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0:12

스티븐 힐렌버그/생애

1. 개요2. 생애
2.1. 초창기2.2. 스폰지밥 제작2.3. 루게릭병 투병과 사망

1. 개요

스티븐 힐렌버그의 생애를 다룬 문서.

2. 생애

2.1. 초창기

1961년 오클라호마 주 로턴의 포트 실에서 태어났으며, 1살 때부터 캘리포니아 주 남부 애너하임에서 자랐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바다와 바다 생물에 관심이 많았었고 여러 바다 생물들을 양동이에 담아 친구들과 관찰하고 모양이나 움직임을 상세히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해양 탐험가 자크 쿠스토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고, 15세가 된 이후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면서 바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1]

Humboldt state 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했으며, 부전공으로 미술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해양 센터에서 3년간 해양생물학을 가르치고, 바다에 관련된 내용을 교육하면서 아이들이 바다에 어떻게 매혹 당하는지를 알았고,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 재학하며 애니메이션학을 전공하던 시절, The Intertidal Zone, The Green Beret, Wormholes 등의 만화나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리기도 했다. 1992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2.2. 스폰지밥 제작

졸업 후 니켈로디언에서 우당탕탕 로코와 친구들의 디렉터를 맡다가, 로코가 종영된 이후 자신의 경험 및 애니메이션 지식을 총 동원하고, 로코의 제작&성우진을 투입하여 1996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해, 1997년 파일럿으로 방영한 이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년 후인 1999년, 니켈로디언의 간판 작품이자, 자신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는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방영을 시작했다.

원래 처음부터 스폰지밥이 주인공이 아니었고, 이름도 스폰지밥이 아니라 밥 더 스폰지(Bob the Sponge)라는 엑스트라용 캐릭터였다. 그리고 만화책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서 주인공은 어느 벌레였다.[2] 하지만 나중에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주인공은 벌레가 아니라 밥 더 스폰지로 바뀌었고, 이때 이름은 스폰지보이(SpongeBoy)로 바뀌었다. 애니메이션의 제목도 스폰지보이 아호이!(SpongeBoy Ahoy!)가 될 예정이었지만 당시 스폰지보이라는 이름이 이미 다른 작품의 캐릭터에게 사용되었고, 어느 한 대걸레 회사의 상표 문제로 인해 최종적으로 캐릭터의 이름은 스폰지밥으로 바꾸며 애니메이션의 제목도 네모바지 스폰지밥으로 바뀌어 방영되게 된다.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책임 제작자를 맡았고 2004년 개봉한 극장판 네모바지 스폰지밥[3]을 마지막으로 스폰지밥 시리즈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니켈로디언이 계속 스폰지밥 시리즈를 이어가달라는 부탁에 그는 반대를 하였고, 서로 마찰을 겪다가 시즌 4부터 책임 제작자 자리를 제작 동료 중 가장 신뢰했던 스토리 작가 폴 티빗한테 넘기고 현장에서 은퇴를 했다.

그 후 2015년에 제작 중이던 스폰지밥의 두 번째 극장판 스폰지밥 3D[4]의 스토리 작가로 복귀하고, 시즌 9 중반부에서는 폴 티빗과 같이 공동 책임 제작자로 활동했다.[5]

2.3. 루게릭병 투병과 사망

2017년 3월 루게릭병 투병중[6]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같은 올드 시즌 제작진이었던 마크 오스본은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으나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또한 스폰지밥의 성우 톰 케니도 그의 일부가 건물을 떠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으니, 적어도 2015년 이전부터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힐렌버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데 이전까지 또박또박 빠르게 말하던 것과 달리 2015년 인터뷰에서는 말이 느려지고 발음도 전반적으로 어눌해진 것을 들을 수 있다.] 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병이 2017년 당시에 치료약도 없던지라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팬들에게 내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직접 알리고 싶었다"라고 성명서에 적으면서 "난 계속 스폰지밥을 만들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다른 모든 일에 열정을 쏟고 싶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소망이 무색하게 이듬해인 2018년 11월 26일,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투병 끝에 5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니켈로디언 공식 트위터 링크 이후 그의 유해는 화장하여 캘리포니아 해안에 뿌려졌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이었던 만큼 지상파나 케이블 뉴스, 주요 일간지 등에서도 그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는데, 미국 현지의 애니메이션 팬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특히 한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팬들은 2018년에 권희덕, 최흘, 김일/ 이시즈카 운쇼, 츠지타니 코지, 고토 테츠오 등 베테랑 성우들이나 사쿠라 모모코, 스탠 리, 타카하타 이사오 등의 만화가가 대거 세상을 떠나 슬픔에 잠겨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로써 2018년은 한미일 3국 애니메이션 업계가 여러 거장들을 잃은 안타까운 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였으며 같은 회사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부치 하트맨도 그를 추모하였다. 영상

그 뒤 스폰지밥 20주년 기념 에피소드인 스폰지밥 최고의 생일 마지막에 고마워요 스티븐 힐렌버그 (Thank you Steve Hillenburg)[7]가 나오며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 핑핑이 구출 대작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이 끝날 때 나왔다.


[1] 2009년 방한 당시 그에 관한 것들을 정리한 기사 [2] 이름은 닉 코리아 기준으로 가시. 나중에 이 벌레는 시즌 10 '벌레 파티' 에피소드에서 주연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3] 한국 영화 제목은 재능TV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쓴 '보글보글 스폰지밥'이고, 원판 제목은 'The SpongeBob SquarePants Movie'이다. [4] 원판 제목은 3D가 써있지 않고 'The SpongeBob Movie: Sponge Out of Water'란 이름으로 개봉했다. [5] 그래서인지 책임 제작자로 스티븐 힐렌버그가 표기되고 폴 티빗이 감독을 맡은 후 사라졌던 설정들이 부활하였고 시즌 1~3의 캐릭터들이 가끔씩 출연하는 등 예전 에피소드의 오마쥬 요소들을 볼 수 있다. [6] 미국의 연예 전문 매체인 쇼비즈 치트시트에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2017년 이전부터 이 병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2015년에 스폰지밥 3D 제작을 위해 다시 제작진으로 돌아왔을 때 동료들은 힐렌버그에게 [7] Steve Hillenburg라고 나왔지만 Steve는 Stephen의 애칭이기에 이렇게 써도 문제 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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