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07 22:23:28

양명복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하시하라 메이후쿠(梁原命福)
출생 1921년 3월 5일
경상남도 통영군 이운면 장승포동
(현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
사망 1982년 2월 20일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중앙대학교 부속 필동병원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576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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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기업인.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양명복은 1921년 3월 5일 경상남도 통영군 이운면 장승포동(현 거제시 장승포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에 재학하던 1941년 3월 초, 그는 교내 항일학생결사인 연구회(硏究會)에 가입하고 음악부 책임을 맡았다. 이후 1941년 함경북도 청진부의 수원공립국민학교 훈도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경찰의 손에 들어가면서 연구회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2년간 미결 상태로 있다가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언도받았으며, 이후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출옥하였다. # 출옥 후에는 대동신문사 기자, 평화신문 산업경제부 차장, 연합신문사 경제부 차장, 상공일보 취재부장, 국체신문사 상무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부터 1974년까지 부산직할시 남구 감만동 소재 복지산업(福地産業) 주식회사를 운영하며 한국 식용유산업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

1982년 2월 20일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소재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필동병원에 입원해있던 중 뇌출혈로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양명복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 10월 9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