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스 포다이스 칼슨 Evans Fordyce Carl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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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6년 2월 26일 |
미국 뉴욕주 시드니 | |
사망 | 1947년 5월 27일 (향년 51세) |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해병대 |
복무 기간 |
1912~1921 1922~1939, 1941~1946 |
최종 계급 | 미국 해병 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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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이다. 미합중국 해병레이더스의 창립자이자 초대 대대장이다.2. 생애
1912년 육군 병으로 입대하여 육군 상사까지 진급했으며, 1차 세계대전 때는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하여 육군 포병 대위까지 올랐고 전상장을 받은 바도 있는 참전용사였다. 9년간 육군에 복무한 후 1921년 전역했다가 1922년 미 해병대 병으로 재입대, 입대 1년만에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1933년에 대통령 별장 경호차 파견된 해병 분견대에 근무하다가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일가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중국에서 총 세 차례나 근무하여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익숙했던 칼슨은 1937년의 세 번째 중국 근무 때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하는데, 다름아닌 중국 공산당과 접촉하여, 대장정 이후 공산당의 본거지였던 연안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베스트셀러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였던 에드거 스노우를 통해 줄을 댄 칼슨은, 연안에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공산당 지도부를 접견하는 한편으로 홍군의 전술(게릴라 전술)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중국 근무를 마친 칼슨은 17년간 해병대에 복무한 후 1939년 평소 좋아하던 강연과 집필을 위해 해병대 대위로 전역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2년만에 다시 해병대 현역 소령으로 자원 입대했다. 칼슨 소령은 해병대판 '코만도' 부대의 창설을 중국에서 목격한 홍군의 전술을 해병대에 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다. 칼슨은 대통령 일가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레이더스 부대를 창설했고 초대 대대장이 되었다.
레이더스 부대는 각종 지원과 보급 면에서 해병대 내에서 최우선 순위 대접을 받았다. 요청만 하면 각종 신무기가 보급되었고, 해병대 내 타 부대 정예 인원 차출에도 우선권을 가졌다. 심지어 칼슨 중령은 2레이더스 대대 내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편제(기존 9인 편제 대신 10인 편제의 새로운 분대 구성, 2개 해병소대로 구성된 중대 6개로 대대 재편 등)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2대대의 일부 중대들을 미드웨이섬 방어에 투입하는 한편으로, 일본령 길버트 제도의 마킨 환초에 잠수함을 통해 2대대를 투입시켜서 소규모의 주둔 일본군을 전멸시키고 성공리에 회수하기도 하였다. 이 때 2대대의 마킨 기습은 영웅적인 전공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1943년에는 전시 홍보영화로 영화화도 되었다. 이후 제3, 제4레이더스 대대가 잇달아 창설되어, 1943년 3월에는 이 4개 레이더스대대를 묶어 제1레이더스연대로 확대 재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칼슨은 과달카날 전역 이후 말라리아와 황달에 걸려 본토로 후송되는 바람에 레이더스 부대를 떠나게 된다. 이후 칼슨은 다시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복귀하지 못하였고, 칼슨이 공들여 육성한 2레이더스대대 역시 그 후에 전통적인 일반 보병부대의 임무와 편제로 복귀하게 되었다
사이판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종전 직후인 1947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