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6:24:33

아시카가 요시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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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 제11대 정이대장군
아시카가 요시즈미
足利義澄
파일:아시카가 요시즈미.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생몰년도 1480년 ~ 1511년
재임기간 제11대 정이대장군
1493년 ~ 1508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무로마치 막부 제11대 쇼군. 호리고에 쿠보 아시카가 마사토모의 아들. 12대 쇼군 요시하루, 사카이 쿠보 요시츠나의 아버지.

메이오 정변을 계기로 쇼군에 올랐는데 이 사건은 전국시대의 개막이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오닌의 난으로 이미 한 번 개판이 났지만 쇼군 자리를 놓고 싸우는 동안 아시카가 쇼군의 위세는 더욱 추락하고 지방 다이묘들에 휘둘리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 일본국왕 원의고(源義高)'로 나오는데, 이는 아시카가 요시즈미가 이름을 요시즈미(義澄)로 바꾸기 직전에 사용한 이름이다.

2. 생애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형 마사토모의 차남.[1] 본래는 쇼군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요시마사의 후계자인 아시카가 요시히사가 아이 없이 요절하자 쇼군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어 상경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요시히사의 사촌인 아시카가 요시타네가 후계자가 되어 쇼군위를 이었다. 하지만 요시키에게 아이가 없었기에 요시즈미는 만일을 대비한 예비 후계자로 대우받아 히노 도미코등의 지원을 받으며 살았다.

10대 요시타네가 호소카와 마사모토의 쿠데타(메이오 정변)로 교토에서 쫓겨나자 요시즈미가 쇼군이 되었다.

그러다 1507년 교토를 차지하고 있던 실권자 호소카와 마사모토가 암살당하고 그의 세 아들이 서로 싸우는 분열이 일어나자 지방에서 떠돌던 요시타네가 기회를 잡고 오우치 가문 등 주고쿠 다이묘들의 추대를 받아 1508년 교토를 수복한다. 11대 쇼군 요시즈미는 도망가버렸고 요시타네가 다시 쇼군에 복위한다. 요시즈미는 곧 병사했으나, 나중에 요시타네가 다시 쫓겨나면서 요시즈미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하루가 제12대 쇼군에 오른다.


[1] 위에 이복형으로 아시카가 챠챠마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