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원
승무원 : 3명 (조종사, 관측수, 무선수)전장 : 12.14 m / 전폭 : 16.87 m / 전고 : 3.18 m / 익면적 : 43.6 m²
중량 : 2,087 kg ~ 3,152 kg
동력 : 4 × 폽조이 나이애가라 V 공랭식 7기통 엔진(출력 140 hp) 4기
최대속도 : 203 km/h
순항속도 : 182 km/h
실속속도 : 53 km/h
임무고도 : 4,480 m
체공시간 : 6시간 이상
상승률 : 4.40 m/s
처녀비행 : 1940년 10월 17일
생산수 : 2대 중 1대만 완성
2. 영국 해군의 요구로 태어나다
영국 해군이 2차 대전 직전에 먼 공해상까지 진출하여 오랜 시간 초계 비행이 가능한 기체를 개발해줄 것을 요구하여 만들어진 장거리 정찰기가 곧 에어스피드 플리트 쉐도워(Airspeed Fleet Shadower)였다. 오늘날 쓰이는 조기경보기(AEW) 같은 장거리 탐지 수단이 없던 당시에는 오로지 육안만이 믿을 수 있는 색적수단이었고, 이에 따라 바다 위를 장시간 비행할 수 있는 초계기는 곧 날으는 관측기지 역할을 했던 것이며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를 대신하고 있었다.3. 함대 감시기 프로젝트
영국 왕립해군은 야간에 적 함대를 추적하는 능력을 가진 항공기에 관한 소요 제기인 OR.52를 제안했는데, 이것이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면서도 느리고 조용히, 긴 시간 비행이 가능한 항공성 요구사양서 S.23/37로 정리되었다. 이 항공기가 목표로 하는 비행 성능은 해발 고도 1500 ft라는 낮은 고도를 38노트라는 비행기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게 최소한 6시간 이상 체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이 제안에는 비행정으로 널리 알려진 업체인 쇼트 브라더스(Short Brothers), 전부터 군에 군용기를 납품해오던 페어리(Fairey Aviation), 그리고 여기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퍼시벌(Percival)과 제네럴 에어크래프트(General Aircraft Ltd), 마지막으로 에어스피드 5개 메이커가 관심을 보이고 도전하게 된다. 그런데 제네럴 에어크래프트 GAL.38과 에어스피드 AS.39 두 후보는 마치 서로 베끼기나 한 것처럼 그 형태나 기체의 구조가 흡사했지만, 이 특이한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4. 효율을 위해 태어난 디자인
양사에게는 각각 2대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기금이 배당되었고, 에어스피드 사는 1938년 8월 10일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AS.39는 나무로 만든 주날개와 꼬리 날개를 금속제 모노코크 구조의 동체에서 뻗어나온 스트럿으로 지탱하는 당시에도 이미 구식티가 줄줄 흐르는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파라솔윙 타입의 고익 단엽기인 이 시제기는 함대를 그림자처럼 따른다는 의미로 플리트 쉐도워(Fleet Shadower)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에어스피드가 만들어낸 항공기들은 대체적으로 독특한 형상을 띠고 있는 것이 많았는데, AS.39 또한 재래식으로 보이면서도 그 형태는 조금 낯선 구석이 있었다. 중량을 줄이기 위해 착륙 장치는 모두 고정식이었다. 승무원은 조종사, 관측수, 무선수 3명이 타게 되어 있었고, 기수 앞에 타는 관측수에게는 3면의 시야가 통하는 투명한 관측창이 마련되어 있었다.130hp이라는 저출력에 연비가 뛰어난 폽조이 나이애가라 7기통 공랭식 엔진은 4개를 달았는데, 이처럼 소형 엔진을 여러 개 단 이유는 비행 도중 교대로 작동해 연료를 아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음이 작아서 적 함선에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쉽게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설계상의 배려였다. AS.39는 항공모함에서 사용하는 경우에 대비해 이 기체의 주날개는 함재기처럼 접을 수 있었다.
5. 엔진 선정의 실수
2대의 원형기 제작이 시작되었고, 먼저 완성된 1호기가 시험을 해보니 나이애가라 엔진의 진동이 지나치게 큰 문제가 밝혀져 처녀 비행은 1940년 10월 17일까지 연기되었다. 테스트 비행 결과, 이 프로토타입은 저소음과 낮은 피탐지성을 위해 고민 끝에 채택한 저출력 엔진이 기체의 비행 특성을 해치고 안정성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에어스피드 사의 기술진들이 암스트롱-위트워스 치타 XI 엔진 2기에 교체하느라 서두르는 동안 항공성으로부터는 자위를 위한 꼬리 총좌를 덧붙이라는 추가 요청이 전달되자 또다시 허겁지겁 개조에 들어갔다.그러나 이처럼 재설계와 수정이 이어지면서 원래 계획한 날짜에서 납품이 거의 1년 이상 연기되자, 소요처인 영국 해군인 1941년 2월 17일에 AS.39와 함께 함대 감시기 계획을 포기해버렸다. 해군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함재기와 비행정만으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호기는 미완성인 채 방치되었고, 얼마 후 에어스피드 사는 2대의 프로토타입 모두 폐기 처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