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3:54:19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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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오인 비행편 KE085 · DL1989
충돌 구 세계무역센터( 붕괴) · 펜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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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
American Airlines Flight 77
파일:external/gameabout.com/a3da5d6c8a038d3966ca5c95281c2743.jpg
<colbgcolor=#be0b04> 발생일 2001년 9월 11일 오전 09시 37분 46초
오후 22시 37분 46초(UTC+9)
발생 위치 아메리칸 항공 77편 기내
펜타곤
유형 하이재킹 / 자살 테러
인명피해 <colbgcolor=#be0b04> 사망 탑승객 59명[1] 전원 사망
펜타곤 상주자 125명 사망
부상 펜타곤 직원 106명
기종 보잉 757-223
항공사 아메리칸 항공
승무원 기장 찰스 벌링게임
부기장 데이비드 샤를부아 외 4명
기체
등록번호
N644AA
출발지
[[미국|]][[틀:국기|]][[틀:국기|]]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도착 예정지
[[미국|]][[틀:국기|]][[틀:국기|]]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파일:AA77before.jpg
사고 당일,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D26번 게이트에 주기되어 있는 사고기의 모습

1. 개요2. 사고기 정보3. 범행 계획4. 사건 전개
4.1. 탑승4.2. 지상 이동4.3. 이륙과 초기 순항4.4. 하이재킹4.5. 피해와 구조
5. 여파6. 기타

[clearfix]

1. 개요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은 9.11 테러의 일부로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펜타곤에 정면 충돌한 사건이다. 탑승자 59명과 납치범 5명, 그리고 미국 국방부 직원 125명을 포함한 총 189명이 사망했다.

2. 사고기 정보

테러에 연루된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기체 등록번호는 N644AA였으며 기종은 보잉 757-223이었다.

365번째로 생산된 보잉 757이었으며[2] 1991년 4월 25일에 최초 비행을 하였고 1991년 5월 8일에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되었다.

롤스로이스 plc 사의 RB211-535E4B 엔진 두 기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객실의 좌석은 1등석 22석, 일반석 166석을 합친 총 188석이었다.

테러 전까지 10년 간 총 33,432시간을 비행하였으며 11,789회의 이, 착륙을 하였다.

3. 범행 계획

파일:external/911review.org/nat_SUSPECTS_010928_aa77.jpg

왼쪽부터 칼리드 알 미흐다르, 마제트 모퀘드, 나와프 알 하즈미와 살렘 알 하즈미 형제, 하니 하뇨르

총 5명의 하이재커 중 리더격인 하니 하뇨르(هاني صالح حسن حنجور, Hani Saleh Hasan Hanjour)는 1972년생으로 하이재커들 중 유일한 파일럿 출신이다. 원래 꿈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항공사의 파일럿으로 취직하는 것이었으나 실패한 후 좌절하고 그 때부터 경전과 이슬람 과격파의 설교 테이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99년에 미국에서 FAA의 민항기 조종 자격증을 얻었고 테러 계획을 세우던 함부르크 그룹에 합류해 2000년 12월부터 승객들을 제압하는 역할을 맡을 나와프 알 하즈미(نواف محمد سالم الحازمي, Nawaf Muhammed Salim al-Hazmi)와 할리드 알 미흐다르(خالد محمد عبد الله المحضاري, Khalind Muhammad Abdullah al-Mihdhar)와 지내게 되었다. 하뇨르와 알 하즈미는 애리조나 비행 학교에서 비행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2001년 4월 마제트 모퀘드(ماجد مشعان موقد, Majed Mashaan Ghanem Moqed)가 합류했고 4명은 하뇨르와 나와프가 살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5월 21일을 마지막으로 나와프의 동생인 살렘 알 하즈미(سالم الحازمي, Salem al-Hazmi)가 합류했다. 여담으로 살렘은 9.11 테러에 합류한 최연소 테러범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유층이었고 교육 수준이 높은 지성적인 20대 중반의 젊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며 대부분 이슬람의 교리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숭배하는 살라프파의 추종자였다.

4. 사건 전개

4.1. 탑승

파일:external/www.koreadaily.com/20040721214126300-001.jpg

오전 7시 15분 테러범들은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납치범 5명 중 4명이 금속 탐지기에 걸렸지만 무사히 통과했다. 이후 공개된 공항 감시카메라의 영상을 보면 알 미드하르와 모퀘드가 먼저 걸렸으며 2차 검사과정에서 알 미드하르는 통과하지만 모퀘드는 2차에서도 알람이 계속 울려 몸수색을 받았으나 결국 통과받았다. 이후 합류한 하즈미 형제 역시 금속탐지기에 걸렸으며 나와프 알 하즈미의 뒷주머니에서 나이프가 발견되었지만 크기가 작아서 통과되었다.[3] 유일하게 별 문제 없이 통과한 것은 비행기 조종을 담당했던 하니 하뇨르였다.

오전 7시 20분 ~ 7시 40분경에 테러범들은 아메리칸 항공 77편에 탑승하였다. 이들이 가진 무기는 작은 나이프와 박스 커터였다. 하뇨르와 하즈미 형제는 일등석[4], 모퀘드와 알 미드하르는 이코노미석[5]에 따로 앉았다.

사건 당일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기장은 Charles Burlingame(찰스 벌링게임, 51세)[6]였으며 지상과의 교신을 담당했다. 부기장은 David Charlebois(데이비드 샤를레보스, 39세)였으며 비행기의 조종을 담당했다.[7]
파일:AA77victims.jpg
사고기에 탑승한 사람들이 탑승 직전 촬영한 사진. 당연한 말이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사망했다.[8]

4.2. 지상 이동

덜레스 공항의 교신 녹취록에 따르면 D26 게이트에 주기되어 있던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오후 8시 9분에 지상이동(Taxi) 허가를 받았고 8시 12분 29초에 덜레스 관제탑에게 "30번 활주로로 이동 중" 이라고 알렸다.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8시 16분에 다른 비행기의 착륙과 앞서 이륙한 DC-10기의 항적 난기류[9] 때문에 30번 활주로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4.3. 이륙과 초기 순항

덜레스 공항 관제탑은 8시 19분 20초에 아메리칸 항공 77편에게 30번 활주로에서의 이륙을 허가했다.
08시 19분 20초, LCW: American 77, your departure frequency will be 125.05, runway 30, cleared for takeoff.
덜레스 공항 서구 관제탑: 아메리칸 77편, 출발관제소 주파수는 125.05MHz입니다. 30번 활주로에서의 이륙을 허가합니다.'''
08시 19분 27초, AA77: 25.5, cleared for takeoff runway ah 30, American 77.
샤를 기장: 125.05MHz, 30번 활주로에서의 이륙 허가 승인, 알겠습니다.
블랙박스[10]에 따르면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8시 19분 38초에 엔진 출력이 가속되기 시작하고 동시에 활주로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8시 20분 5초에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이륙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58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 등 총 64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륙 직후인 8시 20분 43초에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출발센터로부터 5,000피트(1524m)로의 상승을 허가받았다.

8시 22분에는 11,000피트로(3352.8m)의 상승을 허가받고 잠시 후에는 린덴 지점으로의 비행을 허가받았다.

8시 23분 23초에는 덜레스 관제소로 관제가 이양되었고 덜레스 관제소는 17,000피트(5181.6m)로의 상승을 허가했다.

8시 25분 33초에는 워싱턴 관제소로 관제가 이양되었고 이후에도 계속 정상적으로 교신했다.

8시 31분 23초, 워싱턴 관제소는 AA77편에게 29,000피트(8839.2m)로의 상승을 허가한다. 샤를 기장은 이를 정상적으로 복창하였고 AA77편은 8시 33분 25초에 29,000피트로의 상승을 완료했다.

8시 40분 3초에 워싱턴 관제소는 AA77편의 관제를 인디애나폴리스 관제소에게 이양했다.

8시 43분 51초에 인디애나폴리스 관제소는 아메리칸 항공 77편에게 순항고도인 35,000피트(10668m)로의 상승을 허가했다. 기장은 8시 43분 55초에 이를 복창했다.

블랙박스 (FDR)에 따르면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8시 45분 49초에 지정된 순항고도인 35,000피트로의 상승을 완료했고 이때부터 약 850km/h의 속도로 순항하기 시작했다.

4.4. 하이재킹

테러 중 교신 내용

8시 50분 47초 인디애나폴리스 관제소는 아메리칸 항공 77편에게 "팔머스[11]로 비행하여 주십시오."라고 지시했다.

기장은 4초 후 이를 복창했다.
8시 50분 47초, HNN-R: American 77, cleared direct, ah, FALMOUTH.
8시 50분 51초, AA77: Ah direct FALMOUTH, American 77 thanks.
기장: 아, 팔머스로 비행,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메리칸 77편으로부터 들려온 마지막 통신이었다.

8시 51분경 테러범들은 납치를 시작했는데 나이프와 커터로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을 위협해 조종석을 장악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같은 날 납치당했던 아메리칸 항공 11편,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조종사들은 조종실 탈취 과정에서 납치범들에게 의해 칼 등으로 참혹하게 살해당한 반면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조종사들은 납치범들에게 살해당하지는 않았고 그냥 비행기의 객실로 쫓겨났다.[12]

조종 면허를 가졌던 하뇨르는 8시 54분에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주변에 있는 워싱턴 레이건 국제공항으로 항법장치의 목적지를 맞춰 놓고[13] 트랜스폰더를 껐다.

레이더 항적 자료와 블랙박스에 따르면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8시 54분 16초에 제멋대로 좌선회를 시작했으며 8시 56분 19초에는 트랜스폰더[14]가 꺼졌다. 이로써 레이더에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작은 점으로만 남게 되었다.

같은 시각 미국 연방항공청은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여타 납치당했던 두 대의 비행기들과 마찬가지로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고 경악에 빠졌다. 왜냐하면 10분 전인 8시 46분에 이미 세계무역센터 1번 빌딩에 납치당한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고[15] 아메리칸 항공 77편뿐만 아니라 납치당한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도 관제소의 지시에 응답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지정된 고도와 경로를 이탈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항공 측에서는 자신들의 비행기가 납치되었다고 판단하고 미국 내의 모든 비행기의 착륙을 요청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77편에 여러 번의 연결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16]
8시 56분 32초, HNN-R: American 77 Indy.
아메리칸 항공 77편, 여기는 인디애나폴리스 관제소입니다.
8시 58분 16초, HNN-R: American 77 Indy, radio check, how do you read?
아메리칸 77편, 무전 체크, 들립니까?
이때부터의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항적 중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블랙박스(비행기록장치 FDR)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힘.

납치범들에게 장악당한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9시 1분에 순항고도인 35,000피트(10668m)에서 하강을 시작했으며 9시 6분에 25,000피트(7620m)에 도달하여 잠깐 동안 해당 고도를 유지했다.

블랙박스에 따르면 9시 7분에 납치범들에 의해 부기장석[17]의 자동조종 장치[18]와 자동추력 조절장치[19], 비행지시계[20]가 모두 꺼졌다. 납치범들은 약 22,000피트(6705.6m) 상공에서 3분 동안 기체를 수동으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9시 8분 납치범들은 VOR 항법장치에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주변의 지점(주파수 113.5MHz)를 입력했다.[21]

9시 9분 아메리칸 77편이 레이더망을 벗어나 레이더에서 아예 사라졌다. 같은 시각 승무원과 승객들, 조종사들까지 비행기의 뒤쪽에 몰아넣어져 감시를 받고 있었다.[22] 이때 9시 11분경 승객들 몇 명(바바라 올슨 등)이 몰래 가족들에게 통화를 해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한편 납치범들은 9시 10분경에 기장석[23]의 오토파일럿을 잠깐 켰다가 끈 후 다시 켰다. 이후 오토스로틀과 기장석의 오토파일럿은 9시 28분경까지 켜져 있었다.[24]

9시 20분 15초,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보잉 757의 비행가능 한계 속도인 350노트(648.2km/h)를 초과한 354노트(655.6km/h)까지 가속되었다.

약 25,000피트~25,200피트(7620~7681m) 사이를 비행하던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9시 21분 27초에 25,250피트(7696.2m) 상공에서 하강하기 시작해 7분 후인 9시 28분 55초경에는 6,900피트(2103.1m)까지 하강했다. 비슷한 때에 납치범들이 오토파일럿을 껐으며 그때부터는 수동으로 기체를 직접 조종하기 시작했다.

9시 30분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던 아메리칸 77편이 다시 포착되었다. 관제사들은 처음에는 비행기의 급기동을 보고 전투기로 인식했다고 한다. 이때 이미 아메리칸 77편은 펜타곤을 향해 기수를 돌렸던 상태였다. (9시 32분경)

비행 면허가 있던 하니 하뇨르는 9시 33분경에 기체를 약 8500피트(2590.8m)까지 상승시킨 후 9시 34분에 급선회를 시작하는 등 곡예 비행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의 속력은 약 500~550km/h였다.

하니 하뇨르는 기체를 약 330도를 선회시키면서 강하하여 고도를 충분히 낮췄다.

한편 미확인 비행체를 레이더로 확인한 레이건 공항의 관제탑은 주(州) 공군의 록히드 C-130 허큘리스를 9시 35분경에 이륙시켜 미확인 비행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C-130에 탑승했던 스티븐 중위는 아메리칸 항공 77편을 눈으로 확인하고 리건 공항에 관제탑에게 "기종은 보잉 757이나 767 같고, 은색 동체인 것으로 보아 아메리칸 항공의 비행기 같다."고 알렸다.[25]

9시 37분 15초, 1500피트(457.2m) 상공에서 하뇨르는 비행기가 바로 펜타곤에 충돌하도록 조종한 후 엔진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26]

엔진의 팬 회전률(N1)은 98%~100%까지 올라갔으며 비행한계속도인 350노트(648.2km/h)를 초과함에 따라 9시 37분 23초경부터 조종실에서는 과속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27]

9시 37분 31초, GPWS의 "SINK RATE", " WHOOP WHOOP PULL UP" 경고가 작동하였다.[28]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충돌 직전 395 고속도로(2개)와 워싱턴 대로(3개)의 가로등 5개와 충돌해 5개의 가로등을 모두 뽑았으며 엔진이 가로등의 램프를 흡입했기 때문에 화재 (또는 불완전 연소)가 발생해 충돌 직전의 CCTV 영상에서 연기가 포착되었다.

오전 9시 37분 46초경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의 서쪽 면 1층과 2층 사이에 약 854km/h(530mile/h)의 속도로 충돌하고 말았다.

4.5. 피해와 구조

파일:external/1afd66235319de1c40b4c7a01e5d1e0d7014ed01be1b740b8ba6b695637ffaf1.jpg
파일:external/gameabout.com/a3da5d6c8a038d3966ca5c95281c2743.jpg

5명의 테러범을 포함한 64명의 탑승자들은 전원 사망했다. 펜타곤에서는 1층에서만 무려 사망자 92명[29], 2층에서 사망자가 31명씩이나 나왔으나 3층에서는 사망자가 2명밖에 없었고 4층과 5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전원 생존하였다.

펜타곤 사망자 125명 중 군인은 55명이었다. 비군인 사망자 75명 중 47명은 육군부 공무원, 6명은 육군부 계약직 직원이었으며 6명의 해군부 공무원과 3명의 해군부 계약직 직원이 사망하였다. 7명의 국방정보국 직원과 1명의 국방사무국 직원이 사망하였다. 군인은 해군 33명, 육군 22명의 장병이 사망했다.

군인 사망자 중 최선임자는 당시 미 육군 인사참모부장[30]이던 티모시 마우드 육군 중장이다. 적의 공격으로 인한 중장 계급의 사망자는 태평양 전쟁 당시에 오키나와 전투에서 적의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한 사이먼 버크너 장군에 이어 두 번째다.

아메리칸 77편에 탑승했다가 희생된 희생자들의 국적은 미국인이 4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중국인도 2명 탑승해 있었고 호주인, 에티오피아인, 영국인 사망자 각각 1명과 더불어 한국인 사망자도 1명[31] 있었다. 견학 차 캘리포니아로 가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직원 2명과 3명의 11살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탑승객 사망자 중에는 퇴역한 윌슨 플래그 해군 준장과 해군 법무관인 매리 래소퍼 중위도 있었는데 두 명 모두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9시 45분경 살수차량이 도착해 소화작업과 구조작업이 시작되었고 미국의 모든 방송국들이 펜타곤 테러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10시경 소방관들은 건물에서 이상한 큰 소리가 나는것을 듣게 되었고 펜타곤이 붕괴되고 있다고 판단해 대피하기 시작했다. 10시 10분경 펜타곤의 옥상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잠시 후인 10시 15분 2초에[32] 펜타곤의 피격된 부분은 결국 붕괴되었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의 구출은 사고 직후 30분 이내에 이루어졌고 그 후에는 화재와 건물 붕괴 때문에 생존자를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소방관들이 필사적으로 화재를 진압하려고 했으나 비행기의 엄청난 양의 항공유가 화재를 진압하는 데 어려움을 주었고[33] 설상가상으로 펜타곤은 194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화재를 진압하는 데 무려 33시간이 넘게 걸렸다. 결국 화재는 다음날인 9월 12일 오후에야 완전히 진압되었다.

9월 14일 새벽 3시 40분경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두 대의 블랙박스가 구조대원들과 소방관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FBI에 의해 회수되었다. 블랙박스는 NTSB(미국 교통안전위원회)의 분석실로 옮겨졌다.

이 화재 때문에 사고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대부분의 장치와 증거들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NTSB가 CVR, FDR 두 대의 블랙박스를 조사한 결과 조종실의 음성을 녹음하는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CVR)는 33시간의 걸친 화재로 인해 테이프가 완전히 녹아 버려 판독불능 판정을 받았다.[34] 하지만 다행히도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비행기록장치(FDR)는 분석실에서 성공적으로 판독되었다. 심각한 화재로 사망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납치범들을 포함한 189명의 사망자들 중 5명의 사망자들은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5. 여파

펜타곤의 충돌 구역은 이후 철거되었고 재건축되었다. 처음에는 복구에만 3년 정도 걸릴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예상보다 빠르게 1년만에 재건축이 완료되어 테러 1주기인 2002년 9월 11일에 재개방이 완료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비행기가 충돌했던 부분의 앞마당에 실내 기념관, 예배당과 사망자들의 출생년도에 따라 벤치를 건설했으며 2008년 9월 10일에 일반에 개방하였다.

사고 이후 여러 부서에 책임이 돌아갔는데 우선 5명의 하이재커 중 3명의 비자 부정발급이 문제가 되었다. 하니 하뇨르는 학생비자로 입국했으나 정작 학교에는 전혀 나가지 않았고 나머지 2명은 관광비자를 발급받았다가 학생비자로 변경해 체류기간을 연장했다. 9.11 테러를 계기로 미 연방정부는 외국 학생들을 추적할 수 있는 비자추적법을 만들어 대학 측에 외국 학생들을 관리할 것을 요청했다.

전술한 금속탐지기에 5명 중 4명이 적발되었으나 최종 탑승허가를 받은 것 역시 논란이 되었으며 9.11 테러 조사위는 테러범들이 항공절차의 취약점을 일부러 노린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6. 기타

  • 테러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가 근무 중이었지만 서쪽 면이 아닌 반대쪽에서 근무 중이었던 덕에 살아남았다. 이후 국방장관으로서 현장을 수습했는데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국방장관인 럼즈펠드까지 직접 들것을 들고 부상자와 시신을 옮기는 장면도 몇 번 등장했다.
  •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59명[35]의 희생자들과 펜타곤에서 근무하다 희생된 125명의 희생자들 등 184명의 이름도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추모공원의 South Pool[36]에 새겨져 있다.
  • 펜타곤에서 죽은 군인 중 최상급자인 티모시 머우드 중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건물이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 지어졌다.
  • 77편이 출발했던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D26번 보딩 브릿지에는 추모의 의미로 성조기가 올려져 있다.


[1] 하이재커 5명 제외 [2] 시리얼 번호: 24602/365 [3] 당시 4인치(10.16cm) 이하의 칼은 휴대가 가능했다. 9.11 테러 이후 이 법은 개정되어 현재는 휴대가 금지되었다. [4] 하뇨르는 제일 앞좌석인 1B 좌석, 하즈미 형제는 5E, 5F석 [5] 모퀘드와 알 미드하르는 12A와 12B석 [6]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였다. 테러 당일은 기장의 52번째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7] 이륙 후 부기장석의 오토파일럿이 켜진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8] 이들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후원하는 생태 여행을 가기 위해 77편에 탑승했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준 그웬 포크너(Gwen Faulkner)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 작가였고 불행 중 다행히도 사고기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후 그녀는 해당 사진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공개했고 테러로부터 18년 후인 2019년 문서 상단에 있는 77편의 마지막 사진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했다. # [9] Wake Turbulence, 비행하는 비행기에 뒤따르는 난기류 [10] 9.11 테러 당시 추락한 4대의 비행기의 블랙박스가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음모론과 미국 정부가 911 현장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해 놓고 블랙박스 자료를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이 있으나 이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AA11편과 UA175편의 블랙박스들의 회수는 실패했지만 AA77편과 UA93편의 블랙박스들은 모두 회수에 성공했고 정보의 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에 따라 AA77편과 UA93편의 FDR 원본 데이터와 UA93편의 CVR 음성 녹취록은 2006년에 공개되었다.(AA77편의 CVR은 펜타곤에서 화재로 인해 파괴됨) 다만 CVR 음성은 ICAO 규정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이는 다른 CVR 음성에도 같이 적용된다. ICAO는 CVR 음성파일을 각 사고조사당국에게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혹 유튜브에 블랙박스 음성이 돌아다니지만 이는 유출된 음성이거나 규정이 미비했던 당시에 공개된 것일 확률이 높다.)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두 대의 블랙박스인 FDR과 CVR은 모두 펜타곤에서 성공적으로 회수되었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CVR(조종실 음성 기록장치)은 고열로 인해 테이프가 녹는 등 완전히 파괴되어 데이터 추출이 불가능했고 항공기의 고도, 속도, 엔진 상태 등을 기록하는 비행정보 기록장치(FDR)도 화재와 고열로 심하게 그을린 상태로 발견되었으나 메모리칩은 멀쩡했기 때문에 NTSB에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에 따라 대략적인 항적도 밝혀질 수 있었다. [11] 웨이포인트 이름 [12] 승객 중 한 명인 바바라 올슨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승객들과 함께 조종사들도 객실 뒤쪽에 있다고 말했다. [13] VOR 주파수 111.0 MHz [14] 항공기의 편명, 식별번호, 고도, 속도 등을 발신해 주는 장치 [15] 다만 아직까지 이 시점에는 무슨 비행기인지 확인도 못 했다. CNN에서는 사건 초기에는 소형 비행기가 충돌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16] FAA/NTSB 관제교신 녹취록에 따르면 인디애나폴리스 관제소는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경로를 이탈한지 2분 후인 8시 56분 32초부터 9시 3분 6초까지 총 14회나 호출했으며 아메리칸 항공 본사 상담원과의 교신은 약 9시경에 시작되었다. [17] 오른쪽 좌석 [18] 오토파일럿 [19] 오토스로틀 [20] 플라이트 디렉터 [21] 덜레스 공항은 펜타곤과 매우 가까이 있다. 펜타곤과 가까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 펜타곤에 접근을 하는 데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납치범들은 펜타곤이 눈에 보이는 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 항법 장치를 켜 놓았다. [22] 5명의 납치범들은 조종인력 2명, 승객 제압인원 3명으로 조를 나누어 납치했다고 한다. [23] 왼쪽 좌석 [24] 조종실 음성 기록장치가 파괴되어 조종실 내의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조종 면허가 있던 하니 하뇨르가 기장석에 앉아서 조종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25] 스티븐 중위는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폭발도 목격하였다. [26] 블랙박스에 따르면 엔진 쓰로틀 레버는 최대출력인 132도까지 올라갔다. [27] CVR이 파괴되었지만 FDR이 "Overspeed" 경고음 정보를 기록하기 때문에 조종실에 해당 경고음이 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8] 이 역시 과속 경고음과 동일하게 FDR이 GPWS SINK RATE, PULL UP 경고음의 작동 여부를 알려주는 정보를 기록했던 덕에 알 수 있다. [29] 1층의 충돌 구역에 있던 근무자들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30] 대한민국의 육군인사사령관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계급도 중장으로 동일하다. [31] 보잉사 엔지니어 이동철이다. [32] 생중계 뉴스 기준시각 [33] NTSB의 연료량 계산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충돌 순간 연료탱크에는 약 20,570리터의 항공유가 실려 있었다. 이게 얼마나 많은 양이냐면 500ml짜리 일반 페트병 약 4만 1천개 분량이다. [34]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테이프 블랙박스는 1100도에서는 최소 30분, 200도의 온도에서는 최소 12시간 이상을 버텨야 했지만 이는 펜타곤에서의 화재에서 블랙박스를 지켜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35] 하이재커 5명 제외 [36]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제2동 건물이 있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