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6 00:28:13

아베 신조/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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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내각 아베 신조 내각 ( 제1차 내각 () · 제2차 내각 () · 제3차 내각 ( 1개, 2개, 3개) · 제4차 내각 ( 1개, 2개))
비판 및 논란 비판 및 논란
아베 신조 한국 비하 발언 논란 ·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 · 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 · 아베노마스크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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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 }}}}}}}}}


1. 개요2. 긍정적 평가3. 부정적 평가
3.1. 한국과의 관계
4. 총평

1. 개요

일본의 전 내각총리대신인 아베 신조의 평가를 서술한 문서.

2. 긍정적 평가

일본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었었다고 평가 받았다. 그의 아베노믹스 잃어버린 10년을 끝냈다고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한동안 다시금 경제를 회복하여 선진국으로써의 위상도 많이 회복했었다.

또한 외교적으로도 강한 친미, 반중을 토대로 안정적인 외교관계를 형성하였다.

문화쪽으로도 발전을 하고자 많은 예산을 투여하였다. 이는 그가 영화광인 부분도 한 몫하였다.

3. 부정적 평가

아베노믹스의 한계점을 지적하여 끝내기는 커녕 잃어버린 40년을 향해 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비판은 일본 내에서 주로 받고 있는 평가이다. 자세한 건 잃어버린 10년 아베노믹스 참고.

무리하게 강행한 2020 도쿄 올림픽 개최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 받는다. 애초에 코로나 19 방역 실패로 국가 위상 회복과 올림픽 특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물건너간 상황이고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개최 전에도 많은 논란과 구설수에 시달렸는데다 어느 지도자라도 코로나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올림픽 개최는 쉽지 않을거라는 의견이 많았던지라 더욱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 아베가 사퇴한 후 들어선 스가 내각에서 커버를 치려고 해도 기존의 부정적 평가를 모두 만회하는건 불가능했고 빚더미에만 올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3.1. 한국과의 관계

아베 신조는 일본의 혐한파 정치인의 거두격 인물로, 여러 망언과 행보로 한국 내에서 평판이 매우 나쁘며, 사실상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를 안 좋게 만든 장본인으로도 평가 받지만, 의외로 과거 아베 신조 본인은 1차 집권기 때까지만 해도 한국 문화나 한일관계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자민당 내 다소 진보적인 외교 성향을 가진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2차 집권기 이후로 잘 알다시피 당 내 강경 성향의 대표주자가 되며 혐한 발언을 하게 되었는데 이에는 두 가지 이유가 꼽힌다.

우선 첫째 그는 어린 시절이 좋지 못했다. 그의 가문이 일단 외가 친가 다 명문가인데다가 유독 도쿄대학에 가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이에 아버지 아베 신타로도 너도 도쿄대에 가자며 공부를 안 하는 그에게 공부를 하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는 아베 신타로가 정치인으로 바빴기에 어린 시절 부모에게 사랑 받으며 자라지 못했고 그런 그를 돌봐주며 키워준 실질적 부모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였다. 때문에 아베 신조가 기시 노부스케의 보수 사상을 본받았을 가능성도 높다.[2]

둘째로 당을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우선 상당한 고령화 사회다. 또한 과거 일본제국이 패망하던 시기에 이들은 대부분 태어났기에 이들은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때문에 더더욱 일본 노인층은 대부분이 보수다. 자유민주당은 보수정당이다. 즉 아베 신조는 이들에게 표를 받으려면 한국을 까내리려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는 그를 평생 괴롭힌 궤양성 대장염으로 일찍 단기 총리로 마감하다가 다시금 총리가 된 것이기에 그는 더욱 강박이 심할 수 밖에 없었고 점점 친한파에서 혐한파스럽게 변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아베 신조를 완전한 친한파이지만 순전히 정치적 이유로 돌아선 것이라는 의견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2차 집권기 이후로는 강경 발언을 하며 실질적 동맹인 한국을 배척하는 외교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뒤늦게 통일교 게이트가 아베의 극우화를 부추겼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아베 1차 내각의 빠른 붕괴는 아베의 지지기반이 자민당 내에서도 취약했다는 걸 드러낸 방증인데, 통일교의 지원을 통해 세를 불리고 파벌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통일교의 성향인 극단적 반공이 이들 국회의원에게 주입되었다는 것. 일본인들은 정치에만 무관심한게 아니라 주변 소수민족에도 무관심하기 때문에, 정말 한류에 관심있는 일본인이 아닌 한 대한민국인과 조총련계 재일 한국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문제는 일본의 통일교가 제일 혐오하는 일본공산당이 정작 한국과는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본공산당을 싫어하는 고령층이 자민당 주 지지층이기도 하니 일본공산당과 조총련, 한국을 세트로 묶어서 디스하고 이를 어떻게든 자위대의 강화 = 평화헌법 폐기로 이어가는 논리가 아베 신조의 주요 유세 레퍼토리였다. 자기 속내와 같은 세력이 선거 자금과 인력도 지원해주는데 당연히 그들 입맛에 맞는 정치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아베의 극우 태세전환은 뒷배를 봤을때 자연스러운 것이다.

4. 총평

21세기 일본 우익의 거물이었고 가장 영향력 있던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한국에서의 평가는 매우 나쁘지만, 일본 내에서는 좋은 평을 받는 총리 중 하나였다. 물론 개혁, 정책의 한계와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그의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가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물러났기 때문에 아베 신조는 이후에도 좋은 평을 받는 내각총리대신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아베 사후 자민당이 통일교와 깊은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아베 본인 또한 오래 전부터 통일교와 교류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에서도 평가가 급격히 추락했다. 사이비 종교와의 유착 관계가 그간의 모든 긍정적인 평가를 깎아먹을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평가.
[1] 올림픽 개최를 강행해놓고는 정작 아베는 올림픽 개회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2] 기시 노부스케전범 용의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A급. 물론 용의자이기에 확정지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