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10:13:35

송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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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3. 저서4. 참여 작품5. 평가6. 논란
6.1. 미야자키 하야오 비난6.2. 호소다 마모루 강판설6.3. 파이브 스타 스토리 저작권 분쟁설

1. 개요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이자 평론가.

2. 일생

어린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였으며 배재중학교 2학년때 '한국 NewType'이라는 애니메이션 동아리를 창설(실제로는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같이 동의해 만들고 3학년 때 본인이 당일날 뉴타입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이름에 벙찜)한 바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장에 어떤 날에 어떤 애니메이션을 틀었는지 정보와 감상을 적었다고 한다. 이 분야에서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자료를 가지고 있다. [1]

성인이 된 뒤 잠시 영화계로 외도했다가 본직으로 돌아와서 서울무비, 플러스원 애니메이션, 새롬 애니메이션, 한호흥업 등지에서 <요정 크리스타>등의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을 맡다가, 1995년에 이현세의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 아마게돈>의 제작 PD로 참여한 바 있었다. 또 1998년에 투니버스에서 방영하였던 은하철도 999 극장판 더빙 연출도 한 바 있다.

이후 투니버스에서 ' 스튜디오 붐붐'의 MC로 활동했으며, 1999년에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국 만화영화 40년사>로 대한민국 케이블TV 최우수 프로그램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써드아이 편집부에서 일하다가 최근엔 애니나 영화 리뷰를 중심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기고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유튜브 <GO다쿠> 기획 프로듀서를 맡았다.

마츠모토 레이지, 린 타로, 데자키 오사무의 팬으로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린 타로와 데자키 오사무 애니메이션은 송락현의 주도로 현지화 되거나 방영이 성사된 작품이 많다. 반면 미야자키 하야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에 대해선 그렇게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3. 저서

  • 송락현의 애니스쿨(전 2권) - 서울문화사(1997)
    1994~1998년경까지 윙크에 연재한 칼럼 등을 단행본으로 묶었다.
  • 애니메이션 시크리트 파일(황의웅 등 나머지 14인과 공저) - 시공사(2001)
  • 미야자키 하야오론 : 마음을 비워주는 영화이야기(감수) - 써드아이(2002)
  • 만화가의 길 :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의 자서전( 데즈카 오사무 글)(감수) - 황금가지(2002)
  • 일본 극장 아니메 50년사 - 본프리 스튜디오(2003)[2]
    2001년 1월호부터 2002년 1월호까지 <한국판 뉴타입>에 연재한 것 등을 묶은 도서.
  • PROFESSIONAL ANIMATOR'S KNOWHOW 13(기획) - 써드아이(2003)
  • 정욱과 대원( 이원복, 박석환 등과 함께 공저) - 브레인스토어(2015)

4. 참여 작품

5. 평가

1990년대에는 국내외 애니나 만화에 대하여 전문가로서 이러한 정보를 잡지에 연재하거나 PC통신에 기고해 책을 내기도 했으며, 본인이 애니 제작현장에 오래 몸담았던 터라 한국 애니계가 처한 문제점 등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다만 당대 자료 접근경로가 미비했던 특성상 잘못된 정보가 나오기도 하는데, 사실 비단 송락현만이 아니라 만화평론가 박인하 교수(<아니메가 보고싶다>라든지 여러 애니 관련 책자도 썼었다.)라든지, 김준양(월간 키노에 애니 관련 기사 기재) 등 90년대에 활동하던 애니메이션 평론가들이 쓰던 글이 나중에 제법 틀린 정보가 송락현처럼 포착되기도 한다.[3]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고 지금도 애니 관련 책자를 내는 황선길 교수 같은 경우 MBC 외화 더빙 PD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석사 보유자에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초대교장,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우대겸임교수 같은 직책을 가진 사람인데 아수라 남작을 아이들이 보기에 나쁘다느니 일본 로봇애니를 당대 기성세대의 보수적 문화관으로 비난하는 글을 책(1998년 범우사, 애니메이션영화사)에 쓰기도 했다. 또 90년 초반에 <PC매니아>나 게임챔프지에 정기적으로 애니 관련 정보나 리뷰를 쓰던 박병호같은 경우도 그런 경우. 이 양반은 그런 리뷰집을 모아 책으로 내다 팔기도 했다... 일본 애니 줄거리 및 장면 캡쳐들에 대한 저작권비는 당연히 안내고....

덤으로 폐기물 13호 애니메이션에 나온 괴물을 한국영화 괴물이 이걸 표절한 것 같다고 블로그로 올렸다가 비난을 받자 스스로 지우고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고 서술되었지만 당시 블로그에서 송락현은 두 이미지를 올려 견줘보면서 "비슷해보이긴 한다. 표절은 글쎄?" 라는 의견을 보였기에 무조건 표절 운운거린 건 아니었다.

이 당시 자료들이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은 당시 일본 문화개방 전이라 영상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원작을 보기가 힘들었고, LD 등 영상 자료는 회현상가, 청계천 같은 데서 구하거나 설정집 같은 일본에서 나온 서적류를 읽고나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나오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설정집이나 잡지 같은 건 돈만 벌려고 원작 제작진하고 제대로 컨펌도 안 하고 출판사 편집부에서 막 쓰는 자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류 덩어리였다. 그런 걸 자료로 삼으니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송락현도 그런 자료의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송락현이 범한 오류 중 몇 가지를 보면 본인의 개인적인 왜곡이 아닌가에 대한 의혹도 일부있다. 특히 마츠모토 레이지의 치부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그를 맹목적으로 띄운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가를 깎아내린 것 등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혹이 있다. 실제로 당시 꽤 공신력이 있던 송락현 씨의 영향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에서의 입지에 비해 한국에서는 저평가를 받았다.

6. 논란

6.1. 미야자키 하야오 비난

이현세 원작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의 제작PD 시절 이런 글을 썼다. 한동안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종차별주의자다. 한국인을 싫어한다고 떠돌던 헛소문의 근거가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망언이 일본과 세계시장에서까지 인정받는 미야자키지만 그의 개인적인 인간성은 자격미달이라는 여론이 일본을 제외한 주변부 국가에서 일고 있다. 그의 인종 차별 주의 정신 이 비판의 대상으로 도마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야자키 자신이 지나칠 정도로 일본인으로서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 일본 우월주의 사상이 어떤한 형태로 작품에 묻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그리고 커다란 나무를 주 배경으로 펼쳐지는 꿈과 모험의 환상적인 장면들 이처럼 그의 작품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전하고 유익한 내용과 주제가 조감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들의 내면에는 면면히 흐르는 미야자키만의 사상이 알게 모르게 영글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그의 흑인에 대한 비뚤어진 선입견을 들 수 있는데 그가 창조해낸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백인을 동양화시킨 햐얀 피부의 케릭터로 거의 일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엄연히 세계인구의 1/3가량을 차지하는 흑인에 대해서는 조연은 물론 지나가는 단역으로도 한번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인색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경악스러운 것은 이점에 대해서 미야자키는 "흑인이 나오면 화면을 버리니까"라는 대답으로 문제를 일축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효과적인 색채관리를 위한 세심한 노력으로 해석 할 수도 있겠지만 미야자키의 이러한 측면은 그가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그의 작품관을 살펴볼때 대단히 모순된 넌센스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소년 코난의 하이하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계곡 천공의 성 라퓨타의 슬라후다 계곡등은 모두 인간미가 넘치는 이상향의 공동사회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성이 최우선으로 존중되는 공동체 사회의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의 감독을 맡은이가 특정인종에 대하여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쉽게 간과해 버릴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미야자키는 그가 흑인에게 느끼고 있는 편견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릇된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9년 여름 천공의 성 라퓨타와 이웃집 토토로의 미국상륙 기념으로 일본의 비디오 애니메이션 전문잡지 ANIME-V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아울러 특히 한국인들을 싫어한다고 말한바 있다.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미야자키는 한국인에 대해서 좋지 못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그는 한국에 애니메이션 하청을 전혀 맡기지 않는 몇 안되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물론 감독의 인간성이야 어떻든 간에 작품만 좋으면 그만이다 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줄 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 좀더 비판적인 시각을 길러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이 이루어지면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경우 단연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작품이 수입 0순위의 작품으로 부각될 것이다. 만일 그때까지도 우리나라의 관객들 수준이 지금처럼 감독의 유명세에만 현혹당해 수박 겉핥기 식의 감상으로 만족해 한다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미야자키가 한국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나라를 얕잡아 볼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명확한 증거도 없다. 즉. 신빙성없는 카더라 이야기이다.

게다가 붉은 돼지에 나온 주인공 포르코가 맘마 유토단을 공격하며 가져간 약탈품 절반이라도 줄테니 순순히 아이들을 내놓고 항복하라고 하던 걸 보고 멋대로 송락현은 같이 반씩 나누자고 하며 미야자키가 무정부적이며 도적이나 다를 거 없음을 미화한다라고 억지에 찬 비난을 했다. 애니를 봤더라면 현상금 사냥꾼으로 번 돈으로 떳떳하게 살며 난 자유로운 돼지라고 하는 포르코가 도적질하고 그걸 이렇게 자뻑하지 않음에도. 그가 이런 글을 쓸때만 해도 합법적으로 이 애니를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 멋대로 왜곡했다.

그리고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 당시 납기를 맞추지 못해 지브리에서만 작업한다는 원칙을 깨고 하청을 맡겼는데 그 하청을 받은 제작사가 바로 국내에서 당시 높은 수준의 제작능력을 인정받았던 DRMOVIE다. 그는 심지어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작에 함여한 DRMOVIE 직원들을 초청해 별도의 시사회를 가질 정도로 한국의 스텝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시했는데 만약 그가 한국인을 그렇게나 싫어했다면 하청은 몰라도 시사회까지 개최하진 않았을 것이다.

6.2. 호소다 마모루 강판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제작중에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직에서 강판된 것은 고양이의 보은이 개봉하기 3개월 전의 일이다. 즉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

그리고 호소다 마모루의 감독 강판의 이유는 아직까지 그 속사정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호소다 마모루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죽은 후에는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작품의 프로듀서였고 호소다 마모를 감독직에서 봉판한 당사자 스즈키 토시오도 스튜디오 지브리의 속사정과 뒷담화를 즐겨 말하던 이 사람도 이 작품의 제작 속사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감독 강판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애니메이션) 10.1. 감독 강판 항목을 참조
(전략)
그런데 < 고양이의 은혜 갚기>가 2002년 일본 애니메이션계 최대의 뉴스가 된 것은 이같은 흥행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역대 흥행수입 2위의 기록보다 더 중대한 긴급조치가 이 작품의 상영 종료와 함께 취해졌다는 것이 문제다.

본래 이 작품은 < 귀를 기울이면>의 감독이었던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이루지 못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2세 발굴 의지에 의해 기획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지명했다는 신예 모리타 히로유키가 감독으로 초용 되었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1999년도 작품 <이웃의 야마다군>에서 기량을 발휘했던 그는, 콘도 요시후미를 대신할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낙점 받으며 착실히 때를 기다려 온 기대주였고 마침내 <고양이의 은혜 갚기>에서 이같은 지브리 가족의 기대에 부응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토쿠마 서점의 설립자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토쿠마 야스요시(德間康快)의 부재였다.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최상의 제작여건을 마련해 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가 2000년 9월 20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토쿠마 서점의 후임 사장으로 취임한 마쯔시타 타케요시(松下武義)는 어처구니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된다.

토쿠마 前 사장에 의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다이에(大映) 영화사를 라이벌 카도카와(角川) 서점에 매각해 버리는 한편, <고양이의 은혜 갚기>의 흥행수입 64억 6천만 엔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작품의 후속으로 진행 중이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2004년 개봉 예정)>의 감독을 전격 해임한 것이다.

본래는 <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스튜디오 지브리 2세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토에이 동화에서 <디지몬 어드벤처>의 감독 호소다 마모루(細田守)를 스카우트해 와서 맡긴 작품이었다. 하지만 신인 감독에게 맡겼던 <고양이의 은혜 갚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비해(!) 현격히 흥행수입이 모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차기작을 제작중인 감독을 해고하고 다시금 미야자키 하야오를 감독으로 기용하는 안전보험을 택한 것이다. (후략)
중앙일보 송락현의 시크리트 파일 2003.2.27

6.3. 파이브 스타 스토리 저작권 분쟁설

슬로우 뉴스에 나가노 마모루 파이브 스타 스토리 중전기 엘가임과의 저작권 분쟁으로 모터헤드 디자인이 변경되었다는 글을 기고하였는데( 상편 하편), 나가노 마모루가 본인의 트위터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였다. 관련링크

나가노의 해명으로는 자신이 옛날 디자인에 질려서 작품을 이어나갈 동기를 잃었기 때문에 독자를 잃을 각오를 하고 싹 바꿨을 뿐이라고 한다. 뉴타입 전 편집장 또한 "엘가임의 저작권 소유자 토미노 요시유키가 나가노에게 저작권을 주어서 연재를 시작한 것이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라고 해명하였다.
[1] 1980년대만 해도 거대로봇물은 지상파 방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 이외의 장르의 애니메이션은 꽤 많이 틀어줬다. 특히 명절에는 특집으로 꽤 하드한 내용의 OVA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기도 했다. [2] 일본영화계에서는 2000년부터는 배급수익(총 극장 흥행수입에서 극장의 배급 몫을 뺀 실질적인 수익)에서 흥행수익(극장에 들어온 관객들이 지불한 실질 수익)으로 흥행 판단 기준을 바꿨는데, 송락현은 그것을 모르고 일본의 신흥종교 행복의 과학 단체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흥행수익이 기존의 배급수익보다 높은 것을 보고, 책에서 이 영화에 대해 엄청나게 흥행을 했다고 뇌피셜 엉터리 망상을 펼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지금 보면 엉터리 정보 오류가 범벅이다. [3]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이전 한국은 세계 문화산업의 변방 중의 변방이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서 1990년대까지 공통적으로 일어나던 현상이다. 어느 정도는 시대의 한계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