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09:15:46

앙겔로스 바시나스

앙겔로스 바시나스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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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2001~2007)
앙겔로스 바시나스
(2007~2009)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
(200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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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로스 바시나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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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로스 바시나스의 기타 정보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0%, #0066ff 20%, #0066ff 80%, #ffffff);"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66ff>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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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6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 139회 1999.8.20 2014.6.29
2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119회 1994.9.7 2007.8.22
3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116회 2003.8.20 2015.6.16
4 바실리스 토로시디스 101회 2007.3.24 2019.9.5
5 앙겔로스 바시나스 100회 1999.8.18 2009.4.1
}}}}}}}}}}}}}}} ||
그리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바시나스 그리스.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앙겔로스 바시나스
Άγγελος Μπασινάς
[1][2]
출생 1976년 1월 3일 ([age(1976-01-03)]세)
그리스 중앙그리스주 에비아현 할키스
국적
[[그리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직업 축구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주발 양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파나티나이코스 FC (~1995 / 유스)
파나티나이코스 FC (1995~2005)
RCD 마요르카 (2005~2008)
AEK 아테네 FC (2008~2009)
포츠머스 FC (2009~2010)
AC 아를 아비뇽 (2010)
국가대표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00경기[3] 7골 ( 그리스 / 199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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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의 前 축구선수.

오토 레하겔이 취임한 후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UEFA 유로 2004 결승에서 코너킥을 올려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선수로 알려져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파나티나이코스 FC

파나티나이코스에서 유스 생활을 시작했고 1995-96 시즌에 파나티나이코스 1군 팀에 콜업되었다.

처음에는 여느 선수들처럼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에서 단 한 번도 임대시키지 않은 걸 보면 구단이 바시나스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팀에서의 3번째 시즌에 바실리스 다닐 감독이 취임했고 다닐 감독은 바시나스에 대한 신뢰와 기회를 주며 이때부터 팀에서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1997-98 시즌에 처음으로 주전으로 뛰며 26경기 1골을 기록해 팀의 2위에 기여했다.

하지만 1998-99 시즌에 리그에서 21경기를 출전해 팀의 3위에 기여, 1998-99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4경기를 출전해 비록 팀은 안드리 셰브첸코 디나모 키이우, 2위 RC 랑스, 3위 아스날 FC에 이어 조 꼴지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요르고스 카라구니스와 함께 팀에서 그나마 제대로 활약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2000-01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12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챔피언스 리그 2라운드 진출이 걸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지네딘 지단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후반 14분에 바시나스가 니코스 리베로풀로스에게 패스를 했고 리베로풀로스가 드리블을 하는 과정에서 판데르사르에게 걸려 넘어지며 얻어낸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역전했고 이걸 기점으로 추가 골도 만들어내며 파나티나이코스에서 최고의 챔스 경기를 펼치며 2라운드행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2001-02 챔피언스 리그에서 아스날, 샬케, 마요르카와 한 조가 되며 또 다시 이변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1차전 FC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후반 31분에 고란 블라오비치가 선제골을 만들어냈고 4분 뒤인 후반 35분에 추가 골을 만들어내며 2:0으로 꺾는 피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2차전 RCD 마요르카 전에는 1:0으로 승리, 그 누구도 예상 못한 1위 결정전이 될 3차전 아스날 FC 전에서도 1:0으로 이겨 초반 3경기를 모두 이겨버렸다. 그리고 4차전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후반 5분에 요르고스 카라구니스에게 헤더 패스를 했고 카라구니스도 헤더 패스를 한 끝에 엠마누엘 올리사데베가 동점골을 넣으며 팀의 동점골에 기여했다. 그러나 2분 뒤에 파울루 소자가 바시나스에게 살짝 짧은 패스를 줬는데 실뱅 윌토르가 그걸 가로채 티에리 앙리에게 스루패스를 보냈고 앙리가 결승골을 만들며 다소 아쉽게 2:1로 패배했다.

다행히 5차전 샬케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득실에서 파나티나이코스가 +4, 아스날이 +2, 마요르카가 -4여서 사실상 16강에 갈 듯하며 6차전 마요르카 전에서 명단 제외도 되며 사실상 로테를 돌린 끝에 1:0으로 패배했으나 착실히 쌓아둔 득점 덕에 1등으로 2차운드에 진출했다.

그리고 2라운드는 레알 마드리드, AC 스파르타 프라하, FC 포르투와 한 조가 되며 여전히 쉽지 않은 조에 걸렸다.

1차전 포르투전에서 0:0 무승부, 2차전 레알전에서 3:0 대패를 당하며 이번에는 탈락할 듯 했으나 3, 4차전에 스파르타 프라하를 상대로 2:0, 2:1 승리, 5차전 포르투전에서 2:1 패배와 옐로 카드를 받으며 카드 누적 때문인지 6차전 레알전에서 출전하지 못했으나 2:2로 무승부를 거두며 언더독의 반란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파나티나이코스는 2승 2무 2패로 8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8강에서 히바우두, 파트릭 클라위버르트라는 어마무시한 공격진을 보유한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게 되었으며 후반 34분에 아벨라르도 요나스 콜카를 향해 백태클을 하며 얻어낸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거함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0으로 이겼다. 그러나 2차전에 3:1로 패배하며 파나티나이코스의 도전은 막을 내렸다.

2002-03 시즌 UEFA 컵에서는 주장으로 32강에서 페네르바흐체 SK를 상대로 1차전에 1골로 1:1 무승부에 기여를 했다. 2차전에는 전반 31분에 야니스 구마스의 헤더 골을 어시스트하며 4:1 대승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16강에서 FC 슬로반 리베레츠를 상대로 1차전에 1골 1도움을 기록해 2:2로 경기를 마무리짓는데 1등 공신으로 활약했고 2차전에 팀이 1:0으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설기현이 있는 RSC 안데를레흐트를 만났고 1차전에 3:0 승리를 하며 2차전에 2:0 패배를 당했음에도 8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지난 시즌에 레알과 더불어 챔스에서 유일하게 무승을 했던 FC 포르투를 만났다. 1차전에 1:0 승리를 거두며 역사를 썼으나 본인은 카드를 받으며 2차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2차전에 연장 끝에 2:0으로 패배, 합계 2:1로 아쉽게 탈락했다.

2003-04 시즌에 리그에서 26경기 7골 3도움을 기록했고 특히 26라운드에 2위 올림피아코스 FC와 승점이 2점 차이 나는 상황에서 전반 7분에 선제골을 기록, 35분에 옐로 카드를 받았지만 결국 2:2로 종료되며 팀의 선두 유지에 큰 기여를 했고 30라운드 까지 두 팀 모두 이기는 치열한 싸움 끝에 팀이 8년만에 리그에서 우승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컵 대회에서는 7경기 2골을 기록하며 더블을 이뤄냈다.

10시즌간 통산 153경기 26골 5도움을 기록했고 특히 유럽 대항전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트려주며 파나티나이코스가 유럽 대항전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는데 큰 도움을 줬다.

2.1.2. RCD 마요르카

2005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버밍엄 시티, 에버튼, AEK 아테네, 올림피아코스 중 한 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선수 본인이 라리가 RCD 마요르카로 이적하는 것을 선호해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겨울에 합류한 만큼 팀이 강등권에 있던 2005-06 시즌에 곧바로 주전으로 기용받아 14경기를 출전해 팀을 강등권에서 탈출하는 데에 도움을 주며 이전에 고군분투하는 팀의 잔류의 핵심 선수임을 증명했다.

2006-07 시즌에는 29경기를 출전하며 팀의 유럽 대항전 진출 경쟁 레이스에 도움을 줬으나 마지막 4경기에서 1무 3패를 거두며 아쉽게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7-08 시즌에는 UEFA 유로 2008 예선 경기도 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32경기 1골을 기록하며 6위 라싱 데 산탄데르와 1점 차이로 7위를 마크하는데 기여했다.

2.1.3. AEK 아테네 FC

2008년 7월 31일에 파나티나이코스 FC의 라이벌인 AEK 아테네 FC로 이적했다. # 계약 기간은 3년이고 이적료는 140만 유로다. 등번호는 마요르카 때에 쓰던 6번이 아닌 의외로 14번을 선택했다.
파일:카라구니스 바시나스.jpg
카라구니스와 바시나스
16라운드에서 친정 파나티나이코스 FC와의 아테네 더비에서 무승부를 거둔 후 본인은 가장 좋은 평점을 받았고 아쉬운 경기라고 했다.
무승부는 어느 쪽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100% 최선을 다했지만 이길 수 없었습니다. #

2.1.4. 포츠머스 FC

그러나 아테네가 예전의 위상만큼 순위를 못 기록하고 있어서 바시나스가 팀을 떠나기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었고 2009년 2월 2일에 프리미어 리그 포츠머스 FC뜬금 이적했다.

2009년 2월 7일에 리버풀 FC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며 이 경기가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이 되었다. 팀은 3:2로 아쉽게 패배했다.

그러나 데뷔 후 몇시간 만에 토니 애덤스가 경질되고 폴 하트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하트 체제에서 증용받지 못하며 3경기 출전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시나스는 포츠머스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

아브람 그랜트가 부임한 2009-10 시즌에는 많이 증용받았고 나름 좋은 모습까지 보이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2009-10 FA 컵에 관련해서 2010년 1월 23일에 포츠머스 팬들 사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가 팬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의 77%는 "바시나스는 창의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고 플레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2%만이 그가 클럽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

FA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음에도 어째서인지 결승에서 라인업 제외되었다. 그리고 팀은 첼시 FC에게 준우승했다.

2.1.5. AC 아를 아비뇽

포츠머스를 떠난 후 국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와 함께 프랑스의 클럽인 AC 아를 아비뇽에 입단했다.

그리고 2010년 8월 21일 툴루즈 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리그와 컵 경기를 합쳐 5경기를 뛰었고 2개월만에 계약이 파기되며 아를을 떠난 후에 은퇴했다. #

2.2. 국가대표 경력

1999년 8월 18일에 엘살바도르와의 친선전에서 국가대표 데뷔를 했다. 후반에 아나스타시오스 카사피스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떠났고 팀은 3:1로 승리했다.

그리고 2일 뒤에 또 다시 열린 엘살바도르와의 친선전에서 전반 30분에 카사피스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밝았고 10분 뒤에 선제골을 만들어내며 3:0 대승에 일조했다.

그러나 아직 어려서인지 출전 기회를 많이 못 잡던 터에 2001년에 오토 레하겔이 그리스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며 그때부터 그리스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2002년 3월 37일에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후반 35분에 지시스 브리자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비록 친선전이지만 벨기에를 무려 3:2로 잡는 이변을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유로 2004 예선 3차전 아르메니아전에서 후반 14분에 데미스 니콜라이디스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2:0 승리에 일조하며 1, 2차전에 2:0으로 패배하고 나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그리스는 남은 6경기에서 전승을 하며 스페인을 상대로 승점 1점 차이로 1위에 오르며 24년만에 본선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2005년에 유로 우승 팀 자격으로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에 참여했고 여기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기적이 이어지지는 못하며 무승으로 탈락했다.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5차전 덴마크전에서 전반 32분에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쐐기골을 박았고 팀은 2:1로 승리했다. 그러나 치열한 접전 끝에 아쉽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유로 2008 예선 1차전에 약체 몰도바를 상대로 전반 28분에 PK 실축, 후반 17분에 옐로 카드를 받았으나 후반 32분에 니코스 리베로풀로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실수들을 만회했다.

예선 5차전 몰타전에서 후반 21분에 PK를 성공시킨게 유일한 득점이 되며 1:0 진땀승을 했다.

이후 예선 11, 12차전에도 득점하며 팀이 1위로 유로에 가는데 기여했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가 은퇴한 뒤에 바시나스는 그리스의 주장 완장을 맡는 중요한 직책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 4월 1일 이스라엘과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에 출전하며 그리스 선수로는 자고라키스에 이어 두 번째로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이 경기가 바시나스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그리스는 어찌어찌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진출했으나 그가 빠진 상태에서 중원을 장악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조 3위로 아쉽게 탈락했다.

2.2.1. UEFA 유로 2004

극적으로 본선에 오른 그리스 대표팀이 발표한 명단에 포함되었고 등번호 역시 6번을 받았다.

하지만 유로 2004에서 A조에 배정되며 황금세대를 구축하고 있는 개최국 포르투갈, 예선에서 만났던 스페인, 그리고 러시아와 한 조가 되며 그나마 현실적으로 러시아를 제외하면 승점을 따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였다.

그리고 1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전반 7분에 요르고스 카라구니스가 골을 만들어내며 기적적으로 1:0으로 리드하고 있던 찰나에 유르카스 세이타리디스가 포르투갈 수비수에게 걸려 넘어지며 얻어낸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2:0을 만들어내며 후반 추가 시간에 호날두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2:1로 끝나며 개막부터 예상을 빗나가는 승리를 만들어냈다.

2차전에는 벤치에 있었고 3차전 러시아 전에서는 전반 42분만에 바실리오스 치아르타스와 교체되는 굴욕을 겪었고 2:1로 패배했으나 다득점 끝에 어렵게 8강에 올랐다.
파일:바시나스 지단.jpg
바시나스와 경합하는 지단
8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상대로 중원에서 활약하며 팀에 1:0 승리에 기여했다.

결승에서 개막전에서 상대했던 포르투갈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반 45분 그리고 추가 시간 2분에 경고를 받았으나 후반 12분에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를 향하여 정확하게 크로스를 올렸고 하리스테아스가 헤딩을 연결시켜 골을 성공시켰다. 어...?

개막전 페널티 골, 그리고 결승에서의 어시스트 덕에 그리스가 사상 최초로 유로 우승 컵을 들어올렸다. 물론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가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바시나스는 토너먼트 내내 그리스 팀의 열심히 움직이는 미드필드에서 중요한 선수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는 했다. 당시 그리스의 수비 축구에서 수미로 그리스의 볼배급을 담당하기도 했다.

2.2.2. UEFA 유로 2008

나이가 32살임에도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로 2008 명단에도 들었다. 등번호는 또 다시 6번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유로 2004에서 우승한 멤버 대부분이 나이가 들어 노쇠화로 인헤 기량이 하락하며 승점도 못 챙기고 3전 전패로 탈락했다. 특히 3차전 스페인전에서 역전골을 먹힌지 얼마 안된 후반 27분에 옐로 카드를 받으며 가뜩이나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 추가로 찬물을 끼얹은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3. 여담

  • 딸인 알렉산드라 바시나 역시 축구선수다.


[1] 영어: Angelos Basinas [2] /ˈaɲɟelos basiˈnas/ [3]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5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