목소리를 듣고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퇴근 후 카페에서 빨간펜으로 첨삭된 자신의 제출물을 보다가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속으로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거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 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에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난 벌써 당신과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당신 없이 있던 시간에 지치고 힘들었던 것보단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 게 더 기특하지 않나요?
라고 독백하며 첨삭받은 것을 수정한다. 이때 회식을 가는 동료들이 카페 옆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날이 바뀌고, 사무실 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가 밖에서 한수진은 "미정이는 왜 남친이 없을까요?"라고 남직원은 '하나 하나 뜯어보면 이쁜데 전체적으로 보면 매력이 없다'고 대화하는 것을 듣는다.

이후 퇴근 길에 걸어가며 두환의 카페에서 했던 대화를 떠올린다. 서울에 살면 달랐을거라는 창희와 두환의 대답을 듣고 미정은 "똑같았을 거 같은데. 어디 사나 이랬을 거 같아."라고 말한다. 이후 지하철에 타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 죽을 거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 낸 거예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당신. 적어도 당신한테 난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겠죠.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만나지지도 않는 당신. 당신. 누구일까요.
라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다른 날 미정은 출근해서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연락온 것을 확인한다. 신용 대출 받아 돈 빌려준 것이 문제가 되어 미정은 은행에 가서 상담을 한다. 은행원으로부터 15,484,000원을 매달 150만원 정도씩 상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집에 와 설거지를 하는 미정. 조만간 집으로 우편물이 발송될 거라는 은행원의 말을 생각하며 고민한다. 집 안 식구들을 힐끔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돈을 안 갚고 있는 찬혁선배라는 사람에게 보낸 카톡을 확인한다.[6] 설거지를 다 한 후에도 식탁에 놓인 찐옥수수를 집어 먹으며 계속 고민한다.

주말, 두환의 카페 앞에서 구워 먹고 있는 고기를 접시에 담아 집 앞 평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구씨의 식탁에 나른다. 두환의 카페 앞 고기 굽는 곳으로 돌아가 시골에는 또래가 없어서 그냥 같이 노는 거라고 창희와 정훈이 대화하는 것을 뒤돌아 듣다가 "쟤, 쟨 또래 하나도 없어 갖고 동네 바보랑 놀았잖아. 개똥이랑."라고 창희가 말하자 살짝 돌아본다. 그리고 조선시대가 자신에게 더 잘 맞는 것같다고 말하는 기정의 말에도 잠깐 돌아본다. 이후 기정, 창희, 정훈, 두환이 말하는 것을 듣다가 기정이 아무나 사랑할거라고 말하자 "진짜 아무나?"라고 말한다. 이후 저 멀리 구씨가 지나가자 두환이 구씨보고 염기정 눈에 띄지 말라고 소리칠 때 구씨를 바라보며 다같이 웃는다. 그러다 생각에 잠긴다.

심란한 표정으로 출근길 마을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가 왔는데도 타지 않고 보내버린다. 그리고는 구씨 집 앞으로 걸어간다. 문을 열고 나오는 구씨와 마주쳤고, 능소화가 핀 구씨네 집 앞에서 구씨에게 "혹시 우편물 좀 받아 줄 수 있나 해서요. 집에서 받으면 안 되는 게 있어서."라고 부탁한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회-'우편물 좀 받아줄 수 있나 해서요'.jpg
이 부탁을 하고는 다시 출근하러 걸어가다가 마을 버스를 급히 탄다. 버스에 타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제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2. 2회

매우 더운 여름날[7] 회사 앞을 직장 동료들과 걷고 있다. 걸으면서 보람이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지금 기분 잘 기억해 뒀다가, 겨울에, 추울 때 써먹자. 잘 충전해 뒀다가 겨울에."라고 말한다.

당미역에서 내린 미정은 눈앞에서 3-1 마을 버스를 놓쳐서 집까지 걸어간다. 이때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있던 구씨가 걸어가는 미정을 힐끔 보고, 이후 뒤따라 걸어가다가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거리를 좁혀서 미정은 힐끔 뒤를 돌아본다. 이때 구씨는 우편물이 왔다는 말을 했고 미정은 "이따 들릴게요."라고 말한다. 평소 말을 거의 안 하는 구씨가 미정에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한 어머니는 구씨가 무슨 말을 했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그릇 가져가라는 이야기였고 나중에 가지러 가겠다 했다고 말하며 집에 들어간다.

설거지를 다 끝낸 후 구씨에게 가져다 줄 음식들을 들고 집 밖을 나간다. 평상에 앉아 있던 구씨랑 같이 구씨네에 들어가고 음식은 식탁에 놓은 후 고맙다고 말하고 우편물을 확인한다. 우편물은 대출금 연체 상환 독촉장[8]이다. 이를 한 번 읽어 보고 다시 우편봉투에 독촉장을 넣은 후 가족이 있는 집에는 안 들키게 둘 곳이 없어서 구씨네에 계속 두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은행에서는 등본상 주소로 우편물이 발송해서 구씨네로 주소를 옮겨 놓았다고 말하고 미리 물어보지 않고 등본을 옮긴 것을 사과한다. 구씨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다가 빈 반찬 그릇들을 쟁반에 담아 집으로 가져간다.

주방에 그릇들을 가져다 놓고 방 안에 들어가 자신의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찬혁선배와의 카톡을 확인한다.[9] 이번 달 상환분은 대신 갚았다고 적은 메시지[10]를 포함해 모든 메시지의 1이 사라지지 않은 채 있다.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한숨을 쉰다.

회사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미정. 이때 지희가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 밥을 먹는 '친밥조'를 보고 놀란 숨소리를 내자 지희쪽을 바라본다. 친밥조에 대해 말하는 지희의 말을 듣고 자신의 친밥조를 확인해본다.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미정의 친밥조는 묵묵히 밥만 먹고 있다. 친밥조의 구성원은 여직원 한 명과 미정, 조태훈 과장과 박상민 부장이다. 박상민 부장은 동호회 안 하는 사람만 모인 것으로 보아 조 추첨이 무작위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미정은 박상민 부장을 쳐다보다가 다시 식판을 본다. 여직원은 다들 동호회 안 하냐고, 왜 안 하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집이 멀어서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어색하게 밥을 먹고 다같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한다. 이때 친밥조에 속했던 다른 여직원은 다른 여직원들이 카페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무리로 빠져버리고, 셋만 탁자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신다. 이후 다같이 사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동호회에 관한 박상민 부장의 푸념을 조용히 듣다가 박상민 부장이 내리자 인사한다. 조태훈 과장과 엘레베이터에 둘이 남게 되자 그날 했던 말에 대한 언니의 사과를 전달한다. 조태훈은 친언니였냐 물어보고, "네."라고 말하자 언니랑 안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미정은 광장 동상 앞에 서서 지현아에게 전화를 하며 현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현아를 보고 밝게 여기라고 위치를 말한다. 현아랑 같이 걸어서 동네 아는 사람들과 언니 오빠가 있는 술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현아의 생일파티가 진행되고, 다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술도 먹고 하며 아무나 사랑하겠다는 기정의 말에 대해 현아와 기정이 나누는 대화를 언니 좀 말리라는 현아의 말에도 답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 있다. 이후 현아가 남친이랑 헤어지겠다는 말을 할 때도 계속 조용히 말을 듣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는 변상미 편의점 점주에게 전화로 잡혀서 계속 통화 중인 창희 곁에 현아가 다가가 여친인 척 난리를 피워서 전화를 끊게 해주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 산포에 사는 사람들끼리 택시에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창밖을 바라보며 집 앞에 내릴 때까지 현아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미정: 사람들은 말을 참 잘하는 거 같아.

현아: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말로 끼를 부리기 시작해. 말로 사람 시선 모으는 데 재미 붙이기 시작하면, 막차 탄거야. 내가 하는 말 중에 쓸데 있는 말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알아? 없어, 하나도. 그러니까 넌, 절대 그 지점을 안 넘었으면 좋겠다. 정도를 걸을 자신이 없어서 샛길로 빠졌다는 느낌이야. 너무 멀리 샛길로 빠져서 이제 돌아갈 엄두도 안 나. 나는 네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귀해.

미정: 다시 태어나면 언니로 태어나고 싶어.

현아: 전생에 너처럼 살다가 '다시 태어나면 막살아야겠다'한 게 지금 나고, 또 나처럼 살다가 '아, 이것도 아닌가 보다. 다시 태어나면 단정하게 살아야겠다'한 게 지금 너야. 너나 나나 수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했어. 왜 이래, 순진한 척.

미정: 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 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회사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받고 입모양으로 먼저 내려가라고 말해 동료들을 보낸 뒤 친구와 찬혁 선배에 관한 통화를 하는데, 찬혁 선배가 한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태국에 있는 전여친인 세영 언니에게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정이 왜 찬혁 선배의 일을 궁금해 하는지 호기심을 가진 친구가 설마 선배랑 사귀었었냐고 묻자 부정한다.

소개팅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료들과 같이 식탁에 앉아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고 묵묵히 샌드위치를 먹는다. 샌드위치를 먹다가 소스가 약간 입술에 묻자 한수진은 냅킨으로 닦아주고는 "야, 미정이 너무 귀엽지 않니?"라고 말한다. 이 말에 같이 앉아 있던 동료들이 호응하며 귀엽다고 말하자 억지로 웃는다.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며 강남역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속으로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20점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시험지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 가야 했는데 꺼내진 못하고 시험지가 든 가방만 보면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어요. 사인은 받아야 하는데 보여 주면 안 되는, 해결은 해야 되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 지금 상황에서 왜 그게 생각날까요?
안내방송이 나오고 지하철이 들어오자 열차를 탄다. 열차에 서서 봉에 기댄채로 핸드폰을 만지며 계속 생각한다.
뭐가 들키지 말아야 하는 20점짜리 시험지인지 모르겠어요. 남자한테 돈 꿔준 바보 같은 나인지, 여자한테 돈 꾸고 갚지 못한 그놈인지. 그놈이 전 여친에게 갔다는 사실인지. 도대체 뭐가 숨겨야 되는 20점짜리 시험지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20점짜리인 건지.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밝은 퇴근길, 천천히 집까지 걸어가던 중 집에 거의 다 도착했는데 구씨네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급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구씨네 집으로 뛰어가본다. 집 앞에 앉아 코피를 심하게 흘리며 수건으로 피를 닦고 있는 구씨를 보고 놀란다. 트럭을 앞에 세워놓고 다시 달려오신 아버지가 구씨를 부축해 트럭에 태우는 것을 심각하게 쳐다본다.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구씨에 대해 말해준다. 구씨에게 밥 먹으라고 말하기 위해 갔더니 술 먹고 자빠졌는지 본인도 모르는 새에 피떡이 돼서 자다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겨우내 술에 젖어 사는 사람, 일감 주고 사람 만들어놓았더니 고새 또 그렇게 되었다고 어머니가 한탄하는 것을 들으며 조용히 밥을 먹는다. 이름이 뭐냐니깐 망설이며 말하지 않고, 뭐라고 불러야 하냐니깐 '구가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듣고 기정이 사고치고 숨어있는 거 아니냐고 하니, 미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밥을 먹는다. 그렇게 가족들이 구씨 이야기를 하는 것을 계속 듣던 중 창희가 잠시 창밖을 보다가 술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구씨를 발견하고 "강적이다."라고 탄성을 내뱉자 창밖을 돌아본다.

다른 날, 미정은 회사에 출근해 최준호 팀장에게 디자인한 것을 A4로 뽑아 제출하고 아메리카노를 뽑는다. 커피가 나오고 있는데 보람이 다가와서는 "언니도 괌 가요?"라고 물어서 같이 다니는 회사 동료인 김지희와 한수진이 자신과 보람이를 빼고 괌에 여행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정은 "나 돈 없어."라고 말하며 커피를 마신다.

괌에 여행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네일아트에 대해 속닥거리고 있는데, 미정은 자신의 제출물을 보며 "아이씨. 하, 참."하면서 일부러 소리나게 첨삭하고 있는 팀장 옆에서 일하고 있다.

동호회 문제 때문에 다시 행복지원센터에 불려간다. 소향기 팀장은 딱 맞는 동호회를 발견했다면서 웃으며 동호회 안내도 하며 계속 동호회 가입을 권유한다. 계속되는 권유를 들으면서 미정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떨리는 한숨을 내뱉으며 "못 하겠어요.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흐느낀다. 안 울려고 위쪽을 보고 하며 노력하지만 계속 흐느끼는 것을 못 멈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한다.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진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집에 거의 다 와서 집으로 걸어가지 않고 구씨의 집 쪽으로,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구씨 쪽으로 다가가서 구씨에게 말한다.
미정: 왜 매일 술 마셔요?

구씨: 아니면 뭐 해?

미정: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미정: 날 추앙해요.
파일:나의 해방일지 2회-날 추앙해요.jpg
구씨는 바닥을 보다가 놀라서 뭐라고 말했는지 못 알아들어서 미정을 쳐다보고, 미정은 울먹이며 계속 말한다.
미정: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깐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에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해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깐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말을 다 하고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 채로 구씨와 눈을 마주본다.

3. 3회

언니와 함께 당미역에서 나온다. 기정이 아버지의 트럭[11]을 보고 차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가자 뒤따라간다. 트럭에 자연스럽게 타던 기정은 운전자석에 구씨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사과하며 내리고, 미정은 둘을 쳐다보는 구씨의 눈길을 피하며 궁시렁대며 걸어가는 언니의 뒤를 따라간다.

마을버스에서 언니와 같이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산포씽크대 트럭을 탄 구씨와 아버지가 지나간다. 아버지를 마중나온 어머니에게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 중에 구씨가 밖에서 뭐 먹지도 않았으면서 오늘은 생각이 없다고 밥을 거절하는 것을 듣게 된다.

집에서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묶다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구씨에게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하려는 어머니를 뒤에 두고 언니와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엄마가 구씨에게 전화하는 것을 언니가 만류하면서 약간의 말다툼을 할 때도 미정은 계속 말없이 밥을 먹는다.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걸어가던 구씨는 미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계속 걷는다.
미정: 왜 매일 술 마셔요?

구씨: 아니면 뭐 해?

미정: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깐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에요.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해야 해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깐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구씨: 쯧, 들어가. 들어가 자.

미정: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요.

구씨: 내가 뭐 하고 싶은 인간으로 보여? 너 내 이름 알아? 나에 대해서 아는 거 있냐고.

내가 왜 이런 시골구석에 처박혀서 이름도 말 안 하고 조용히 살고 있겠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사람하고는. 아무것도.

탕비실에서 멍하니 서있다가 한수진이 탕비실에 들어오자 머그컵 속 차를 마신다. 의아하게 생각한 한수진이 퇴근 안 하냐고 묻자 "집에 가기 싫어."라고 대답한다.

맨날 퇴근하고 집에 가던 미정이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하자 직장 동료들은 신기해하며 퇴근 후 다같이 술을 마시러 간다.

술집에서 일렬로 다같이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동료들은 미정이에게 왜 갑자기 집에 가기 싫다고 하냐고 물어본다. 미정은 어떤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어 불편해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한다. 직장동료들은 그 남자가 누군지 궁금해 물어보지만, 미정이도 구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미정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사고쳤다고 털어놓지만, 무슨 사고를 쳤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구씨에게 추앙하라고 했던 날, 구씨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구씨: 너 남자한테 돈 빌려줬지?

구씨: 사내새끼들도 여우야. 돈 빌려가고도 적반하장으로 지랄 떨면 찍소리 못 하고 찌그러들 여자, 알아본 거라고.

구씨: 뚫어야 될 문제를 뚫어, 엉뚱한 데로 튀지 말고.

미정: 그 자식이 돈을 다 갚으면, 아무 문제 없을까? 그래도 똑같을 것 같은데.

미정: 한 번도 채워진 적 없고 거지 같은 인생에 거지 같은 인간들. 다들 잘난 척. 아무렇게나 쏟아 내는 말. 말.

구씨: (헛웃음) 미안하다. 나도 개새끼라서.
마지막 말을 하고 구씨는 터덜터덜 걸어나가고, 미정은 그 자리에 서있는다.

한수진이 핸드폰 시계를 보다가 막차 시간인 것을 알고 놀라서 미정이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미정이 막차 시간이 다가오도록 남아있는 것에 다른 동료들도 놀란다. 미정은 "으.."하다가 진짜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하고, 동료들은 막차를 놓치라고 응원한다.

미정은 집으로 가는 어두운 길을 "나쁜 새끼. 바보 같은 게. 맨날 술만 마시는 게."라고 중얼거리며 걸어가다가 짱돌을 줍는다. 이때 남자 여럿이 차 주변에 모여서 티격태격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모여있는 남자들도 미정을 발견하고 수군수군댄다. 미정은 차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려 하는데 남자들이 미정을 주시한다. 겁 먹은 표정의 미정. 이때 뒤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구씨는 다리로 소주병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치면서 걷고 있다. 소주병이 비닐 속에서 잘그랑거리는 소리를 통해 미정은 뒤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구씨인 것을 안다. 미정은 묘하게 안심이 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지는 않고 계속 걷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3회-미정 뒤를 지켜주는 구씨.jpg
미정이 차 근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남자들은 차를 타고 가버린다. 차가 완전히 간 후, 미정은 들고 있던 짱돌을 길에 버린다.

집에 와서 미정은 잠자리에 앉아 있다가 누워서 잠에 든다.

회사 근처 기둥에 기대어 서서 미정은 찬혁선배에게 전화한다. 그러나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후...'라는 안내원의 목소리만 나오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미정은 전화를 끊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찬혁선배와의 카톡방 속 1을 바라본다.[12] 이후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행복지원센터 소향기 팀장이 한수진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정이 걸어가자 소향기 팀장은 미정을 발견하고 서둘러 사라지고 한수진이 미정에게 다가온다. 한수진은 다가가서 소향기 팀장이 미정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 그런 것을 궁금해 하는지 한수진은 물어보고, 미정은 전에 행복지원센터에 불려 가서 동호회 들기 싫어 운 적이 있다고 말한다. 동호회에 들지 않고 버티는 미정을 보고 놀라며 은근 꿋꿋하다고 말하고 옆에 있던 보람은 살짝 웃는다. 이후 엘레베이터가 오자 같이 탄다.

탕비실에서 차를 우리고 있는 미정 옆에서 보람이 별 거 아닌 일로 계속 불려 다니는 것도 좀 그런데 그냥 같이 사진 동호회를 하자고 권유한다. 보람의 권유에도 미정은 "배우는 건 그만하고 싶어. 수영을 배우는데 자유형이 안 됐어. 근데 여럿이 하는 거니까. 배영으로 넘어가고 평영으로 넘어가고. 학교 수업이랑 같애. 난 구구단을 떼지 못했는데 분수로 넘어가고 그 뒤로 난 그냥 앉아 있는 거야. 동호회에서도 똑같은 짓 반복하기 그렇잖아. 그리고 나는 뭐 재미있는 게 없어."라고 말하며 거절한다. 이 말을 듣고 보람은 한수진네 무리들끼리 놀러가는 걸 괜히 말했다고 말하고, 미정은 "내가 여행은 재밌어하겠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준다. 이후 미정은 머그컵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조이 나라 사랑카드'라고 적힌 자료[13]를 팀장에게 제출하고 자리로 가서 앉으려고 하는데 핸드폰 진동이 온다. 확인해보니 왜 여기저기 세영이 연락처를 묻냐고, 니 돈은 악착같이 갚았는데 겨우 한 달 입금 못 한 거 가지고 그러냐고 따지며 세영이에게 연락하면 돈이고 뭐고 없다고 협박하는 찬혁선배의 카톡 메시지다. 이 메시지를 읽고 있는데 팀장이 미정의 제출물을 또 "아, 진짜, 씨."라고 소리내며 기분 더럽게 첨삭한다. 미정은 이를 듣지 못하고, 찬혁선배가 보낸 카톡 메시지들을 보다가 무심코 "미친 새끼."라고 소리내어 말한다.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정도로 말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지고 옆자리에 앉은 지희와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은 팀장 건너편 탁자에 앉아 있는 한수진을 포함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들 놀라서 미정을 쳐다본다. 팀장은 첨삭하던 볼펜을 책상에 탁 놓고 일어서서 미정에게 다가가 "혹시, 나보고 한 소리?"라고 말한다.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는데, 미정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아니요, 톡 보고.."라고 말한다. 팀장은 그 변명을 믿지 않는지 미정을 계속 노려본다.

퇴근길, 보람은 "하, 지가 미친 놈인 건 아나 보지? 커피숍 가는 거면 같이 가요."라고 말하지만 미정은 집에 가서 할 거라며 거절한다.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 미정은 보람과 헤어져서 커피숍에 간다.

커피숍 창가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서 미정은 창 밖에 보이는 해방교회의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겁니다.'라는 문구를 바라본다.

밤, 산포에 사는 친한 사람들끼리 두환의 카페에 모여 술을 먹는 자리에서 기정과 창희가 기정의 소개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탁자를 바라보고 안주를 먹으면서 듣고 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창희가 미정이에게 술 좀 더 사오라고 시킨다. 미정은 오징어를 뜯으면서 "싫어."라고 말하고, 창희는 싫으면 구씨네 가서 술 좀 빌려오라고 말한다. 미정은 싫어하는 표정으로 창희를 잠시 쳐다보는데 기정도 미정보고 넌 구씨랑 친하잖아 하면서 얼른 빌려오라고 말한다. 미정은 그만 일어나자고 말하지만 기정은 한 잔이 부족하다며 얼른 갔다 오라고 재촉하는데 두환이 구씨는 항상 술을 먹기 전에 두 병씩 사오기 때문에 집에 술이 없을 거라고 말해준다. 화제는 구씨의 술 먹는 습관으로 흘러가고, 구씨의 옆 집에 사는 두환이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미정은 탁자만 바라보며 듣고 있다. 듣다가 미정은 쟁반에 그릇들을 챙겨서 집으로 가면서 창희가 구씨네로 가는 것을 잠시 쳐다본다.

집에 들어와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턱을 괴고 있다가 기정과 창희가 들어오자 바라본다.

아침, 미정은 마을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대각선 뒤의 좌석에는 구씨가 앉아있지만 서로 아는 체 하지 않는다. 같이 당미역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지만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퇴근 후 집에 있다가 창희가 오자 엄마 삼촌이 돌아가셔서 엄마, 아빠 둘 다 상갓집에 갔다는 것을 알려준다. 창희의 전 연애를 파토낸 사람은 창희인가, 전여친인 이예린인가로 창희와 기정이 말다툼하는 것을 듣는다. 이후 부모님이 귀가하시자 인사한다.

미정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하철역을 지나 전철을 타기 위해 걸어가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미정: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개새끼들도 시작점은 다 그런 눈빛.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같은 눈빛.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하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 될까?

구씨: 너는? 넌 누구 채워 준 적 있어?

오늘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는다. 밥을 먹고 있는데 한수진이 "그 남자 요즘도 너희 집에서 밥 먹어?"라고 물어본다. 미정은 한숨을 쉰 후 "됐어, 그만해. 잊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한수진은 화제를 돌리고 다들 밥에 집중한다. 이때 미정은 핸드폰을 보는데, 행복지원센터에서 새로운 동호회 정보를 주려고 하니 오늘 센터에 들러달라는 문자가 와있다. 문자를 확인하고 두리번거리다 똑같이 핸드폰으로 무언갈 확인하고 있는 조태훈 과장과 박상민 부장을 발견한다. 박상민 부장도 문자를 확인하고 미정을 쳐다보고, 미정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행복지원센터 소파에 이 세 명이 앉아있다. 박상민 부장이 먼저 둘에게 말을 붙이고, 대화 내용은 아예 셋이서 동호회를 하나 만들어 하는 척하자는 쪽으로 흘러간다. 박상민 부장이 뭐 하는 동호회라고 할 지, 기존에 있는 동호회와 안 겹치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 있는데 미정이 진짜로 하는 게 어떠냐고 두 사람에게 제안한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3회-해방클럽 결성.jpg
"해방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진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이를 듣고 박상민 부장은 좋다고 한다.

셋이 다같이 소향기 팀장을 찾아가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다. 소향기 팀장은 세 분이서 한다는 해방이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박상민 부장이 "대한민국은 1945년에 해방되었지만, 저희는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하자 소향기 팀장은 당황하며 설명을 더 요구한다. 그러자 박상민 부장은 "해방. 할겁니다."라고 말한다.

대낮의 밭에서 엄마, 아빠, 구씨, 미정이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다시 모여서 동호회에 대해 논의하는 박상민 부장, 조태훈 과장과 미정. 뭐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박상민 부장의 말에 조태훈 과장은 뭐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보자고 하고 미정은 두 사람을 바라본다. 이후 회사에서 나와 살며시 웃으며 퇴근한다.

부모님과 구씨 그리고 미정이 밭일을 하고 밭 옆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다 먹고 아버지는 다시 일을 하러 일어나시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일어나서 가신다. 미정은 다 먹은 그릇을 놓고, 수박을 망으로 덮은 후 모자를 쓰고 옆에서 멍 떼리고 있는 구씨를 힐끔 쳐다보다가 "혹시, 내가 추앙해줄까요?"하고 말을 붙인다. 구씨는 이 말에 미정을 돌아보고, 미정은 이어서 "그쪽도 채워진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필요하면 말해요."라고 말하고는 밭으로 나간다.

다른 날 아침, 출근을 하는데 집 밖으로 나가다가 구씨를 마주치지만 서로 인사하지 않고 지나친다. 미정은 평소대로 가다가 중간에 멈춰 구씨를 돌아보고 "인사는 하고 지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구씨도 멈춰서 돌아보고 미정은 다시 "인사는 하고 지내요."라고 말한다. 구씨는 이 말을 듣고 인상을 쓰고 망설이다가 미정의 뒤쪽을 보더니 "마을버스 와. 뛰어"라고 말해준다. 미정이 계속 가만히 서있자, 구씨는 본인 갈 길 가면서 미정이 보고는 뛰라고 다시 말해준다. 미정은 이 말을 듣고 정류장 쪽으로 살짝 웃으며 뛰어간다.

마을버스에 앉아서 미정은 숨을 고르며 약간 설레는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구씨는 미정이 탄 마을버스 쪽을 쳐다본다.

4. 4회

부모님, 구씨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아버지가 식사를 다 하시고 일어나신 후, 어머니는 구씨에게 아버지가 미정이말고 누구 칭찬하는 소리를 처음 들어본다고 구씨를 칭찬하며 미정을 가리키지만 구씨도, 미정도 묵묵히 밥만 먹는다. 미정이 어렸을 때 공장에서 일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고 어머니가 식탁 옆 벽에 붙은 사진들 중 하나를 짚자 힐끔 사진을 쳐다본다. 밖에 계시던 아버지가 불러서 어머니가 나가시자 구씨와 어색하게 둘이서 대화없이 밥을 먹는다. 그러던 중 밖에서 기정과 창희의 말다툼 소리가 들려오고, 밥을 다 먹고 부엌을 나와서 방으로 들어가다가 현관에서 기정이 창희에게 던진 슬리퍼를 뒤통수에 정통으로 맞는다. 슬리퍼를 던진 기정도 놀라서 얼음, 슬리퍼를 피한 창희도 놀라서 얼음이다. 밥을 먹고 있던 구씨도 놀라서 미정을 쳐다본다. 화가 난 듯한 무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슬리퍼를 주워 들고 움찔하는 창희와 기정을 무시하며 현관으로 나가서 그 슬리퍼를 마당으로 확 던져버린다. "내 슬리퍼인데.."하며 중얼거리는 창희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부엌으로 갔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그날 저녁,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식탁에 있는 찐옥수수를 집어 먹으며 자신의 집 평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구씨를 거실 창을 통해 바라보다가 옥수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고 버티던 미정이 '해방클럽'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수진과 김지희가 탕비실에 와 미정을 둘러싸고 해방클럽은 뭐 하는 데냐고 묻자 "해방."이라고 말하다가 자신도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듣고 지희가 면피용으로 막 만든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자 그건 아니고 진짜로 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대답을 듣고도 둘은 계속해서 해방클럽이 뭐 하는 동호회냐 물어보고, 미정은 "뚫고 나갈거야. 여기서. 저기로."라고 말하고는 둘을 뚫고 사무실로 돌아간다. 자리에 앉아서 살짝 웃으며 일을 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걸어가다가 구씨가 운전하고 있는 트럭 소리를 듣고 뒤를 쳐다보고나서 살짝 웃는다. 트럭이 지나가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만 트럭은 속도를 유지한 채 지나간다.

집 마당에 들어가면서 밥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거절하고 그냥 가버리는 구씨를 쳐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어머니께 인사를 한 후 집에 들어간다.

아버지, 기정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돈을 안 주던 할아버지에게서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낮에 구씨가 다시가서 돈을 받아온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엄마와 언니의 대화를 묵묵히 들으며 밥을 먹는다.

고구마 줄기 반찬 및 여러 반찬이 든 통들을 쟁반에 올려서 구씨네 집으로 걸어간다. 쟁반을 식탁 위에 두고는 구씨를 바라보며 "고구마 줄기 좋아하는 것 같다고 드시래요."라고 엄마의 말을 전해준다. 가지 않고 잔을 닦는 구씨의 뒷모습을 보다가 "왜 이랬다저랬다 해요? 괜찮았다가 차가웠다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구씨는 되려 아버지랑 미정이 닮았다고 말하며 왜 자기가 받아야 될 돈인데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주눅드냐고 되묻는다. 구씨는 "받아줘?"라고 제안하고, 미정은 "한때 알았던 사람하고 끝장 보는 거 못 하는 사람은 못 해요. 돈 못 받는 거보다 자기 자신까지 밑바닥으로 내던져 가면서 험한 꼴 보는 게 더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구씨는 미정에게 돌려줄 냄비를 식탁에 탁하고 놓고 소파로 걸어가다가 바닥에 놓인 소주병에 발을 찧고, 그 소리에 미정은 뒤돌아본다. 소파에 앉으며 구씨는 "미안하다. 술꾼 주제에."라고 말한다. "각자 꼴리는 대로 사는 거지, 뭐. 나도 개선의 의지가 없고 너도 개선의 의지가 없고."라고 말하는 구씨를 쳐다본다.

쟁반에 냄비를 올려서 집에 가져가다가 그릇통을 하나 흘리지만 뒤따라오던 구씨는 그냥 지나가버리고 미정은 그릇통을 주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길을 걸어가며 구씨는 당미역에 처음 내리게 된 날의 회상을 시작하는데 "내리라고!"라고 말하는 미정의 목소리[14]가 들린다.

휴가지에서 입을 비키니 색상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는 한수진과 김지희 옆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다. 김지희가 갑자기 비키니가 무슨 색이냐 물어보자 "비키니 없는데."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김지희는 "그럼 원피스? 왜 이래? 해방될 여자가."하면서 놀리고, 듣고 있던 한수진은 웃는다. 이어서 미정이 원피스 색이 남색이라고 말해주자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미정을 바라보며 "헐."이라고 한다. 이내 둘은 다시 비키니 색을 고르며 속닥거리고 미정은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다시 본다.

횡단보도 앞에서 서있다가 건너편에서 현아가 건너오자 손을 흔들며 웃는다. 그리고 같이 걸으며 미정은 혼자 작게 웃는다. 왜 웃냐고 묻는 현아에게 "이상한 걸 발견했어. 혼잣말을 하는데 존댓말로 해. '현아 언니가 왜 늦을까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태풍이 곧 오려나봐요.'."라고 말한다. 이를 듣고 현아는 "누구 있네. 누구 있어."라고 말하는데 미정은 "아닌데."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걸으며 대화를 하다가 포장마차에서 핫도그를 사먹는다. 핫도그를 먹으며 옆에 있는 높은 건물을 바라보는데, 미정은 "저런 높은 건물 사는 사람들은 멘탈 장난 아닐 거야. 한 발이면 끝낼 수 있는데 안 하는 거잖아. 괴로워서가 아니고, 욱하면. 욱하면 한 발이면 끝나니깐."라고 말하고 둘은 반지하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현아의 집에 와서 같이 맥주를 마신다. 현아는 미정에게 독립하지 말라고 충고하다가 리모컨을 잃어버려서 껐다 켰다 밖에 못하는 에어컨의 낮은 온도를 불평하고, 미정은 현아 보고 대청소 좀 하라고 한다. 이어서 미정은 현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충고해준다. 그러다 현아가 "아, 나는 갈망하다 뒤질 거야. '사랑을 줘.', '나도 줄게.', '더 줘.', '나도 더 줄게.', '선물 따위는 필요 없어,', '이벤트 따위도 필요없어.', '그냥 사랑만 줘.', '배고파, 더 줘, 더, 더, 더.' 아씨, 세상 사랑을 다 쓸어 먹어도 안 채워질 거다."라고 말하며 어깨에 기대자 현아를 바라보며 웃는다. "너는 나처럼 갈구하지마."라고 말하다가 너 남자 있지?"라고 묻자 피식 웃는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술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정류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구씨를 발견한다. 구씨도 미정을 봤지만 서로 인사하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돌려 집으로 걸어간다.

가족이 다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그러다가 오빠와 아버지의 말다툼을 하고, 미정은 말다툼을 들으며 조용히 밥을 먹는다.

해방클럽의 첫 정모 날, 비 내리고 천둥 치는 안 좋은 날씨라 박상민 부장은 카톡으로 정모 실행 여부를 물어보고 모두가 참여하는 데 찬성하자 모이기로 결정한다.

박상민 부장, 미정, 조태훈 과장 순으로 카페 창가에 떨어져서 앉아 있다. 그렇게 각자 창밖을 바라보면서 해방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미정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

집 책상에 앉아서 종이를 넘기면서 기정이 조태훈의 둘째 누나 조경선의 뒷담화를 하는 것을 잠자코 듣는다. 이후 기정의 요청에 따라 방의 불을 꺼주고 부엌으로 가 불을 킨다. 컵에 담금주를 따라서 홀짝홀짝 마시며 일을 하는데 밖에 천둥이 친다. 거실창 너머로 비 내리는 평상에 앉아 있는 구씨가 보인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거실 쪽을 바라보며 해방클럽에서 했던 대화를 떠올린다.
상민: 염미정 씨는 왜 해방클럽을 생각했어?

미정: 사람들은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던 바다.

미정: 갇힌 거 같은데 어디를 어떻게 뚫어야 될 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거 같아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미정: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미정: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그래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번개가 구씨 집 근처 전봇대를 친다. 가까운 곳에서 친 번개를 보고 미정은 깜짝 놀라고, 번개의 여파로 그 근처 전봇대들과 미정이 있는 집의 전기가 나가버린다. 미정은 어둠을 뚫고 비를 다 맞으면서 다급하게 구씨에게로 뛰어간다. 계속 번개가 치는 가운데, 평상에 앉아 있는 구씨에게 "들어가요!"하고 소리친다. 뛰쳐나온 미정을 보고 구씨는 놀라서 쳐다보며 가만히 있고, 미정은 재차 "얼른 들어가요!"하고 고함을 지른다. 끊어진 전깃줄이 웅덩이에 닿으면서 불꽃을 튀기는 게 보이고, 미정은 "들어가라고요!"라고 말하며 구씨를 그의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집 안에서 미정은 가쁘게 숨을 쉬며 구씨를 쳐다 보고, 구씨도 미정을 응시한다. 미정은 구씨를 잠시 쳐다보다가 문을 닫고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미정: 어디에 갇힌 건진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는 거지.' 그런 말을 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집으로 비 맞으며 걸어가는 미정을 누군가 집에서 플래시로 비춰준다.

다른 날 낮, 미정은 고추밭에서 일하고 있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다친 발을 끌고 밭에 나온 구씨를 쳐다본다.

밭일을 하다 다같이 밭 옆에 있는 천막 그늘에 앉아 쉰다. 미정도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도랑 건너편을 바라본다. 이때 바람이 미정의 모자를 도랑 건너편으로 날려버린다. 돌아돌아 모자를 주우러 가려 하는데 구씨가 "있어봐."라고 말하며 신발을 고쳐신고 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근데 구씨는 모자가 떨어진 곳의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가족들은 의아하게 구씨를 바라본다. 구씨는 걸어가면서 미정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미정: 내리라고!

미정: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그래서 봄이 되면 당신도 나도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거예요.
구씨는 멀리서 도움닫기를 하더니 모자가 떨어져 있는 곳까지 추앙점프를 한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4회-추앙점프.jpg
미정은 구씨의 점프를 보고 놀란다.
구씨: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돼 있는 거?

미정: 확실해.

구씨: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미정: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5. 5회

4회의 마지막 장면[15]으로 시작한다. 이후 놀란 표정으로 구씨를 계속 바라보다가 구씨가 주워준 모자를 건네받는다. 모자를 다시 쓰고 일을 시작한다.

짐을 챙겨들고 집으로 가다가 자신의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구씨를 힐끔 본다.

구씨와 가족들이 전부 삼남매 집 마당 평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구씨가 국을 다 먹자 그릇을 어머니께 건네주고 다시 채운 국그릇을 가져다 놓는다. 창희가 구씨의 이름을 맞추려고 하는데[16] 이를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고 부엌에서 창희가 전을 그릇에 옮기고 있는 것을 도와준다.

그날 밤, 혼자 부엌 식탁에 앉아 전을 먹고 있다. 두환: 미정아 다이어트 하니? 미정: 어. 전을 삼키다가 창 넘어 구씨네를 슬쩍 본다. 이때 아버지가 스프레이형 살충제를 흔들며 새 거 없냐고 물어보시자, 밤에 뭘 나가냐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미정은 새 것을 사러 나간다.

편의점까지 걸어가며 독백한다.
미정: 왜 슬플까? 왜 슬프지?

미정: 오다가 말아. 맨날 오다가 말아.

현아(회상): 나는 갈망하다 뒤질 거야. 너는 나처럼 갈구하지마.

미정: (한숨)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검은 봉지를 하나 팔에 끼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편의점에서 나온다. 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라고 반복해서 혼잣말한다. 그러다 술 사러 나가는 구씨를 발견하고 "샀는데, 소주."라고 말하며 살충제를 봉지에서 꺼내고 구씨에게 소주가 든 봉지를 준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5회-술 사주는 미정.jpg
얼마냐고 묻는 구씨에게 미정은 돈은 됐다면서 거절하는데 구씨는 "돈은 있냐?"라고 말한다. 미정은 "그 정돈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뒤돌아서 가려는데 구씨가 "확실해?"라고 말해서 다시 구씨를 바라본다. 이어서 구씨는 "봄이 오면 다른 사람 돼 있는 거? 추앙하다 보면 다른 사람 돼 있을 거라며."하고 묻는다. 미정은 "한 번도 안 해 봤을 거 아니에요. 난 한 번도 안 해 봤던 걸 하고 나면 그 전하고는 다른 사람이 돼 있던데."하고 답한다. 답을 듣고 걸어가는 구씨의 뒷모습을 보고 미정은 "하기로 한 건가?"하고 묻고, "했잖아. 아까 낮에."라 말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구씨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이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꾸 구씨가 간 쪽을 뒤돌아본다.

술 먹고 집에 와 침대에 누워 있는 언니를 힐끔 보고 다시 나간다.

행복지원센터에 불려가서 '해방클럽'이 뭘 하는 곳인지 다시 질문받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자 소향기 팀장은 일지라도 써보라고 권유한다.

미정은 문구점에서 노트를 고른 후 사서 하나씩 박상민 부장과 조태훈 과장에게 나누어 준다.

퇴근해서 당미역에서 나오는데,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나오는 구씨를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간다. 미정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구씨가 인상을 쓰고 그냥 걸어가버리자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쫓아간다. 집까지 거리를 두고 걸어가다가 거의 다 왔을 때 구씨에게 뛰어가 저녁 먹었냐고 물어본다. 구씨는 생각 없다고 말하면서 빠르게 걸어가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미정은 빠르게 따라가며 이따 뭐하냐고 다시 물어본다. 그러자 구씨는 저 멀리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힐끔 보고는 고개로 가리키며 "너희 식구들 다 있는 데서 뭐 할 수 있는데?"라고 대꾸한다. 미정은 쫓아가는 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구씨의 뒷모습을 보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밤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와서 불을 키는데, 냉장고 앞에 멍하니 서있는 언니를 보고 멈칫한다. 이후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며 안 자고 뭐 하냐고 기정에게 물어본다. 기정은 배가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고, 미정은 배고픈 게 아닐거라고 말해준다. 그리곤 부엌 불을 끄고 다시 방에 들어간다.

해방클럽 회원들끼리 모여 각자 쓴 일지를 돌려본다. 미정이 쓴 일지[17][18]를 박상민 부장이 읽고 있는데 미정이 말한다.
생각해 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구, 미운 것도 있구, 질투하는 것도 있구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론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 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직장 동료들과 다 같이 엘레베이터에 내려서 걸어가는데 번호가 저장되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돈 생겼는데'라는 문자를 받고 멈춰선다. 놀라서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앞에 먼저 가고 있는 동료들 눈치를 살짝 보는데, 다시 문자가 온다. '혹시 먹고 싶은 거', '나 구씨'. 마지막 문자를 보고 미정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당미역에서 나오는 미정을 구씨가 기다리고 있다. 미정은 웃으며 다가간다. 구씨와 나란히 걸어가며 해방클럽 일을 회상한다.
상민: 이게 가능할까? 자식새끼도 이러기 쉽지 않은데.

미정: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방향 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구씨와 함께 식당에 가서 돈까스를 먹는다. 구씨가 냅킨을 여러 장 뽑아서 미정에게 주자 냅킨을 바라본다.

집까지 대화하며 구씨와 걸어간다. 그러다 구씨가 멈춰서서 산을 바라보자 미정도 같이 서서 바라보다가 다시 집까지 걷는데 구씨가 물어본다.
구씨: 가짜로 해도 채워지나? '이쁘다, 멋지다' 아무 말이나 막 할 수 있잖아.

미정: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 텐데? 모든 말이 그렇던데. 해 봐요, 한번, 아무 말이나.
우물쭈물하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먼저 가버리는 구씨를 쫓아가는데, 옆에 정차한 버스에서 기정이 내리는 걸 보고 구씨와 살짝 떨어져서 먼저 걸어간다. 정류장에서 집까지 셋이 걸어가는데 다 멀리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걷는다.

6. 6회

언니, 구씨와 거리를 두고 같이 걸어간다. 기정이 먼저 집에 도착하고 뒤이어 미정이 집에 들어와 어머니께 인사한다. "밥은?"하고 묻는 어머니께 밥은 먹었다고 말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간다. 이후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거실에 나와 빨래를 개는데 핸드폰 진동음 소리가 들리고, 언니가 훔쳐보기 전에 핸드폰을 가져간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구씨가 운전하는 트럭을 얻어 탄다.

당미역에서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내린 후 걸어간다.

지하철에 서서 가면서 구씨와 나눈 문자[19][20]를 다시 보고 구씨의 연락처를 저장한다. 그리고 밖에 보이는 해방교회의 문구[21]를 사진 찍는다.

화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팀장이 회사 프린터로 비행기 티켓을 뽑은 괌 여행 무리[22]를 갈구는데 같이 한소리[23] 듣는다.

오전 근무를 마감하라는 안내가 나오고, 눈치를 보다가 괌 무리들은 먼저 일어난다. 미정은 보람과 함께 식당에 가 밥을 먹으며 대화한다.미정: 난 정규직이었어도 안 끼워 줬을 거 같아. 비키니가 없잖아.

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서 아침에 구씨에게 보낸 카톡[24]을 확인한다. 아직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구씨와의 카톡방을 보고 있는데 언니에게서 한 잔 하자는 카톡이 와 확인한다.

기정, 현아와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한다. 미정: 연습할 거야, 이제. 기정: 야, 뭘 연습하는데 알코올 중독자랑? 알코올 중독 아니라고 하지 마. 내가 더 마신다고 하지마. 그리고 전남친 이야기를 하다가 앞으로의 다짐을 말한다.[25]

조태훈 삼남매가 하는 술집에 2차를 간다. 그곳에서 언니와 현아의 대화를 살며시 웃으며 듣다가 소리가 높아지자 귀를 막는다. 이후 구씨에게 보낸 카톡[26][27]을 확인하는데 1이 사라져있지만 답장은 없다. 이를 보고 미정은 카톡을 보낸다.
자꾸 답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두고 봐라 나도 이제 톡 안 한다.' 그런 보복은 안 해요. 남자랑 사귀면서 조용한 응징과 보복 얼마나 많이 했게요.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 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깐. 너무 좋아요.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서 구씨네 집 사진을 찍는다.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두환으로부터 창희와 두환이 구씨네 집에 쌓여 있는 소주병들을 치우려 하다가 욕 먹은 이야기를 듣는다. 미정은 "도와달라고 했어? 치워달라고 했냐고."라고 묻고, 왜 함부로 들어가서 손 대냐고 타박한다. 이어서 "인간을 갱생시키겠다는 의도가 너무 오만해."라고 일침을 날린다. 창희랑 약간의 말다툼을 하다가 창희가 후라이팬을 들고 식탁으로 오자 먹고 있던 그릇을 치운다.

구씨네 집 식탁에 앉아서 거실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구씨를 보며 말을 들어주다가 말한다.
나도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 한두 시간 되나? 좋은 시간도 아니고 괜찮은 시간이 그 정도 나머진 다 견디는 시간.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신나서 뛰어노는 애들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심란했어요. '뭐가 저렇게 좋을까?' '난 왜 즐겁지 않을까'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쓸데없이 허비되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까?' 80년 생을 8년으로 압축해서 살아 버려도 하나 아쉬울 거 없을 거 같은데.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가 보자.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단정하게 가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미정의 말을 듣고 있던 구씨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28]을 꺼내 주자 "왠 아이스크림?"하고 묻는다. 구씨는 취해서 샀다고 말하고, 미정은 빤히 쳐다보다가 "좋은데?"라고 말하고 맛있게 먹는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가 기정, 현아와 술 먹고 택시를 타고 가며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낸 '저 안에 사는 남잔 저 시간에 뭐하고 있었을까.'라는 카톡[29]의 답장[30][31]을 받는다. 이를 보고 슬며시 웃다가 '당신 톡이 들어오면 통장에 돈 꽂힌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하고 카톡[32]을 보낸다. 그리고 괌 여행 비행기표 사건 이후로 어색하게 지내던 김지희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이후 다시 일을 하다가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구씨가 보낸 카톡[33][34]을 확인한다. 카톡을 보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술 마셔야지'라고 답장을 보낸다.

역에서 나오다가 당미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씨를 보고 다가간다. 떨어져 앉긴 했지만 구씨와 함께 마을 버스를 타고 간다.

구씨가 앉아 있는 소파와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서 구씨와 대화한다.
구씨: 오늘 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몰았다. 소몰이하듯이. 겨우내 저 골방에 갇혀서 마실 때, 마시다가 자려고 하면 가운데 술병이 있는데 그 술병을 이렇게 치우고 자면 되는데 그거 하나 저쪽에다 미는 게 귀찮아서 소주병 가운데 놓고 무슨 알 품는 것처럼 구부려서 자. 내 무덤에서 내가 일어나 나와서 벌초해야 되는 것처럼 암담한 일 같아. 누워서 소주병 보면서 그래. '아, 인생 끝판에 왔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백만 년 걸려도 못 할 거 같던 일 오늘 해치웠다. 잠이 잘 올까, 안 올까?

미정: 무슨 일 있었는지 안 물어, 어디서 어떻게 상처받고 이 동네로 와서 술만 마시는지 안 물어. 한글도 모르고 ABC도 모르는 인간이어도 상관없어. 술 마시지 말란 말도 안 해. 그리고 안 잡아. 내가 다 차면 끝.

구씨: 멋진데? 나 추앙했다.

미정: 좀 더 해 보시지? 약한 거 같은데.
그리고는 마주보고 앉아서 구씨는 소주를 미정은 맥주를 마신다.

다른 날 낮, 구씨가 점프해서 모자를 주워줬던 도랑을 보며 앉아 있다. 이때 창희가 구씨처럼 뛰어 넘어보려하고 미정은 창희를 말린다. 기여코 점프한 창희는 도랑 사이에 엎어지고, 미정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는다. 엎어져있는 창희를 내려다 보며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라고 말한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6회-창희 보는 미정 보는 구씨.jpg

7. 7회

밭에서 일하고 있는 구씨 뒤에서 같이 밭일을 한다. 그러다가 잠시 서서 쉬는데 미지근한 물을 먹던 구씨가 미정에게는 시원한 물을 던져줘서 받아먹는다. 기정: 쟤들 지금 연애질하는 거거든요?

일이 끝나고 거실에서 다같이 밥을 먹는다. 좋아서 하는 거라며 밭일한 건 돈을 받지 않겠다고 구씨가 말하자 이를 듣고 잠시 기정과 구씨의 눈치를 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계속 돈을 받으라고 구씨에게 말하고, 이를 듣고 있던 기정이 "좋아서 한다잖아요. 좋겠지, 그럼 안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거실 바닥을 밀대로 닦다가 어머니가 집밖으로 나가시자, 설거지를 하던 기정을 노려보며 "자꾸 그래."라고 말한다. 기정은 "내가 칼자루 쥐었어"라고 말하며 "어떠냐, 동네에서 동네 남자랑 연애하는 기분이?"라면서 계속 건드리고, 그러는 기정을 계속 말없이 노려보다가 어머니가 돌아오시자 대걸레질을 이어한다.

창희의 부탁을 듣고 밥과 반찬을 담아 두환의 카페로 가져간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있는 두환과 창희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준다. 아메리카노를 만들면서 둘의 대화를 듣다가 "난 그 말을 이해 못 해. 심장 뛰게 좋다는 말. 뭐, 그 정도로 좋았던 적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고. 뭐, 그렇게 좋았던 적도 없지만. 내가 심장이 막 뛸 땐 다 안 좋을 때던데. 당황했을 때, 화났을 때, 100m 달리기 하기 전. 한 번도 좋아서 심장이 뛴 적이 없어. 정말 좋다 싶을 땐 반대로 심장이 느리게 가는 거 같던데. 뭔가 풀려난 거 같고. 처음으로 심장이 긴장을 안 한다는 느낌? 내가 이상한가 보지."라고 말한다.

구씨에게 '오늘 늦어요.사내 동호회 활동 있어서.', '내가 말했나? 무슨 동호횐지?', '해방클럽이라고 해방하고픈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회원은 단 세명. ㅋㅋㅋ'라는 카톡을 보낸다.

동료들과 같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지희가 헐벗은 손톱에 꼭 색 입힌다고 말하는 것을 웃으며 동호회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한다. 이후 1층 로비에 모여있는 해발클럽 사람들과 소향기 팀장을 발견하고 다가가 같이 걸어간다.

짐을 같이 들어달라는 기정에게 동호회가 있어서 늦게 끝난다고 통화한다.

박상민 부장, 조태훈 과장, 소향기 팀장과 함께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다. 박상민 부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 다음 사람을 찾고 있는데 기정의 연락이 와서 확인한다. 계속 전화가 오는 미정을 배려해서 10분간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하고, 이때 기정의 전화를 받는다. 밖에 잠시 나온 태훈과 마주친 기정에게 다가가서 짐을 들어준다. 카페에 들어와서 동호회 활동을 이어하며 태훈의 이야기를 듣는다.

기정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기정이 태훈의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집에 들어가며 인사한다. 분명히 같이 도착했을 텐데 굳이 따로 들어간다. 이후 화장실에 들어가 씻는다.

기정과 창희가 먼저 출근하고, 미정은 아버지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이때 등본에 없던데 주소지를 어디로 옮겼냐고 아버지가 물어보시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개인 회생 중인 친구 부탁을 듣고 친구의 월세 계약을 위해 그 집으로 옮겨 놓았다고 변명한다. 아버지는 이를 듣고 다시 옮겨 놓으라고 말하시고, 미정은 말없이 밥을 먹는다.

고민에 잠긴 채 버스를 타러 걸어간다.

낮에 은행에 찾아가서 상담원에게 우편물이 또 올 수 있냐고 묻는다. 연체가 발생하면 우편물이 발송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은행 건물에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저녁에 회사에서 찬혁 선배에게 '대출 받아서 빌려준 거, 집에서 알기 직전이야.', '오늘은 꼭 통화해야 돼. 전화 줘.'라는 카톡[35]을 보낸다.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퇴근하지 않고 있다가 밤에 찬혁 선배에게 전화를 건 후 '받을 때까지 나 집에 안 가.'라는 카톡[36]을 보낸다. 계속 통화 연결음이 들리다가 어느 순간 찬혁 선배가 아닌 세영[37]이 전화를 받는다. 선배로 전화를 바꿔달라고 말하지만 세영으로부터 찬혁이 정말 돈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눈물이 찬다. 울먹이며 좀 있으면 카드도 정지되고 신용 불량자 된다고 하다가 "내가 왜 신용 불량자가 돼야 돼요?"라고 말하며 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서 자신도 방법이 없다는 세영의 말을 듣고 흐느끼고 있는데 찬혁이 핸드폰을 뺏어 드는 소리가 들린다. 집에 말하면 되는 걸 왜 신용 불량자 된다고 하소연하냐고 적반하장으로 말하는 찬혁에게 "선배가 잘못 한 걸 왜 우리 집에 말해?"라고 말하지만 찬혁은 나중에 갚는다고 오히려 소리친다. 이를 들으며 미정은 "어떻게 나한테 이래?"라고 말하며 흐느낀다. 찬혁이 집기를 깨부수고 세영이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린다.

퇴근하다는 길에 강아지 모양 장남감을 구경하다가 세영이 보낸 문자[38]를 확인하고 서 있는다.

늦게 퇴근하고 방에 들어가는데, 기정이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 구씨 말이야."라고 물어본다. "내가."라고 대답하자 놀라서 쳐다보는 기정에게 덧붙여서 "사귀자고 안 했어, 추앙하라고 했어."라고 말한다. 기정 : 뭐? 이후 책상에 앉는다.

은행에 가 본인의 청약 통장[39]을 해지해서 빚을 대신 갚는다. 은행을 나오는데, 은행원으로부터 힘내라는 응원을 듣는다.

당미동 사무소에서 등본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나오는 길에 구씨와 마주친다. 반갑게 다가간 미정에게 구씨는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볼일이 있어서 반차를 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같이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오늘 일찍 끝났냐고 물어보지만, 구씨는 답하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 약간 떨어져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미정은 구씨에게 계속 말을 걸지만 구씨는 대꾸하지 않는다. 미정은 머쓱하게 핸드폰을 본다.

마을 버스에 타서는 나란히 같이 앉아 간다. 옆에 앉아 있는 구씨에게 등본 주소를 다시 집으로 옮겨 놨다고 말해준다. 구씨는 우편물 또 오면 어쩌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이제 올 일 없다고 말한다. 대신 갚았냐는 질문에는 갚는다고 했다고, 갚을 거라고 대답한다. 이를 듣고 구씨는 딴 사람이 할 거니깐, 그 새끼 이름하고 연락처만 주면 된다고 말한다. 미정이 알려주지 않자 구씨는 "아직도 좋아하냐?"라고 묻고 미정은 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7회-버스에 나란히.jpg

버스에서 내려서는 화난 얼굴로 구씨와 거리를 두고 집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구씨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고, 미정은 방향을 돌려 구씨네 집으로 향한다.

구씨는 라면 물을 끓이고 있는데, 미정이 구씨의 집에 들어가서 숨을 고르면서 구씨를 쳐다본다. 구씨: 무섭다 이후 "앉든가."라고 말하는 구씨를 보고 미정은 "어디까지 더 끝장을 봐야 되는데? '이 꼴 저 꼴 안 보고 깔끔하게 잘 끝냈다' 말해 줘도 되잖아. 왜 자꾸 바닥을 보래? 인터넷에서만 보던 남자한테 돈 뜯기는 빙신 같은 게 나라는 거 엄마, 아버지, 세상 사람들 다 알게 난장 까야 돼?"라고 묻는다. 구씨는 라면 스프를 흔들면서 "그게 무섭지 그 새끼가 너 그러는 거 아니까 그따위로 나오는 거야."라고 말하고 한숨을 쉰다. 이를 듣고 미정은 잠시 감정을 누른 후
돈 문제 얽히면서 나 보자마자 골치 아픈 얼굴 하는 거 버텼어. 짜증스러워하는 얼굴 보면 다 내가 잘못한 거 같고, 꿔 간 거 달라고 하는 것도 죄지은 거 같고, 그냥 이런 일로 엮인 거 자체가 다 내 잘못같고 어쩔 수 없이 난 이래. 문제 있는 남편이랑 사는 거 이해 안 된다고 도와준답시고 억지로 뜯어내는 사람들이 난 더 이해 안 가. 제발 그냥 두라고. 내가 아무리 바보 멍청이 같아도 그냥 두라고. 도와 달라고 하면 그때 도와 달라고! 사람하고 끝장 보는 거 못 하는 사람은 못 한다고. 얼굴 붉히는 것도 힘든 사람한테 왜 죽기로 덤비래.
라고 말한다. 가만히 듣다가 "나한텐 잘만 붉히네."라고 말하는 구씨에게 미정은
넌 날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뭔 짓을 못 해? 그러니까 넌 이런 등신 같은 날 추앙해서 자뻑에 빠질 정도로 자신감 만땅 충전돼서 그놈한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야무지게 할 말 다 할 수 있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누가 알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 까발려져도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게 날 추앙하라고.
라고 말한다. 구씨는 라면을 거실 탁자에 놓은 후 소파에 앉아서 피식 웃으며 "먹어, 손 떨던데, 드셔. 추앙하는 거야. 먹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미정은 구씨 옆에 앉은 후 "물"이라고 말한다. 구씨는 어이없어서 웃다가 물을 가져다 주고 미정은 다 불은 라면을 먹고 구씨가 가져다준 물을 마신다. "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깜짝 놀란다. 응?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네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래서 병신같아서 짜증나. 짜증나는데, 자꾸 기다려. 응? 알아라, 좀. 염미정, 너 자신을 알라고."라고 말하는 구씨를 눈시울을 붉힌 채 쳐다보다가 젓가락을 들면서 "더 해 보시지, 좋은데."라고 말하고 라면을 먹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7회-넌 날 쫄게 해.jpg

해가 진 후, 구씨가 운전하는 트럭 옆 자리에 타고는 같이 드라이브를 한다. 운전하는 구씨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차에서 내려서는 밭 한가운데에 모여있는 들개 세 마리를 같이 멀리서 바라본다. 들개에 대해서 구씨에게 말한다. 구씨가 들개에게 다가가자 짖는 개한테는 안 가는 게 낫다고 말린다.

돌아가는 길, 구씨는 자전거 탄 사람에게 "파이팅"이라고 응원해주고 미정과 구씨는 서로를 보고 번갈아가며 웃는다.

가족들이 다 불끄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에 미정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미정은 책상 서랍에 넣어 뒀던 등본[40]을 꺼내 식탁에 올려두고 출근한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미정 옆에 구씨가 트럭을 세운다. 기정: 뭐야? 미정은 트럭과 구씨를 보다가 트럭에 탄다. 미정의 뒤에서 걷고 있던 기정도 얻어 탄다. 셋이 트럭을 타고 버스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창희를 지나쳐간다.

미정과 기정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창희가 걸어온다. 분명히 제일 먼저 나갔는데 제일 늦게 도착한 창희는 기정과 미정을 보고 언제 왔냐고 묻는다. 기정은 미정을 바라보며 "얘 남자 친구가 태워다 줬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던 창희는 곧 기정이 말한 미정의 남자 친구가 누구인지 깨닫고 놀라서 미정을 보는데 지하철이 온다.

8. 8회

회사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에 미정은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그런 미정을 보면서 한수진이 "염미정 요즘 톡 많이 해. 누구 있어, 그지? 얘 어제 단톡방에 잘못 올린 거 봤어?"라고 말하고 '이제 퇴근해요, 전철 탔어요.'라는 미정의 카톡 내용을 가지고 놀린다. 다른 직원들은 봤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이어서 지희는 톡을 하는 남자가 저번에 집에 와서 밥 먹는다고 불편하다고 했던 남자 맞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응."이라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듣고 직원들은 다 같이 놀라서 술렁인다.

밥을 먹는데, 동료들의 관심은 미정의 카톡 상대에게 있다. 그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는데, 미정은 모른다고만 말한다. 그러다가 지희가 그 남자의 매력 포인트가 뭐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고민하다가 "껍데기가 없어. 왜, 되게 예의 바른데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사람 있잖아. 뭔가 겹겹이 단단해서 평생을 만나도 닿을 수 없을 거 같은 사람. 이 사람은 껍데기가 없어."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듣고 지희는 여기 없는데 '그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지금 마음 속에 있다는 거라고 말한다. 동료들과 함께 미정도 이 말을 듣고 웃는다.

밥을 다 먹고 다같이 사무실에 돌아오는데, "에이씨"거리고 있는 최준호 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팀장은 미정의 작업물을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내며 계속 수정한다. 옆자리의 지희가 미정에게 휴가 가면 저 소리 안 들어서 살 것 같다고 조용히 말하고 미정은 말없이 듣는다.

탕비실에서 물을 따르는 미정 옆에 한수진이 와서 "남친에게 일러 버려."라고 조언하고 미정은 "그럴라고."라고 말한다. 한수진은 사무실로 사라지고 미정은 탕비실 입구 쪽에 서서 물을 마시며 최준호 팀장 쪽을 보는데, 팀장은 아직도 "아이, 진짜, 씨.."거리고 있다.

미정을 빼고 구씨와 가족들이 저녁을 먹는다. 어머니가 미정이가 어디쯤인지 전화 좀 해 보라고 해서 창희가 연락하니 미정은 아직 회사라고, 늦는다고 답장한다.

늦게 까지 회사에 남아서 팀장이 남긴 수정 요청 자료를 보고 제출물을 수정하고 있다. 한숨을 내뱉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살며시 웃고는 짐을 챙겨 퇴근한다.

당미역 근처 카페에 앉아 1회 카페에서 일할 때를 회상하며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그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 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에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수정을 마저 하는데 카페 앞을 구씨가 지나간다. 구씨는 미정이 있는 카페에 들어와서 미정을 힐끔 보며 맥주를 주문한다. 이후 미정과 문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신다. 미정은 그런 구씨를 보면서 "염미정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고 말한다.

밤 늦게 집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눈다.
미정: 술 참 특이하게 마셔. 멍때리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난 하이해지려고 마시는데.

구씨: 나는 차분해지려고 마셔. 술 들어가면 머릿속에 붕 떠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던 퍼즐 조각들이 착 제자리에 앉는 거 같아. 순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미정: 머릿속에 뭐가 왔다 갔다 하는데?

구씨: 욕. 욕만 해, 하루 종일 속으로.

미정: 누구한테?

구씨: 몰라, 나도.

미정: 욕에 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야.

구씨: 없어, 그냥 욕만 해. 욕 안 할 때는 술 마실 때, 잘 때, 이렇게 말할 때.

출근해서는 출시될 카드의 시제품과 종이 봉투를 가져와 최준호 팀장에게 전달하는데, 팀장은 보지도 않고 자신의 책상에 가져다 놓으라고 말한다. 미정이 사무실로 가려 하자 최준호 팀장은 미정의 등 뒤에 대고 "미적 감각? 이런 건 타고나는 거야. 색감? 이런 건 배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빈정거린다. 미정은 무시하고 빠르게 가버린다.

보람과 함께 둘이서 밥을 먹으며 결정된 카드 디자인[41]에 대해 말한다. 미정은 카드 디자인이 결정권자인 실장 한 사람의 느낌으로 결정 났다고 보람에게 말해준다. 보람은 허탈해하고, 미정은 그런 보람에게 "근데, 난 처음부터 그거라고 생각했다는 거. 근데 내가 그렇게 말했으면 먹혔을까? 그래도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데 고맙더라. 뭔가 나랑은 차원이 다른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그냥 느낌으로 가는 거였구나."라고 말한다. 이를 듣고 보람은 "언닌 언니가 잘났다는 걸 몰라서 불행한 거 같애."라고 말하고 미정은 살며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시 사무실에 와서 일을 하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조태훈 과장의 카톡이었고 보고 답장한다. 이때 팀장이 와서 자신의 자리에 앉고는 미정이 가져다 놓은 카드 시제품과 종이 봉투를 확인한다. 종이 봉투 속 물건을 꺼내보니 '초안대로'라고 적힌 미정의 작업물(책자)이 나온다. 팀장은 당황해서 작업물을 뒤적인다.

최준호 팀장은 전화로 실장에게 "근데 그 책자 말이야.처음엔 괜찮은데, 왜 수정안에서 이상해지지, 항상?"라는 한소리를 듣는다. 전화를 끊고 팀장은 짜증을 담아 봉투에 '초안대로'라 적힌 책자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미정에게 책자 작업한 걸 웹하드에 올렸냐고 물어보고 올렸다는 대답을 듣자 고생했는데 일찍 들어가라고 한다.

미정은 달리는 지하철 안에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당미역에 도착하자 부리나케 뛰어서 역을 나온다. 역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구씨가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을 만지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급하게 튀어나오는 구씨와 마주친다. 발걸음을 돌려 구씨와 같이 걸으며 "아, 안을 뻔 했네 반가워서."라고 말한다. 구씨는 머쓱해서 아무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서 가고 미정도 그런 구씨를 따라 뛰듯이 걷는다.

구씨가 산 캔음료를 같이 먹으며 집까지 걸어가다가 대화를 나눈다.
미정: 이 동네에 살던 미친 언니가 있는데 그쪽 궁금하다고 보러 온대서 오지 말라고 했어요. 서로 안 좋아 할거야.

구씨: 왜? (대답을 기다리다가) 말하기 껄끄러울 때 항상 그러더라. 멈칫. 멈칫.

미정: 비슷해, 둘이.

구씨: 뭐가?

미정: 둘 다 세. 둘 다 거칠고 투명해.

구씨: 무슨 투명은... 미쳤구나?

미정: 투명해.

구씨: 너 지금 나 추앙하냐?

미정: 응.

두환이 보내준 카톡을 통해 기정이 내일 조태훈 과장에게 고백할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집에 와서는 언니와 이 일을 가지고 말싸움을 한다. 그러다 미정은 기정에게 "밥 든든히 먹고 나가. 날씬해 보이려고 굶고 나갔다 또 진땀 빼지 말고."라고 충고한 후 방을 나가버린다.

다음날 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기정을 기다린다. 기정은 왼손에 깁스를 하고 훌쩍이면서 버스에서 내린다. 흐느끼면서 걸어오는 기정을 보면서 미정은 뒤따라가준다.

집에 와서도 계속 우는 기정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도와주려고 하는데 기정이 짜증을 내면서 거절한다. 이후 대성통곡을 하는 기정을 보며 같이 울컥해서 눈물이 고인 것을 손으로 닦아낸다.

현아가 산포에 오자 미정은 두사람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구씨와 운연사로 간다.

운연사의 계단에 나란히 앉아서 무지개를 바라보며 말한다.
미정: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3살 때, 7살 때, 19살 때, 어린 시절의 당신 옆에 가 앉아서 가만히 같이 있어 주고 싶다.'

구씨: 있어 주네, 지금. 내 나이 아흔이면 지금이 어린 시절이야.
파일:나의 해방일지 8회-운연사 데이트.jpg

9. 9회

지희가 괌 여행을 갔다 와서는 피부 탄 이야기를 한다. 미정은 동료들의 여행담을 웃으며 듣는다.

퇴근하고 역에서 나오는데 구씨가 기다리고 있다. 구씨에게 다가가서 같이 걸어간다.

집까지 가면서 계절 바뀌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길에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보고 구씨는 자리를 바꿔준다. 지나가며 새의 시체를 보던 미정은 시골에서는 시체들을 많이 본다면서 예시들을 말해준다. 이어서 옛날에 논이 있었을 땐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건너가던 개구리를 차가 지나가며 두두두둑 터트리는 소리가 났다고 설명해준다. 구씨는 이를 듣고 경악하며 인상을 쓰고 미정을 쳐다보고 먼저 걸어가버린다. 그런 구씨를 보면서 미정은 혼자 행복지원센터의 소향기 팀장에게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예전엔 시키는 말 외에는 잘 안 했던 거 같아요. '누가 내 애기를 듣고 싶어 할까?' 근데 이젠 머릿속에 떠오른 얘기를 그냥 해요. 그냥 나와요. 그러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이 올라와요. 갑자기 내가 사랑스러워요.
구씨를 쫓아가는데, 커피를 마시는 미정을 돌아보면서 구씨가 "그게 먹으면서 할 얘기냐?"라고 하면서 빨리 걷는다. 미정도 빠르게 따라간다.

동료들과 계단을 내려가면서 소향기 팀장과 마주친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가다가 조태훈 과장과도 마주쳐서 서로 짧게 인사한다.

퇴근길에 미정은 역 앞 슈퍼에 들러서 소주를 사려 하는데 슈퍼 주인아주머니는 구씨가 가끔 다른 술도 사간다면서 소개해준다. 술을 보고 있는 미정에게 아주머니는 구씨의 나이, 고향을 물어본다.

구씨네에 와서 오징어를 구우면서 슈퍼 주인아주머니가 구씨의 신상에 대해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자꾸 묻길래 그냥 내 맘대로 대답했어요. '서른여덟이요.', '서울 사람이요.' 이름이 뭐냐고 물어볼까 봐 구자철, 구자승, 구자경, '자'자로 정신없이 머리 굴리고 있는데 이름은 안 물어보더라고. 맞았나, 자? '본'이거나 '자'거나 둘 중의 하나잖아." 구씨는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다가 '구자경'할 때 고개를 들어 미정을 잠시 보고는 술을 따라 마신다. 아무말도 없는 구씨를 보며 미정은 "피곤한가 보네?"라고 말하고 구씨는 "하, 10km를 걸었다. 지갑이 없었어."라 대답한다. 이 말을 듣고 미정은 "쉬어요."라고 말하고 집으로 간다.

집에 들어와 부엌에 계시는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밥은 먹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어서 "근데 왜 구씨네서 나와?"라고 물어본다. 미정은 멈칫하고, 옆을 지나가던 기정은 미정의 눈치를 본다. "술 사다달래?"라고 다시 묻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미정은 "그냥 얘기하다가."라고 말한다. 무슨 얘기를 했다고 어머니는 다시 물어보시고, 미정은 "사귀는데.."라고 대답한다. 어머니와 기정이 놀라서 미정을 쳐다본다. 어머니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시고, 미정은 자기 방에 들어가버린다.

미정은 일을 하던 중 떨어진 볼펜을 줍다가 바닥에 떨어진 인조 손톱을 발견한다. 인조 손톱을 보다가 지희에게 "뭐든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기이한 거 같애. 그냥 네일일 뿐인데, 왜 여자의 시체를 보는 것 같을까?"라고 말한다. 지희: ??? 미정은 손톱의 주인을 아냐고 물어보지만, 지희는 모른다고 답하며 발로 인조 손톱을 쓱 치워버린다.

퇴근 후 구씨네 집에서 청포도를 씻으며 구씨에게 말한다.
버스 창틀에서도 인조 손톱 본 적 있는데 진짜 이상했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것들은 다 기이해. 땅에 누워 있는 새. 나무에 매달린 사람. 밭에 있는 개도 이상하고.
청포도를 다 씻고는 창밖을 보며 서있는 구씨에게 "웬일로 술을 안 마셨대?"라고 이어서 말한다. 대꾸없이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구씨에게 포도와 함께 문자가 계속 오는 구씨의 핸드폰을 가져다 준다. 알림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탁자에 핸드폰을 올려놓는 구씨를 보고 "왜 안 받아?"하고 묻는다. 구씨는 안 받아도 된다고 대답하고, 미정은 "오늘도 피곤하신가?"라고 물어본다. 이 말을 듣고 구씨가 씩 웃으면서 말없이 미정을 쳐다보자, 미정은 "왜 그래?"한다. 구씨는 "사귄다고 했다며?"라고 미정에게 말하고, 미정은 "응."이라 대답한다. 구씨는 이어서 "뭐 하러.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데. 다들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라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미정은 "사귀고 헤어지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걸 비밀로 해."라 대꾸한다. 이후 미정은 "몇 개만 먹고 일어날게. 그동안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요."라 말하며 구씨 옆에 앉아 청포도를 집어 먹는다. 구씨는 고민을 하다 말을 시작한다.
구씨: 옛날에 TV에서 봤는데 미국에 유명한 자살 절벽이 있대. 근데 거기서 떨어져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인터뷰를 했는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3분의 2 지점까지 떨어지면 죽고 싶게 괴로웠던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낀대.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거 같아서 발을 뗐는데, 몇 초 만에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낀대. 그럴 거 같았어. 그래서 말해 줬어. 사는 걸 너무너무 괴로워하는 사람한테 상담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3분의 2 지점까지 떨어지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상담받아 보라고 했는데 그냥 떨어져 죽었어.

미정: 누가?

구씨: 같이 살... 같이 살던 여자가.
구씨는 낮에 백사장과 만나 나눈 대화를 잠시 회상하다가 이어서 말한다.
구씨: 맞아, 죽으라고 한 얘기야. 하, 너무너무 지겨워하는 여자를 보는 게 너무너무 지겨워서. 그만하라면 그만하고. 추앙. 취소해도 돼.

미정: 언제 추앙했는데?

미정은 구씨네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 가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다시 걸어간다.

집에 와서 요에 누운 미정은 자지 못한 채 계속 생각한다.

회사에서 미정은 현아에게 '오늘 저녁에 시간 되나?', '저녁 먹을까 하고.'라는 카톡[42]을 보낸 것을 확인하는데, 현아가 카톡을 보지 않자 전화를 건다.

퇴근 후 현아네 집으로 찾아가는데 현아네 집에서 현아와 현아의 남자 친구가 말다툼을 하다가 집기를 부수며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 미정은 이를 듣고 돌아 나온다.

해가 지고, 미정은 멍한 표정으로 퇴근하다가 강이 보이는 곳에 서서 자신이 쓴 '나의 해방일지'를 읽는다.

구씨가 처음 당미역에 내린 날 회상 속에서 버스 정류장에 쓰러져 있는 창희 옆에 서서 전화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어지는 회상에서 미정은 술을 사서 걸어가는 구씨 옆을 창희와 함께 걸어가다가 잠시 뒤돌아 구씨를 본다.

미정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술을 먹고 찻길 옆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구씨를 발견하고 내린다. 그리고 구씨를 쫓아간다.

10. 10회

당미역 앞에 서서 혼자 생각한다.
여자랑 헤어지고 싶을 때마다 무기로 쓰는 말이지? '같이 살던 여자가 죽었어.', '내가 죽게 했어.'
슈퍼 안에 구씨가 있나 들여다 보지만, 구씨는 없다. 그런데 슈퍼 주인이 미정을 보더니 손짓과 입모양으로 구씨가 이미 저기로 갔다고 알려준다. 미정을 그것을 보고 그쪽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던 중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개에게 소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구씨를 발견한다. 들개들이 바닥에 주저앉아서 소시지를 뜯고 있는 구씨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야, 야! 야!!! 야, 야!. 가!", "야 이 개새끼들아!", "가, 가! 안 가?", "개쌍놈의 새끼들!"이라고 필사적으로 소리지르며 돌까지 던져서 개들을 내쫓는다. 개들이 도망가자 놀라서 쳐다보고 있는 구씨를 보고 "들개라고요."라고 말한다.

이후 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구씨의 뒤를 긴 막대기를 하나 주워 들고 쫓아간다. 그러다 구씨가 멈춰 서더니 미정을 보고 말한다.

"넌 상황을 자꾸 크게 만들어. 오늘은 팔뚝 하나 물어뜯기고 내일은 코 깨지고 불행은 그렇게 잘게 잘게 부숴서 맞아야 되는데 자꾸 막아서 크게 만들어. 난 네가 막을 때마다 무서워. 더 커졌다.. 얼마나 큰 게 올까? 너는 본능을 죽여야 돼. 도시로 가서 본능을 무뎌지게 해야 해. 그래서 개구리 터져 죽은 얘기 같은 거 말고 여자들 수박 겉 핥는 얘기, 그런 지겨운 애기를 정성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지겹고 지겹게. 그래서 남자가 지겨워서 죽고 싶게.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는 무서워. 너. 무서워."

마지막 말을 듣고 미정은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걷는다. 구씨는 걸어가다가 길 옆에 있는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이런 데서 사는 한 넌 본능을 못 죽여."라고 말한다. 그런 구씨 옆에 막대기를 들고 서 있다가 창희가 다가와 구씨 옆에 눕는 것을 본다. 다정한 모습은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며 사진까지 찍고 구씨에게 "형, 우리 같이 별 본 사이다."라고 말하는 창희에게 일어나라고 말하고는 막대기를 버리고 간다. 이후 셋이 창희가 모는 트럭을 타고, 은하수와 별이 쏟아질 듯 가득한 하늘을 마주하며 집으로 간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현아와 함께 같이 냉모밀을 먹으러 간다. 미정이 자꾸 힐끗거리며 보자, 현아는 웃으면서 안 맞았다고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어서 얼굴을 보여준다.

밥을 먹으며 현아의 남친 이야기를 듣다가 "이번엔 몇 점이었어?"하고 묻는다. "15점, 괜찮았어."라고 말하는 현아에게 "어디서 15점씩이나 준 거야?"하고 다시 묻는다. 현아는 변명을 안 해서 15점을 줬다고 말하고 이어서 미정에게 "네 남친은 몇 점?"하고 물어본다. 미정은 "15점은 넘었네. 변명은 안 하니까."라고 하다가 피식 웃고는 "보면 깜짝 놀랄걸? 서울역에서 주워 왔는 줄 알고."라고 말한다.

야경이 보이는 카페에 와서 현아에게 "내가 무서워? 그 사람이 내가 무섭대."라고 물어본다. 그러자 현아는 "그 인간 너한테 읽히나 보다. 그냥 기라 그래. 무서울 땐 기는 거야. 자식들이, 도망갈 생각부터 하지."라고 말해준다. 이어서 현아는“똑같은 인간을 놓고도 사랑하지 못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대고, 사랑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또 대. 염창희 몰라? 정아름 서클 렌즈 낀 것까지도 욕하는 거. 야, 나도 껴. 나를 사랑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서클 렌즈가 들어가고, 정아름을 미워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서클 렌즈가 들어가. 이유 같은 게 어디 있냐? 그냥 좋아하기로 작정하고 미워하기로 작정한 거지.”라고 미정에게 말한다.

건물 앞에 서서 창희를 기다리다가 창희에게서 구씨에게 줄 술을 건네받는다.

구씨네로 가는 길에 멈춰서서 창희에게 건네받은 술을 보며 고민하다가 구씨네로 간다. 거실 탁자에 술을 놓고는 "오빠가 갖다주래요. 일부러 핑계 만들어서 온 거 아니고 진짜로 오빠가 갖다주랬어요."하고 말한다. 미정은 창희로부터 문자가 와서 안다는 구씨의 말을 들은 후 말한다.
미정: 할 말 없나?

구씨: 웬일이냐? 지겨운 여자들이 하는 얘기를 다 하고? 뭐? 사과해야 되냐? 할 말 있으면 니가 해. 여자들은 꼭 맡겨 놓은 거 있는 것처럼 툭하면 뭘 달래. 내가 너한테 빚졌냐? 인생이 그래. 좋다 싶으면 갑자기 뒤통수 후려치고. 뭐, 마냥 좋을 줄 알았냐?

미정: 븅. 누가 다이아몬드 달래?

구씨: 다이아몬드가 더 쉬워. 추앙이 뭐냐? 나 몰라.

미정: 들개한테 팔뚝 물어뜯길 각오하는 놈이 그 팔로 여자 안는 건 힘들어? 어금니 꽉 깨물고 고통을 견디는 건 있어 보이고, 여자랑 알콩달콩 즐겁게 사는 건 시시한가 보지? 뭐가 더 힘든 건데? 들개한테 물어뜯기고 코 깨지는 거랑 좋아하는 여자 편하게 해주는 거랑 뭐가 더 어려운건데? 나보고 꿔 간 돈도 못 받아 내는 등신 취급하더니 지는...
마지막 말을 하고 미정은 구씨네 집을 나간다. 미정이 나가자 구씨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 환하게 웃는다.

이후 미정은 집으로 걸어간다.

또 출근을 한다. 지하철에 서서 가면서 창밖으로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해방 교회의 전광판을 본다. 이후 전철에서 내려 걸어가며,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며, 구씨에게 보낸 카톡을 생각한다.
이름이 뭐든, 세상 사람들이 다 욕하는 범죄자여도 외계인이어도 상관없다고 했잖아. 근데 그게 뭐? '난 아직도 당신이 괜찮아요. 그러니까 더 가요. 더 가 봐요. 아침 바람이... 차졌단 말예요.'[43]

퇴근길에 구씨의 연락을 받자 미정은 행복감 보이는 웃음지으며 동료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헤어진다. 그리곤 트럭 옆에 서서 머리를 매만지며 전화를 걸고 있는 구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간다. 숨을 고르고 있는 미정에게 구씨는 "막히기 전에 얼른 타. 뭐, 그... 그놈은 퇴근했나? 그, 팀장인가, 뭔가? 맨날 씨씨거린다는 놈."이라고 말한 뒤 트럭을 탄다.

만둣집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 둘이서 만두 5판을 먹는다. 만두를 먹는 동안 구씨는 단무지, 간장, 탄산음료 같은 걸 미정에게 계속 챙겨준다. 그러고서 구씨는 마지막 만두를 양보하고, 만두를 먹는 미정을 사랑을 가득 담아 쳐다본다. 만두가 안 넘어갈 것 같다.

이후 같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날아가는 철새 때가 보이는 들판에서 흰 옷을 입고 구씨와 함께 해방된 표정을 띄며 달린다. 환하게 웃으며 구씨와 날아가는 철새를 같이 보다가 구씨 뒤에 살짝 숨는다.

2022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는 클럽에서 나와 구자경은 쓸쓸하게 하늘을 보면서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라고 말하는 미정의 목소리[44]를 떠올린다.

11. 11회

미정은 슈퍼에서 간장을 사서는 창희가 운전하는 구씨의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탄다.

웃으면서 창희, 두환과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

호숫가에 차를 세워 놓고 창희와 두환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때 미정은 길가에 쪼그려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들고 들꽃을 바라본다. 빨리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다시 차에 탄다.

가족에 구씨, 두환까지 해서 거실에 상을 펴놓고 다같이 밥을 먹는다. 집 앞에 세워둔 차를 보고 어머니가 물어보자 미정은 아무 말도 않고 두환이 변명하는 것을 듣는다. 기정은 차를 얻어 탈 심산으로 창희에게 언제 나갈거냐고 물어본다. 창희는 그런 기정과 말다툼을 하고 미정은 가운데 껴서 듣는다.

밥을 다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다가 구씨의 차 옆에서 떠들고 있는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을 본다.

밤에 기정은 창희보고 내일 언제 나갈거냐고 또 물어보면서 "쟤 남친 찬데 쟤가 왜 못 타?"라고 말하는데 미정은 옆을 지나가면서 "나 안 타. 차 막혀."라고 말한다.

자기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보고 있는데 언니로부터 "불안하냐? 배포를 좀 키워라, 응? 세상 모든 좋은 게 다 내 거. 응? 왜 내 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데? 세상 제일 좋은 남자도 내 거, 어? 세상의 모든 돈도 다 내 거."라는 말을 듣고 "시끄러."라고 말한다. 기정은 멈추지 않고 "아, 나중에 나 돈 좀 꿔주라. 아, 뭘 꿔줘. 그냥 줘."라고 말하고 미정은 대꾸하지 않는다.

출근해서 책자 디자인을 최준호 팀장에게 검수받는다. 팀장은 종이를 넘기며 미정의 작업물을 보다가 헛웃음을 내뱉고는 뜬금없이 미정의 바지를 가리키며 "그런 바지는 어디서 사? 아. 그, 언제 샀냐고 물어봐야 되나? 아니, 그, 바지 끝단이 무거운 여자 간만이라."라며 갈군다. 같은 디자인 팀 직원들과 한수진이 팀장을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팀장은 계속 이어서 "그, 보기에도 답답하지 않아? 답답. 아유, 패션이나 디자인이나 다 디테일인데 디테일."라고 말하며 혀를 찬다.

탕비실에서 지희가 팀장을 "미친 새끼."라고 말하면서 까는 것을 듣는다. 미정은 가만히 서서 컵을 들고만 있다.

퇴근하는 길, 엘레베이터에 최준호 팀장도 같이 탄다. 미정은 팀장과 한수진이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 그런데 팀장은 마라톤 클럽을 만들 거라고 말하더니 "해방클럽도 되는데 마라톤이 안 될라고." 하며 미정을 깐다. 이어서 팀장은 미정을 보고 해방클럽은 뭐 하는 데냐고, 뭐에서 해방되는 거냐고 묻고 미정은 "인간한테서요. 지겨운 인간들한테서요."라고 대답한다.

지하철에 기대어 서서 구씨에게 '배고파.', '얼굴에 열나.', '쓰러질 것 같애.'라는 카톡[45][46]을 보낸다. 구씨는 '뭐 먹고 싶은데?'라는 답장을 보내고, 미정은 '술'이라고 보낸다.

구씨네 집 창가에 탁자를 가져다 놓고 같이 술을 마시며 대화한다.
미정: 개새끼. 촌스러운 게 무슨 상종 못 할 불가촉천민을 상대하는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새끼 나 싫어하는 거 당연하지. 내가 훨씬 더 싫어할걸? 나는 그 새끼 경멸해. 조직에 있을 때나 있어 보이지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 회사에서 인원 감축하려고 희망퇴직자를 받았는데 있어 줬으면 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갔어. 여기저기 오라는 데 많으니까. 나가 줬으면 하는 사람은 안 나가. 갈 데가 없으니깐. 그렇게 남은 인간이 그 인간이야.

구씨: 원래 약한 인간일수록 사악해. 그래서 사악한 놈들이 좀 어, 짠한 면이 있어. 초대 한번 해, 어? 한번 불러. 어? 들에 풀어놓고 종일 잡자. 네가 이겨.

미정: 당연히 이기지. 화내서 한 번도 기분이 나아진 적이 없어. 화를 안 내고 넘어가면 이삼일이면 가라앉을 거 화내고 나면 열흘은 넘게 가.
이때 물 끓는 소리가 나고 라면을 끓여서 같이 나눠 먹는데 구씨가 창문을 연다. 구씨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고는 말한다.
구씨: 저녁이 되면 이쪽에서 바람이 들어와. 밤이면 풍향이 바뀌는 집도, 달이 보이는 집도 여기가 처음. 창문에 달 뜨는 집은 동화책에나 있는 줄 알았지. 달빛이 좀 뭔가 이상했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때 가로등이 나갔더라고. 가로등 고치고 나니깐 그 맛이 안 나.

이후 같이 집 밖에 나가서 가로등을 바라본다. 구씨는 두리번거리더니 돌을 주운 후 던져서 가로등 불을 깬다. 불빛이 사라져 어두워진 곳에 둘이 서서 앞을 보다가 미정이 말한다.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아. 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아.

구씨를 따라 같이 뒷동산에 올라간다. 그리고 구씨를 뒤따라 걸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 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 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애.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거야.
뒷동산 정상에 구씨와 나란히 선다. 바람이 분다. 미정은 추운지 팔짱을 끼고 몸을 웅크린다. 추워하는 미정을 보고 구씨는 어깨에 팔을 둘러준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1회-갈대밭.jpg
그렇게 동산 아래를 같이 쳐다보다가, 미정이 고개를 돌려 주변의 갈대들을 본다. 구씨는 그런 미정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고, 키스를 한다.

미정은 집에 와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기정은 "아, 왜 야밤에 머리 감고 지랄이야, 씨."하며 이불을 머리까지 덮는다. 머리를 말리고 요에 누워서 미정은 설레는 표정을 짓다가 눈을 감은 후 숨을 고른다.

탕비실에서 팀장이 첨삭해놓은 것을 보고 정말 이렇게 고칠거냐며 묻는 보람에게 "고치라면 고쳐야지 뭐, 어떡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언니 게 훨씬 낫다며 열불을 올리는 보람을 보며 "너, 나 추앙하니?"라고 말하고 웃는다.

구씨와 나란히 호수가에 앉아 호수를 바라본다. 가만히 호숫가 바람소리를 들으며 구씨가 사랑한다 하고 싶었던 듯 "사ᆢ사 "하며 망설이다 "추앙한다."라고 말한다. 미정이 구씨를 쳐다보자 구씨도 미정을 보더니 피식 웃는다. 미정도 같이 웃는다. 애써 웃은 구씨는 한숨을 쉰 뒤 하늘을 바라보고, 미정은 말갛게 웃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1회-추앙한다.jpg

12. 12회

일요일 아침, 미정은 모자를 쓰고 먹을 것을 챙겨서 집 앞에서 구씨와 만나 함께 밭에 간다.

미정은 밭까지 걸어가는 길에 염소를 보고는 구씨에게 예전에 염소를 키웠었는데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 이야기를 듣던 구씨는 키우던 염소를 먹었다는 것에 놀라서 "야, 굳이 바꿔 가면서까지 뭐 이렇게 잡아먹냐? 안 먹고 말지."라고 말한다. 미정은 염소가 너무 많이 먹어서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를 듣고 황당해하던 구씨는 "야, 이름 불러 가면서 키우던 게 목으로 넘어가냐?"라고 하고 미정은 "이름 없었어. 잡아먹을 건 원래 이름 지어 주지 않아."라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런 미정의 말에 구씨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그러다가 먼저 걸어가는 미정을 쫓아가면서 "야. 너, 씨. 나 빨리 이름 지어 줘, 어? 이름 지어 줘, 나 잡아먹지 못하게."라고 말하고, 미정은 웃음 머금은 청량한 목소리로 "구씨잖아."라고 한다. 구씨도 피식 웃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2회-구씨잖아.jpg

밭에서 삽질하고 있는 창희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준다.

손에 커피를 들고 사무실에 올라가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태훈 과장을 만난다. 서로 인사를 하고 조태훈 과장은 언니에게서 자신과 기정이 사귄다는 얘기를 들었냐고 미정에게 물어보는데 미정은 들었다고 답한다.

일하고 있는데 지희가 해방클럽 회원이 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정도 모르는 일인지 지희가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을 본다.

해방클럽 회원들이 다 커피를 가지고 탁자에 둘러 앉아서 소향기 팀장이 하는 말을 듣는다. 소향기 팀장은 저번에 참관한 뒤로 계속 오고 싶었다고 말한 후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이를 다 듣고 박상민 부장은 환영한다고 한 뒤 해방클럽의 강령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소향기 팀장이 안다고 하며 말을 끊는다. "'조언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박상민 부장은 그건 부칙이라고 말한 후 조태훈 과장에게 강령 설명을 부탁한다. 조태훈 부장은 "행복하자고 모인 모임이니까 저희 인생을 좀 정직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세 가지 강령을 정했습니다."라고 하면서 강령을 말한다.
해방클럽 강령
1.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2.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3. 정직하게 보겠다.
이것을 듣고 소향기 팀장은 정직한 게 무섭다고 말하고, 조태훈 과장은 속으로 자신에게만 정직하면 된다고 말해준다. 무서워서 오늘 탈퇴할 뻔 했다는 소향기 팀장의 농담을 듣고 미정은 살짝 웃는다.

버스에서 구씨에게 카톡[47][48]을 보내는데 밑으로 전에 보낸 메시지[49]도 구씨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게 보인다. 미정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구씨에게 전화하는데 순간 창밖에 걸어가는 구씨를 보고 전화를 끊고 버스에서 내린다. 미정은 바닥만 보고 걸어가는 구씨의 앞을 가로막는다. 구씨는 고개를 들어 미정을 보더니 "와. 염미정이다-."라고 만취한 상태로 말한다. 미정은 그러고 있는 구씨를 보다가 살며시 웃는다.

같이 걸어가면서 소향기 팀장에 대해 말한다.
미정: 그분은 진짜 그냥 해피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들 힘들게 연기하며 사나 봐.

구씨: 연기 아닌 인생이 어디 있냐?

미정: 그쪽도 연기하나?

구씨: 무지 한다. 넌 안 하냐?

미정: 하지. 수더분한 척. 또 어떻게 생각하면 다들 연기하며 사니까 이 정도로 지구가 단정하게 흘러가는 거지. 내가 오늘 아무 연기도 안 한다고 하면 (구씨를 힐끔 보고) 어떤 인간 잡아먹을걸? 난 이상하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걸 보면 주물러 터트려서 먹어 버리고 싶어. 한입에 꿀꺽.

구씨: 이제 아무 얘기나 막 하는구나.
구씨는 마지막 말을 하고 걸음을 재촉해 먼저 걸어가고, 미정은 따라간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최준호 팀장이 사내 디자인 공모전 1등은 디자인실에서 나와야지 않겠냐는 말을 하면서 아무래도 고의적으로 미정은 쏙 빼고 김지희와 한수진의 이름을 부르며 신경쓰라고 한다.

탕비실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보람의 말[50]을 듣는다.

집 거실에 앉아 제사상에 올릴 과일들을 닦는다. 그러던 중 창희에게 전화해서 황태포 좀 사오라고 전해달라는 어머니의 부탁을 듣고 전화해본다.

차례상에 절을 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뒤에 서 있다. 가족들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

차례상을 치우고 있는데 구씨에게 오라고 연락해보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연락한다.

가족들이 상에 둘러앉아 제삿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 중 아까 낮에 창희가 롤스로이스를 모는 걸 목격한 아버지는 그 차에 대해 창희를 추궁한다. 결국 창희는 구씨의 차를 빌린 거라고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어머니, 아버지는 당황하고, 미정은 가만히 있는다. 기정을 듣고 있다가 "미정이 얘 노난 거예요, 아빠. 대박 잡았어."라고 거든다. 아버지는 "남의 차 끌지 마."라고 말하시고, 창희가 "아니, 한집에서 한솥밥 먹는 사람이 타라고 준 차 좀 몰면 안 돼요? 내 평생 저런 차 몰아 볼 리 만무한데 원님 덕에 나발 좀 불면 안 돼요? 어떻게 제가 조금이라도 즐거운 꼴을 못 보세요?"라고 대꾸하자 아버지는 "남의 차를 왜 몰아! 남의 차를, 쯧. 그것도 몇억짜리를."하고 버럭 화를 내신다. 미정은 한숨을 쉬면서 화난 듯한 무표정으로 조용히 듣고 있다. 어머니는 곧 구씨가 온다면서 둘을 말린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구씨가 들어온다. 옆에 앉은 구씨에게 아버지는 술을 따라 주시는데, 밥상의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구씨는 눈치를 보면서 술을 마신다. 미정은 결심한 듯이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다른 넓은 접시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접시에 전을 챙겨 담고 구씨네 집에 가서 먹으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여기서 먹어!"라고 말하시며 눈빛으로 강하게 말리시고, 미정은 결국 담던 전을 다시 돌려놓는다.

구씨와 함께 호스로 밭에 물을 준다.

이후 집까지 같이 걸어가는데 구씨가 "그만 가 볼까 하고."라고 말한다. 미정은 "어딜?"이라 묻고, 구씨는 "서울에."라 한다. 미정은 "갑자기 왜?"라 다시 묻는데 구씨는 담담하게 "응, 그렇게 됐어."라고 답한다. 미정은 이 말을 듣고 말없이 걷다가 먼저 빠르게 걸어가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어두운 집에 앉아서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2회-집에서 우는 미정.jpg

구씨네 집에 들어가보니 가재들을 정리하고 있는 구씨가 보인다. 쓰레기 치우는 것을 도와주면서 말한다.
미정: 가끔 연락할게. 가끔 봐.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구씨: 뭐 하러? 깔끔하게 살고 싶다. 내가 무슨 일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감 못 잡진 않았을 거고. 이 세계는 이 세계인 거고, 그 세계는 그 세계인 거고.

미정: 상관없다고 했잖아 어떻게 살았는지.

구씨: 어떻게 살았는지 상관없다고 어떻게 사는지도 상관없겠냐? 난 괜찮거든. 내 인생. 욕하고 싶으면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해. 화 안 나냐?

미정: 나는...

구씨: '나는' 뭐? 말해.

미정: 나는 화는 안 나.

구씨: 그만두고 떠난다는데 화 안 나?

미정: 돌아가고 싶다는 거잖아. 가고 싶다는 건데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있어, 더 있다 가라고 할 수도 있어, 서운해. 근데 화는 안 나. 모르지 나중에 화날지도.

구씨: 너도 웬만하면 서울 들어가 살아, 응? 평범하게, 사람들 틈에서.

미정: 지금도 평범해. 지겹게 평범해.

구씨: 평범은! 같은 욕망을 가질 때, 그럴 때 평범하다고 하는 거야. 추앙, 해방 같은 거 말고. 남들 다 갖는 욕망. 니네 오빠 말처럼 끌어야 되는 유모차를 갖고 있는 여자들처럼.

미정: 애는 업을거야. 당신을 업고 싶어. 한 살 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

구씨: 그러니까 이렇게 살지.

미정: 나는 이렇게 살거야. 그냥 이렇게 살거야. 전화할 거야. 짜증스럽게 받아도 할 거야. 자주 안 해.
구씨는 집 밖으로 나가고, 미정은 덩그러니 서 있다.

구씨가 서울로 떠나고 텅 빈 구씨의 집 창에 기대어 서서 미정은 운다. 구씨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 주십시오."라는 음성 안내에 눈물을 닦으며 애처롭게 흐느낀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2회-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jpg

떨어진 낙엽이 보인다. 집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면서 혼잣말을 한다.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나를 떠난 모든 남자들이 불행하길 바랐어. 내가 하찮은 인간인 걸 확인한 인간들은 지구상에서 다 사라져 버려야 되는 것처럼 죽어 없어지길 바랐어. 당신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길 바랄 거야.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하루도 없길 바랄 거야.
미정의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나더니 미정을 지나쳐 간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고, 머리를 단발로 자른 채 코트를 입고 눈이 오는 인도를 혼자 걸어가는 미정이 보인다.

13. 13회

2019년 가을, "염미정!"이라는 외침을 듣고 미정이 뒤를 돌아본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지면 좋겠다.', 그런 거 없냐는 질문을 듣고 웃는다.

사무실 팀장의 자리 앞에 서서 팀장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최준호 팀장은 왜 정규직 전환 심사에 왜 다같이 한 작업물을 냈냐고 갈구고 미정은 자료를 함께 첨부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자신이 한 것인지 가늠될 거라고 대답한다. 팀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염미정 씨가 한 건데?"하며 비꼰다.[51]

보람과 함께 퇴근하는 길에 보람이 하는 팀장 험담을 듣고 있다. 그러다 보람이 "언니 정규직 되는 거 부럽다가도 저 인간 계속 볼 거 생각하면...어휴, 어떡할래요? 저 인간 계속 보고 살아야 되는데."라고 묻자 "누가 더 오래 다닐 거 같니?"라고 시크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사내 공모전 1등이 될 지)아직 몰라."라고 말하는데 보람이 최팀장이 회사 여직원과 바람피운다는 소문을 알려준다.

회사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에 춥다고 말하자 보람은 여름에 충전해 놓은 기운을 쓰라고 한다. 미정은 웃으면서 "싫어, 더 추울 때 꺼내 쓸 거야."라고 말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로부터 구씨에게 연락을 해보라는 부탁을 듣는다. "번호도 바꾼 거 같던데? 너랑은 연락될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지만 미정은 "나도 몰라."라고 말하고 자리를 뜨려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왜 몰라? 연락 안돼?"라고 놀라서 다시 물으시고 미정은 "안 해."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바람막이를 입고 밤에 뒷동산을 오른다. 구씨와 함께 걸어갔었던 갈대밭 가운데 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답답할 땐 '오늘 죽자', '죽어도 된다' 그런 심정으로 밤길을 나가요. 불빛 하나 없는 산을 걸어요. 사내놈 하나 떠난 게 뭐 대수라고. 행복한 게 무서워 도망친 새끼.
그런데 옆에서 들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흰 들개가 혼자 있는 미정에게 다가온다. 으르렁대며 짖는 개와 대치하면서 미정은 나무막대기를 주워들고 검처럼 잡은 후 '무서울 게 없는 오늘 밤. 난 무사가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붙어, 개새끼야. 배은망덕한 새끼. 너한테 갖다 바친 소시지만 몇 갠 줄 알아?"하고 말하고 나무막대기를 꽉 잡는다. '시원하게 피를 철철 흘리고 싶다.'라고 생각하던 중 들개는 들판 너머로 사라진다.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엉뚱한 곳에 나를 던져 놓으면 아주 잠깐 어떤 틈새가 보여요. '아, 내 머릿속에 이런 게 있었구나.'
이후 내려와서는 텅빈 구씨네 집을 바라보며 ' 버려진 느낌.'이라고 생각하다 집으로 간다.

언니 오빠와 같이 출근한다. 셋이서 걸어가는데 기정이 창희를 보고 언제 말할거냐고 타박하고 창희는 할 거라고 소리친다. 미정은 뒤에서 걸으면서 듣고 있다. 이때 어머니, 아버지가 트럭을 타고 지나가시고, 기정은 "엄마, 이 새끼 회사 때려쳤대!"하고 폭로한다. 창희는 트럭 눈치를 보다가 그냥 집으로 걸어가고 미정과 기정은 출근한다.

어머니는 시장에 들렀다가 상인 아주머니로부터 한 달 전쯤에 미정이 를 잃어버렸다며 펑펑 울면서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상인 아주머니: 개가 아니면 뭐야, 염소야?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며 흐느끼신다. 이후 어머니는 집에 가서 밥을 안치시고 부엌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시다가 잠시 잠에 드신다.

사내 디자인 공모전 투표창을 지희와 함께 본다. 미정의 디자인이 47%로 1등이다. 이후 팀장의 자리에 뭘 갖다 놓으려고 갔는데 팀장의 컴퓨터에서 '어디예요?'라고 묻는 '염미정'으로 온 카톡이 뜨는 것을 발견한다. 미정이 놀라서 쳐다보는데 '염미정'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카톡방에서 카톡[52]이 계속 온다. '왜 빨리 안 와?', '나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와.', '보고 싶단 말야!!!'. 이를 통해 미정은 최준호 팀장이 바람피는 상대 여직원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저장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친 새끼.

공모전 1등이 된 날, 퇴근하는데 지희가 "오늘 완전 기분 개째져 보자. 1등 너는 완전 개개개째지는 거고, 2등 나는 그냥 째지는 거고. 뭐 할래? 씁, '오늘 어떤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거 없어?"라고 말하고 미정은 "없어."라고 대답하지만 걸어가면서 혼자 생각한다.
와 줘. 와 줬으면 좋겠어.

지하철에 기대어 서서 해방교회의 전광판을 본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3회-지하철 해방교회.jpg

당미역에서 걸어 나오면서 생각한다.
그가 온다.
그가 왔다.
그가 날 기다리고 있다.

이날 미정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등 뒤로 119 구급차가 지나간다. 미정은 빠르게 자신이 있는 곳을 통과해 집으로 가는 119 구급차를 본다. 미정은 집으로 들어가는 구급대원을 보면서 정지되고, 바람이 휭 분다.

14. 14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오열한다. 기대어 앉아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울면서 바라본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4회-어머니의 장례식.jpg

화장장에서 먼발치를 그저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뒤에 서서 쳐다본다.

어머니의 유골함과 함께 집으로 간다.

작은 탁자에 흰 보자기를 펼쳐놓고 그 위에 어머니의 유골함[53]을 놓는다. 그리고 그 유골함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상복을 갈아입은 후 부엌으로 가서 탄 채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있는 어머니의 마지막 밥을 치운다.

탄 밥을 버리고 오는데 신발장 아래에 어머니의 장화신이 보인다. 잠시 바라보다가 신발장을 정리한다. 집에 들어가선 좋아하지도 않는 TV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채널을 바꿔 드린다.

가족들이 상에 둘러 앉아 남은 반찬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미정은 반찬을 먹다가 상했다는 걸 알고 그 반찬을 들고가 부엌에 버리고 입 안에 있던 것을 뱉는다. 상에 다시 와서 가족들에게 반찬이 쉬었다고 알려준다.

밤에 거실에 혼자 앉아 TV를 보면서 핸드폰을 만진다.

TV도 끄고 다른 식구들은 다 자는지 껌껌한데, 혼자 어머니의 유골함 뚜껑을 열어본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가루를 바라본다.

아침에 자고 있는데 누군가 아침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칼질 소리에 눈을 뜬다.

아버지가 차려주신 아침도 안 먹고 언니와 함께 출근한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 흐느끼는 언니를 조용히 쳐다보다가 버스 온다고 말해준다. 같이 버스를 탄다.

회사 점심시간, 동료들에게 멀리까지 와 줬으니깐 점심을 사주겠다고 말한다.

밥을 먹으면서 동료들은 미정이 어머니의 장례식 이야기를 한다. 한수진은 미정이 멀리 산다고 말하고 지희는 "29개 역. 내가 세 봤어."라고 거든다. 이어서 지희는 엄마를 어디에 모셨냐고 물어보고 미정은 집에 모셨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지희는 유골함을 집에 모셨냐고 놀라서 되묻고 다른 동료도 집에다 유골함을 모셔도 되냐고 물어본다. 이에 미정은 "뭐, 어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골함도 어떤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그런 거 아니야?"라는 질문에 한수진이 "죽었다는 게 뭐니? 시스템에서 사라졌다는 거야."라고 말하는 걸 힐끔 본다. 왜 납골당에 안 모시냐는 지희의 질문에는 "얻다 두고 와, 엄마를."이라 말한다.

탕비실에서 멍하니 서있는 미정을 보람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실감 안 나죠?"하고 물어본다. 미정은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어. 그날 119가 왔었는데 심정지 상태에선 119가 옮기지 않는대. 빨리 병원으로 가 달라고 울고불고 사정하는데도 안 된대. 경찰이 왔었어, 안방에. 엄마가 누워 있는데. 혹시 싸웠었냐, 보험이 몇 개냐 이상한 걸 묻더라."라고 말하고 보람은 "참 희한한 경험 했네요."한다.

언니와 함께 정육점에 들러서 국거리와 등갈비를 산다.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가 동파될까봐 둘러싸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간다.

미역국을 만드려는지 고기와 미역을 볶는다. 이때 언니가 김치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놓자 김치를 꺼내서 냄비에 들어있는 등갈비 위에 올린다. 김치를 꺼낸 후 언니는 미정을 보고 "야, 엄마 과로사한 거야, 이거."라 말하는데 미정은 대꾸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언니가 고모의 뒷담화를 하는 것을 가만히 듣는다. 그러다가 창희와 기정이 말다툼을 벌이고 기정이 아버지에게 한소리 하는데 순간 유골함에서 소리가 난다. 가족 모두가 유골함을 쳐다본다. 미정이 유골함에 다가가서 안 흔들리게 다시 뚜껑을 누른다.

창희가 두환의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거실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는 창희를 힐끔 본다. 거실 창으로 눈이 내리는 게 보이고 창에 다가가서 혼잣말한다.
엄마, 눈 와.
이 말을 하고 유골함을 바라본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미정이에게 연결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회사 전화기로 전화를 전달받고 보니 최준호 팀장의 아내다. 최준호 팀장이 바람피우는 상대가 미정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최팀장의 아내에게 미정은 한숨을 쉬다가 "저 아니에요. 이름만 제 이름으로 저장해 둔 거예요."라고 설명한다. 최팀장의 아내는 그게 무슨 말이냐 다시 묻고 미정은 "잠시만요."하고는 전화를 끊지 않고 최팀장 자리에 가면서 최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최준호 팀장의 전화기에 미정은 '염미정(계약직)'으로 뜬다. 이를 확인하고 미정은 다시 자리에 가서 전화기를 들고 "저는 염미정 괄호 치고 계약직.이라고 뜨네요."라고 말한다. 미정의 전화 소리를 듣던 최준호 팀장은 "야, 너 뭐 하는 거야?"하고 따진다. 미정은 이 말을 듣고 의자를 쭉 빼더니 최팀장을 보고 "받아 보실래요, 누군지?"라 말한다.

미정의 동료들은 다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최준호 팀장 욕을 한다. 이를 듣고 한수진은 "도대체 누구라니, 상대 여잔?"이라고 말한다. 계속 대화를 나누다가 지희는 "어쩐지. 사람들이 왜 자꾸 장례식장에서 미정이 보고 수군대나 했다. 정규직 되려고 용쓴다고."라 말하고 한수진은 "그랬어?"라고 하며 놀란 척한다. 보람은 고소감이라면서 분개한다.

미정은 퇴근 후 양초 가게 앞에 서서 현아를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현아에게 보낸 카톡[54][55]을 확인한다. 1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미정은 멍하니 가게 안을 들여다 보다가 구씨와 나눴던 카톡 내용을 다시 본다. 그러다가 미정은 구씨에게 전화를 거는데 여전히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 주십시오'하는 안내 음성만 나온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가만히 서있는데 현아에게서 연락이 온다.

현아가 일하는 편의점에 앉아서 현아에게 최준호 팀장의 바람과 엮인 이야기를 해준다.
미정: 팀장 새끼가 여직원이랑 바람을 피우는데 그 여자 번호를 내 이름으로 저장해 놨어.

현아: 헐.

미정: 나 싫어하는 거 다들 아니까, 내 이름으로 저장해 두면 안전하다 싶었던 거지. 알고 있었어, 바람피우는 거. 누구랑 피우는지도.

현아: 누군데?

미정: 옛날에 둘 다 회의에 늦어서 내가 두 사람한테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없는 게 소름 끼치게 똑같았어. 일상 소음이 하나도 없었어 진공 상태처럼. 둘이 똑같이.

현아: 모텔이네.

미정: 그 뒤로 착착 꿰지더라. 옛날에 걔 소지품에서 샴푸를 보고 무슨 샴푸까지 들고 다니나 했는데, 샴푸 냄새 똑같은 걸로 걸리지 않으려고 한 거지. 그 새끼가 나한테 지랄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걔가 갑자기 탁탁 끝 맞춰서 서류를 정리해. 동작도 우아하게. 그럼 그 새끼가 지랄을 하다가 멈춰. 걔가 신호를 준 거지, 그만하라고.그 뒤로 그놈이 지랄을 하면 걔 손을 보게 돼. 쟤가 언제쯤 신호를 줄까? 걔 손끝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움직이는 게 처음엔 고마웠어. 근데 이젠 걔가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하면 손가락을 다 분질러 버리고 싶어.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정의 핸드폰 알림음이 울린다. '염미정씨. 시간 괜찮으면 얘기 좀 하지.', '뭘 아는 척 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로 해도 되고.'이라는 최준호 팀장의 카톡 메시지다. 잠금 화면에 뜨는 메시지를 읽고 미정은 현아에게 "그 새끼."라고 말해준다. 현아는 똥줄 타는 거라고, 반응하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계속 알림이 온다.

회사에 출근한 미정을 사람들이 힐끔힐끔 댄다. 수다를 떨던 다른 부서 사람들은 미정을 발견하면 경멸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을 멈춘다.

퇴근하는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최준호 팀장에게 서류를 주고 미정도 퇴근하려는데 복도에서 한수진을 만난다. 한수진은 미정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 아무도 오해 안 해. 미쳤니? 둘이 바람피운다고 생각하게. 근데 누군지 알아? 최 팀장이랑 바람피우는 여자."하며 떠본다. 미정이 "응."이라 답하자 한수진은 "누군데?"하고 태연하게 물어본다. 미정은 대답없이 한수진을 계속 바라본다. 한수진은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더니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회사 건물 밖에 나와 걸어가는 한수진을 쫓아간다. 사람이 적은 길에서 한수진은 멈춰 서더니 미정을 노려보며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구박덩이 케어해 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네."라고 개소리를 지껄이더니 홱 뒤돌아서 걸어간다. 미정은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더니 앞에 걸어가는 한수진의 뒤통수를 가방으로 갈긴다. 그리고 자신을 째려보는 한수진에게 "그래도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그러는 건 아니지. 상 밑에서 발가락으로 꼬물꼬물, 낄낄낄! 그러는 건 아니지."라고 분노에 차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던 한수진은 가방을 내려놓더니 똑같이 미정의 머리를 가방으로 때린다.

밤 늦게 구씨의 집 앞 평상에 홀로 앉아 있다. 거칠게 숨을 쉬다가 "나 이제 친구 하나도 없을래. 없어도 돼."라 말하더니 손에 쥐고 있었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한다.[56] 이때 갑자기 미정의 머리 위로 밤송이가 떨어진다. 머리를 맞추고 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게 왜 당신 같을까요? 엉뚱한 데서 엉뚱한 것들이,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거 같은.
2022년 겨울에 평상에 앉아 울컥한 숨을 내뱉으며 "염미정!"이라고 외치는 구자경의 모습과 2019년 지금 미정의 모습이 겹친다.

회사 진상 조사팀에게 최 팀장 관련 일로 조사받는다. 담담하게 지금까지 겪고 본 일을 말한다. 조사하는 직원으로부터 "정규직 전환 심사를 앞두고 이런 일이 있어서 정말 난감하네요. 폭행 사건도 있었고 한 회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다는 건 무리라..."라는 말을 듣는다.

구씨와 함께 갔던 만둣집에서 홀로 만두를 먹는다. 문 넘어 보이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살핀다.

반차를 내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두환의 카페에서 나오는 두환과 아이들과 마주친다. 두환과 인사하고 걸어가는데 발 쪽으로 공이 굴러온다. 미정은 그 축구공을 아이들에게 차준다. 트럭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는 창희에게 "아빠는?"하고 묻는다. 창희는 아버지가 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말해주고 미정과 함께 집으로 간다.

아버지와 창희는 식사 준비를 하고 있고 미정은 화장실에서 손빨래 중이다. 기정은 방에서 이불을 정리하다가 미정의 핸드폰 알림을 듣고 확인하고 놀란다.

빨래를 다 하고 상에 막 앉은 미정에게 기정은 핸드폰에 뜬 대출 알림은 뭐냐고 미정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묻는다. 미정은 핸드폰을 받아 확인한다. 200만원이 대출되었다는 Web 알림 문자[57]다. 미정은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누구 팼어. 합의금."이라고 말하고 가족들은 다 놀라서 미정을 쳐다본다. 기정은 누구를 팼냐고 다시 묻고, 미정은 "있어, 어떤 미친년."이라 말한다. 근데 왜 대출을 받냐고, 200이 없어서 대출을 받냐고 기정이 따지듯 물어보다가 통장 가지고 오라고 시키자 미정은 "네가 엄마야?"하고 세게 말한다. 이 말을 듣고 기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숨을 내뱉다가 "너 찬혁이 새끼한테 돈 뜯겼지?"하고 말한다. 미정은 눈치를 보며 아무 말이 없고 기정은 "아유, 이 모자란 년아!"하면서 미정의 머리를 때린다. 미정은 서러운지 울기 시작한다. 창희는 왜 애를 때리고 지랄이냐면서 기정을 말리는데, 기정은 "야, 염제호씬 동생한테나 뜯겼지. 남편도 아니고 남친한테 돈 꿔주는 년이 어디 있냐!"라고 소리친다. 이어서 흐느끼고 있는 미정에게 "야, 너 그 새끼 전화번호 뭐야?"하고 계속 묻는다. 이젠 미정의 핸드폰을 뺏어들고 찬혁의 번호를 찾고 있는 기정에게 찬혁이 한국에 없다고 말한다. 기정은 왜 식구한테 얘기 안 했냐 따지는데, 창희는 나같아도 말 안한다고 옹호해준다. 미정은 계속 운다.

창희는 드디어 자신의 차를 산다. 그 차를 타고 온 가족이 바다로 여행을 간다. 미정은 뒷좌석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해변가를 다같이 걷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4회-가족여행.jpg
다같이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기정: 아버지랑 바다 보는 거 처음인 거 같네.

창희: 식구끼리 바다 온 게 처음이다. 누나랑 둘이었을 땐 그래도 엄마 아버지랑 놀러 다닌 기억이 있는데 미정이 쟤 태어나곤 전멸이야. 다섯 명이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다니려니까 힘들어서 못 다닌 거지.

기정: 다섯이라 힘들어서 못 다닌 게 아니고 그때 고모가 사고 쳐서 못 다닌 거지. 그 뒤로 쭉.

창희: 우리 가족의 빌런은 고모야.

미정: 무섭다, 나도 고모 될 건데.

기정: 야, 우린 돈 떼먹는 못된 고모가 될래야 될 수가 없어. 아빤 고모 사랑했어, 어? 그래서 케어했어 땅까지 팔아 가면서. 근데 이 새낀 우릴 그 정도로 사랑 안 해.

창희: 모르는 소리 하네. 내가 있으면 다 퍼 줘. 없어서 못 주는 거지.

기정: 야, 우리 결혼하고 서로 돈으로 엉기진 말자.

창희: 진짜 엉기지 말자, 절대.

기정: 아니다. 엉겨라. 아, 생각해 보니까 나도 줄 거 같네. 쯧, 근데 이건 알아야 돼. 우리끼린 애정이 있어 그런다 쳐. 우리 자식들도 우리한테 애정이 있을까? 없어, 이게 문제야. 아빤 고모를 사랑했고, 우린 사랑 안 했어. 이게 문제인 거야.

창희: 얘기하잖아. 세상사 다 애정법이라고.
날이 어두워 질 때까지 바닷가에 있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정은 창밖을 바라본다.
통화 연결음 소리.

미정: 네. 여보세요?

구씨: 오랜만이다. 나 구씨.

미정: 오랜만이네.

구씨: 어떻게 지내시나? 그동안 해방은 되셨나?

미정: 그럴 리가.

구씨: 추앙해 주는 남자는 만나셨나?

미정: 그럴 리가.

구씨: 보자.

미정: 안 되는데.

구씨: 왜?

미정: 살쪄서. 살 빼야 되는데.

구씨: 한 시간 내로 살 빼고 나와.

구름다리 위를 걸으면서 구씨가 미정을 기다린다. 고개를 딱 돌리자 걸어오는 미정이 보인다.[58]서로를 보면서 다가간다. 구름다리 위에 마주보고 서서 둘 다 피식 웃는다. 그리고 바라보다가 걷다가 하며 대화를 나눈다.
구씨: 많이 안 쪘는데, 뭐.

(함께 웃는다.)

구씨: 왜?

미정: 머리 길었네?

구씨: 잘생기지 않았냐?

미정: (웃음)

구씨: 넌 잘랐네?

미정: 응, 조금.

구씨: 전화번호 바꿨더라? 겁도 없이.

미정: 열 뻗쳐서, 전화 기다리다가. 우리 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연락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하겠지. 옛날 번호로 전화한 적 없잖아. 있나?

구씨: 보고 싶었다. 무진장. 말하고 나니까 진짜 같다. 진짜 무지 보고 싶었던 거 같다. 주물러 터트려서 그냥 한입에 먹어 버리고 싶었다.

(함께 웃는다.)

구씨: 나 이제 추앙 잘하지 않냐?

미정: (헛기침) 이름이 뭐예요?

구씨: 구자경이라고 합니다.
대화를 나누며 함께 가로수길을 걸어간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4회-재회.jpg

15. 15회

가로수길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눈다.
미정: 이름이 뭐예요?

구씨: 구자경이라고 합니다.

미정: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구씨: 집에 갔었어.

미정: 음, 언제?

구씨: 며칠 전에.

미정: 갑자기 왜?

구씨: 그냥.

미정: 엄마 돌아가신 거 알았겠네.

구씨: 응.

미정: 아빠 재혼하신 것도.

구씨: (자신을 쳐다보는 미정을 보고) 왜?

미정: 신기해서.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까?', '만나게 되기는 할까?', '지금 전화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순간엔 조용하더니 정말 어이없는 순간에...

구씨: 뭐 하고 있었는데?

미정: 전쟁 직전. 오늘 완전 흑화되려고 했었는데.

구씨: 누구랑?

미정: (말을 돌리며) 근데 우리 어디 가요?

구씨: 그러게, 뭐, 춥지? 어디 들어갈래? 커피숍?

미정: 추워요?

구씨: 아니, 너는?

미정: 나도 별로. 그냥 걸어요. 어색할 거 같애. 커피 놓고 마주 앉아 있는 거.

구씨: 생각해 보니까 너랑 커피숍 가서 커피 마신 적이 한 번도 없다.

미정: 그 동네에서 커피 마실 일이 뭐 있었나? 맨날 배추 뽑고 무 뽑고 그러다가 냉수 마셨지.
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걸어간다.
구씨: 역시 우린 이런 들이 어울려.

미정: 편하지. 나무, 바람, 돌은 우릴 거슬리게 하지 않잖아.

구씨: 사람들 많은 데서는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서. 커피숍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거슬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만 있는데.

미정: 우린 그냥 인간을 싫어하는 듯.

구씨: 나만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미정: 이렇게 걷다가 앞에서 누가 오면 그 사람도 거슬리지 않아요?

조깅하는 사람이 미정과 구씨 사이를 지나간다.

미정: 저 사람도 우리가 거슬릴까?

구씨: (한숨) 1 대 다수일 때는 항상 1이 거슬려. 다수는 1을 거슬려 하지 않아. 1은 늘 경계 태세야. 1이라. (한숨) 너만 만나면 이상해. 생각지도 못한 말이 줄줄 나와.

미정: (곰곰이 생각하다가 멈춰 서서) 우린 2야? 아니면 1 대 1이야?

구씨: 너 나 경계하냐?

미정: 진작 전화하지, 씨.
마지막 말을 하고 서로를 빤히 쳐다본다.

광창시장에 둘이 들어간다.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다.

신발가게에서 미정은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사서 신는다.[59] 구씨가 계산해준다.

다른 가게에서 가방을 사서 나온다. 그 가방에 미정의 핸드백과 비닐에 싼 구두를 넣고 구씨가 멘다.

또 다른 가게에 가서 구씨는 미정에게 장갑을 사주고, 그 장갑의 꼬리표를 뜯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5회-광장시장 손장갑.jpg
입까지 사용해서 열심히 뜯더니 되게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미정은 그런 구씨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여러 분식들을 산 후 같이 앉아서 먹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5회-광장시장 데이트.jpg
먹고 있던 중 구씨에게 '삼식이'라고 뜨는 전화가 온다. 맨 처음에는 받지 않았는데, 계속 전화가 울리자 구씨는 전화를 받는다. "아, 일요일에 왜 전화야?"라고 구씨가 묻자 삼식이[60]가 "오늘 토요일인데요?"하고 말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정도 "오늘 토요일인데?"라고 말해준다. 구씨는 고민하다가 삼식이의 전화를 잠깐 끊는다. 그리곤 궁금해하는 미정에게 곤란해하면서 말을 못 잇는다. 그러는 구씨에게 미정은 갔다 오라고 말해준다. 이어서 "갔다 못 오나?"하고 묻는 미정에게 구씨는 "아니, 갔다 와. 금방 와. 금방 올게. 어디 들어가 있어."라고 말한다. 미정은 천천히 갔다오라고 말하고, 구씨는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간다.

험난했던 수금[61]을 끝내고 차에 탄 구씨에게 미정의 연락이 온다. 확인해보니 있는 곳의 주소[62][63]와 '천천히 와요.'라는 메시지[64]다.

식당에서 과 안주를 주문해놓고 구씨를 기다린다.

식당에 들어오는 구씨를 빤히 쳐다본다. 볼에 생긴 상처를 유심히 보는 미정을 보며 구씨는 멋쩍게 웃다가 상처를 만지며 "그린 거야."라고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어서 둘은 대화를 나눈다.[65]
미정: 한 시간 반 만에 딴 사람이 돼서 왔네?

구씨: (싱겁게 웃다가) 야, 인생이 이래. 아, 좋다 싶으면 바로... 하루도 온전히 좋은 적이 없다. 쯧.

미정: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 주면 '고맙습니다.'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구씨: 뭐, 여전히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가는 거냐? (피식 웃다가 겉옷을 벗으며) 가보자!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종업원에게) 여기요.
이후 술을 따른다.

눈이 내리는 밤, 길에 멈춰 서서 하늘을 같이 바라본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5회-같이 눈 보는 미정구씨.jpg
그러다 다시 걸어가며 대화를 나눈다.
구씨: 얼마전에 폭설 와서 운전하던 사람들 다 도로에 차 버리고 간 적 있었어.

미정: 응, 있었어.

구씨: 나도 영동 대교에서 차 버리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 들더라 '지구가 이대로 한동안 멈춰 버리면 이대로 걸어서 산포로 가겠구나.' 최단 거리 잘 찾아서 가면 28킬로? '새벽이면 도착하겠구나' 어디에서 어디로 꺾어져서 어떻게 갈지 머릿속으로 자세히 가는데 웃겼어. 지구가 멈추면 밤새 걸어서 거길 가겠다고 생각한 게. 그냥 차 타고 가면 금방인데.

미정: 기억하나? 예전에 나한테 돈 꾸고 외국으로 날랐던 놈. 전 여친한테?

구씨: 전 여친한테 갔다는 말은 안 했는데.

미정: 오늘 그 놈 결혼식이었어. 내 돈도 다 안 갚고, 아직 6백이나 남았는데. 스드메 다 갖춰서 하객도 부르고 뷔페해서. 그럴 돈 있으면 내 돈 갚으라니까 그 새끼가 나한테 30분을 지랄하는데 듣고 있다가 들고 있던 컵을 부셔뜨렸어. 내가 아직도 등신 같은 염미정 같나 보지? '결혼식 가서 신랑 신부 뒤에 서서 가장 살벌한 표정으로 사진 찍어 줄 거고, 나올 때 축의금 챙겨 올 거다' 죽기로 결심하고 갔어. 당신 말대로 1 대 다수를 감당하면서. 축복하는 다수 속에 재 뿌리러 가는 1이 되기로 하고, '1이 되자' '완전한 1이 돼 보자'. 사진사가 신랑 신부 친구들 나오라고 하길래 일어나는데 그때 전화가 왔어. (전화 대화 회상)

미정: 네. 여보세요?

'이 사람 날 완전히 망가지게 두지 않는구나. 날 잡아주는구나.'

구씨: (미정과의 첫만남 회상)

미정: 여보세요? (창희를 발로 툭 치며) 아예 안 일어나. 어, 역으로 좀 와 줘.
눈 오는 거리. 떨어져 멈춰 선 채 미정과 구씨는 서로를 바라본다.

구씨가 미정의 손목을 잡고 함께 웃으며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온다. 한 손을 구씨에게 잡힌 채 미정은 현관에 쪼그려 앉아서 신발을 벗다가 신발을 바닥에 던져버리는 구씨를 보고 웃는다. 계속 손목을 잡고 복도로 걸어 들어가다가 복도에 줄지어 놓여있는 술병을 건드린다. 미정은 웃으면서 바닥에 놓인 술병들을 정리하는데 구씨는 "치우지 마. 못 치워."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구씨는 자신의 침실 스탠드 불을 키고 침대에 겉옷도 안 벗고 눕는다.[66]

미정은 거실에 있는 보일러를 건드리면서 구씨에게 "집이 냉골이야"라고 말하는데, 구씨는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말해준다. 미정은 헛웃음을 짓고 부엌으로 간다. 부엌에서 물을 틀어 온도를 확인해본다. 그리곤 뜨거운 물은 나오냐고 물어본다. 구씨는 "미지근한 물."이라고 대답한다. 미정은 다시 한숨을 내뱉은 후 "이렇게 좋은 오피스텔에서 이렇게 난민처럼 살다니."라고 말하는데, 구씨는 "술꾼한테는 술잔만 깨끗하면 돼."라고 말한다. 미정은 구씨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서 "왜 도우미 안 써? 돈 많다매."하고 묻는다. 구씨는 "귀찮아. 비번 가르쳐 줘야 되고 때 되면 돈 부쳐야 되고."라고 말한다. 구씨의 말을 들으면서 미정은 옆에 누워서 구씨를 바라본다. 미정은 코를 훌쩍이며 코가 시렵다고 말하고 구씨는 그런 미정을 보다가 이불을 덮어준다. 가까이 누워서 서로를 바라본다. 미정은 눈을 감고, 눈을 감은 미정을 보며 구씨는 "나도 개새끼였냐?"라고 묻는다. 미정은 "이제는 아니야. 전화 왔는데, 뭐."라고 말한다. 구씨는 미정을 바라보며 "어제까진 개새끼였고?"라고 다시 묻고 미정은 답하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에 미정은 삼남매가 독립한 집으로 귀가한다. 씻고 나오는 미정을 보고 기정은 "웬일이냐, 아침에 다 들어오고? 남자 생겼냐?"라고 묻는데 미정은 물을 따라 마시며 "성당 안 가?"라고 되묻는다. 아침부터 똑같은 질문을 두 번 들어서 짜증난 기정은 짜증을 내면서 안 간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아버지는 구씨가 왔었다고, 미정의 전화번호를 줬다고 알려준 후 전화 왔었냐고 물어보시고 미정은 "만났어요."라고 대답한다. 이후 전화를 끊는데 기정이 누굴 만났냐고 물어본다. 미정은 말하지 않는다.

월요일, 미정은 조이 카드가 아닌 다른 회사에 출근한다. 카드발급실에 들어가서 무언갈 체크한다.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VIP의 카드를 검수하고 있다. 미정의 자리를 지나가면서 VIP쪽도 오늘 일이 많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웃으면서 월요일이라 많다고 대답한다.

회사 앞에서 기다리다가 보람을 만난다. 보람은 미정을 보고 "언니 여의도 사람 같아요. 언닌 어디 있어도 그 동네 사람 같더라. 강남에 있으면 강남 사람 같고."라 말한다. 미정은 웃으면서 "산포, 우리 동네 서 있으면 산포 사람 같애."라고 말한다. 미정의 말을 듣고 보람이 "언니네 동네 이제 강북이잖아요."라고 말하자 미정은 "씁, 거기는 아직 우리 동네라는 말이 안 나와."라고 말하고 함께 웃는다.

보람과 함께 같이 고기를 먹는다. 보람이 조이 카드 욕을 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다가 보람은 한수진이 조이 카드에서 나갔다는 걸 알려준다. 미정은 보람에게 그런 걸 뭐하러 보냐고 말한다. 보람은 더이상 근황을 모르게 될 때 짜릿함을 느낀다면서 "우리가 이겼어요, 언니"라고 말하고 미정은 "난 이제 디자인도 아닌데, 뭐."라고 말하며 웃는다. 계속 디자인말고 다른 일을 할 거라고, "옛날엔 밤을 새워 디자인해 가도 빠꾸 맞으면 '하, 밤새 내가 뭘 한 건가.' 난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하면 그냥 못한 게 되고 안 한 게 되고. 근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 진짜 일을 한다는 느낌이 있어. 난 크리에이티브한 일보단 이런 정확성을 기하는 일이 맞는 거 같아."라고 말하는 미정의 말을 듣고 보람은 미정의 실력이 아깝다면서 그 실력 자신에게 달라고 말한다. 미정은 가져가라면서 웃는다.

일을 하다가 구씨에게 보낸 카톡[67][68]을 확인한다. 1은 사라져 있지만 답장은 없다. 이를 보고 미정은 웃으면서 '읽씹하는 버릇은 여전하시네.'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퇴근하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구씨와 만난다. 구씨를 휙 지나가면서 말한다.
미정: 열두 번. 당신 별명 이제 열두 번이야. 하루에도 열두 번 이랬다저랬다.

구씨: 쉽게 보지 마. 백만 번이야.
구씨의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면서 먼저 걸어가는 구씨를 쫓아간다.

구씨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어묵꼬치를 먹는다. 어묵을 먹으면서 구씨가 물어본다.
구씨: 너 알바 안 할래?

미정: 무슨 알바? 청소?

구씨: (피식 웃고는) 아니.

미정: 그럼?

구씨: 내 얘기 들어주는 거. 내가 호빠 선수로 들어갔을 때, 딱 2주 만에 '아, 이건 도저히 못 해 먹겠다' 싶어서 때려쳤던 게 사람들이 죄다 하소연이야.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어쩌고저쩌고. (한숨) 차라리 어디 가서 코피 터지게 두드려 맞으면 맞았지 이건 못 해 먹겠다 싶더라. 사람들 얘기는 돈 받고 들어 줘야 돼. 10회만 끊자. 상담의 기본은 원래 10회야. 10회 끝나고 그래도 여전히 할 말이 있다 싶으면 또 10회. 너 내 얘기 재미있어하잖아.

미정: (피식 웃다가) 막 우겨, 이제.

미정이 산 난로를 켜놓고 같이 불을 쬔다. 같이 담요를 둘르고 앉아서 구씨는 소주를 마시며, 미정은 카나페를 만들며 대화를 나눈다.
구씨: 너 다시 만나고 후회했어. '미친놈. 뭐 하러 또 만나서.' (한숨) '옛날에 산포에서 그렇게 끝났으면 그래도 아주아주 형편없는 놈은 아닌데 무슨 꼴을 보여 주려고.' (헛웃음을 내뱉다가) 염미정!

미정: (희미하게 웃으면서) 깜짝이야.

구씨: 이것만은 알아 둬라. 나 너 진짜 좋아했다. 나중에 내가 어떻게 망가져 있을지 나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봐도 서울역에 있을 거 같은데. 음. 뭐, 그 전에 확 끝낼 수 있으면 땡큔데. 나 너 진짜 좋아했다.

미정: 감사합니다.

구씨: 난 사람이 너무 싫어. 눈앞에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도 싫어. 내가 갑자기 욱해서 너한테 어던 눈빛을 보일지,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나도 몰라. 겁나. 근데 이것만은 꼭 기억해 줘라. 나중에 내가 완전 개개개개개새끼가 돼도 나 너 진짜 좋아했다.

미정: (피식 웃다가) 녹음하고 싶다.

구씨: 녹음해. (웃으며) 녹음해. (핸드폰을 탁 내려놓고 녹음을 킨 후) 염미정! 나 너 진짜아! 좋아했다. (미정을 안으면서) 염미정.
미정은 구씨의 팔을 베고 난로 옆에 담요를 두른 채 함께 눈을 감고 누워있다. 그렇게 누워서 구씨가 말한다.
구씨: 10회 끝나고 여전히 할 얘기 있으면 또 10회 끊고, 그렇게 연장하다가 더 이상 할 얘기 없으면 끝나는 걸로. 우리 그렇게 저무르자.

미정: 좋아.

구씨: (미정을 껴안은 후) 창희는 어떻게 지내냐?
구씨의 마지막 말에 미정이 눈을 살며시 뜬다.

16. 16회(마지막회)

미정이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다.

직장 동료들과 같이 퇴근하며 대화를 나눈다. 동료에게 오늘은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과 약속이 있어서 자신도 강남을 간다고 말한다. 동료의 말을 들으며 걷다가 전화를 하고 있는 찬혁 선배를 보고 표정이 굳는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해방클럽 회원들과 만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가 가게에 들어간다.

박상민 부장이 해방일지 출판 제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69] 이야기를 나누며 다같이 웃는다. 해방일지를 어디까지 썼냐는 박상민 부장의 질문에 한 권에서 끝냈다고 대답한다. 박상민 부장이 끝냈다는 말이 꼭 달성했다는 말로 들린다고 말하자 미정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책으로 낼 정도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박상민 부장은 각자 무엇으로 해방되고 싶어했는지 출판사를 하는 동창에게 말해봤는데 건더기가 있어서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해준다. 이 말을 듣고 미정은 웃는다. 그리고 다같이 대화를 나눈다.
상민: 헤어질 땐 각자 혼자서 끝까지 가 보자고 비장하게 결의하고 헤어졌지만. 뭐, 그때 감정인 거고. 노트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해방이라는 말에 뭉클하고, 아버지 필체라는 말에 또 한번 뭉클하고, 그렇게 순간순간 뭉클하다가 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멀하게 살고. 그래도 처음엔 '독립운동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가슴에 뭔가 하나 품고 사는 기분. '나의 해방'

태훈: 근데 출발은 했는데 뭐가 없지 않아요?

향기: 근데 아예 없다고는 또 못 하지 않아요?

태훈: 좀 되셨어요? 해방.

향기: 뭐, 어느 날은 좀 된 것 같고. 어느 날은 도로 아미타불이지만 그래도 아예 없다고는 못 하는데. 조 과장님은 전혀 없으세요?

태훈: 어... 나의 힘겨움의 원인을 짚었다는 거 외엔...

미정: 그게 전부인 거 같아요. 내 문제점을 짚었다는 거.

박상민 부장과 조태훈 과장에게 인사를 하고 소향기 팀장과 택시를 같이 탄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소향기 팀장이 미정에게 말을 건다. "난 미정씨 그 말이 안 잊혀지더라. 옛날에 그런 말 한 적 있어. 해방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그동안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고. 갑자기 자기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자기가 사랑스럽다는 건 어떤 걸까?" 미정은 말없이 듣고만 있다.

택시에서 내리고 소향기 팀장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인사한다. 택시가 가고 미정은 혼자서 길을 걸어가는데, 뒤로 구씨가 빠르게 걸어와서는 "워!"하고 미정을 툭 쳐서 놀래키고는 웃는다. 먼저 걸어가는 구씨를 보고 미정은 "장난도 다 치네?"하고 말한 후 쫓아간다.

난로를 키고 구씨는 소파에, 미정은 소파 아래에 앉았다. 구씨는 술을 마신 후 손을 바라보다가 미정에게 말한다.
구씨: 손 떠는 게 먼저일 줄 알았는데 귀가 먼저 맛이 간다. 뇌가 망가지는 거지, 뭐. 눈뜨자마자 들이붓는데 망가질 만도 하지.

미정: 아침부터 마시는 사람 드문데. 술꾼도 아침엔 때려죽여도 못 마신다던데?

구씨: 맨정신으로 있는 거보단 덜 힘들어.

미정: 맨정신이 왜 힘든데?

구씨: 음... 정신이 맑으면 지나온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전부 다. 죽은 사람도. (피식 웃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던 그 인간들도 하나둘 일어나서 와. 한 놈, 한 놈. 끝도 없이. 찾아온 인간들 머릿속으로 다 작살내. 쌍욕을 퍼붓고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 있으면 지쳐. 몸에 썩은 물이 도는 거 같애. '일어나자', '마시자', '마시면 이 인간들 다 사라진다' 그래서 맨정신일 때의 나보다 취해 있을 때의 내가 인정이 많은 거야.

미정: 몰려오는 사람 중에 나도 있었나?

구씨: (웃으며 대답을 피한다)

미정: (한숨을 쉰 후 소파에 올라와 구씨 옆에 앉으며) 어떡하지? 난 알콜릭도 아닌데 왜 당신 말이 너무 이해되지?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이 닦는데 벌써 머릿속엔 최 팀장 개자식이 들어와 있고, 한수진 미친년도 들어와 있고, 정찬혁 개새끼도 들어와 있어. 그냥 자고 일어났어 근데 이를 닦는데 화가 나 있어.

구씨: 그 새끼 전화번호 뭐야? 전화번호만 줘, 금방 해결해.

미정: 그 새끼는 나한테 돈을 다 갚으면 안 돼. 그 새끼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지 오래오래 증명해 보일 거니까.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어. 내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서 그놈이 간 게 아니고 그놈이 형편없는 놈이라서 그따위로 하고 간 거라고. 결혼식장에 가서도 '넌 형편없는 놈이야'라고 느끼게 하고 싶고 그놈이 애를 낳는다면 돌잔치에 가서도 '넌 형편없는 놈이야'라고 느끼게 하고 싶어. 그래서 내가 힘이 없는 거야.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존재로 나를 세워 놨으니깐.

구씨: 형편없는 놈이라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인간들 중에 나도 있었냐?

미정: 당신은 내 머릿속의 성역이야. 결심했으니까 당신은 건들지 않기로. 당신이 떠나고, 엄마 죽고, 아빠 재혼하고. 뭔가 계속 버려지는 기분이었어. 어떤 관계에서도 난 한 번도 먼저 떠난 적이 없어. 늘 상대가 먼저 떠났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나한테 문제를 찾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다 개새끼로 만들었던 거야. 근데 당신은 처음부터 결심하고 만난 거니깐. '더 이상 개새끼 수집 작업은 하지 않겠다', 잘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고,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 하지 않을 거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라고. 당신이 미워질 것 같으면 얼른 속으로 빌었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기를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하루도 없기를. 근데 난 불행하니까 욱해서 당신을 욕하고 싶으면 얼른 '정찬혁 개새끼'.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어디다 화풀이를 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마다 '정찬혁 개새끼'. 그러다가도 문득 '그놈이 돈을 다 갚으면 난 누굴 물어뜯지?' 돈을 다 갚을까 봐 걱정해.

구씨: (피식 웃다가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까 나 감기는 한 번도 안 걸렸다.
구씨의 마지막 말을 듣고 둘이 함께 피식 웃는다.

삼남매가 다 손에 바리바리 짐을 들고 산포집으로 걸어간다. 산포에 온 삼남매를 위해 두환이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동원해 환영해준다.

미정은 주방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정리하고 있다가 나와서는 거실에 있는 아버지에게 무릎 연골 약을 선물한다.

밤에 자신의 방에서 자신의 짐들을 살펴본다. 노트들이 담겨 있는 상자에서 2004년[70]에 쓴 일기장[71][72][73][74][75][76]을 꺼내어 보다가 웃는다. 이후 그 상자에 있던 '나의 해방일지'를 꺼내어 읽는다.

거실에 상을 펴놓고 다같이 밥을 먹는다. 새어머니는 미정을 보고 "죽기 전에 미정이 수다 떠는 거 한번 볼 수 있으려나 몰라."라고 말한다. 구씨와 대화하는 걸 보면 기절을 하시겠군. 이 말을 듣고 미정은 웃으면서 "저 말 많아요."라고 대답한다. 새어머니는 웃으면서 "누구랑?"하고 물어보지만 미정은 살짝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는다. 새어머니가 밖으로 나가시고,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듣다가 옆에 있는 휴지를 뜯어 눈물을 닦는다.

점심시간에 잠시 은행 ATM기를 들른다. 줄을 서 있는데 옆 줄에 전화를 하고 있는 정찬혁개새끼가 보인다. 그러다 정신없이 전화를 하던 정찬혁이 움직이다가 실수로 앞에 서 있던 여자의 엉덩이를 두 번 가방으로 건드리는 걸 본다. 엉덩이를 건들린 여자는 처음에는 정찬혁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다가 다시 앞을 봤는데 두 번째에는 완전히 뒤돌아 서서 정찬혁을 노려본다. 정찬혁은 그런 여자를 보고 당황해한다.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던 미정은 여자에게 "아니에요. 가방이 건드린 거예요."라고 대신 설명하여 정찬혁을 곤란한 상황에서 구해준다.

돈을 뽑고 나오는 길에 정찬혁과 마주친다. 미정은 눈을 피하는데 정찬혁이 다가와서는 "여기, 어디 다니나 봐?"하고 말을 붙인다. 미정은 "응, H카드."하고 대답하고는 "선배도 여기 어디 다니나 봐?"하고 묻는다. 정찬혁은 어디 다니는지 말한 후 내일 100만원을 송금할 거라고, 나머진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이어서 정찬혁은 질질 끌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미정은 가만히 듣다가 "아니야. 갈게, 점심시간이라."라고 말하고 뒤돌아 걸어가며 살짝 웃는다.

퇴근후 미정은 마중나와 기다리던 구씨의 외침도 못 듣고 뛰어간다. 두 번째로 구씨가 크게 "염미정!"하고 소리치자 뒤를 돌아본다. 손을 흔드는 구씨를 보고 웃는다. 구씨는 몸짓으로 자신이 미정이 있는 곳으로 건너가겠다고 표현한다. 열심히 뛰어서 건너온 구씨는 미정을 보고 "어디로 가냐?"하고 묻고, 미정은 "술 사 가려고."라고 대답한다. 구씨는 피식 웃다가 "이쪽에도 있어, 편의점."이라고 말하고 같이 편의점 쪽으로 걸어간다. 미정은 환하게 웃으면서 "당신이 '염미정!' 부를 때 좋아."라고 말한다.

술 봉지를 든 구씨와 함께 길을 걸으며 웃으면서 대화한다.
미정: 집에 갔다가 어려서 일기장 읽어 봤는데 깜짝 놀랐잖아. 내가 기억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하고 일기장의 기록하고 너무 달라서. 난 주변머리 없고 누구와도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있으나 마나 한 그런 애라고 생각했었는데 일기장 보니까 아주 좋아 죽어. 얘는 이래서 좋고, 쟤는 저래서 좋고. 아주 뜨거운 애였던데?

구씨: 몰랐냐? 너 뜨거워. (말하고서 비틀거린다)

미정: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구씨: 아, 좋아서. 가끔. 아주 가끔. 마시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이 조용할 때가 있어. 뭔가 다 멈춘 것처럼. 그러면 또 확 독주를 들이부어. 편안하고 좋을 때도 그게 싫어서 깨 버리려고 확 마셔. 살 만하다 싶으면 얼른 확. 미리 매 맞는 거야. '난 행복하지 않습니다.',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행했습니다.', '그러니까 벌은 조금만 주세요.'. '제발 조금만.', '아침에 일어나서 앉는 게 힘듭니다. 왔던 길을 다섯 걸음 되돌아가는 것도 못 할 거 같아서 두고 나온 우산을 찾으러 가지도 않고 비를 맞고 갔습니다. 그 다섯 걸음이 힘들어서. 비를 쫄닥 맞고.', '아,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지쳤습니다. 엄청나게 벌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좀!'

미정: 아, 당신 왜 이렇게 이쁘냐?

구씨: (멈춰 서서 미정을 보고 웃는다)

미정: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미정과 구씨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77] 구씨는 먼저 걸어가는 미정을 보다가 "염미정!"하고 소리쳐 부르고는 달려가서 미정을 안아들고 한 바퀴 휙 돈다. 그리고 웃으며 나란히 걷는다.
파일:나의 해방일지 16회-그렇게 환대해.jpg

'우리 다시 합시다. 해방클럽. 될 때까지.'라는 박상민 부장의 카톡[78]을 받는다. 다들 좋다고 답장하고, 미정도 '좋아요.'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직장 동료들과 대화하며 걸어가는 미정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구씨와 미정의 대화가 들린다.
미정: 해방일지에 그런 글이 있더라. 염미정의 인생은 구씨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뉠 거 같다는.

구씨: 미 투.
저 멀리 서 있는 미정의 모습이 보인다. 미정이 웃는다. 반창고를 붙이고 걸어가는 구씨의 모습이 보인다. 구씨가 살며시 웃는다.
미정: 나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구씨: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미정: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환하게 웃으며.
파일:나의 해방일지 16회-끝.jpg
<끝>


[1] 한수진, 김지희 등 [2] 근데 단무지만 먹는다. [3] 6월 21일, 오후 7시 22분 [4] 조경선 [5] 이때 나오는 노래는 '나의 해방일지' [6] 6월 28일, 오후 1시 6분 [7] 한수진의 말에 따르면, 40도가 넘을 정도로 더운 날으로 보인다. [8] 구씨네 집이 '경기도 산포시 곤달로 13길 27'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9] 오후 9시 45분 [10] 7월 2일, 오후 2시 11분 [11] 산포 씽크대 트럭 [12] 이때 7월 15일, 오후 4시 53분에 보냈다가 삭제한 세 개의 메시지도 보인다. [13] 디자인3팀 염미정 [14]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15] 구씨가 점프해서 모자 주워주러 갔다 오는 장면 [16] 구진서? 구자윤? 구자경 구창모? 구윤회? 구본경? [17] 좋기만 한 사람. 생각하면 좋기만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은 다 좋아하는게 아니다. 실망스럽고, 밉고, 혐오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 있다. 티내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척 참는 것뿐 그래서 이 세상에 온전한 아군이 없다는 느낌. 생각하면 좋기만 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을까. 진짜로 온전히 좋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18]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 [19] 구씨: '돈 생겼는데' '혹시 먹고 싶은 거' '나 구씨', 미정: '돈까스' '역 근처에 있는데' [20] 7월 26일, 오후 6시 9분 [21]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22] 한수진, 김지희, 박보배, 박신영 [23] 최준호 팀장: 근데 염미정 씨는 왜 같이 안 괌? [24] 7월 29일, 오전 8시 35분 [25] 잘 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 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거야. 부모한테도 그런 응원 못 받고 컸어, 우리. [26] '오늘 늦어요. 언니랑 한잔 해요.' [27] 오후 8시 20분 [28] 빵빠랑 [29] 오후 1시 5분 [30] 한잔 하고 있었겠지. [31] 오후 3시 2분 [32] 오후 3시 3분 [33] 청소한 사진과 함께 '백만년만에 청소했다. 깨끗해진 집에서 이제 내가 뭘 할 것 같애?' [34] 오후 4시 30분 [35] 8월 1일, 오후 5시 33분 [36] 오후 7시 40분 [37] 찬혁 선배의 전여친. [38]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난 그냥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어. 정찬혁, 내 옆에 있는 동안은 죽게 하지 말자 [39] 만기까지 4개월 남은 청약 통장으로 청약 1순위일 것이라고 한다. [40] 다시 본가로 주소지를 옮겨 놓은 등본 [41] 디자인 이름은 spring bouquet, 봄 꽃다발 [42] 오후 4시 38분 [43] 8월 28일, 오전 10시 11분 [44] 2회에 나온 미정의 대사 중 일부 [45] 9월 2일, 오후 6시 40분 [46] 메시지 위로 8월 29일에 나눈 구씨와의 대화들이 보인다. 미정: '회사 도착.', '이제 점심 먹어요.', '밥 맛있게 먹어요.' 구씨: '너도.' [47] 9월 10일, 오후 [48] 바로 위에 보이는 카톡 내용이 '뭐 먹고 싶은데.', '술'이기 때문에 9월 2일 이후 8일간 카톡으로 구씨와 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9] '치즈 살까, 육포 살까?'. 다음 메시지는 '그냥 둘 다 샀어요.' [50] "기분 나쁘게 꼭 사람 건너뛰고. 언니, 1등 먹고 정규직 가자. 올해 정규직 전환 안 되면 언니 무조건 나가야 되잖아. 디자인 공모전 1등을 설마 내보내겠어?언니, 오늘부터 어금니 꽉 깨물고 밤새워요. 내년엔 내가 1등 먹고." [51] 팀장은 이전에 상급자로부터 자신이 지시내린 수정본이 더 별로라는 질책을 받았기 때문에 찔려서 미정을 갈구는 것으로 보인다. [52] 금요일 오후 5시 30분 [53] 고 곽혜숙 1957년 3월 3일-2019년 10월 25일 [54] '바빠?', '나 잠깐 들러도 돼?' [55] 11월 11일, 오후 5시 45분 [56] 한수진하고 싸워서 생긴 상처가 입술에 있다. [57] 대출 실행일 2019.11.18. [58] 이때 나오는 노래는 하현상의 ' Be My Birthday' [59] 미정은 겨울에 양말도 없이 맨발이다. [60] 사실 본명은 삼식이가 아니다. 개명했다. 개명한 이름은 우. [61] 마지막 클럽에 돈을 받으러 갔는데, 이전에 일터까지 와 밀린 돈을 가져간 구씨에게 앙심을 품은 여자가 깨진 소주병을 들고 난동을 피웠다. 그 여자와 싸우다가 구씨는 볼이 살짝 베여서 상처가 났다. [62] 중정: 서울 종로구 효계로 13길 25 102호. [63] 중정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곧고 올바름. 또는 그런 모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64] 오후 7시 52분 [65] 이때 나오는 음악은 헨(HEN)의 [66] 아무래도 집이 추워서 겉옷을 벗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67] '난로 배달 왔을 텐데.', '문 앞에 있을 거예요.' [68] 1월 18일, 오전 10시 27분 [69] 이 이야기를 통해 해방클럽이 미정의 퇴사로 해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0] 미정은 한국 나이로 14살, 중학교 1학년이다. [71] 2004년 10월 16일 토요일. 온 몸이 너무 아프다. 어제 너무 열심히 움직였나 보다.. 근육통이 이제야 오다니. 토요일 노는 날이라 좀 더 누워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밥먹으라고 소리를 지르길래 모른 척 하려고 하다가 언니도 와서 뭐라뭐라 하는 바람에 결국 일어나서 밥먹으러 나왔다. 그런데 웬걸. 식탁엔 밥이 없었고, 엄마는 아직 밥을 준비하고 계셨다. 왜 엄마는 항상 밥이 되어 있지도 않은데 빨리 나와서 밥먹으라는 거짓말을 하실까?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주말 부터 어딜 가는지 한껏 꾸민 언니를 몰래 노려보다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씻고 나와 밥상 차리시는 엄마를 도와드리고 맛있게 밥을 먹었다. 저녁이 되어도 근육통은 사라지지 않았다.ㅠㅠ (식탁 그림) [72]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아빠와 함께 등산 가는 날! 아빠가 오랜만에 막내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나를 데리고 산을 갔다. 아빠가 웬일이지? 하면서도 신나는 마음에 졸졸 따라갔다. 체육대회의 여파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빠가 등산 갔다 오면 라면을 사주겠다는 말에 더 힘을 냈다. 중간부터는 숨이 턱턱 차오르고 땀이 너무 났지만 정상에 올라 시원한 물과 풍경 그리고 산에서 먹는 맛있는 컵라면도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든 내색을 안 하셨다. 말 수는 적은 아빠지만 묵묵히 우리 가족을 위해 땀을 흘리시는 아빠에게 갑자기 감사하면서도 한 쪽으로는 울컥하기도 했다. 아빠, 사랑해요! 엄마도! (김이 나는 라면과 산 그림) [73] 2004년 11월 7일 일요일.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너무 심심해서 오빠한테 같이 게임하자고 했지만, 오빠는 나중에 친구 만나러 나간다며 나를 버렸다. 결국 혼자 그림 그리고 놀다가 아빠엄마 따라 밭에도 잠시 갔다가 하루종일 심심한 날이었다. 그래도 저녁에는 아빠 엄마와 함께 TV도 보고 미루고있던 숙제도 했다. [74] 2004년 11월 8일 월요일. 순희(확실하지 않다.)랑 새롬이랑 학교를 마치고 떡볶이 집을 갔다. 우리의 유일한 아지트. 얼마 없는 용돈들을 모으고 모아 사먹으려고 하자, 순희가 오늘 기분이 좋은 일이 있다며 떡볶이는 자기가 쏜다고 했다. 신나는 마음에 먹고 싶은 걸 이것저것 다 시켰다. 라면에 떡볶이에 튀김에 순대까지. 다 먹을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며 열심히 먹어대었다. 하지만 절반 정도 먹었을 때 배가 불렀다. 그만 먹을까 하다가 내가 했던 "다 먹을 수 있어" 말이 떠올라 멈추지 못했다. 결국 꾸역꾸역 밀어넣고는 "이제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도저히 못 먹겠어서 안 먹으려고 하다가 군것질 한 게 들켜버려 엄마에게 혼이 났다. ㅠㅠ 공짜를 좋아하다 벌을 받았다. 염미정! (분식들 그림) [75] 2004년 11월 9일 화요일. 오늘 마음이 철렁 했다. 익희(확실하지 않다.)가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익희가 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우리반 분위기 메이커이면서 늘 웃고 재밌던 익희가 책상에 엎드려 울어서 수학새끼가 (해석불가) 미웠다. 왜 익희한테 그런 나쁜 말을 해서 익희를 울린 수학새끼는 지옥에나 가버려라. 그런데 익희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미정의 손으로 가려짐.) 히죽히죽 웃는데... 너무너무 고마웠다. (난 어제 울 뻔ㅠㅠ) (미정의 손으로 가려짐.) 만약에 앞으로 니 옆에 어떤 나쁜 일이 생기면 (미정의 손으로 가려짐.) 내가 대신 물리쳐줄게 내가 대신 막을게. (미정의 손으로 가려짐.) 꼭 이렇게 웃고 싶다. 넌 웃는 얼굴이 너무너무 어울려. [76] 2004년 11월 10일 수요일. 난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부모님이 주신거니까. 부모님이 주신 것들을 빌려 쓰고 있는 거니까. 내 스스로 번 돈을 아직 한 푼도 없기에 나에게 전재산을 내 몸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틀렸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 속에서 오는 거란걸 깨달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에게 물질적인 재산은 없지만 내면적 재산은 세계 어느 백만장자보다 자신 있다는 것을. 가진 것이 없어 빼앗길 게 없다고 생각해왔던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그 재산들을 잘 지켜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하트 그림>100000가 적힌 돈 그림) [77] 이때 나오는 노래는 이수현의 ' 나의 봄은' [78] 2월 9일, 오후 2시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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