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아우구스토 말리 (Augusto Magli) |
생년월일 | 1923년 3월 9일 |
사망년월일 | 1998년 11월 1일 (향년 75세)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몰리넬라 |
포지션 | 레프트 윙 하프 |
신체조건 | 179cm | 72kg |
소속팀 |
US 레노 몰리넬라 1911 (1939-1941) ACF 피오렌티나 (1941-1943) 볼로냐 FC 1909 (1943-1944) ACF 피오렌티나 (1945-1954) 우디네세 칼초 (1954-1957) AS 로마 (1957-1958) |
국가대표 | 1경기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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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어린 시절
말리는 이란성 쌍둥이로 누나와 함께 태어났다.2.2. 선수 생활
2.2.1. 클럽
말리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기다 그의 형 렌초에 의해 1939년 ACF 피오렌티나에 입단했다. 말리의 세리에 A 데뷔는 1941년 12월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말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피오렌티나의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었고 주장 완장도 받았다. 그러나 1953-54 시즌에 말리는 단 7경기에 출전하면서 피오렌티나와 결별하게 되었다. 프리 시즌의 사소한 사고로 인해 말리는 아르만도 세가토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고 풀비오 베르다르디니 감독과의 불화도 있었다.
결국 말리는 우디네세 칼초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되었다. 우디네세는 1954-55 시즌에 순항해서 1955년 4월까지 당시 세리에 A 1위팀 AC 밀란에 4점 뒤진 2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승을 위해 우디네세는 밀란을 잡아야 했지만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잔니 로마노 골키퍼가 군나르 노르달과 충돌 이후 경기를 못 뛰어 10명으로 밀란을 상대해야 했다. 말리가 노르달의 슈팅을 막아내는 등 우디네세 선수들은 투혼을 보였고 나중에 밀란에서도 선수가 빠져 양팀이 10명으로 시합을 치를 수 있었다. 이 경기는 결국 우디네세가 3:2 신승을 거뒀고 시즌 끝까지 양팀은 더 이상의 패배가 없어서 결국 당해 시즌 우승팀은 밀란이 되었다.
그러나 우디네세는 법규 위반의 책임을 물려 1955-56 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당했지만 이 시즌에 바로 세리에 B 우승으로 재승격에 성공했다. 말리는 한시즌을 더 우디네세에서 보냈고 1957-58 시즌은 AS 로마에서 총 36경기를 치렀다. 이 시즌이 말리의 은퇴 시즌이 되었다.
2.2.2. 국가대표
말리는 1950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첫 경기였던 스웨덴전에 출전했다. 이것이 말리의 선수 경력에서 유일한 A매치 경기였으나 이탈리아는 스웨덴에 2:3으로 패배했다.2.3. 이후
말리는 1962년에 가족들과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3. 수상
3.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