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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티니아 왕국 섭정 Εταζέτα | 에타제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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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에타제타 |
그리스어 | Εταζέτα | |
영어 | Etazeta | |
존호 | 왕비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기원전 255년 ~ 기원전 250/24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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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티니아 왕국의 왕비이자 섭정. 유아였던 아들 지포에테스 3세를 대신하여 비티니아를 잠시 통치했지만 지아일라스에게 폐위되었다.2. 생애
티보이인으로 전해지며, 비티니아 왕국 제3대 국왕 니코메데스 1세의 후처였다. 그녀는 니코메데스가 전처 디티젤리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지아일라스와 프루시아스를 추방하게 하고, 자신의 어린 아들 지포에테스 3세를 후계자로 지명하게 했다. 기원전 255년 중병에 걸린 니코메데스 1세는 아직 유아에 불과했던 지포에테스 3세의 앞날을 걱정하여 에타제타를 여군(女君)으로서 섭정하게 하고, 안티고노스 2세와 프톨레마이오스 2세, 자유도시인 헤라클레아 폰티카, 비잔티움, 키우스가 후견인을 맡게 했다.기원전 255년 니코메데스 1세가 사망한 뒤 에타제타의 통치 아래에 지포에테스 3세가 왕위에 오르자, 지아일라스는 갈라티아인들을 고용하여 비티니아를 전격 침공했다. 양자 간의 전쟁은 기원전 254년 또는 253년에 비티니아를 분할하여 통치하는 형태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250/249년, 지아일라스가 재차 공격하여 에타제타와 지포에테스 3세를 몰아냈다. 이후 아들과 함께 마케도니아로 망명한 에타제타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아들 지포에테스 3세는 어머니와 함께 마케도니아로 망명한 뒤 기원전 220년 비티니아 왕 프루시아스 1세에게 포위된 비잔티움으로부터 비티니아 왕으로 모시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비티니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길 원했던 필리포스 5세의 동의를 받아 마케도니아 용병대를 이끌고 비잔티움으로 향했지만 도중에 사망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