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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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앙토니 반덴 보르 Anthony Vanden Bor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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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앙토니 앙리 반덴 보르 Anthony Henri Vanden Bor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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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7년 10월 24일 ([age(1987-10-24)]세) | |
자이르 공화국 리카시 | ||
국적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 [[콩고민주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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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5cm / 체중 78kg | |
직업 | 前 축구 선수( 수비수)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 RSC 안데를레흐트 (1995~2003) |
선수 |
RSC 안데를레흐트 (2003~2007) ACF 피오렌티나 (2007~2008) 제노아 CFC (2008~2010) → 포츠머스 FC (2009~2010 / 임대) KRC 헹크 (2010~2012) RSC 안데를레흐트 (2012~2017) → 몽펠리에 HSC (2016~2017 / 임대) TP 마젬베 (2017) RSC 안데를레흐트 (202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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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28경기 1골 ( 벨기에 / 2004~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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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기에의 前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풀백, 윙어였다.2. 클럽 경력
플란데런계 벨기에인 아버지와 콩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덴 보르는 자국의 명문팀인 RSC 안데를레흐트 아카데미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16세 187일의 나이에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최고의 유망주답게 빠른 속도로 1군 멤버로 자리 잡았다. 당시 뱅상 콤파니와 더불어 안데를레흐트와 벨기에 최고의 재능으로 여겨졌고, 많은 팬들은 콤파니와 함께 월드클래스급 선수로 성장해주기를 바랐으나 기대대로 월클 센터백으로 성장한 콤파니와 달리 반덴 보르는 해를 거듭할 수록 성장이 정체되면서 그저 준수한 기량을 가진 선수가 되었다. 실력은 1군 무대에 충분히 통했지만 기대치에 비해 크지 못한 것은 사실.2007년 6월 1일, 이탈리아의 ACF 피오렌티나가 400만 파운드라는 약관의 나이였던 선수에게는 꽤나 큰 금액을 과감히 투자하며 영입한다. 하지만 빅리그에서는 아직 통할 기량이 되지는 않았는지 2경기에 그쳤고, 2008년 1월에 공동 소유 형식으로 제노아 CFC에 입단한다. 제노아에서는 피렌체에 있을 때 보다는 적지 않은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영 좋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시즌 종료 후 프리미어 리그 팀인 포츠머스 FC로 임대를 떠난다.
2009-10 시즌 동안 반덴 보르는 25경기에 출전하였으나 시즌 내내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였고, 팀도 부진한 경기력으로 강등권에 위치한다. 설상가상 재정난으로 인해 승점 삭감을 당하면서 더욱 위기에 몰렸고,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포츠머스는 리그 최하위로 2부 리그 강등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자국 무대로 돌아온 그는 KRC 헹크와 RSC 안데를레흐트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뒤 2014년에는 생애 첫 월드컵에도 참가하였으나 후술할 부상으로 인해 안그래도 유리몸끼를 보여왔던 그의 몸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가하면서 선수 커리어가 제대로 꼬이고 만다. 이후 잦은 부상으로 고생하던 그는 2016년 7월 8일, 리그 1의 몽펠리에 HSC에 1년 임대로 합류하였으나 단 리그 10경기를 뛰고 반 년만에 원소속팀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29살의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이른 은퇴를 선언하게 될 이유는 아래에 나와있다.
그러다 은퇴를 선언한지 2개월만에 콩고 리그의 TP 마젬베로 이적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뜬금포를 선사했으나 4개월 뒤 팀을 떠난다.
3년간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2020년, 팀 동료이자 절친했던 콤파니가 안데를레흐트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3년간 팀없이 지내던 탓에 부족한 실전감각과 불어난 체중으로 인해 1군 복귀는 요원해보였고, 2020-21 시즌동안 2군에서만 몇 경기를 치른 뒤 시즌을 마치고 팀을 떠났고 그대로 현역 은퇴를 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앞서 말했듯이 유소년 레벨에서 상당한 재능으로 평가받은 선수였기에 이른 나이에 연령대 대표팀에 소집되며 대표팀 경력을 시작하였고, 16살에 나이에 U-21 대표팀에서 뛸 정도로 초고속 월반을 하였다.2004년 4월 28일에 열린 튀르키예와의 친선 경기에서 후반 늦은 시간에 교체 투입되며 만 16살의 어린 나이에 A대표팀에 데뷔하였으며, 2006년 5월 11일에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A대표팀 데뷔골을 득점하며 2-1 승리를 견인하였다.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여 본선 경기를 뛰었고,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하여 생애 첫 국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였다.
4. 이청용에게 당한 살인태클과 이른 은퇴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성인 대표팀으로는 처음으로 출전한 메이저 대회이자 첫 월드컵인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1, 2차전[1]은 뛰지 못하고 3차전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니까 이 경기가 그의 생애 첫 월드컵 출전 경기였다. 허나 이 경기에서 이청용의 살인태클에 당하며 정강이뼈에 금이 갔고 결국 생애 첫 월드컵 출전 경기가 그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이자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이때의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이 상당히 망가지고, 이후 가족과 관련된 문제가 생겨 29살이라는 나이에 은퇴하게 된다.[2]
이청용은 K리그 유망주 시절에도 동료 의식하고 거리가 먼 비매너 플레이로 눈쌀을 찌푸리게 했는데, 대표적으로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에게 친선경기에서 비매너 킥을 날리는 등 눈쌀을 찌푸리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본인도 2011년 톰 밀러에게 살인태클로 커리어에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덴 보르에게 한 살인 태클은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이청용은 현재도 자신이 당했던 톰 밀러에 대해 언급하지만 반대로 반덴 보르에 대해서는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