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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백화점)

そごう(SOGO)

1. 개요2. 역사3. 해외 점포4. 참고 링크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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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때 존재했던 일본의 백화점 브랜드. 거품 경제 시대에는 호화로움의 끝을 달리는 경영으로 유명했으나, 거품 붕괴 이후 무리한 부실경영으로 인해 많은 점포가 쓸려나갔고 오사카 본점까지 매각하여 브랜드만 겨우 남은 백화점. 모든 학자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 허생전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

2. 역사

1830년 소고 이베(十合伊兵衛)가 창업한 헌옷 가게 '야마토야'(大和屋)를 전신으로 하여 1919년에 정식으로 오사카 본점을 열었다. 옛 독자법인 시대만 따져도 170년에 달하는 노포이다. 회사명은 창업자의 성씨에서 유래했다. 2차대전 직후까지는 한자로 된 '十合'을 사용했으나 1969년부터 지금의 히라가나 표기로 바꾸었다. 모래시계처럼 생긴 백화점 로고는 창업자인 소고 가문의 문장으로 '지키리'(ちきり)[1]라 부른다.

소고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오사카, 고베, 도쿄에 3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던 비교적 작은 백화점이었다. 일본흥업은행에서 근무했던 은행원이자 민법학자(특히 담보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자)였던 미즈시마 히로오(水島廣雄, 1912~2014)가 CEO로 취임한 후[2] 1967년 치바점[3]을 개업하면서 공격적인 점포 확장을 벌이게 되는데, 한때는 그 위세가 강력해 도호쿠를 제외한 일본 전역은 말할 것도 없고 홍콩, 대만[4], 동남아시아[5], 런던, 바르셀로나, 뉴욕 등 해외에도 지점이 있을 정도여서 1991년에는 일본 최대 백화점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다. 전성기에는 국내외 합해 40여개의 점포가 있었다고 한다.[6][7]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에는 진출하지 않은 것을 넘어 진출 계획도 없었다.[8]


1990년대에 촬영된 소고 백화점 내부.

백화점도 호화스럽게 지었는데, 대표적으로 몇몇 점포에 설치된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후원해준 인형이 튀어나오는 시계[9][10]라던지, 식당가엔 강이 흐르거나 인공폭포, 또는 회전 레스토랑을 설치하고, 그외에도 문이 열리고 닫힐 때 새소리가 나는 금색으로 된 엘리베이터, 불빛이 들어오는 에스컬레이터, 특히 지점별로 고유한 형태의 샹들리에로 상징되는 심볼 존 설치[11] 등등 거품의 끝을 보여줬다. 심지어 버블경제 이전 70년대 후반부터 호화 전략을 택했다.[12]

소고 매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매장은 590억 엔을 들여 2년 동안 건설해 1985년 9월 개점된 요코하마점으로, 총 13층[13], 연면적 185,170㎡에 매장 면적만 81,311㎡(약 24,600평)[14][15]의 엄청난 넓이로 당대 아시아 최대 백화점이었다.[16]

그러나 소고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무리한 대출이었다. 땅값 상승을 기대하고 땅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돈을 빌렸기 때문. 게다가 '1점포 1회사'(처음부터 경영하고 있었던 오사카, 고베, 도쿄점은 주식회사 소고에서 일괄 관리)라는 경영 체제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이 체제는 모회사인 주식회사 소고, 그 외 주주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신규 점포를 관리하는 법인을 세우고 새로 세워진 법인들이 그 과정을 반복하는 체제였다.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순환출자 체계로, 이 체계 하에서는 이익은 본사인 주식회사 소고로 가고 세금은 자회사에 분산되게 된다.

미즈시마 본인과 회사는 소고가 영원히 흥할 거라고 믿어 점포망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고베점이 피해를 입으면서 망조의 조짐이 보이더니, 결국 2000년 7월 일본 소매업 사상 최대의 부채총액(1조 8,700억 엔)과 함께 민사재생법에 따른 파산구제를 신청했다.[17] 그리고 이렇게 생긴 불량채권 문제는 일본 경제의 뇌관으로 남았다.[18]

회생절차를 밟는 동안 소고는 일본 내의 많은 점포를 닫아야 했고, 해외 점포는 전부 현지 자본에게 매각했으며 창업지였던 오사카에 있던 오사카 본점(2005년 리모델링 후 재개점)는 한때 경쟁자였던 다이마루에 팔아야 했다.[19]

2005년 세븐&아이 홀딩스이 인수했고 세이부 백화점과 한 가족이 되었다가 2023년 9월 미국계 투자 펀드로 매각했다.

한편 미즈시마는 은행에 압류된 예금에서 1억 엔을 인출한 혐의로 2001년 체포된 후 2006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굴욕을 겪었고, 세타가야구에 있던 호화저택[20]도 팔아치우고 도쿄의 마천루 세이루카 가든의 고급 저택으로 이사해 살다가 2014년 7월 28일 향년 102세를 일기로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미즈시마가 사망한 10년 후인 2024년 현재 소고는 일본 매장 수가 겨우 4개[21]에 불과한 소규모 백화점 브랜드로 전락했다.

여담으로 과거 웹사이트 주소는 www2.sogo-gogo.com[22]이었다.

3. 해외 점포

현존하는 일본 바깥의 점포는 과거 합작회사들이 SOGO 브랜드를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 일본의 SOGO와는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23]
  • 대만
  • 홍콩
  •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4. 참고 링크

소고에 대해 다룬 일본 블로그[24] 유튜브 채널 트위터

소고 쿠로사키점 개업 기록 영화(1979) - 29:32부터 소고 쿠로사키점의 개점 당시 모습이 나온다. 다만 VHS를 그대로 업로드한 거라 화질이 굉장히 나쁘다.

5. 관련 문서

  • 백화점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 브래니프 항공 - 백화점이 아닌 항공사이긴 하지만, 참신한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다가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파산했다는 점, 전성기를 맞게 해준 경영자가 몰락에도 일조했다는 점에서 소고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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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식 베틀에 들어간 부품의 일종이며 한국으로 치면 '도투마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2] 1958년 소고 부사장으로 취임했고, 4년 뒤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3] 개업 후에도 쉴틈없이 증축과 확장을 이어나가 1993년 기준으로 '소고 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면적(연면적 259,195㎡)를 기록했는데, 이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본관만의 연면적 29만 3,904㎡) 버금가는 수준인지라 당대에는 세계 최대급 쇼핑 타운으로까지 꼽힐 정도였다고 한다. [4] 베이징 점포 포함 중화권의 소고백화점은 '崇光'이라는 이름으로 진출했다. 홍콩과 대만에 있는 현재 점포들은 영문명 SOGO만 사용중이다. [5]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그 중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늘날에도 운영 중이다. [6] 파산 직전이던 2000년 기준으로 국내 27개 + 해외 14개, 총 41개의 점포가 있었다. 이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파리, 독일, 로마, 밀라노, 이스탄불, 시드니, 비벌리힐즈에도 진출할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7] 참고로 2024년 현재 롯데백화점의 점포 수가 36개(국내 32개 + 국외 4개)이다. [8] 아마 시대상 맥락을 보면 이 회사의 전성기이던 1980~90년대 한국은 지금과 달리 반일 감정이 매우 강했기에 진출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당시 한국은 일본 대중문화도 애니메이션 외에는 금기시될 정도였다. [9] 영상 0:45~1:47에 나온다. [10] 현재는 디즈니랜드와 후원이 끊겨 인형 연출을 중단하고 시계와 시보만 작동. 요코하마점 시계의 인형 연출도 2008년 4월 15일을 끝으로 멈췄다고 한다. [11] 지점별 심볼존 목록 소고의 전성기에는 아예 소고의 상징처럼 인식될 정도로 유명했다. 사족으로 롯데백화점이 80년대 말 ~ 90년대 초 잠실점 영등포점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건설할 때 거대 샹들리에를 설치한 것이 소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높다. [12] 다만 전성기 소고의 내부 모습을 담은 시각 자료들은 위의 영상과 후술할 소고 직원이 공개한 자료들을 제외하면 현재 인터넷에서 찾기가 매우 힘들다. 1983년 개장한 하치오지역 인근 지점 내부 사진이 몇 장 남아 있으며, 이 영상도 전성기 소고의 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추정된다. [13] 지상 10층, 지하 3층 [14] 다만 전성기에도 이 정도 매장 면적이었는지는 불명. 소고의 전성기가 훌쩍 지난 현 시점에 이 정도인 만큼 전성기에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5] 이는 당시 한국 최대 백화점이던 롯데백화점 본점 본관의 매장면적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었으며, 2022년 기준 롯데백화점 본점의 영업면적(74,700㎡)보다도 넓다. 오늘날 롯데백화점 잠실점 본관 매장면적도 소고 요코하마점 매장면적보다는 작으며,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업면적이 소고 요코하마점의 절반 수준이었다. # 현재는 소고 요코하마점보다도 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2016년 리모델링 전까지는 영업면적이 소고 요코하마점보다도 작았고, # 2020년 건설된 더현대서울(지하 6층, 지상 6층, 도합 12층)의 연면적이 19만 3851㎡, 영업면적이 89,256㎡로 소고 요코하마점에 비해서도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다. [16] 본인들도 소고 요코하마점의 캐치프라이즈를 "요코하마가 낳은 세계 최대급 백화점(横浜が生んだ、世界最大級の百貨店)"으로 했다. [17] 이 과정에서 시코쿠의 민영철도 회사인 타카마츠코토히라 전기철도 카와라마치역 재건축 과정에서 소고 그룹과 체결한 채무보증 계약으로 인해 소고 그룹의 부채를 떠안아야 했고, 결국 코토덴도 민사재생법에 따른 파산구제를 신청했다. [18] 1년 뒤인 2001년 9월에는 '마이칼'(Mycal)이란 유통그룹이 파산하며 일본 소매업계에 또다시 충격을 주었다. 이 회사는 백화점이 아닌 슈퍼마켓이었으나 망한 원인 및 과정들은 소고와 매우 유사했으며, 도산 당시 부채총액 규모는 소고 바로 다음이었다. 이후 이온그룹에 인수되었고 2011년 이온그룹의 브랜드 통합 정책으로 '마이칼'이란 이름은 끝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19] 다이마루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 백화점 중에서는 최초로 1998년 해외시장 철수+점포수 및 인원 축소와 같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현재는 이같은 구조조정이 성공해 순이익 등 각종 영업지표에서 일본 최상위권을 달리는 백화점으로 변신했다. [20] 안채와 별채를 따로 갖출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21] 사이타마점, 치바점, 요코하마점, 히로시마점 [22] 최초의 아카이브 기록(2001년 3월 5일) 2004년 6월 20일 30개에 육박하던 일본 내 점포수가 11~12개로 반토막났다. [23] 야후! 본사와 야후! 재팬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24] 2000년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있던 소고 쿠로사키점(1979년 개점)이 폐점한 것을 아쉬워하며 소고에 대한 자료들 수집을 시작한 것이 현행에 이르렀다고 한다. 소고 쿠로사키점 관련 자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를 통해 전성기 소고의 '버블스러운' 호화로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내용의 상세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쿠로사키 소고 전직 직원(판매 추진부 선전 담당)이었으며, 현재는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