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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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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심종현
沈鍾賢[1]
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파일:아오마스.jpg
별명 아오마스(靑松)[2]
본관 청송 심씨
출생 1922년 또는 1925년
거주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45번지[3]
사망 미상
직업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야인시대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시기의 인물로, 제1공화국 당시 활동했던 정치깡패이다. 주로 아오마스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2. 생애

어린 시절에 불우하게 살았으며 늘 불량청소년 선도를 주장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는 김두한의 부하로 들어가 우익 활동에 가담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6.25 전쟁 중에는 김두한 대신 종로를 접수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응규라는 인물과의 갈등을 원인으로 신상사와 대립하다 국일관에서 신상사에게 구타당해 망신을 당한 이후 이정재에게 가담했으나, 광화문의 장영빈에게 백운관이라는 댄스홀을 빼앗기게 되자 이화룡과 연계해 충정로 도끼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그 후 예전 이력으로 인해 조직 세계에서 늘어졌고 그 이후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야인시대

배우는 정호근 → 구보석.

6.25 전쟁으로 피난을 떠난 김두한이 서울을 비운 사이 종로를 접수했고 이를 토대로 자기 세력을 키웠다. 돌아온 김두한에게는 자신이 '전국구로 떠난 김두한 대신 임시로 주인이 빈 종로를 맡았다'며 충성심을 보인다. 김두한은 그를 좋게 보았으나 이미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여 종로를 재인수하는 대신 형식상 김관철을 분봉하고 아오마스가 수행하게 한다.

김관철은 자력으로 종로를 접수하고 사업을 키운 아오마스를 하대하며 갈등 구도를 자초한다. 아오마스는 김관철이 아니꼽지만 김두한이 보낸 총독 격이자 주먹계 선배인 그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참았는데, 끝내 김관철과 홍영철의 갈등이 폭발하여 영업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마지막 순간에는 참지 못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참지 못했다는것은 조금 무리인게 이전부터 하극상 기질을 보였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김관철과 첫 정식 대면, 즉 사마귀와 통발이 건중친목회 이권을 구걸하는 자리에서 김관철은 아오마스에게 여느 하급자에게 그러하듯 술 시중을 시켜보았는데 그 때 아오마스가 김관철을 째려보고 대답도 늦게 하는 등 하극상 기질을 이미 보였다. 일부 시청자들은 김두한이 신마적에게 무례하게 대하였듯이 아오마스도 김관철을 몰아내고 종로를 차지하려는 큰그림이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래도 막판에 김두한과의 대면에서 깽판을 친건 김관철이 선을 넘은 행동이긴 했다. 김관철 본인도 그 점은 인정을 해서 아오마스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도 한 것이고.

일이 이렇게 되자 아오마스의 부하들은 그에게 결단을 종용했고 아오마스는 빠르게 끝내라며 이를 수락한다.

아오마스는 부하들을 시켜 김관철을 곤죽을 만들고 즉시 백병원으로 옮긴 뒤 김두한에게 이실직고한다. 본래 대사건이 되었어야 할 하극상이지만[4] 이미 건달판에 마음이 떠난 김두한은 이 문제에 더 관여하지 않고 아오마스가 종로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다만 선배에 대한 예의를 당부한다. 아오마스는 퇴원하는 김관철을 배웅하러 병실로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데, 두들겨 맞고 자기 입지를 자각하게 된 김관철이 화해를 받아들이고 종로를 떠나면서 등장이 일단락된다.

김두한이 정계에 진출한 후에는 명동과 동대문 외의 건달 나와바리 이야기 비중이 사라졌고, 동대문파가 삼우회를 결성할 시기에 이르러 동대문의 이정재, 서대문의 최창수와 더불어 서울 3대 세력 급의 중견 네임드로 성장한 것으로 이름이 언급된다. 그 뒤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구속되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으로 나오며 본명 심종현 대신 김용□[5]으로 나온다. 물론 상술했듯 원래 역사에서는 도중에 이정재를 배신하고 명동파와 손을 잡았다가 도끼 사건때 같이 끌려갔고 그로 인해 혁명재판을 피해갔다.

작중 전투 씬이나 힘을 묘사하는 장면이 일절 없어 싸움 실력은 알 수 없으나 건달 짬밥이 깊은 낭만파 김관철에게 완전히 하대당하는 것을 보면 그보다 위일 수는 없다는 점은 알 수 있다.


[1] 1957년 7월 2일 경향신문 기사 등에서는 沈 [2] 창씨개명이 강요되던 시절, 청송 심씨 문중에서는 본관 靑松을 응용하여 아오마츠(아오마쓰/あおまつ)로 많이 바꿨는데, 이 발음이 와전되어 아오마스가 되었을 수 있다. [3] 1956년 10월 9일 조선일보 기사에 언급된 당시 거주지 [4] 당시 김두한 사무실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신영균, 홍만길, 휘발유 모두 아오마스에게 분노했다. 김두한이 개입하지 말라고 해서 더 이상 일이 확대되진 않았다. 사실 김관철의 깽판은 분명 문제였지만, 정식 결투도 아닌 취했던 김관철의 뒤를 부하들과 집단 린치한건 비겁한 방법이었다. [5] 마지막 글자는 가려져서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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