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 Perri
1. 개요
바하마 출신의 게임 개발자로, 액티브 엔터프라이즈를 세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악명 높은 치타맨과 액션 52의 고안자다.2. 생애
바하마 출신. 액션 52 관련 인터뷰에 응했던 그의 과거 동료들에 의하면 1991년에 30대 초중반 이었으니 1950년대 중후반생으로 보이며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2.1. 본격적인 게임 개발 및 회사 설립
1989년에 액티브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했다.1989년 연말, 그는 우연히 아들이 게임 샵에서 산 패미컴용 52가지 게임을 본 후 52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합본을 만들어 팔면 큰 돈을 벌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1990년에 본격적으로 그는 창업 당시 있던 몇 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게임 개발 초기 단계에 착수한다.
그들은 이듬해인 1991년 초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52가지 게임이었기에 정상적이고 괜찮은 게임을 만들려면 개발 기간은 못해도 반년이나 1년은 걸려야 정상이지만 그들은 3개월 조금 넘는 기간에 52가지의 게임 개발을 완료했다. 이 말은 대다수의 게임은 제대로 된 테스트 플레이도 안해봤다는 것으로 훗날 액션 52가 백년에 한번 나올 망작이 되는것의 원인이 되었다. 만약 그들이 52가지나 되는 게임을 당시 미국, 일본의 다른 게임 개발사들 만큼은 못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괜찮은 결과물로 만들려면 못해도 1년 넘는 기한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대충 게임 52개를 만들고 대충 치타맨이란 프랜차이즈를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팔면 아주 쉽게 큰돈을 벌어들일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생각만을 갖고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 결과물을 무려 199달러라는 끔찍한 고가로 팔았다.[1]
출시 초기에 비싼 가격에도 광고를 잘했는지 1991년 연말까지 판매량이 괜찮았으나 후에 이 게임을 해본 이들의 후기가 당시 게임 잡지 등에 실리기도 하면서 다음해인 1992년부터 판매량이 줄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치타맨2를 개발했고 1992년 중에 출시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그후 당시 존재하는 모든 게임기의 게임이 호환되는 액션 게임 마스터를 개발해 출시할 계획도 있었으나...
2.2. 몰락
액션 52의 악명은 자자했고 게이머들은 치타맨2와 액션 52 후속작들은 구릴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판매량은 급감했다. 그러자 그들 역시 치타맨2 발매를 연기했으며 액션52는 1993년에 FarSight Studios에 하청을 한 세가 제네시스판을 출시한 후 얼마 못가 액티브 엔터프라이즈 자체가 공중분해되어 회사 자체가 망해버렸다. 이러자 치타맨2는 창고 도난 사건 전 까지 창고에 하염없이 있을 처지에 놓였다.3. 기타
사업이 망한 후 많은 사람들이 그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액션52 개발자 블로그에 의하면 2012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다만 1942년 뉴욕 브루클린 출생이라는 점이 본 문서 상단에도 나온 정보와 일치하지 않고, 69세에 사망했다는 점, 아들이 같은 이름인데 주니어가 붙지 않았다는 점 등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1]
2024년 3월 기준 199달러는 268,150원이다. 그러나 1991년 기준으로는 581,130원, 약 58만 원에 육박한다. 당시 58만 원이면 이미 게임기 한 대는 충분히 사고도 남을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