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주앙 페헤이라 "비고지" (João Ferreira "Bigode") |
생년월일 | 1922년 4월 4일 |
사망년월일 | 2003년 7월 31일 (향년 81세) |
국적 | 브라질 |
출신지 | 브라질 제1공화국 벨루오리존치 |
포지션 | 레프트 하프백 |
신체조건 | 168cm | 72kg |
소속팀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41-1943) 플루미넨시 FC (1943-1949) CR 플라멩구 (1949-1951) 플루미넨시 FC (1952-1956) |
국가대표 | 10경기 (1949-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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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비고지는 세체 지세템브루에서 유스 생활을 할 때 얻은 별명으로 콧수염이라는 뜻이다. 원래 그의 별명은 비고지냐(Bigodinha)였지만 더 줄여서 비고지가 되었다.비고지는 자신의 고향 벨루오리존치를 연고로 하는 클럽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성인팀에 데뷔했고 미네이루는 1941년과 1942년에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두 차례 차지했다.
비고지는 1943년, 플루미넨시 FC로 이적했고 3시즌을 CR 플라멩구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남은 선수 생활을 모두 플루미넨시에서 보냈다.
2.1.2. 국가대표
비고지는 1949년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 대회에서 비고지는 출전 기회를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1950년 월드컵 이전의 친선 경기에서 브라질의 주전 수비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브라질의 월드컵 6경기 중 5경기에 나섰다.그러나 비고지는 방점을 찍었어야 할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기지아를 완벽히 봉쇄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기지아의 1골 1도움이었고 브라질은 그렇게 무너졌다. 비고지는 결국 골키퍼 바르보자와 함께 패배의 가장 큰 원흉으로 낙인찍혔고 그가 다시 셀레상의 선발 명단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2.2. 이후
선수 은퇴 이후 비고지는 한동안 마라카낭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얼마 후 부담을 느꼈는지 은둔에 들어갔다.비고지는 2003년에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비고지는 작지만 강하고 매우 용감한 수비수였다. 그는 거의 모든 수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왼쪽 하프백에서 가장 좋은 능력을 보여줬다.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 2회: 1941, 1942(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1회: 1946( 플루미넨시 FC)
5.2. 국가대표
- FIFA 월드컵 준우승 1회: 1950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 1회: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