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필리핀 총독 아서 맥아더 주니어 Arthur MacArthur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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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5년 6월 2일 |
미국 매사추세츠주 치코피 | |
사망 | 1912년 9월 5일 (향년 67세) |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중장 |
복무 기간 |
1861~1865 1866~1909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중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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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매사추세츠주 치코피에서 법조인이자 위스콘신 주지사까지 간 아서 맥아더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 시니어가 밀워키에서 판사로 임명되어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성장했다. 본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좋지 못해 퇴교했다.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제24위스콘신의용보병연대 소속으로 북군 사병이 되었다. 치카무가, 스톤스리버, 채터누가 전투와 애틀랜타 전역에 참가했다. 특히 채터누가 전투의 일환인 미셔너리리지 전투 당시 18세의 나이로 과감히 돌격해 부대의 사기를 올리고 남군을 퇴각시킨 공으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고[1] 전시계급 대령으로 진급했다.
1865년 전쟁이 끝나 전역했으나 1년 뒤 소위로 복귀해 제17보병사댜에 배치되었다. 대위까지 빠르게 승진했으나 그 이후 20년간 만년 대위로 지냈다. 하지만 1885년 인디언 전쟁 당시 아파체족의 거주지를 파괴한 공으로 중령으로 진급했다.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제3군단 부사령관으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전투를 치렀고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필리핀에서 독립운동을 개시하며 이 것을 제압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제2보병사단장으로 전투를 치렀다. 러일전쟁 당시 아들인 더글러스 맥아더와 함께 전투를 참관했으며 1909년 중장으로 퇴역해 상이군인에 대한 연설 중 갑자기 뇌졸중을 일으켜 쓰러졌고 얼마 안 가 사망했다.
3. 여담
[1]
수여 시기는 18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