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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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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粲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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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 손오의 무장이다.

2. 생애

222년에 조비가 삼로의 대군을 일으켜 주연의 5천의 군사는 강릉성에서 조진, 하후상, 서황, 장합의 대군에 포위되었는데, 이런 상황에 손권 손성을 원군으로 보내지만 장합에게 격퇴되고 오히려 강릉성을 둘러싸고 있던 보루마저 점령된다.

이에 손권의 명으로 양찬은 제갈근, 반장과 함께 원군으로 남군에 파견되었지만 적의 포위망을 풀리지 않았으며, 적의 세력을 무서워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반장의 계책에 따라 강물의 수량이 늘어나면 그틈을 타서 적의 부교를 불태우기로 한다. 하지만 그 동안에 주연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병사들을 독려해 위나라의 장수들과 내부 반란군까지 무찌르니 양찬과 구원군은 아무 것도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3. 기타 창작물

소설 삼국지 유지경성에서는 손권이 황자 손려를 견제해 분란을 일으키는 척 해서 조휴의 군사가 공격하도록 유인하는 작전을 벌이면서 북벌을 하자 손려가 기춘에 있을 때 유소의 주선으로 손려와 만나자 자신을 소개했다. 제갈근의 군사가 문빙을 붙들려고 하는 동안 장합이 이끄는 군사가 재빠르게 공격할 것을 장합이 이야기하자 양찬은 그 수법에 동의하고 제갈근에게 돌아가서 제갈근과 함께 문빙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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