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4:37:20

아이린 카라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아이린 카라
Irene Cara
파일:1000106396.jpg
본명 아이린 카라 에스칼레라
(Irene Cara Escalera)
출생 1959년 3월 18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롱스
사망 2022년 11월 25일 (향년 63세)
미국 플로리다주 라고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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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디스코, R&B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음반 목록
3.1. 정규 앨범3.2. 싱글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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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가수, 배우.

2. 생애

뉴욕시 브롱스에서 음악계에 종사하는 푸에르토리코, 쿠바계 부부사이에서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났고 5세부터 피아노, 연기, 댄스, 보컬수업을 받았다.

13세부터 어린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고 17세에는 여성 가수들의 가족을 다룬 영화 <스파클>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카라는 1980년 뮤지컬 영화 Fame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뉴욕의 한 공연예술 전문학교를 무대로 스타 지망생들의 시련과 성공을 그린 이 영화에서 카라는 연기자 지망생 코코 에르난데스 역할을 맡아 동명의 주제가를 불렀다. 이 곡은 아카데미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았다. 카라는 이 노래로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가수와 최우수 여성 팝아티스트 후보에 올랐다.

카라는 1983년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가 Flashdance... What a Feeling을 공동작사하고 노래를 직접 불러 1984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상과 2개의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카라는 이후에도 <DC 캡>, <시티히트> 등의 영화와 다수의 TV 프로그램, 뮤지컬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음반사와 기획사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결과적으로 메이저 소속사가 아니라 군소 소속사에서 일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거의 잊어져 버렸다.

여기에 아역배우시절부터 연예계에 몸담으면서 전형적으로 망가지는 코스로 들어서서 마약과 술을 상용했으며, 이때문에 1980년대 후반이 되면 흘러간 스타 취급을 받았다.[1]

19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한 MBC 서울 국제가요제에 오기도 했는데, 당시 정상급 팝가수들이 한국공연을 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례적이긴 하지만, 아이린 카라의 경우는 당시 그 정도로 커리어가 사그라든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같이 온 사람이 1980년대 글로리아로 한국에서 히트를 친 로라 브래니건이었다. 둘 다 당시 커리어의 하락기였다.

그래도 간간히 출연하며 음반을 내다가 2011년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2022년에 사망했는데, 사망 당시에는 한동안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가 몇 개월 후 고혈압 합병증인 고혈압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2]

3. 음반 목록

3.1. 정규 앨범

  • Ésta es Irene[3] (1967)
  • Anyone Can See (1982)
  • What a Feelin' (1983)
  • Caramastic (1987)
  • Irene Cara Presents Hot Caramel (2011)

3.2. 싱글

  • Fame (1980)
  • Hot Lunch Jam (1980)
  • Out Here on My Own (1980)
  • Anyone Can See (1982)
  • My Baby (He's Something Else) (1982)
  • Flashdance... What a Feeling (1983)
  • Why Me? (1983)
  • The Dream (Hold On to Your Dream) (1983)
  • Breakdance (1984)
  • You Were Made for Me (1984)
  • Girlfriends (1987)
  • What a Feeling (with DJ BoBo) (2001)
  • Downtown (2004)

4. 여담

  • 푸에르토리코, 쿠바계 미국인이였고 스페인어도 능숙하게 구사했다. 데뷔시절 스페인어로 된 노래를 발매했고 스페인어만 쓰는 예능에 출연했다.
  •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서울국제가요제 초청가수로 방한해 Fame과 What a Feeling을 불렀다.
  • 배우인 콘래드 팔미사노와 1986년 결혼했으나 1991년 이혼했으며 둘 사이에 자녀는 없다.


[1] 아이린 카라보다 조금 늦게 뜨기 시작해 R&B의 여왕이 되는 휘트니 휴스턴도 비슷하게 몰락했다. [2] 실제로는 휘트니 휴스턴과 마찬가지로 마약 후유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스페인어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