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2 13:39:58

알렉산더 카트라이트

Alexander Joys Cartwright
1820.4.17~1892.6.12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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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카트라이트
헌액 연도 1938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추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lexander_Cartwright_1855_Daguerreotype.jpg

1. 개요
1.1. 현대야구의 틀을 잡다.1.2. 메이저리그에서 무시당하다
2. 현대3. 평가4. 논란

1. 개요

야구의 기초와 틀을 닦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우린 야구대신 크리켓을 보고 있었을 수도 모른다. 그러나, 우습게도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이나 명예의 전당에서 이 사람을 120년 넘게 무시했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반전이 터졌다. 후술한 내용을 참고할 것.

1.1. 현대야구의 틀을 잡다.

카트라이트는 1845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 현대적인 야구단인 닉커스보커스(Knickerbockers)를 창단하며 대회 규칙을 공식화했는데, 이 니커보커 규칙이 현대 야구규칙의 시초이다. 다이아몬드형 경기장을 고안하여 경기 인원을 9명으로 하였고, 3스트라이크가 1아웃이 된다는 근대야구 규칙을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있던 야구 비슷한 종목의 규칙을 참고하여 공식화하고 개량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건 오래전부터 야구 비슷한 구기종목을 하던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북아프리카 유목민인 베르베르인이 하던 타 쿠르트 옴 엘 마하그(순례자 어머니의 공)라는 경기가 야구처럼 9회에 걸쳐 경기를 하고 그라운드를 돌며 막대기로 공을 치고 가죽글러브로 공을 받는 야구 경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즐기던 만 그룩이란 여러 공놀이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채아 만 그룩은 현대 축구란 매우 비슷하며 이햐 만 그룩이 바로 막대기로 공을 치며, 가죽으로 공을 받아던지고 그 공을 타자가 몸에 닿으면 아웃이며, 3각으로 달려서 베이스를 돌고 돈다든지.게다가 이 스포츠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뤄지고 대를 이어 해오던 규칙이기에 이러한 스포츠들을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주자를 공으로 맞춰 아웃시킴을 막은 13조는 현대 야구가 지금처럼 단단한 야구공을 사용하게 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만 알아둘 점은 이러한 규칙이 한 번에 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30년이 넘게 걸려 1876년에서야 미국 야구리그가 생길 때 정식 규칙이 되게끔 영향을 준 것.

닉커스보커스는 1846년 6월 19일 닉커스보커스 규칙에 따라 뉴저지 호보켄에서 뉴욕 나인과 경기를 했는데, 이 경기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야구경기이다. (닉커스보커스가 23대1로 졌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문을 연 1876년에는 그는 초대도 받지 못했고 무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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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야구단을 운영했을 뿐이고, 직업은 소방관이었기에 야구계랑 그다지 인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그막에는 하와이로 이주하여 거기서 야구 발전에 힘을 다했고 거기서 세상을 떠나 묻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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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 있는 그의 무덤.

1.2. 메이저리그에서 무시당하다

이렇듯 현대 야구에 둘도 없는 위인이거늘 미국 야구계는 일부러 무시했다. 바로 야구/기원을 참고할 것. 야구 역사를 더 오래 주장하고자 1839년에 당시 장교 후보생이던 애브너 더블데이 장군(1819~1893)이 켄터키주 쿠퍼스타운이란 곳에 있던 사관학교 분교에서 동기들과 같이 야구에 대한 규칙을 창안했다면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스포츠라고 홀로 주장했기 때문에 카트라이트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

1907년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대놓고 애브더 더블데이가 현대 야구의 창조자라고 공식발표하고 카트라이트는 그냥 이러한 거 따라한 정도로 폄하했다. 카트라이트의 아들 브루스 카트라이트(1853~1919)를 비롯한 카트라이트의 후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더블데이의 후손들까지 엉터리라고 반론함에도 메이저리그 측이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1936년 명예의 전당을 열 때에 카트라이트를 무시하고 더블데이만 찬양하기에 이른다. 분노한 카트라이트 후손들의 반발 속에 나중에 미국 의회까지 이 사안이 올라가 여러 논란이 빚어졌다. 메이저리그 측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갑론을박 끝에 결국 1953년 6월 3일, 미국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현대 야구 창시자라고 공식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꾸준히 카트라이트는 듣보잡이고, 더블데이가 야구를 창안했다는 엉터리 주장을 버리지 않았다! 1973년 미국 야구평론가 해롤드 피터슨은 ‘The man who invented baseball(1973)’에서 '애브너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든 것이 아니고 야구가 애브너 더블데이를 만들었다.'는 말로 비아냥거리고 카트라이트를 일부러 묻어버렸다고 비난했다.

2. 현대

결국 명예의 전당도 이런 비난 속에 뒤늦게야 1938년에야 카트라이트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그러나 비난은 여전했다. 명예의 전당이 세워진 1936년에 당연히 헌액해야 했던 걸 무시하다가 비난을 받자 마지못해 헌액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명예의 전당에 보란 듯이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들었고 카트라이트는 '지역야구 발전에 공헌하고 아마추어 야구를 했다.'는 수준으로, 더블데이보다 못한 공로자로 새겨놓은 걸 달아뒀다.

카트라이트가 죽고 111년, 메이저리그가 문을 연 지 127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서야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들었다는 종전 주장을 창작이라고 고치고 카트라이트야말로 미국 야구를 만든 진정한 공로자라고 전면 수정하면서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미국 일부 야구인사들은 카트라이트가 아니라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들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중 유명한 사람이 바로 버드 셀릭.

3. 평가

야구의 아버지.현대 야구 규칙의 공식화에 기여한 위인.야구에 대해서는 그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위에 서술한 것처럼 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무려 100년이 넘게 무시당했기에 비운의 인물이라고 할 수밖에. 그래도 현대에 와서 재평가되고 제대로 인정받았다.

하와이에 있는 고교 야구대회 우승컵도 카트라이트컵이며 카트라이트 베이스볼 스타디움이란 경기장까지 있다. 그가 늘그막을 지낸 하와이에서는 하와이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자부한다.

4. 논란

그러나 반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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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SCP 경매사에 오래된 희귀 서류가 매물로 나왔다. 서류의 이름은 ‘야구의 법칙(Laws of Base Ball)’. 그런데 내용을 보면 카트라이트가 1845년에 기초를 잡고 1860년 애덤스가 완성한 규정집 ‘< Nickerbocker Rules>과 내용이 거의 다 일치한다. 베이스 간의 거리, 9이닝 경기와 팀 당 9명의 정원 등이 모두 담긴 것이다. 메이저리그 공인 역사가인 존 쏜 등 전문가들도 이 서류의 중요성과 진품 사실을 인정했다.

이 서류가 큰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완성된 해가 1857년, 즉 현재까지 시조 격으로 인정받은 1860년 니커보커 규칙보다 3년이나 앞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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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 애덤스(1870년) 사진.

이 서류를 작성한 사람은 바로 대니얼 루시우스 ‘닥’ 애덤스(Daniel Lucius "Doc" Adams, 1814~1899). 그러니까 카트라이트의 위업을 이어받아 1860년에 집대성했다는 근대 야구의 규정집은 실은 1857년에 애덤스가 단독으로 집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야구의 아버지는 카트라이트가 아니라 애덤스로 역사를 다시 써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대두되고 있다. 야구 역사가 쏜도 AP와 인터뷰에서 “아마 일반인들은 들어본 적이 없을지 모르지만, 야구의 아버지는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아니라 대니얼 애덤스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명예의 전당 멤버인 카트라이트는 1857년 야구 규정집을 만드는 데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혀졌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서류의 소유주는 1999년 다양한 역사적인 서류와 책 등을 판매하는 경매에서 이 서류를 1만 2천 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불과 6개월 전까지도 이 서류를 책상서랍에 넣어 놓고 존재를 잊고 있다가 다시 발견해 감정을 받는 과정에서 서류의 중요성이 점점 드러났다. 결국 SCP를 통해 경매에 내놓았는데, 경매 초반부터 즉각 5명이 구매의사를 밝혔고, 이미 첫 주 만에 경매가가 소유주 구입가의 열 배 이상을 호가했다고 알려졌다.

야구의 시작에 대한 역사책은 또 새롭게 쓰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아닌 닥 애덤스가 현대 야구 토대를 이룩한 공로자로 재평가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