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1:09:55

아이바 토구리

<colbgcolor=#000><colcolor=#fff> 아이바 토구리
Iva Toguri
파일:Iva-Toguri-DAquino-1945.jpg
본명 아이바 이쿠코 토구리 디아키노
Iva Ikuko Toguri D'Aquino
출생 1916년 7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사망 2006년 9월 26일 (향년 90세)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직업 라디오 DJ, 아나운서,
학력 UCLA 동물학(졸업)
배우자 펠리페 디아키노 (1945년 결혼)(1980년 이혼)
자녀 1명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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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쿄 로즈로 활동했던 인물. 유일하게 정체가 밝혀진 인물이다.

2. 생애

191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계 2세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 걸스카우트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후 샌디에이고, 멕시코에서 거주했다가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 UCLA 동물학을 전공했고 1940년 미 공화당 당원으로 가입했다.

1941년 7월에 친척의 간병을 위하여 일본을 방문했다가 곧바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귀국이 불가능해졌고 일본군에 의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라는 협박과 심한 감시를 받았으며 결과적으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마지막 선택지로 연합군 포로로 구성된 '라디오 도쿄'의 영어방송 진행자로 일하게 되었다.

아이바 토구리는 적국인이다 보니 일본에서 전시배급표를 받지 못했고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라디오 도쿄의 타이프라이터로 취업했다. 1943년 11월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들에게 강제로 이 방송의 진행을 담당하게 했는데 여기에 발탁된 것이 호주군 소령 찰스 쿠젠스와 미군 대위 월렌스 인스, 필리핀군 중위 노르만 레예스 등으로 이들이 프로듀스를 맡았고 아이바 토구리가 진행자로서 발탁되었다. 아이바 토구리는 종전 직전인 1945년 8월 14일까지 방송을 진행했으며 방송이 없을 때는 타자를 치기도 했다.

그녀는 방송 이름으로 '앤'을 사용했고 조금 뒤에는 '고아 앤'으로 스스로를 불렀다. 한 달 월급이 150엔밖에 안됐는데 쓰고 남은 돈으로 미군 포로들을 위해 의약품과 식량을 사서 밀수했다고 한다. 종전 후 미국 FBI와 미국 정보기관인 CIC가 그녀를 조사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종전 후 다른 도쿄 로즈들은 어차피 일본인이라 미국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도 없고 대단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서 미국 정부 기관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쿄 로즈들의 정체를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 기자들은 라디오 도쿄에 도쿄 로즈의 정체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방송국에서는 그녀들이 전범으로 처벌받을까 두려워해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누군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아이바 토구리는 전쟁이 끝나고 무일푼이었던지라 미국 언론사인 INS와의 독점 인터뷰로 2,000$를 받기로 했는데 이게 드러나면서 유일하게 알려진 도쿄 로즈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바 토구리는 다른 도쿄 로즈들과는 달리 미국 국적을 유지했으므로 미국 국내법상의 반역죄 혐의가 적용되었다. 도쿄 로즈만 때려잡은 건 아니고 미국은 나치 독일 밑에서 영어 방송을 진행한 여성 아나운서 밀드레드 질라스, 마사 스튜어트 등도 모두 체포해서 반역죄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종전 직후 미군에게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당시 공산당 때려잡기의 기수로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방송인 월터 윈첼의 압력 때문에 1948년에 다시 체포되어 반역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갓 결혼했던 남편과도 강제로 이혼당한 채 6년 동안 형기를 살다가 1956년에 석방되었다. 반역죄가 들어간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아이바 토구리는 미국 시민권자이므로 적국인 일본의 선전방송을 했다는 것 자체가 반역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바의 반역 혐의에 대해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1977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조치를 내렸는데 위에서 언급되었다시피 그녀는 음악 DJ였지 프로파간다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방 후 본인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1941년의 일본 방문은 아버지의 강권(사실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고 자신은 정말 일본에 가기 싫다고 했으나 아버지의 강요를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평온하게 살다가 2006년 9월 26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90세로 자연사로 사망했다. 사망하기 바로 전인 2006년 1월 미국 2차대전 참전용사회는 그녀에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식량과 의약품을 포로들에게 전해주었고 끝내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용기를 보여준 것을 이유로 시민상(Edward J. Herlihy Citizenship Award)을 수여했는데 그녀는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