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던 북한군이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시행한 학살극.2. 상세
▲ 서천 등기소 창고 정면[1]
▲ 서천 등기소 창고 측면과 정면[2]
1950년 9월 27일 새벽 충남 서천군 서천등기소[3] 창고에서 북한군과 좌익에 의해 우익이고 지배계급으로 지목되는 기독교인, 반공주의자, 경찰 등 240~250명 가량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은 희생자들이 좁은 등기소 건물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불을 질러 불에 타죽었다는 점에서 북한군과 좌익의 잔혹한 죄상과 만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사건을 직접 실행한 인물은 모두 11명으로 이 중 7명이 정치보위부 소속이고, 나머지는 남로당위원장, 내무서 부서장, 세포위원 등이었다.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서천경찰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이명식의 판결문과 미 전쟁범죄 조사단 보고서(KWC#32)에 의하면, 이 학살사건을 모의한 사람은 남로당위원장 구재극, 정치보위부장 이병제, 내무서장 장한성, 검찰소장(성명불상), 인민위원장 이구몽 등 5인이고, 학살의 집행은 정치보위부에서 맡았다.[4]
다음은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다는 근거이다. 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김일성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