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62626><colcolor=#fff> 앤드유 코민 "샌디" 어바인 Andrew Comyn "Sandy" Irv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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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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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2년 4월 8일 |
영국 잉글랜드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체셔주 버킨헤드 | |
사망 | 1924년 6월 8일 (향년 22세) |
티베트 히말라야산맥 에베레스트 북쪽 (향년 22세) | |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 |
직업 | 산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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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산악인.2. 생애
1902년 4월 8일, 영국 잉글랜드 체셔주에서 6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중·고교 재학 도중 공학을 접해 기계 장치에 능통했던 그는 1923년 옥스퍼드 대학 머튼 칼리지에 진학 한 후 대학이 주관한 스발바르 제도 탐험대에 지원하여 우수한 체력을 보여준다. 이때 함께 동행한 지질학자였던 노엘 오델(Noel Odell, 1890~1987)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 둘은 구면인 사이였다. 앤드루가 17살이던 1919년, 오토바이를 타고 영국 웨일즈의 산을 등반하던 중 아내와 함께 등산을 하던 노엘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오델은 1924년에 예정된 영국의 3차 에베레스트 등정 대원에 속해 있었는데, 오델은 기계 정비에 능하며 체력도 좋은 어빈에게 등정대의 일원이 되지 않겠냐 제의했고 어빈도 이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4년 영국 등정대에 합류해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는데 등정대 일원이었던 조지 말로리는 마침 산소 부족으로 2차 등정을 실패하여 산소 장비의 중요성을 깨닫던 찰나 체력이 좋고 기계 장비도 잘 다루는 어빈을 보고 그와 단 둘이서 정상까지의 등정에 나서게 된다. 당시의 산소 장비는 무겁고,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에 어빈은 꽤나 중요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이후 조지와 앤드루는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약 250m 남은 8600m 안팎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실종됐다.
3. 실종 이후
조지의 시신은 1999년 후대 산악인들에게 발견되었지만 어빈의 시신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다. 조지 말로리의 유해를 수습한 탐사대는 어빈이 카메라를 지녔던 것으로 보고 계속해서 앤드루 어빈의 유해를 추적중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에베레스트의 미스터리'에서는 어빈의 유해가 말로리의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북서쪽으로 비교적 먼 위치에 있는 동굴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장면이 나왔다. 관련 영상2024년 9월, 미국의 산악인 지미 친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팀이 말로리가 발견된 북쪽 산등성이 주변인 에베레스트 중부 롱북 빙하에서 군화와 내부에 어빈의 이름이 새겨진 양말, 유해의 일부인 발을 발견했다. 어빈의 후손들은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 검사에 응하겠다고 자청했다. #
어빈의 유해발견이 화제가 되고있는데 이런 이유는 어빈과 말로리가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보다 29년 앞서서 먼저 정상에 올랐는지 여부가 세계 산악계에서 큰 논쟁 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리와 어빈이 공식적으로 정상을 등반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현재 공식적인 에베레스트 세계 첫 등정 기록은 힐러리와 노르가이가 가지고 있다.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어빈은 카메라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에 올랐으면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어빈의 카메라가 발견되면 등정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