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볼프강 크라머(Wolfgang Kramer)는 2017년 현재 Spiel des Jahres 최다 수상자(5회)다.[1][2]독일식 보드게임이라는 범주를 정형화시킨 인물이다. 보덕 및 유로게임 매니아들에겐 두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의 거장. 보드게임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가장 유명한 개발자 중 한 명으로, 독일을 지금의 보드게임 강국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자,[3] 이른바 유로게임 중에서도 독일식 게임이라는 말이 정형화되게끔 한 개발자이다.
2. 생애
1942년 6월 29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11학년(한국의 고등학교 2학년 정도에 해당) 후에 그만 두고 상경계열로 진학했는데, 보쉬에서 27년 간 경영인으로 근무하다가 1988년 은퇴한다. 이미 회사에 다니던 시점부터 몇몇 보드게임을 취미삼아 제작했고, 1986년 톱 시크릿 스파이와 1987년 아우프 악제가 연이어 SDJ를 수상했다. 아마 이 두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 오랜 직장을 그만 두고 제 2의 인생을 살기로 한 그의 심경에 큰 영향을 주었을 듯. 그 이듬해인 1989년부터 그는 자신의 경영 및 프로그래밍 경력을 살려 본격적인 보드게임 제작자의 길을 택하고 현재까지 100여 개가 넘는 작품을 출판하고 있다. 그 이후의 행적은 업계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레전설 그 자체. Spiel des Jahres 5회 수상, Deutscher Spiele Preis 3회 수상 + 어린이부문상 1회 수상, International Gamers Award 다인용 전략부문 2회 수상 등 8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보드게임 업계를 클라우스 토이버와 양분하다시피 했다.독일 내에서는 보드게임 개발자로는 물론이고 퀴즈북 작가로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수수께끼의 성(Der Palast der Rätsel)'이라든지 '피라미드의 수수께끼(Die Rätsel der Pyramide)' 등의 작품이 꽤 인기를 끌었다.
3. 특징
볼프강 크라머의 게임 난이도는 높은 편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치밀한 게임 메커니즘을 자랑한다. 빡빡할 정도로 게임 자유도를 배제하고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정해진 룰 안에서 통제하는 것이 크라머 게임의 근본적인 특징. 주사위로 대표되는 운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 또한 주목할 만 하다. 오죽하면 크라머는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 이러한 특징이 후대의 게임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이른바 유로게임과 테마게임을 구분하는 큰 기준이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크라머를 유로게임의 선각자 중 하나로 지칭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드게임을 단순히 유흥거리를 넘어 하나의 전략 시뮬레이션 도구로 격상시킨 격.다만 이러한 빡빡한 메커니즘은 매우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는데, 게임을 즐기는 단계까지 가려면 일단 공부를 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젝스님트 같이 그의 게임 중에서도 손쉬운 파티게임이 존재하지만, 티칼이나 토레스만 하더라도 상당히 메커니즘이 빡빡한 편이고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특히, 이 게임들이 처음 출시되었던 시기에는 이 호불호가 더욱 극명하게 갈려서, 보드게이머들의 부류가 크게 갈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메커니즘 결벽증이 보드게임의 질을 한층 끌어올리고 더 다양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의외로 지금은 보드게임의 당연한 요소처럼 느껴지는 것들 중에 그의 손 끝에서 출발한 것이 많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크라머스트립(Kramerleiste)과 액션 포인트(AP) 시스템.
크라머 이전에는 보드게임의 포인트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승패를 가르는 요소로 작용했고, 다득점 대 다득점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보드게임 디자인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다득점을 기록하는 별도의 종이나 보드를 구성요소로 추가해야 했기 때문. 하지만 톱 시크릿 스파이를 통해 보드 테두리를 순환식 스코어보드로 활용한다는 간단명료한 이론을 처음 도입한 이후로 이러한 아이디어는 크라머스트립, 크라머라이스테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후의 유로게임들이 잇따라 크라머의 디자인을 활용하기 시작하며 최종점수가 100점을 넘기는 다득점 게임들이 나오게 되었다. 지금 보면 너무도 당연해보이는 보드판의 스코어테두리가 바로 크라머의 작품.
크라머가 티칼을 필두로 한 가면 3부작과 토레스를 내놓으면서 체계적으로 정립한 AP(Action Point) 시스템 또한 보드게임의 RPG 요소를 강화한 혁명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 이전에도 보드게임 내에서 한 사람이 한 라운드 내에 행동할 수 있는 제한은 당연히 존재했지만, 어찌 보면 한 턴에 하나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를 수치화시킬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 이것을 각자 가진 AP를 활용하여 행동한다는 개념으로 틀어버린 크라머의 발상은 보드게이머들과 다른 개발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곧 액션의 가치에 따라 소모하는 AP를 다르게 하여 게이머들에게 투자에 대한 고민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하나의 보드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액션의 수를 크게 다양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000년대 들어서 보드게임의 큰 흐름이 변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하는데, 유로게임이 다양한 테마를 가질 수 있게 되고, 하나의 보드게임 내에 수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끔 한 액션포인트의 체계화 또한 크라머가 보드게임 업계에 끼친 큰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보드게임계에서 나름 자신의 라인(?)이 존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리햐르트 울리히(Richard Ulrich)와 미하엘 키슬링(Michael Kiesling)이 대표적인 영혼의 단짝. 초창기에는 혼자만의 작품을 만드는 일이 많았지만, 리햐르트 울리히와 엘 그란데 등을 히트시키며 먼저 작업을 시작했고, 후에는 미하엘 키슬링과 함께 작업하며 작품세계를 더욱 다양하게 구축하고 있는 편. 특히 가면 3부작으로 이름을 알린 키슬링과의 콤비는 이른바 KK 콤비라고 불리며 현재까지도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KU 콤비의 작품은 경제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는 한편, KK 콤비의 작품은 액션 포인트로 대표되는 다양한 행동력의 투자를 통한 포인트 경쟁 요소가 더 강조되는 편인데, 크라머가 워낙 다양한 테마로 작품활동을 하는 만큼 어느 한 마디로 이들의 작품을 정의하기는 힘든 편이다.
4. 대표작
4.1. 단독작품
4.2. 리햐르트 울리히(Richard Ulrich)와의 공동작품
- 엘 그란데
- 피렌체의 제후
4.3. 미하엘 키슬링(Michael Kiesling)과의 공동작품
4.4. 기타 디자이너와의 공동작품
- 블록스 - 위르겐 P. K. 그루나우(Jürgen P. K. Grunau), 한스 라간(Hans Raggan)
- 콜로세움 - 마르쿠스 륍케(Markus Lübke)
- X님트[4] - 라인하르트 슈타우페(Reinhard Staupe)
[1]
톱 시크릿 스파이, 아우프 악제, 엘 그란데,
티칼,
토레스로 86년, 87년, 96년, 99년, 00년 수상, 2연패만 두 번이다. 크라머 다음으로 많은 수상을 한 인물은
카탄의 제작자인
클라우스 토이버로 4회.
[2]
보드게임 업계의 제작자 풀이 점점 다변화되는 추세를 보면, 크라머의 이 기록은 한동안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물론 독일은 크라머 이전에도 칙칙한 날씨 때문에 보드게임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었다. 크라머의 역할은 이런 민간 룰을 출판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체계화하고 전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게끔 한 것.
[4]
젝스님트의 후속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