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0:31:22

사도마을

고흥군 금사리
사도마을
蛇渡마을 | Sado-village
<colbgcolor=#00884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전라남도
기초자치단체 고흥군 영남면

1. 개요2. 역사3. 설화
[clearfix]

1. 개요

파일:사도마을 망산.jpg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에 위치한 마을이다. 사도(蛇渡)라는 지명은 마을 뒤 망산 지형이 뱀의 머리를 닮아 붙여졌다.

바로 앞에 와도(蛙島 개구리를 닮은 섬)라는 섬이 있는데 뱀이 개구리를 내려다 보는 형상 같아 보인다고 한다.

2. 역사

최초 기록은 1789년 점암면 사도리(蛇渡里)로 표기되어있고 1912년 행정구역 일람에도 사도리로 표기 되어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초기 행정구역 폐합시 사도리와 능정리를 합쳐 금사리가 되었다가 광복 후 사도마을로 분동하여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사도마을이 되었다.

고려 충선왕대에 경남 창원에서 황씨가 입향 하였고 이후 충주지씨, 김해김씨, 현풍곽씨, 경주정씨 순으로 입향해 마을을 이뤘다.

조선 세종 9년(1427년) 설진한 수군기지 사도진성이 있었던 곳이 였으나, 70년대 마을을 전소 시킨 큰 불이 나는 바람에 기록과 유적이 모두 타버렸다.

3. 설화

  • 장첨사
    사도진성에 장청사라는 사람이 부임하여 배고픈 이들에게 양식을 눠주고 아이를 난 사람에게 미역을 나눠주는 등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고마움에 장청사를 기리기 위해 당제를 세웠는데 아들이 없고 딸 뿐이라 제당 당제에 점청사 내외와 딸을 모시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사도진성 10년 축성
    사도진성의 축성을 위해 고흥을 비롯 인근지역까지 동원령이 내려졌다. 당시 구례에서 살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임신한 아내가 아이를 낳는 것도 조차 보지 못한채 축성에 동원돼 사도진성을 쌓는 동안 아이가 태어나 성장해 10살 무렵 아버지의 옷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사도진성이 축성 되는데 최소 10년 이상이 걸렸다고 추측하며 실제로 몇 년이 걸렸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 용두꼭대기의 혈
    일제감강점기에 사도마을의 혈을 끊기 위해 용두산 꼭대기의 용화불이 있는 곳에 쇠말뚝을 박고 그 위에 마굿간을 지었다고 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