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양천구청장에 대한 내용은 양재호(정치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양재호 梁宰豪, Yang Jae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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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바둑기사 |
소속 | 한국기원 |
출생 | 1963년 2월 8일 ([age(1963-02-08)]세) |
울산광역시 | |
배우자 | 김임선(부인)(1991년 2월 1일 결혼)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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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충암초등학교(졸업)[1] 충암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졸업) |
입단 | 197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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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프로 바둑 기사이자 한국기원 사무총장이다.아버지 양영진와 어머니 신순자이다.
1963년 2월 8일 경남 울산시(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1979년 프로에 입문했다. 입단동기생이었던 생전 고 이계훈이었다. 울산 언양초에서 충암초로 전학, 충암중, 충암고를 졸업하여 당시 프로 3단 시절이었던 건국대 사학과에서 지망하다에서 입시에 준비하여 낙방하여 불합격했다. 다시 재수하다가 늑막염으로 바둑을 중단하다가 이후 1980년대 유창혁, 조대현 등과 함께 조· 서 시대에 대항할 '신풍 3강'의 일원으로 조훈현과의 이벤트 치수고치기에 참여한 바 있다. 실제로 이들은 조훈현과 호선- 정선을 오갈 정도로 선전했는데 하필 양재호는 조훈현과 호선으로만 붙어서 모두 졌다.
한국의 고마츠 히데키로 불리는 기사로써, 이후로도 꾸준히 성장, 1989년 六단 시절에는 제1회 동양증권배[2]에서 우승하며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기전에서 단독으로 우승하지는 못했으나 준우승 통산 8회를 기록했다. 1990년대에는 한국바둑에서 4천왕이라 불리는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유창혁 바로 다음 정도 위치에 있었고, 세계대회나 국가대항전[3]에도 여러 차례 진출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91년 2월 1일 부인 김임선 씨와 결혼했으며, 같은 해 1990년 七단 1992년 八단 1994년 九단[4]으로 승단했다.
이후 바둑TV[5] 및 KBS[6]의 국내 및 국제 해설자로 주요 기전에서 해설을 맡아 친숙한 구수한 입담으로 전달받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 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았다. 2011년부터는 한국기원 사무총장으로 재임 중이었다가 박치문을 거쳐서 유창혁한테 넘어갔다. 아예 아마추어 바둑계로 넘어가려는지 2017년부터 SG그룹에 인수된 K바둑 사장으로 재임하다가. 2020년 2월부터 다시 한국기원 사무총장으로 재취임하였다.
병역은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2. 주요 기사들과의 상대 전적[7]
2.1. "도전 5강" 기사
강 훈 九단 16:7김수장 九단 12:9
백성호 九단 17:7
서능욱 九단 20:8
장수영 九단 24:14
2.2. 한국대표 4인방 최정상급 기사
서봉수 九단 15:27유창혁 九단 16:32
이세돌 九단 2:7
이창호 九단 5:3
조훈현 九단 5:33
2.3. 그 외의 기사
조대현 九단 12:2최규병 九단 11:21
3. 주요 경력
1987년 제23기 패왕전 준우승1988년 신왕전 준우승
1989년 제1회 동양증권배 우승
1990년 제2회 동양증권배 본선 8강
1991년 제35기 국수전 도전자결정전 진출자
1992년 제23기 명인전 준우승
1993년 제12기 KBS 바둑왕전 승자 4강
1994년 진로배 한국대표
1995년 제26기 명인전 준우승, 제8회 후지쯔배, 제7회 동양증권배 본선, 진로배 한국대표, 제14기 KBS바둑왕전 본선
1996년 제1회 삼성화재배 4강, 제3회 응씨배, 제1회 LG배세계기왕전, 제9회 후지쯔배 본선, 제15기 KBS바둑왕전 본선
1997년 제36기 최고위전 본선, 제16기 KBS바둑왕전 본선
1998년 제17기 KBS 바둑왕전 본선
1999년 제18기 KBS 바둑왕전 본선
2000년 제5회 삼성화재배 본선 4강.
2001년 제2회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준우승 제3회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본선[8], 제6회 삼성화재배 본선. 제20기 KBS바둑왕전 본선
2002년 제21기 KBS바둑왕전 본선
2005년 제6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준우승
2007년 한국바둑리그 신성건설 팀 감독
2009년 한국바둑리그 KIXX 팀 감독
2010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바둑대표팀 총감독, 한국바둑리그 KIXX 팀 감독, 제15회 삼성화재배 본선
4. 주요 저서
- 초반 30수 1996. 한국기원
- 비맥의 세계
- 종합사활 신 사전 성안당
- 실전맥 신 사전 성안당
- 공통사활 신 사전 성안당
[1]
울산 울주군 언양초등학교로 전학
[2]
세계대회이긴 했는데, 당시에는 '동양증권배 국제기전'으로 표현 및 표기했으나 1기 때에도 조훈현 九단이 1회 응씨배(3-2 우승, 대
녜웨이핑 九단) 한국대표 단일 1명의 출전에 임하기 위하여 불참했으며, 대부분 한국 기사에 초청받은 외국 기사라고는 겨우 4명(대만, 일본 각각 2명씩-중국기사 미참가) 정도의 ~ 2기 때에도 겨우 9명씩(중국, 대만, 일본 각각 3명씩) 정도의 구성으로 제대로 된 세계대회라고 보기는 힘들었으나 장수영 九단을 상대로 3 대 1로 완승하여 우승했다. 상금은 우승 1,500만원, 준우승 500만원 후기 2기때에는 8강까지 진출했으나 이창호 4단을 상대로 패했다. 제대로 된 세계대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때는 3회 대회가 개최됐던 1991년부터였다. 당시 정식명칭은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로 표현 및 표기했으며, 이창호가 五단 시절, 린하이펑 九단을 누르고 종합전적 3 - 2로 우승한 대회로 유명하다. 기전 예산 및 총규모를 3배로 상금은 우승 5,000만원, 준우승 1,500이었다. 제한시간은 1회~2회 각 5시간 초읽기 1분 5회, 3회~9회 각 3시간 초읽기 1분 5회[9] 였다, 3회~7회는 KBS, 8회~9회 까지는 바둑TV로 생중계했다.
[3]
국가대항전인 진로배 세계대회에는 5명이 출전하는데, 4천왕 + '한국 해당 기사'가 대표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4]
대 양상국 七단(당시)에게 승리
[5]
알쏭달송 맥의 세계 1998년,초점국 퍼레이드, 신 명승부열전 방송분
[6]
KBS 바둑왕전(22기 한정, 노영하 前 9단의 임시 해설자), 효성 에바라배 세계정상대결 3번기 초청해설(조훈현 9단(준우승) 0:2 다케미야 마사키 9단(우승)), 삼성화재배,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등 다수
[7]
마지막 대국은 2017년
K바둑 사장으로 당시 취임한 관계였다가 대국은 불가능했었다가, 그리고 2011년 첫번째 및 2020년 2월 21일 두번째. 사무총장에 취임한 관계로 대국은 불가능하다.
[8]
대 백성호 9단에게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