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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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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금정구 CI_White.svg 부산광역시 금정구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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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정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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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브니엘예술중학교 브니엘중학교1
사건 및 사고
1 1998년 폐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女子高等學校 | PENIEL GIRLS' HIGH SCHOOL
파일:브니엘여자고등학교_로고.png
<colbgcolor=#2a66ab><colcolor=white,#191919> 개교 1996년 3월 8일[1]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여학교
형태 사립
학교법인 정선학원[2]
교장 제22대 정숙희
교훈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교화 영산홍
교목 히말라야시다
학생 수 216명 (2023.03)
교직원 수 39명 (2023.03)
관할 교육청 부산광역시교육청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154 ( 구서동)
전화번호 051-582-6613 (행정실)
051-582-9181 (교무실)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연혁3. 학교 상징
3.1. 교훈3.2. 교화3.3. 교목3.4. 교가
4. 학교 특징5. 학교 시설6. 학교 생활
6.1. 학교 일과6.2. 동아리6.3. 주요 행사
7. 운동부8. 출신 인물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노선
10. 사건·사고11. 기타

[clearfix]

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소재한 사립 일반계 여자고등학교. 형제 학교로 바로 옆에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부산광역시의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급수와 정원이 가장 작은 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부산광역시 소재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전교생이 200명대에 진입한 학교이기도 하다. 그리고 1995년까지 오랫동안 야간제 전용학교로 운영되다가 1996년 주간 승격 늦은 시기인 1999년에 평준화 되었다.

2. 학교 연혁

1958.07.01 1958년 7월, 미국 VOCA (Voice of China & Asia Inc. 중아선교회)에서
Dr. Samuel Park(박성기목사)를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전쟁난민 구제를 위한 브니엘운동과 교육 사역을 시작함.
1963.12.01 브니엘학원(學園) 설립
-브니엘고등학교(주간,야간), 브니엘중학교-
1996.02.16 브니엘여자고등학교 인가
1996.03.01 초대 박성기교장 취임
1996.03.08 제1회 입학식
1996.03.19 신축 교사(校舍) 이전 : 금정구 체육공원로 154
1999.02.11 제1회 졸업식
2008.03.03 MOU체결_고신대학교
2010.02.20 인조잔디 운동장 준공
2013.03.01 자율형 창의경영학교 선정(~2016)
2013.10.28 MOU체결_(사)부산밥퍼나눔공동체
2018.03.02 제23회 입학식
2018.11.29 '학력신장 우수학교' 선정(부산광역시교육청)
2018.12.10 '교실수업개선 우수학교' 선정(부산광역시교육청)
2019.03.04 제24회 입학식
2019.04.05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시행 기여 표창(교육부장관)
2019.07.25 MOU체결_태국,싸라윗타야Sarawittaya학교(방콕_한국어과 개설)
2020.02.11 제22회 졸업식
2020.04.09 온라인 개학(3학년)
2020.04.16 온라인 개학(1,2학년)

3. 학교 상징

파일:브니엘여고 상징.jpg

3.1. 교훈

1. 나는 하나님 사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1. I will be a man who loves God, man, and nature.
2. I will be a man who keeps growing, thinking, and working to the full.
3. I will be a man who rejoices with those who rejoice and weeps with those who weep.
4. I will be a man who is always ready to respond to the calling of my country and humankind.

3.2. 교화

교화
교화는 영산홍이다.

3.3. 교목

파일:external/www.daegucity.net/daegu_now(130715-2).jpg
교목
교목은 '히말라야시다'라고 불리는 개잎갈나무 이다.

3.4. 교가

파일:브니엘 교가.png
1절
산보다 더 드높은 소망을 안고서
모였다 우리들은 사랑의 샘터로
브니엘 브니엘 온 누리에 뻗어 갈
그 이름도 미쁘다 우리 브니엘 학원
빛나는 역사의 창조자 역사의 창조자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브니엘 학원
2절
푸른 바다 물결에 아침 해 빛나고
금정산 봉우리엔 희망은 찬란다
브니엘 브니엘 온 누리에 뻗어 갈
그 이름도 미쁘다 우리 브니엘 학원
빛나는 역사의 창조자 역사의 창조자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브니엘 학원
작사 작곡 박환철

4. 학교 특징

실질적으로는 1975년에 개교한 나름대로 유서 깊은 학교로 같은 4학군의 학산여자고등학교(1985년), 대명여자고등학교(1986년), 사직여자고등학교(1987년) 보다 역사가 길고,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1973년)와 비슷한 시기[3]에 출발했으나 이 정도의 역사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의 인식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사실은 1975년 개교 당초에는 연산동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빌려서에 2부 형태(학적관리는 브니엘고등학교가 담당)로 운영되던 직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위한 야간제 전용 학교[4]였고 이는 1995년 까지 20년간 이어졌다. 그덕분에 그 20년간 대학 진학률은 거의 없다 시피 했는데, 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 대학 진학 희망인원이 100만명(학력고사 응시자 + 재수생) 이상 이었는데 대학 총정원이 20만명 밖에 안되었을 정도로 대학 진학문이 워낙 좁다보니 아무리 야간자율학습 까지 빡세게 돌리던 날고 기던 유수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절반 이상이 대학 진학에 실패할 정도였는데, 연합고사에 붙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일반계 고등학교의 입결 보다 한참 낮았은데다가, 이미 상당수의 학생들도 고된 생산직 노동으로 인하여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했고, 일반계 고등학교 보다 수업시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하나마나한 몇시간 짜리 수업을 하는 야간제 전용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학으로 진학시킬 확률은 예체능 계열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학 진학률이 없다시피 하던게 정말로 당연한 일이었다.[5] 재단에서는 1970년대 후반 부터 학교 신축 이전을 통해 평준화 일반고로 승격하려 했으나 재단 문제로 여러차례 이전 예정 부지가 바뀌는것과 동시에 이전이 계속 지연되었고, 그 20년이라는 기간동안 학교가 제대로 관리 되지 못해서 연산동 지역에서 인식이 썩 좋지 못했었다. 1989년에는 산업체 부설학교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개교로 인한 수요잠식과 생활수준의 향상 및 주간 여자고등학교가 많이 생기면서 야간부 학생수의 급감으로 5학급으로 감축되기도 했었다. 뒤늦게서야 1996년에 금정구로 이전하여 주간 특수지 고등학교로 승격되면서 다시 6학급으로 복귀, 1999년에 평준화 고등학교로 승격된 이후로는 1975년부터 1995년까지의 20년간의 역사를 사실상 흑역사화 하였고[6][7] 개교 년도를 1996년으로 새로 정했지만[8], 그래도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 일대의 나이 좀 있는 세대에게는 연산동 시절의 이미지가 각인이 많이 되어서[9] 주간 승격 이후에도 학교 재단 사태와 더불어 연산동 시절의 이미지 때문에 학교가 성장을 하지 못했고, 재단에서도 평준화 승격 직후 중요한 시기에도 학교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수수방관 했으며 2000년대 중반 신재단으로 교체된 이후에는 대놓고 학교를 탄압하는등[10]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선재단의 이런 만행에 대해 학부모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일은 없었는데, 학교 특성상 학부모들이 맞벌이인 경우가 많았고, 양산시와 인접한 금정구 지역 특성상 양산공단 경공업 제조업에서 시급제로 일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보니 반발 행동을 하려고 하면 일을 하루 정도는 빠져야 하는데 시급제 특성상 하루만 빠져도 월급에서 빠지는 돈이 상당해서 가계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반발 행동에 나서는 학부모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스마트폰이나 SNS 같은것도 보급되기 이전인데다가, 그당시 학부모들은 대개 PC 같은 정보기기를 다루는것을 어려워하던 세대인 1960년대생이라서 인터넷 상으로 반발하는것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 4학군의 파이가 커서 전교생이 700명 내외였고 이때 학교를 키웠으면 학급과 학생수를 많이 늘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반격의 여지가 있었으나 2010년대 들면서 학생수가 급감하여 2017년 부산에서 가장 학생수가 적은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11]로 한학년당 100~120명 정도에 전교생이 354명에 불과하여 전교생이 모두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며 가족같이 지낸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2015년 입학생은 137명이 들어왔으나 그 시기에 브니엘학원 사태의 여파로 관선이사가 파견되면서 입학하자 마자 7명이 전학갔고,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단체 전학으로 107명으로 감소,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105명으로 감소하여 입학생 137명 중에서 전교생의 23%에 달하는 인원인 32명이 감소 되었다. 현재는 저출산 크리티컬과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 때문에 학교 자체의 존폐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황이며 관선이사 체제인 현재로써는 풍전등화인 상황.[12] 혹여나 정이사 체제가 된다면 향후 정이사들이 어떻게 하나에 따라 학교의 미래가 결정될것으로 보인다.

5. 학교 시설

파일:브니엘학교 전경.jpg
학교법인 정선학원 전경

6. 학교 생활

6.1. 학교 일과


[월-목]
아침 채플[13]
1교시: 8:25~9:15
2교시: 9:25~10:15
3교시: 10:25~11:15
4교시: 11:25~12:15
점심시간: 12:15~1:10
5교시: 13:10~14:00
6교시: 14:10~15:00
7교시: 15:10~16:00
8교시(방과후): 16:15~17:05
석식: 17:05~18:00
야자 1차: 18:00~19:15
야자 2차: 19:30~20:50
야자 3차[14] : 21:00~21:50

[금]
6교시까지만 진행

6.2. 동아리

파일:2024동아리브니엘여고.png

6.3. 주요 행사

추가하시려면 "행사명: 개최시기"로 추가해주시고 부가적인 설명을 적어주세요.

7. 운동부

학교가 분리되기 이전인 1968년에 여자 테니스부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 불과 5년만인 1973년에는 국제 대회에도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키는 등 단기간에 테니스의 강호로 떠올랐으며, 1975년 2부 브니엘여고로 개편된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1970~1980년대 당시 부산지역 여자 테니스부의 강호로 정말로 유명했고 최고 전성기때는 전국구로 명성을 떨쳤다. 그 덕분에 브니엘여고 자체는 인식이 썩 좋지 못했음에도 테니스부 만큼은 정말로 알아줬었다. #[15] [16]
하지만 학교가 이전을 추진할 무렵에 테니스부가 쇠락하기 시작했고, 금정구로 이전한 이후에도 수년간은 운영되다가 1990년대 후반 브니엘학원 사태가 터지면서 30년의 역사를 뒤로한채 재정난으로 갑자기 해체되었다.[17][18]
이후 정선재단이 들어오면서 자칭 정상화를 주장했을때 테니스부의 부활이 예상 되었으나, 정선재단 인사들은 의치한이나 자사고에만 관심있다보니 의치한 진학률에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여자 테니스부를 부활시킬 생각을 안하면서 아예 관뚜껑에 못을 박았다.
학교 자체가 학생수가 적다보니 테니스부라도 부활했으면 학생수를 조금이나마 보태줬을 것이고, 그때 테니스부가 부활했으면 2018년 지금쯤 다시금 재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8. 출신 인물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노선

정류소 명칭 노선 번호
브니엘고등학교 301[19], 금정3-1

지하철은 그런거 없다. 구서역, 장전역으로 가야 한다.

2023년 9월 1일 부터 십수년간 운행해왔던 금정3번의 브니엘고 통학지원노선이 폐지되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셔틀버스 운행으로 전환되어 완전히 부산외대 위주로만 운행하게 되었기 때문.

10. 사건·사고

언론에서 보도한 경우에만 서술하시기 바랍니다.

11. 기타

  • 학교 연혁이 서울의 대일관광고등학교(구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와 거의 유사하다. 초기에는 같은 재단의 중학교(브니엘여고:브니엘중,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은주중) 건물을 빌려서 개교한 야간제 전용학교라는 점도 그렇고, 주간으로 운영되던 일반계 남자고등학교에 2부 형태로 개설되었다는 점(브니엘여고:브니엘고,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대일고)도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그 건물을 빌려썼던 중학교가 폐교되었다는 점도 너무 비슷하다. 다만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는 이후에 주간으로 개편되어도 실업계로 계속 유지되어서 지금의 대일관광고등학교도 특성화 고등학교로 남아있지만,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주간으로 개편되면서 특수지 일반고가 되었다가 이후에 평준화 일반고등학교가 되었다는것이 가장 큰 차이점. 그리고 대일관광고등학교는 2부 야간제 전용 고등학교 시절도 학교의 연혁으로 포함해주고 있으나,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2부 야간제 전용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를 아예 지워리고 개교 기념일을 1996년으로 완전히 고쳐버렸다.
  • 적은 학생수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학생의 노력으로 서울 지역과 부산대에 나쁘지않은 입시률을 보이고 있다.
  • 많은 학교들에서 볼 수 없는 ORIGINALS 등 다양한 토론 캠프 활동이나 진로 진학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 활동들이 운영되고 있고,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주어 많은 학생들의 입학 후 학교 만족도는 높은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신의 불리함으로 인한 계속되는 전학[20]은 막지 못하고 있다.
  • 개교기념일이 지정 되어있지않다. [21]
  • 저출산, 금정구 지역의 고령화, 갈수록 내신 비중이 높아지는 대학교 입시, 학교 총량제, 부산광역시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 등등으로 퇴출도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관선이사는 학교를 통폐합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어찌어찌하여 학교가 유지되는 상황이다.이 학교의 운명은 이후 정이사의 손에 달려있지만, 이후 학교를 인수하게 되는 정이사가 학교의 존치 보다는 100억대의 통폐합 인센티브를 택하게 된다면...[22] 부산에서 더 이상 인가가 나올 일이 없을듯한 평준화 사립학교 TO를 무능한 사학재단이 이렇게 허비하는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도 부산에서는 학군 수요로 인기있고 구서여자중학교 버프로 여아 키우기 좋다는 소리 듣는 금정구 구서동 소재 일반계 단성 사립 고등학교라는 천혜의 조건이고, 한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비교되던 4학군 지역인데 말이다.[23] [24] [25]
  • 금정구 학군내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학생들의 기피로 인하여 현재로서 이 학교를 살릴 방법은 현재의 위치에서는 무리일듯 하고, 일광신도시 명지국제신도시, 사송신도시 같은 고등학교 신설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는 신도시 지역으로 신축 이전을 해서[26] 학생수와 학급수를 늘리는 방법 외에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27][28]
  • 정선재단 모기업( 온병원그룹)은 양산시 어곡동 일대에 대규모의 부지를 가지고 있고 학교 건물을 자체적으로 건설 하는것이 가능하지만, 이들이 비용을 지출하면서 까지 그 부지를 브니엘학원에 기꺼이 넘겨주고 학교를 이전시킬 가능성은 없을것이며, 부지 자체가 공단에 인접해 있어서 공해의 우려도 있다.
  • 금정구 내에서는 브니엘고와 다시 통폐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으며, 2024년 들어서는 언론을 통해서도 공개적으로 통폐합이 언급되고 있다. #
  • 비선호 학교이기는 해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잘 돌아갔었다.[29] [30] 오히려 정시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브니엘 계열 고등학교 3개교 중에서 가장 준수한 실적을 내기도 했었고 지역내에서도 의외로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31]
  • 결정적으로 2006년에 구서 롯데캐슬 골드라는 매머드급 아파트 단지가 입주하면서 충분히 학생수와 학급수를 늘리면서 성장할 기회가 찾아왔지만, 당시 기회를 잡지 못하였고, 2010년대 이후로는 대학 입시가 수시 위주로 바뀌는 바람에 기피 학교를 넘어서 상대평가 9등급제 내신의 불리함으로 이제는 학생의 유출도 심각해진 상황이 되어버렸다.[32]
  • 부산 4학군 여고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교복을 쓰는 학교로 교복이 부활한 직후인 1986년 2학기 부터 쓰이고 있다고 하며[33], 부산 4학군 사립 여고 중에서는 구형 교복을 쓰는 둘 밖에 없는 학교. 특유의 원색적인 초록색으로 인하여 30여년동안 시금치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34] [35] 사실 이 시금치 교복은 원래는 당시 같은 재단이었던 브니엘유치원의 1970년대 초반 부터 쓰이던 초록색 원복 디자인을 1986년에 브니엘여자고등학교에도 유용한 것으로 어찌보면 50년도 더 된 역사를 가진 교복이라고 볼 수 있다. 1975~1982년경의 교복은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에 흰색 윙카라가 있는 형태로 지금의 경기여고나 부산 남성여고 교복과 같은 형태였다. 당시 교복[36] 하복은 흰색 상의와 검은색 치마로 지금의 남산고 여학생 교복이나 브니엘예고 여학생 교복과 비슷했었다.
  • 2010년에 동래여자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되면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금정구 대표 여자고등학교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번 더 주어졌으나, 어리석은 정선재단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 기회를 주워가지도 못했다. 이때 제대로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놓쳐버린 것이다. 그로 인하여 구서동에 거주하는 일반계 여고를 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1지망으로 교통이 편한 공립여고인 동래구의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를 쓰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었으며, 브니엘여자고등학교에 배정되는게 두려웠던 나머지 서동의 공립여고인 금정여자고등학고로 안전빵으로 1지망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 덕분에 동래여자고등학교 자사고 전환으로 인한 반사이익은 중앙여자고등학교와 금정여자고등학교가 상당수 가져갔을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반사이익을 제대로 주워먹지 못했었다. 기회를 여러번 줘도 못가져가는걸 보면, 정선재단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때 정선재단이 전력투구 해서 경기도 안양시 신성고등학교 사례 처럼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좋은 일반계 고등학교로 키웠더라면 정선재단이 이후에 부산판 홍복재단 이라는 굴욕적인 별명과 함께 불명예 스럽게 퇴출당하는 일도 없었을테고,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비롯한 브니엘 3총사 고등학교들이 이정도로 망가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사학 정상화 실력을 인정받아 서남대학교 인수전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다못해 서남대학교 홍복재단도 서남대학교는 끔찍할 정도의 비리사학이었던 반면, 대광여자고등학교 만큼은 명문으로 키웠었다.
  • 연산동 시절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주역들 중에 일부가 재학했었던 학교였다. 1987년 7~9월의 노동자 대투쟁 당시 부산지역에서는 태광산업 구서동 공장에 근무하던 야간제 여고를 다니던 어린 여공들이 1987년 7월 22일날 들고 일어나면서 부산지역 노동자 대투쟁의 시발점이 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동래여자상업고등학교(현 삼정고등학교) 야간이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야간 뿐만 아니라 연산동 야간제 브니엘여고 재학생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는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아직 개교도 하기 전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금정구로 이전하고 주간 학교로 승격한 이후로 연산동 야간제 여고 시절의 연혁을 아예 흑역사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개교한지 꽤나 오래된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제대로 된 동문회가 존재하지 않는다.[38][39]
  • 2019학년도에 결국 총 정원이 300명선이 붕괴된 298명으로 부산에서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 최초로 300명대를 넘어서 200명대로 진입하였다. [40]
  • 2021년에는 1학년 신입생 수가 71명에 총 정원이 244명에 불과할 정도가 되면서 학생수의 감소가 상당히 빠른 학교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 71명 중에서도 11명이 전학을 가서 1학년 학생이 60명대에 불과한 정도가 되어서 부산에서 최초로 학년당 60명대로 진입한 평준화 일반고가 되어버렸다. [41]
  • 상당히 적은 학생수에 휑하고 열악한 시골과 다름없는 주변 환경을 보면[42] 농어촌특별전형이 될법도 할것 같아 보이지만, 면이나 읍단위가 아닌 구서동 이라는 동 단위에 소재한 학교라서 농어촌특별전형이 적용되지 않는다.


[1] 브니엘학원 설립 및 브니엘고등학교 개교는 1963월 12월 1일로 굉장히 빨랐으나, 브니엘여고는 1975년 3월 부터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차출하여 야간학교로만 운영하였었다 주간학교 승격및 정식학교 인가는 1996년 2월 16일에 받았다. [2] 현재 소유권 분쟁 중이며 재단 교체 가능성이 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교육청에서 관선이사를 파견하고 있다. [3]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와도 3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4] 대학교로 치면 서경대학교의 전신인 주간반이 없는 야간제 전용대학 국제대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국제대학도 당시에는 대학 진학문이 워낙 좁던 시절의 대학이었기 때문에 야간제 전용이기는 해도 입결 자체는 높았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 [5] 그래도 생산직에 한해서 졸업생들 대다수는 취업은 잘 되었는데 이는 3저호황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지방 사립대 졸업자들 보다도 더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20%대에 불과한 수준이다보니 대졸자 수가 적었고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장만 해도 스펙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브니엘여고 야간반만 나와도 태창기업, 경남섬유는 물론이고 심지어 태광산업이나 화승, CJ, 국제상사, 반도상사로 취업되는 경우도 많았었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 정말로 이악물고 열심히 공부해서 제1금융권인 은행으로 취업한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6] 유사한 경우로 전문계 고등학교였던 부산정보여자고등학교에서 2007년에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면서 전문계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를 지워버린 부산백양고등학교가 있다. 다만 1999년 이전 까지의 구재단 시절에는 1996년 금정구 이전 직후에도 연산동 시절의 연혁도 학교의 역사로 인정해줬으나 1999년 이후로 평준화 되고 구재단이 퇴출되면서 흑역사화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 졸업식 안내문에서 구서동 동산으로 이사하던 순간 이라는 언급이 있는걸로 봐서 학교가 이전하기 이전의 연산동 시절을 완전히 부정하는것도 아닌듯 하다. 1995년 6월에 발표된 1996학년도 신설예정 학교 일람에도 브니엘여고 보다도 훨씬 늦게 계획되었던 대진전자통신고는 있어도 브니엘여고는 빠져있는걸로 봐서 부산 교육청에서도 완전신설이 아닌 이전으로 보고 있다는 뜻. # 다만 위의 목록에서 브니엘예중은 빠져있는데 브니엘예중은 1개월 후인 1995년 7월에 갑자기 개교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7] 사실 2000년대 초중반 재단이 여러번 엎어지고 어수선할 적에 학교 창고를 정리하면서 1975~1995년경 야간반 전용 학교로 운영되던 시절의 학교 자료들을 전산화가 가능했던 최소한의 학적자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기처분 해버려서 그 이후로는 학교 연혁을 복원하고 싶어도 복원할 수 없다고 한다. 당시 테니스부가 운영되면서 따온 트로피나 상장, 상패들도 이 시기에 모두 폐기처분 된 것으로 추정된다(...) [8] 이 때문에 1975~1995년의 브니엘여고 연혁은 브니엘고와 브니엘여고가 서로 자기네 연혁이 아니라고 떠넘기는 실정이다. 1975년부터 1995년까지 야간제 브니엘여고의 학적관리를 했었던 브니엘고는 이미 브니엘여고가 1996년에 분리된데다가 교복도 야간제 시절이나 주간제 승격 및 분리 이후나 같은 교명에 아예 같은 시금치 교복을 쓰고 있으며 1994년 및 1995년 입학생은 학교가 구서동으로 이전한 이후 각각 1997년, 1998년에 졸업할때 까지 브니엘여고 건물을 같이 썼던 만큼 브니엘여고의 연혁이라고 떠넘기고, 브니엘여고는 1975~1995년 당시 학적관리를 브니엘고가 했었기 때문에 브니엘고의 연혁이라고 서로 떠넘기기를 하다보니 결국은 연혁이 아예 붕 떠버렸다. 사실 야간제 브니엘여고 시절이던 1990년대 중후반 부도 직전으로 몰린 학교법인의 부채를 갚기 위해 야간학교 끝물 기수였던 주경야독하던 여공들로 부터 모아둔 교내 신협의 저축금을 횡령한 지저분한 흑역사가 있었기에 이런 이유로 연혁을 부정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9] 일대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피학교로 낙인 찍힌 주된 원인으로, 지금의 학부모 세대가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시절의 연산동 브니엘여고의 인식은 바이킹여상으로 불리던 학교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바닥을 기었다고 한다. 금정구로 이전하고 1999년에 평준화 이후에는 연산동 시절에 비하면 천국 수준으로 좋아진편. 평준화 이전에는 부산 전역의 비행 청소년들을 끌어모았으나 평준화 이후에는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서울대 진학자나 의치한 진학자도 나오고 이후에 사법고시 합격자도 처음으로 나왔을 정도로 상전벽해로 변했다. 게다가 1999년에 평준화 전환될 무렵에 연산동의 야간제 전용학교 시절부터 오랫동안 있었던 기존의 브니엘여고 교사들은 신설되는 브니엘예고로 상당수가 전보 되었고, 오랫동안 브니엘고에 있었던 교사들 중에서 일부가 브니엘여고로 넘어오면서 교사진들을 싹 갈아엎었다고 하며 그로 인하여 정시에 강하던 브니엘고의 노하우를 상당수 전수 받았다. 차라리 구서동으로 이전하여 평준화로 승격될 무렵에 당시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구서동의 이미지를 빌려서 구서고등학교 혹은 구서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는게 나았을 것이지만 설립자가 고집도 너무 강하고, 사상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실현되지는 않았다. 2017년 현재도 구서고등학교 혹은 구서여자고등학교라는 그 좋은 교명은 브니엘 학원이 이전해 오면서 공립 구서고등학교 개교가 취소 되는 바람에 공석으로 남아있다. [10] 그리 넓지도 않은 브니엘여자고등학교 운동장 부지를 뺏아서 브니엘국제예술중 신설에 쓰는 등 못할 짓을 많이 했다. 그 브니엘국제예술중 건물도 원래는 이렇게 지으려고 했다고. # [11] 2위, 3위는 영도구 소재 광명고등학교 부산남고등학교이다. [12] 정작 학교를 이런 상황으로 만들고 간 장본인들은 의대를 노리고 서남대학교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결과는 시원하게 탈락. 의대를 운영하는 난이도는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난이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13] 이동없이 각 반에서 방송으로 진행 [14] 3학년 재학생만 실시 [15] 이런점에서 과거 광성공고 탁구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16] 얼마나 오죽했으면 많은 사람들은 브니엘 하면 브니엘남고의 SKY대, 의치한 진학률 아니면, 브니엘여고의 테니스부를 연상했을 정도였고 브니엘여고 테니스부는 브니엘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 였었다. [17] 학교 재단 자체가 부도났을 지경인데 테니스부를 도저히 살릴수 없었을 것이다. [18] 워낙 갑자기 해체되어서 정확한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 [19] 1996년 이후 무려 20년(!)만에 처음으로 들어온 배차간격 1시간 이내의 정규 노선이다. [20] 주로 양산물금신도시의 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특히 물금신도시는 주변 교육 환경도 괜찮으면서도 읍,면 단위 지역(물금읍)이라 농어촌특별전형이 되는 이점이 있다. [21] 매년 학교 재량으로 다르게 지정한다. [22] 오히려 브니엘고와 브니엘여고를 폐교하고 서명고 모전고를 개교하는게 매우 압도적으로 이득이다. 엄청난 과밀로 악명높은 명호고등학교가 있는 명지오션시티와 비정상적으로 작게 지어진 신정고등학교, 신정고등학교가 수용하지 못한 학생들을 수용하기도 벅찬 정관고등학교가 있는 정관신도시에 고등학교가 한 곳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인데 위치도 극악무도하게 좋지 않아서 학생들을 모으기도 매우 힘든 브니엘고, 브니엘여고를 폐교시켜서 학교 총량제의 쿼터 2개를 확보한다면 명지국제신도시와 정관신도시에 고등학교를 1개씩 개교하면 그 지역에 사는 학생들을 수용시킬 수 있으니 과밀 현상은 줄고 금정구에 있는 남은 고등학교들도 폐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23] 오히려 4학군 + 여고 + 적은 학생수 때문에 수시 위주의 현행 대입 체계 하에서는 내신 지옥으로 지역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 [24] 여담이지만 부산시 교육청은 2021년 까지 당장 3년 이내에 고등학교 2개를 폐교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지만,[43] 다행히도 관선이사 파견 때문인지 1차 통폐합 대상은 피하였으나 2021년 이후, 아니 정이사 선임 이후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 [25] 최근 지구촌고등학교와 금성중학교의 폐교가 결정되었고 2019년부터 근처에 있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신대원의 폐지가 결정되면서 최근들어 부산지역의 사학들이 전체적으로 폐교 및 구조조정 기조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26] 현재 학생 수를 고려할 때 신설 필요 1순위는 각각 명지국제신도시의 서명고등학교와 정관신도시의 모전고등학교이다. 2순위는 명지오션시티의 오션고등학교와 에코델타시티의 강동고등학교이다. [27] 하지만 신도시로 이전하는 비용만 해도 최소 수백억대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28] 게다가 이전을 추진한다고 해도 울산 홍명고 사례 처럼 그쪽 지역에서 받아주지 않을 우려도 있다. [29] 평준화 전환 당초부터 기피학교라서 학급수, 학생수가 타 학교 보다 적기는 했어도 2000년대 초반 까지는 내신을 절대평가인 수우미양가 방식으로 매겼기에 내신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30] 또한, 당시에는 정시위주의 대학입시였기 때문에 기피학교라는 점이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 [31] 사실 그때는 학생수도 학년당 250명 정도로 제법 있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보다 규모가 작은 18학급이라 해도 내신 산출에 지장갈 수준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고. [32] 특히 양산 물금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금정구의 학령인구들이 지속적으로 물금신도시로 대거 빠져나간것도 타격이 되었다. [33] 1980년대 당시 평판이 안좋은 고등학교인걸 생각하면 교복 재도입이 상당히 빨랐던건 정말 의외의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교복 재도입이 가장 빠른 축에 속한 고등학교였다. 당시 평판이 좋은 고등학교들 중에도 1990년대 초중반 까지 교복을 재도입 안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34] 평준화 적용 이전 시금치라는 별명은 덕○여고, 부○여상 같은 근처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조롱의 의미로 불리웠지만 구서동 이전 이후에는 평준화로 전환되어 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의 의미는 없어지고 자조적인 뜻으로 쓰이고 있다. [35] 시금치라는 별명이 있기 전 검은 교복 쓰던 시절인 1975~1982년에는 야순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36] 사진의 경우는 타 학교 야간부 학생들도 섞여 있을 수 있으나, 사실 당시 부산시내 여자고등학교 교복은 인문계, 실업계, 주간부, 야간부 막론하고 정부 시책으로 학교는 달라도 모두 같은 형태로 하는 바람에 육안으로는 구별이 안되었다. 인근의 계성여상, 부산여상 또한 당시에는 교복이 같았다. 이는 당시 남자고등학교들이나 중학교들도 마찬가지. [37]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실현되었다면 지금과는 학교 위상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38] 반면 같은 1975년에 개교한 삼성여자고등학교는 총동문회가 존재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자랑스러운 동문이라고 목록도 작성되어 있다. 당장 같은 4학군의 개교 시기가 1년 밖에 차이가 안나는 동인고등학교도 총동문회가 있고, 수년 늦게 개교한 동천고등학교도 총동문회가 있다는걸 생각하면 굉장히 특이한 사례다. 그리고 야간제 전용 학교라도 1975년 기준으로 여성이 야간제 고등학교라도 나오면 지금의 전문대학~4년제 대학 졸업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중졸 학력도 굉장히 흔했었다. [39] 연산동 시절 야간제 브니엘여고 출신들은 2020년대 기준으로는 대부분 40대 중반~60대 초반의 중년 이상의 연령대로 현재도 양산 공단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물어보면 대부분 모교에 대한 애착이 없고 심지어 부끄러운 출신 학교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아서, 이런 이유로도 당시의 출신 동문들이 뭉쳐서 총동문회를 만들만한 구심점이 없다고 한다. [40] 참고로 부산에서 폐교 권고 기준이 고등학교가 300명 이하인데 그 폐교 권고 기준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41]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부산에서 평준화 일반고 최초로 100명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42] 실제로 주변에는 화훼, 당근, 버섯 재배 같은 농업 종사자들도 많이 있으며 학부모들 중에도 농업종사자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