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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성감옥에서 촬영된 사진. |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98년 12월 16일[1] |
경기도 안산군[2] | |
사망 | 미상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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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98년 12월 16일 경기도 안산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경성부 봉래정2정목(현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2가)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으며, 마차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그는 1919년 3월 22일 오전 남대문역 근처 봉래정 공터에서 노동자 300~400명을 포함한 700~800명의 군중이 참여한 '노동자대회'에 참여하였고, 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일본인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과 권리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주민들에게 '조선독립만세'라 적힌 깃발을 흔들며 함께 외칠 것을 독려하자 여기에도 가담하여 죽첨정(현 서대문구 충정로)까지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이 일로 인해 얼마 뒤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5월 8일 경성감옥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1월 8일 만기 출옥한 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사망년월일 또한 알 수 없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1]
1919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1898년 12월 11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2]
1919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경기도 시흥군 구안산 부내라고 더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긴 하나, 글씨 상태가 좋지 않아 세부 내용은 판독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