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
羊 | 頭 | 狗 | 肉 | |||
양 양 | 머리 두 | 개 구 | 고기 육 |
1. 개요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매한다는 뜻으로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2. 출전
靈公好婦人而丈夫飾者,國人盡服之。公使吏禁之,曰:「女子而男子飾者,裂其衣,斷其帶。」 裂衣斷帶,相望而不止。晏子見,公問曰:「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者,裂斷其衣帶,相望而不止者,何也?」 晏子對曰:「君使服之于內,而禁之於外,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公何以不使內勿服,則外莫敢為也。」 公曰:「善。」 使內勿服,踰月而國莫之服。
제나라 영공(靈公)의 총애하는 부인이 남장을 하고 다녔는데, 나라 안의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따라 입었다.
영공이 "남장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 옷을 찢고 그 띠를 끊어라"고 말했지만, 서로 눈치 보기만 할 뿐 멈추지 않았다.
안영이 보이자 영공이 물어 말하길, "남장하는 여자의 옷과 띠를 찢고 끊었는데, 서로 눈치 보기만 할 뿐 멈추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안영이 대답하여 말하길, "군주가 궁내에서는 입게 하고 궁밖에서는 금지하는 것은, 소머리를 문에 걸어두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영공께서 어떻게 하든 궁내에서 남장하는 것을 금지시키지 않으신다면, 밖에서 하는 것을 감히 막지 못할 것입니다."
영공이 "좋다"라고 말하고 궁내에서 남장하는 것을 금지시켰더니, 한달이 지나자 나라에 남장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안자춘추』 제6권.
제나라 영공(靈公)의 총애하는 부인이 남장을 하고 다녔는데, 나라 안의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따라 입었다.
영공이 "남장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 옷을 찢고 그 띠를 끊어라"고 말했지만, 서로 눈치 보기만 할 뿐 멈추지 않았다.
안영이 보이자 영공이 물어 말하길, "남장하는 여자의 옷과 띠를 찢고 끊었는데, 서로 눈치 보기만 할 뿐 멈추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안영이 대답하여 말하길, "군주가 궁내에서는 입게 하고 궁밖에서는 금지하는 것은, 소머리를 문에 걸어두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영공께서 어떻게 하든 궁내에서 남장하는 것을 금지시키지 않으신다면, 밖에서 하는 것을 감히 막지 못할 것입니다."
영공이 "좋다"라고 말하고 궁내에서 남장하는 것을 금지시켰더니, 한달이 지나자 나라에 남장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안자춘추』 제6권.
제나라 영공이 남장하는 유행을 나라에서 몇 번이고 금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자 안영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궁중 여인에게는 남장을 허용하면서 민간에서는 남장을 금하니 이야말로 "문에는 소머리를 걸어두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1] 라며 궁중 여인의 남장부터 금하라고 진언했다. 그렇게 하니 과연 남장하는 풍습이 사라졌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이다.
위 출전은 안자춘추(晏子春秋)인데 오늘날과는 달리 말고기를 쇠고기인 척 내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처럼 양고기와 개고기의 고사로 바뀐 것은 송나라 시기 법제의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나오는 구절 "懸羊頭賣狗肉"에서부터이다. 개고기와 양고기는 실제로 맛이 비슷하다고 한다.
3. 관련 표현
표리부동(表裏不同), 권상요목(勸上搖木), 면종복배(面從腹背), 구밀복검(口蜜腹劍), 양봉음위(陽奉陰違)와 같은 말이다. 한국 속담 빛 좋은 개살구도 비슷한 뜻이다.반대의미의 고사성어는 표리일체(表裏一體).
4. 용례
- 2009년 12월 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의 비빔밥을 두고 양두구육이라며 비하한 적이 있다. # 그는 일본에서는 이 말이 가벼운 농담으로 쓰인다고 해명했으나 실제 일본에서 생활하는 유학생이나 직장인은 물론, 일본인들도 잘 납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
2022년 7월
이준석은
윤석열-권성동 텔레그램 논란에 대하여 이 표현을 썼다. 사자성어의 형태로 쓴 것은 아니고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개고기를 팝니다."라고 풀어서 썼다.
윤석열이 앞에서는 무난한 말을 했지만 뒤에서는 텔레그램으로
뒷담화를 한 것을 두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2022년 8월 13일 이준석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는 양두구육은 윤석열을 위해 선거운동을 한 자기 자신을 두고서 자책한 말이라고 주장했다.
5. 관련 문서
[1]
평설 열국지에서 이 일화는 안영이 젊은 시절 말단관리로 등용되었고, 대부와 그 자제들이 식사하는 자리에 초대되었을 때, 그 질문에 답한 내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