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0:58:19

시마쿠라 치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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しまくら ちよこ
島倉 千代子
시마쿠라 치요코 | Chiyoko Shimakura
파일:시마쿠라 치요코.jpg
출생 1938년 3월 30일
도쿄부 도쿄시 시나가와구
사망 2013년 11월 8일 (향년 75세)
도쿄도 메구로구 도쿄공제병원
학력 일본음악고등학교 (졸업)
활동기간 1954년 ~ 2013년
레이블 일본 컬럼비아
수훈 자수포장 ( 1999년 수훈)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주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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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가수이다.

2. 생애

도쿄부 도쿄시 시나가와구 기타시나가와에서 경찰관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 2남 4녀 중 사녀로 태어났다.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나가노현과 부모님의 친가가 있는 군마현 키류시 등지에서 2년 간 피난생활을 하다가 1947년 도쿄로 복귀하였다. 이 때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가창력이 좋았던 언니를 대신해 자신이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언니에 의해 성악을 배우고 근처에 있는 악단에 입단하여 아코디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보컬로 활동하였다.

시나가와구에서 열리는 노래자랑 대회에는 항상 자매들이 참가하였다. 1949년 동요곡을 처음 발매하여 데뷔작이 될 뻔했지만 레코드 회사 직원의 실수로 이름을 잘못 기재하여 안타깝게도 데뷔곡이 되진 못했다. 이후 1953년 일본음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각종 가요 콩쿠르에 참가하였고 1954년 콜럼비아 레코드가 주최한 '콜럼비아 전국 가요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전속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영화 'この世の花 (이 세상의 꽃)'의 주제가인 'この世の花 (이 세상의 꽃)'이라는 노래로 데뷔하여 반 년 만에 발매 200만 장을 달성하여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영화는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59년 '東京だョおっ母さん (도쿄예요 어머니)'가 150만 장을 달성하였고 그 해 처음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하였다.

1960년 미소라 히바리와 함께 듀엣곡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악성 팬이 던진 테이프에 눈이 맞아 실명 위기를 맞았다가 간신히 회복하고, 신원 미상의 인물에 의해 후원회 사무실에 폭발물이 배달되어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건, 아버지의 죽음, 세 아기 낙태, 어머니의 죽음 등 어려움과 위기가 계속되었고 또한 자신의 눈을 치료해준 안과 의사의 사기에 걸려 함부로 인감도장을 빌려줬다가 수 많은 사람들의 빚 보증을 떠안게 되었다.

또한 시마쿠라 치요코의 신임을 받고 어음배서를 시킨 안과 의사가 이번엔 사업 실패로 부도를 내어 시마쿠라는 무려 20억 엔이라는 빚을 떠안게 되었다. 미소라 히바리에게 "인감도장은 절대 빌려주어선 안된다"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시마쿠라는 사진집 발간과 전국 순회공연 등을 다니며 7년 동안 모은 돈으로 빚을 모두 갚았고 이 와중에도 시마쿠라의 인기는 시들어지지 않았다.

1987년 '人生いろいろ' (인생 여러가지)라는 노래를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지병인 만성 간염이 간암으로 악화되어 투병 생활을 하던 중에도 가수 활동은 꾸준히 하였지만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고 사망 이틀 전 입원하여 사무소 여성 스태프들의 간병 속에 2013년 11월 8일 도쿄 공제병원에서 잠들듯이 세상을 떠났다. 고향인 도쿄도 시나가와구 기타시나가와의 도카이지 (동해사) 묘지에 안장되었다. 도쿄 동해사

3. 주요 곡

愛のさざなみ (사랑의 잔물결)
この世の花 (이 세상의 꽃)
東京だよおっかさん (도쿄예요 어머니)
人生いろいろ (인생 여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