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15:02:48

엘렉스컴퓨터

주식회사 엘렉스컴퓨터
Elex Computer, Inc.

1. 개요2. 역사
2.1. 애플코리아 설립 이후

1. 개요

엘렉스컴퓨터는 1988년부터 1998년까지 Apple Macintosh를 한국에 독점 유통했던 기업이고 이후 1999년에는 국민PC 사업에도 참여했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학연금회관에 있었다.

2. 역사

처음에는 삼보컴퓨터의 총판을 맡아오다가, 1983년 삼보컴퓨터-한국쏘프트웨어-엘렉스컴퓨터 합병으로 삼보컴퓨터에 합병되었다. 이후 1987년 다시 분리되어 애플컴퓨터와 한국 총판 계약을 맺었고, 1998년까지 애플 제품들을 한국에 유통해 왔다.

1988년에는 Mac OS의 한국어판인 한글Talk를 개발하였고, 이를 탑재한 Macintosh II, Macintosh SE, Macintosh Plus를 한국 시장에 처음 출시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엘렉스컴퓨터가 책정한 Macintosh 가격이 굉장히 비쌌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1988년의 Macintosh SE는 미국 출시 가격이 2,900달러였는데, 엘렉스컴퓨터가 책정한 가격은 399만원이었다. (부가세 별도) 당시 원달러 환율이 약 700~800원대였으니, 가격을 거의 두 배로 받아먹은 셈이다. 당시 Apple 본사에서 고가 정책을 고수했던 점도 있고, 한국의 소득 수준이 지금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에, Macintosh는 원래 가격만 받는다고 해도 선뜻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컴퓨터였다.[1] 그런데 가격을 두 배로 뻥튀기해서 내놓았으니...

이러한 고가 정책을 펼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엘렉스컴퓨터가 Macintosh를 미국 시장과는 달리 '탁상 출판( DTP) 기기'로만 판매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개인용 멀티미디어 컴퓨터로써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Macintosh를 사면 딸려오는 푸짐한 소프트웨어 킷을 보면 그 말에 대한 타당성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미국에서 Macintosh를 사면 달랑 시스템 소프트웨어(Mac OS)와 몇몇 번들 소프트웨어가 전부였던 반면, 1991년 중반 이후 엘렉스컴퓨터에서 살 경우 오피스에 해당하는 클라리스웍스 등 각종 유틸리티 CD와 디스켓을 푸짐하게 나눠주었었다. 단, 나눠주는 소프트웨어들의 가격이 높은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했으며, 가격이 더욱 높았던 초창기에는 그나마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이들 소프트웨어들은 엘렉스컴퓨터의 주력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엘렉스컴퓨터는 DTP 전문 소프트웨어인 ' 쿽 익스프레스(QuarkXpress)'를 매킨토시와 함께 판매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고, 클라리스웍스 등은 그저 일반 사용자들에게 Macintosh를 좀더 보급해 보기 위한 곁다리 전략의 일환일 뿐이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미국에서 직접 Macintosh를 구입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엘렉스컴퓨터가 '한글 시스템'에 불법 복제 보호 장치를 걸어서 판매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엘렉스컴퓨터를 통해 구입하던 Macintosh에는 본체와 키보드 사이에 '한글키'라는 ADB 장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불법 복제 보호 장치였다. 이 한글키를 제거할 경우 한글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주 기본적인 한글 입력은 가능하고 Myungjo, Gothic, Seoul이라는 이름의 세 가지 기본 글꼴을 쓸 수 있었지만, 이 기본 한글 입력기는 다양한 중요 기능들이 빠진 원시적인 입력기였고, 세 가지 기본 글꼴은 전자 출판에서 중요한 윤곽선 글꼴이 아닌 비트맵만으로 이뤄진 글꼴이었다. 중요한 한글 입력 기능인 '확장 한글 시스템'은 한글키가 인식되어야 동작했다. 한글키 없이도 기본 문서 작업이 가능하기는 하나 당시 유저들이 Macintosh에서 기대했던 미려한 문서 출력은 불가능했다.[2] 트루타입 폰트가 기본이 된 시스템 7이 도입되었을 때 엘렉스컴퓨터는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서 한국에 시스템 7이 들어올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논란이 생기기도 했고, 1991년에 파워북이 등장했을 때에도 잠금 장치인 한글키가 문제가 되었다. 노트북에 한글키를 주렁주렁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3]

고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DTP나 그래픽 편집 분야 등에서 Macintosh가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이 업종의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엘렉스컴퓨터를 통해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IBM PC 호환기종의 발전과 Windows의 보급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Macintosh 판매 감소와, 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까지 겹쳐 1998년에는 배당을 하지 못할 정도의 궁지에 몰렸다. 이때 엘렉스컴퓨터가 취한 방법은 Macintosh 보급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주력 소프트웨어인 쿽 익스프레스의 Windows 버전을 한글화하여 내놓는 것이었다. 엘렉스컴퓨터의 이런 정책에 한국의 Mac 애호가들이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은 물론이다.

2.1. 애플코리아 설립 이후

Apple은 1998년 직접 한국 현지 법인인 "애플컴퓨터코리아(지금의 애플코리아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엘렉스컴퓨터와의 협력 관계를 청산했다. 결국 1998년을 기점으로 엘렉스컴퓨터의 독점 체제는 막을 내렸지만, 엘렉스컴퓨터는 1997년 외환 위기 닷컴 버블 붕괴로 인한 파산 위기를 헤쳐나왔다. 한편 이 무렵에 국민PC 제조업체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키움닷컴증권 설립에도 참여했다. 이후 다우그룹에 인수되었고, 컴퓨터 판매에서 웹툰을 비롯한 컨텐츠 제공으로 사업을 변경하여 키다리스튜디오라는 사명으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Apple 소프트웨어 한글화 등을 맡던 직원들 일부는 이후 독립하여 "비욘드테크"를 설립한다. 최근까지도 iOS, macOS의 한글화 등의 하청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소득 수준이 많이 향상된 현재도 매킨토시는 가격적인 측면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컴퓨터가 한 집에 두 대는 커녕 한 대도 있을까 말까 한 과거에 매킨토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2] 그래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구형 맥 사용자가 신형을 구입할 때 미국에서 직접 사온 후 구형 Mac에 붙어 있었던 한글키를 떼어서 신형에 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한글키의 약점을 이용한 방법이며, 아주 잘 작동되었다. 이 경우 구형 맥은 그냥 텍스트 입력용 정도로만 사용하고 편집은 신형 Mac에서 한다는 방법으로 잘 사용할 수 있었다. [3] 파워북 문제는 결국 하드웨어가 파워북일 경우 한글키가 없어도 확장 한글 시스템이 동작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다만, 그 대신 파워북이 심히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