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22:18:38

마르틴 슈크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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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186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마렉 함식 138회 2007.2.7 2023.6.20
2 페테르 페카리크 132회 2006.12.10 2024.10.14
3 유라이 쿠츠카 112회 2008.11.19 2024.9.8
4 미로슬라우 카르한 107회 1995.9.6 2011.10.7
5 마르틴 슈크르텔 104회 2004.7.9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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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DAC 1904 두나이스카스트레다
FC DAC 1904 Dunaszerdahelyi labdarúgó klub
파일:마르틴슈크르텔.jpg
<colbgcolor=#f9c623,#191919><colcolor=#123063,#e5e5e5> 이름 마르틴 슈크르텔
Martin Škrtel
출생 1984년 12월 15일 ([age(1984-12-15)]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한들로바
국적
[[슬로바키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 체중 84kg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행정가
스카우트
소속 <colbgcolor=#f9c623,#191919><colcolor=#123063,#e5e5e5> 유스 FK 바니크 프리에비자 (1990~2001)
프로 FK AS 트렌친 (2001~2004)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4~2008)
리버풀 FC (2008~2016)
페네르바흐체 SK (2016~2019)
아탈란타 BC (2019)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2019~2021)
FC 스파르타크 트르나바 (2021~2022)
기타 FC 스파르타크 트르나바 (2023~2024 / 스카우트)
FC DAC 1904 두나이스카스트레다 (2024~ / 스포츠 디렉터)
국가대표 104경기 6골 ( 슬로바키아 / 200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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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슬로바키아의 전 축구 선수.

2. 클럽 경력

2001년에 슬로바키아 AS 트렌친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다. 2004년 러시아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하였다. 제니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UEFA 컵에서 에버튼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도 가졌다. 2007년에는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제니트가 우승하는데 기여하였다.

2.1. 리버풀 FC

2008년 1월 11일, 리버풀 FC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1000만 유로이며, 이는 리버풀 역사상 수비수로는 최고액이었다. 2007-08 시즌 리버풀 아게르가 부상으로 장기 결장하면서 수비 라인의 위험성이 커졌고,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 슈크르텔을 영입하는 것을 실행하였다. 이적 후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인터밀란 원정 경기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하였다.

2008-09 시즌에는 주전으로 자리잡아가던 2008년 10월에 상대 수비수와 경합 후 착지 과정에서 후방 십자인대를 다쳐 부상으로 아웃됐고 이후 회복과 재활, 복귀에 온전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9-10 시즌 개막전 토트넘 핫스퍼 FC 전에서 제이미 캐러거와 중앙 수비진을 구축하였는데 미스가 보이며 안정성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준수한 수비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리그 19경기, 모든 대회 29경기에 출전에 그친다.

2010-11 시즌에 감독으로 케니 달글리시가 부임한 뒤 안정된 수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고질병이었던 잦은 부상 문제를 이겨냈고 아게르 또는 캐러거와의 호흡 면에서도 물이 오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리그 전경기 38경기에 출전하며 2골을 넣었고, 주전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2011-12 시즌에는 안정된 수비력 외에도 칼링컵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공격에서도 활약하였다. 11-12시즌 리버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2012-13 시즌 초반에는 기량이 하락한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은퇴 직전이던 제이미 캐러거가 주전으로 대신 뛸 정도였다. 최후방부터 빌드업을 중시하는 로저스 감독의 축구 하에서 스크르텔은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게다가 시즌 중에 브렌던 로저스 감독과 불화설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2013년 여름 이적설도 있었지만 일단 리버풀에 남았다.

그리고 2013-14 시즌, 시즌이 진행될수록 간혹 예능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2012-13 시즌보다 안정된 수비능력을 보여준다. 공격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무려 리그에서만 7골을 넣으며 팀의 득점원으로 활약했다. 수비력은 덤 하지만 37라운드 경기에서 팀은 막판 16분 정도 남겨두고 3-0에서 3-3으로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비겨버렸고 슈크르텔도 이 경기에서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 경기를 통해 리버풀의 자력 우승 가능성이 날아가버렸고 카메라에 펑펑 우는 수아레스와 완전히 멘붕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슈크르텔이 수 초동안 클로즈업 되었다.[1]

2014-15 시즌에는 그 자신이 벽으로 각성하여 리버풀 부동의 주전 센터백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지만 심심하면 실수를 범하는 로브렌과 불안정한 사코를 떠받치는 역할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시즌 12월의 아스날전에서는 지루의 스터드에 머리를 밟혔음에도 불구하고 붕대 투혼을 보여주면서 96분에 극장 헤딩골을 기록하여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

다행히 15-16부터는 사코가 국대사코모드가 되고 루카스가 현재 루카신모드로 EPL태클개수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내면서 슈크르텔의 부담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11월 말을 기점으로 부상을 당한 사코대신 센터백 듀오로 출전중인 데얀 로브렌까지 매경기 각성중이다. 그러나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6주 부상이 결정되었으며 잘 하던 로브렌 마저 1달 부상 확정이 되어 센터백이 콜로 투레 마마두 사코 밖에 없는 매우 무서운 상황이 전개 되었으나, 로브렌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하였고 사코와 로브렌의 괜찮은 파트너십을 이루면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가오는 15-16 여름 이적시장 분데스리가에서 손 꼽히는 센터백인 조엘 마티프의 합류가 확정되며 팀의 베테랑인 슈크르텔이지만 합류하는 마티프, 각성한 로브렌, 폼이 다시 올라오는 중인 사코와 함께 주전경쟁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부상복귀 이후 첫 경기인 소튼과의 경기에서 눈이 썩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애초에 로브렌과의 갑작스러운 교체로 몸상태가 풀로 올라온 상태는 아니었겠지만, 패스성공률 67%, 태클 성공 0회, 경고 1회, PK 허용까지 실망스러운 폼을 자랑하며 소튼전 충격과 치욕의 역전패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A매치 기간에는 슬로바키아 국가대표로 나섰지만 또 다시 페널티킥을 허용했으며 주전들의 휴식으로 오랜만에 리그 선발로 나선 스토크전에서는 슈크르텔이 범한 파울이 프리킥으로 이어졌고 이를 보얀이 헤딩슛으로 마무리하며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나마 팀이 대승을 해서 묻혔지만 파이터형 수비수로서 기량이 하락하긴 한 모양.

그래도 리그 36라운드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2.2. 페네르바흐체 SK

시즌이 끝난 2016년 여름, 터키 베식타스와 진하게 연결되고 있다. 리버풀과의 이별이 눈 앞으로 다가온 듯 하다. 팀의 암흑기에 고생 왕창하고 이제 클롭이 와 빛을 보기 시작하는데 나이로 인한 기량 하락으로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하지만 6월 말에는 당초 예상과 달리 페네르바흐체 SK의 이적이 확실히 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클롭을 욕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이후에 그것은 친구가 한 장난이었고 자신의 의견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이적 오피셜이 떴다. 또 하나의 준레전드급 선수가 떠난 빈 자리는 제법 허전할 듯하다.

3시즌간 페네르바흐체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2019년 8월 10일, 아탈란타 BC로 FA 이적이 오피셜로 떴다. 그러나 9월 1일, 이탈리아 언론 '투토 메르카테'와 '라 가제타 델레 스포르트' 등에 따르면 아탈란타 입단 3주만에 상호계약 해지 오피셜이 떴다. 이유는 가스페리니 감독의 훈련을 못따라가는 몸상태 때문이다.

2.3.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2019년 9월 2일, 이스탄불로 이적했다. 그는 2019-20 시즌 20경기에 나서 3골을 기록하며 팀의 창단 이후 쉬페르리그 첫 우승을 거머쥐는데 기여했다.

2021년 1월, 슈크르텔은 12월에 입은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으로 인해 계약기간이 6개월이 남았음에도 팀과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조기해지했다.

2.4. FC 스파르타크 트르나바

파일:13082021_skrtel_spartak_2803676.jpg

2021년 8월, 그는 스파르타크 트르나바에 입단하면서 17년만에 자국으로 복귀했다.

2022년 5월 18일,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리버풀의 후방을 든든히 지켜줬던 수비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슬로바키아 청소년 팀부터 발탁되기 시작하여, 2004년 A대표팀에도 부름을 받았다. 슈크르텔은 2010년 슬로바키아 대표팀에 선발되어 분리 독립 후 처음 대표팀 선수로 나서게 되었다.

3.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 남아공 월드컵때 등번호는 3번. 1무 1패의 절체절명의 상황[2] 에서 치른 이탈리아전에서 그 콸리아렐라의 슈팅을 골라인 위에서 무릎으로 막아내는 명장면[3]을 연출한 끝에 팀의 3대 2 승리와 분리독립 후 사상 첫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4]를 이뤄냈다.

3.2. UEFA 유로 2016

UEFA 유로 2016에선 주장으로서 슬로바키아의 16강행에 기여했다.

골 넣 는수비수 치고는 국제대회 골이 없었는데 본인도 골을 넣고 싶었는지 웨일스전때 상대팀 골대까지 달려가서 헤딩슛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골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잉글랜드전에서는 거의 골이나 마찬가지였던 슛을 막아내는 등 철벽수비를 보이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3.3. 이후

2018년 10월 13일, 홈에서 열린 체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A매치 100경기를 달성했고 센추리 클럽 가입자가 되었다.

2019년 2월 22일, 슈크르텔은 34세의 나이로 대표팀 수비수인 토마시 후보찬과 공격수 아담 네메크와 함께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 셋은 10월 13일 파라과이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고별 경기를 가졌다.[5] 이 경기에서 그는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나섰으며 30분 후에 그를 우상으로 여긴 데니스 바브로와 교체되었다.

4. 행정가 경력

4.1. FC DAC 1904 두나이스카스트레다

2024년 9월 19일, FC DAC 1904 두나이스카스트레다의 스포츠 디렉터를 맡게 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강력한 피지컬과 거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몰아 붙이는 전형적인 파이터형 센터백. 제공권을 따내는데도 능했는데,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의 머리는 리버풀의 주요한 공격 무기 중 하나였다. 다만 발이 느리고 경기마다 기복이 있어, 거친 수비만큼 큼지막한 잔실수들을 간혹 저질렀고 또한 자책골을 자주 넣기까지 했다. 그리고 잔부상도 꽤 있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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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L 역대 자책골 2위에 달성하는 기록을 얻었다.
  • 루이스 수아레스가 리버풀에 처음 정착했을 때 다니엘 아게르와 함께 수아레스가 초반에 경계했던 선수였다고 한다. 슈크르텔에게 훈련을 살살 하자고 했다가 실수로 알까기 기술을 쓰는 바람에 그 뒤로 슈크르텔이 제대로 상대해줬다고 한다. 이때 슈크르텔의 반응은 “살살 하자며? 진짜로 해보자 이거지?”
  • 일명 아게르텔 조합으로 환상적인 호흡을 보였던 다니엘 아게르와는 동갑내기이면서 실제로도 꽤 친하게 지냈다. 특히 똑같이 문신 덕후라는 점 때문에 더욱 친해진 듯. 슈크르텔의 문신도 아게르가 해주었다고 한다.
  • 자국 후배 밀란 슈크리니아르가 등번호 37번을 다는 이유가 바로 슈크르텔 때문이라고 한다.
  • 탈모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리버풀을 떠난 후 머리를 길러 패션 대머리였음을 증명했다.

7.1. 징크스

슈크르텔이 선제골을 넣으면 팀은 역전패를 당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2010-11 시즌 토트넘 원정에서부터 시작된 징크스 때문에 콥들은 슈크르텔이 선제골을 넣으면 좋아하기는커녕 겁부터 났는데, 2013-14 시즌부터 이러한 징크스를 깨는 경기들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극복한 모습이다.


[1] 이 때 정말 심하게 멘붕했었는지 몇몇 팰리스 선수들이 슈크르텔에게 위로를 전하고 리버풀 선수들 몇 명도 슈크르텔에게 말을 걸었지만 슈크르텔은 반응 없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2] 가장 만만하다 여겨졌던 뉴질랜드를 상대로 이길 뻔했으나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허용해 1대 1 무승부. 그리고 파라과이전에서는 아예 0대 2로 져버려 조 최하위로 굴러떨어졌다. 그 때 남아있던 경기가 디펜딩 챔피언인 이탈리아와의 경기였던 것. [3] 사실은 골라인을 넘어갔으나 VAR은 커녕 골라인 판독기도 없었던 탓에 그래도 득점이 인정이 되지 않았다. 단, 이와는 별개로 상대팀의 강력한 슈팅을 육탄 방어로 저지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의미가 있었다. [4] 이는 똑같이 분리독립한 체코도 이뤄내지 못한 업적이다. [5] 다만 후보찬은 대표팀이 UEFA 유로 2020에 진출하게 되면서 복귀했고 본선에 주전으로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