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873C0 0%, #3797E8 20%, #3797E8 80%, #1873C0);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3797E8> 추존 존령 | ||
광릉부군 | 태중부군 | 회음부군 | |
즉구부군 | 태상부군 | ||
<rowcolor=#3797E8> 추존 황제 | |||
선제 | 경제 | 문제 | |
<rowcolor=#3797E8> 비정통 황제 | |||
파양왕 | |||
}}}}}}}}} |
<colbgcolor=#3797E8><colcolor=#ece5b6> 남제 추존 존령
소악자 | 蕭樂子 |
|
묘호 | 없음 |
시호 | 태상부군(太常府君) |
성 | 소(蕭) |
휘 | 악자(樂子) |
자 | 규자(閨子) |
부친 | 제음부군(濟陰府君) |
생몰 | ? ~ ? |
[clearfix]
1. 개요
소악자(蕭樂子, 생몰년 미상)의 자는 규자(閨子)였으며, 동해군(東海郡) 난릉현(蘭陵縣) 중도향(中都鄕) 중도리(中都里) 출신으로 동진의 관료였다. 남제를 세운 고제 소도성의 조부였고, 선제로 추존된 소승지의 부친이었다.2. 생애
소악자의 조부였던 소할과 부친 소준은 영가의 난이 일어나자 강을 건너 진릉군(晉陵郡) 무진현(武進縣) 동성리(東城里)로 이주했다. 이후 강을 기점으로 본토인이 강의 반대편, 난릉 소씨 가문을 비롯한 이주인이 본토에 정착하여 남난릉군(南蘭陵郡)이 되었다. 이후 소악자는 동진의 보국장군부참군(補國將君府參軍)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소승지는 유송의 우장군(右將軍)을 지냈다.478년 송순제에 의해 태상(太常)으로 추증되었고, 479년 손자 소도성이 남제를 건국하자 '태상부군'(太常府君)으로 추존되어 칠묘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502년 제화제가 소연에게 양위하여 남제가 멸망하자 태상부군의 묘역은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