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8 14:02:05

보에몽 1세


파일:Coat_of_Arms_of_Prince_Bohémond_VI_of_Antioch.png
안티오키아 공
{{{#!wiki style="margin:0 -10px -5px" color: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오트빌 왕조 푸아티에 왕조
보에몽 1세 보에몽 2세 콩스탕스 보에몽 3세
푸아티에 왕조 사티용 왕조
레몽 르노
푸아티에 왕조
보에몽 4세 레몽 루벤 보에몽 4세 보에몽 5세 보에몽 6세 }}}}}}}}}

1. 개요2. 행적
2.1. 유, 청년기 시절2.2. 로베르 기스카르 전쟁2.3. 로베르의 죽음2.4. 제1차 십자군 전쟁2.5. 안티오키아 공국을 차지하다2.6. 실패와 죽음
3. 기타4.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Prince_Bohémond_1er_de_tarente.jpg
타란트의 보에몽
(Bohémond de Tarente)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남이며 제1차 십자군 원정의 주요 지도자이자 안티오키아 공국의 지배자가 된 인물.

2. 행적

2.1. 유, 청년기 시절

보에몽은 로베르 기스카르의 첫 번째 부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알베라다는, 말단 귀족[1]의 6남이라는 이유로 영지 한 톨 없던 로베르에게 지참금 명목으로 수백 명의 기사를 데려왔고, 그는 이를 바탕으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더 많은 정치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결혼 상대를 발견한 로베르는 교황을 구워삶아 알베라다와는 근친이라고 주장하며 이혼에 성공한다. 사실 이는 중세에 흔한 일이었고, 보통 이럴 경우 이혼한 부인에게서 태어난 자식에겐 상속권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장남 보에몽은 로베르로부터 상속권을 받지 못했다. 왜냐면 로베르의 두번째 부인 시켈가이타[2]가 워낙 거물이었고 성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켈가이타는 1073년 남편 로베르가 앓아눕자, 영지의 주요인물들을 모아놓고는 자신의 친아들 로제르, 즉 보에몽의 이복동생에게 상속권이 있다고 선포해버렸다.

한편 보에몽의 친모인 알베라다는 아들이 기사교육을 잘 받도록 힘 써준 후 재혼했는데, 물론 근친이라는 이유는 단순한 명분에 불과했기 때문에, 로베르와 이혼 후, 그의 조카, 그러니까 아들의 사촌과 결혼한 것이 함정이다. 어쨌거나 보에몽은 큰 키와 빼어난 외모[3][4], 강인한 육체를 가진 청년으로 자라나 촉망을 받았으며, 뛰어난 검술 실력으로 명성이 높았다.

2.2. 로베르 기스카르 전쟁

로베르는 남부 이탈리아의 패권을 잡았고 곧이어 교황으로부터 막강한 후원을 받아 남부 이탈리아의 탈환을 노리던 동로마 제국과 맞서 싸우게 된다. 이때 보에몽은 아버지 군대의 일부 지휘권을 하사받아 뛰어난 전사로 명성을 드높였다. 하지만 알렉시오스 1세가 제국을 재정비하고 총력을 다하자 보에몽과 로베르는 패배를 거듭했고, 이후 1083년 그들의 군대는 동로마군에 격파당하고 보에몽은 터덜터덜 시칠리아 왕국으로 귀환한다.

2.3. 로베르의 죽음

곧이어 1085년 로베르가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노르만족의 상속법[5]에 의해, 이복 동생인 로제르가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아풀리아 공작위 등 모든 작위를 상속받았고 보에몽은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못하고 계승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1086년 보에몽은 반란을 일으켜 타란토 등의 남부 아풀리아 도시들을 점령하고 이복동생 로제르는 아풀리아 공국의 브린디시, 콘베르사노 영지와 레체 지방의 갈리폴리에 대한 보에몽의 지배권을 인정하게 된다.

그 후 1087~88년 간 프라녜토[6] 전투를 치르는 등 대차게 치고박고 싸운 두 형제는 어느정도 합의를 보아 보에몽이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를 포기하는 대신 타란토 공국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2.4. 제1차 십자군 전쟁

1095년에 이르러 십자군 전쟁이 발발한다. 1096년 아말피를 공략하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에몽은 병력을 모아 조카인 오트빌의 탕크레드, 살레르노의 로저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게 됐고, 이 전쟁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보에몽은 고드프루아, 레몽과 함께 핵심 지도자가 되어 십자군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

2.5. 안티오키아 공국을 차지하다

안티오키아 공략전에서 보에몽은 안티오키아의 정복자라는 영광을 탐내며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레몽과 대립했다.

보에몽은 레몽의 단기전에 반대하고, 안티오키아 내부에 첩자를 심은 뒤, 공성전을 시도했다. 허나 식량 사정이 악화되자, 십자군은 약탈을 위해 군세가 자주 분산됐고, 안티오키아 방위군의 습격을 받아 자주 피해를 입게 된다. 이와중에 보에몽은 다른 십자군 영주들이 그를 암살하려고 한다는 거짓 밀고를 흘려 동로마 제국 황제의 대리인이었던 타티키오스를 제국으로 돌려보냈고, 보에몽은 다른 십자군 지휘관들에게 자신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돌아갈 것이라고 협박하여 강제로 협조를 얻어낸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를 구원하려는 튀르크의 증원군을 격파하고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냈으며, 안티오키아 내부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믿는 기독교인 수비대장 피루즈를 매수한다.[7] 피루즈는 보에몽에게 자신의 아들을 인질로 맡기고 도시를 내어줄 것을 약속했다. 보에몽은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강조한 다음에 만약 자신이 안티오키아를 단독으로 점령하면 자신에게 지배권을 양도할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십자군 지휘관들이 이에 동의했지만 레몽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곳은 제국에 반환하겠노라 맹세한 서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보에몽은 동로마 제국의 알렉시우스 황제가 십자군을 돕겠노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으니 자신들 역시 서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며 다른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이는 앞으로 획득한 땅들도 동로마 제국에 돌려주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대외적인 명분이 되므로 결국 다른 지휘관들도 동의했다.

1098년 6월 3일 아침, 십자군은 짐짓 카르부카를 상대하러 떠나는 것처럼 동쪽으로 떠났고 안티오키아인들은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그날 밤, 십자군들은 피루즈가 몰래 연 문을 통해 즉시 안티오키아를 향해 들이쳤다. 보에몽의 병사들이 안티오키아 내부로 진입했고, 내부의 요새를 제외한 도시의 대부분이 단 몇 시간 만에 함락됐다. 안티오키아를 점령한 십자군은 튀르크인들을 보는 족족 모조리 척살했고 이에 휘말린 아르메니아인들과 정교도들도 많이 죽었다. 십자군은 실로 엄청난 전리품을 얻어 보급품 부족 현상을 해결했으며, 안티오키아의 성주였던 야기 시얀은 달아나던 도중,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잡혀 죽었고 이내 그들은 성주의 목을 베어 십자군에게 바쳤다.

이후 보에몽은 스스로를 안티오키아 공작이라 선포한 뒤 점거하고는 더이상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진격을 거부했다. 그는 다음 해 예루살렘이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야,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이 십자군 서약을 준수(...)했노라 선언했고, 이어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십자군 왕국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2.6. 실패와 죽음

안티오키아를 되찾으려던 알렉시오스 1세 마누일 부투미티스가 이끄는 1만 5천의 군세로 킬리키아와 북시리아를 휩쓸었으나 보에몽은 다행히 전화(戰禍)를 피했다. 그러나 타우루스 산맥을 통제하는 요충지였던 멜리테네를 다니슈멘드 왕조가 공격하자, 아르메니아인 영주들을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적은 병력을 이끌다가 결국 다니슈멘드의 대군에 의해 포로로 잡히게 됐다. 이 사건을 '보에몽 경매'라고 부르는데, 주요 입찰자는 총 세 명이었고, 그들은 각각 즉위와 동시에 그에게 털리고 충성 서약을 배반 당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니케아를 두 눈 뜨고 빼앗긴 채, 도릴레온에서 보에몽의 침착한 지휘에 대패하고 물러났던 룸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 그리고 사로잡힌 보에몽 본인(...)이었다. 어쨌거나 각 군주들의 입찰가는 다음과 같았다.
알렉시오스 1세 : 현찰 박치기로 26만 디나르[8]
클르츠 아르슬란 : 13만 디나르와 휴전 협약[9]
보에몽 : 13만 디나르와 군사적 협력[10]

다니슈멘드 술탄은 이 세 가지 제안 중에서 보에몽의 제안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풀려나긴 했으나 세력이 약해진 보에몽은 이미 강성해진 동로마 제국과 세력 균형이 선 우트르메르( 십자군 국가)를 떠나 전세를 뒤집기 위해 시칠리아에서 군사를 일으켜 동로마 제국의 두라초 항구를 공격했다. 그러나 과거에 그가 엿먹였던 타티키오스와 함께 요안니스 콤니노스 두카스가 그를 맞이했고, 노르만족 군대는 안티오키아 방면으로도, 서부 제국 방면으로도 패배하여 1108년 데볼 조약이라 불리는 굴욕적인 항복 조약을 맺었다

조약에 따라 안티오키아는 명목상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어 동로마 제국에 (전쟁 시) 병력과 세금을 납부하게 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정교회 관할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보에몽은 비록 형식적이었지만, 제국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보에몽은 실의에 빠져 안티오키아를 떠나 남부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이후 1111년에 사망한다.

3. 기타

십자군 이전의 여러 해 동안 보에몽이 동로마 영토를 공격했기 때문에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의 딸인 안나 콤니니는 그를 심술궂고 사악하며 전혀 믿을 수 없는 악당으로 평가했으나, 보에몽의 외모에 대해서 만큼은 키가 크고 가슴이 우람하며 잘생긴 얼굴에 눈은 푸르고 반짝였으며, 머리카락은 짧고 깔끔하게 면도했다며 상당히 호의적으로 묘사했다.[11]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3권에 걸쳐 등장하는데, 특히 1차 십자군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2권에서는 사실상 주인공급의 비중을 자랑한다. 행적에 대한 묘사는 개정판 이전의 2000년대 이라크전 당시 반미 풍조에 편승했던 본작의 내용과 맞물려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악역에 가깝다. 1권에서 첫 등장 시 "서방 최강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하는데[12], 그에 걸맞게 무예뿐 아니라 지략 또한 출중한 인물로 묘사된다.[13]

기쁠 때나 혹은 적과 싸울 때에는 괴물 같은 얼굴을 드러내지만, 속내를 감추고 점잖은 척하며 남을 속이려 할 때에는 조각상을 연상케하는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는 등 감쪽같은 안면 체인지가 인상적이다.[14] 작중에서는 알렉시오스와 고드프루아 등을 뒤통수치며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3권에서는 알렉시오스 1세 황제와의 결전에서 참패하며 허무하게 퇴장한다.

크루세이더 킹즈 2의 1066년 시나리오에서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남으로 설정되어 있다. 역사와는 다르게 상속권은 배제되지 않아 그대로 쭉 플레이가 가능하다. 거기에 1098년으로 연도를 맞추면 안티오키아 공국의 공작으로 설정되어 있어 십자군 영주로서도 플레이가 가능하다.

크루세이더 킹즈 3의 1066년 시나리오의 추천 인물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남으로 등장하고, 고증에 따라 상속권은 박탈되어 있다.

4. 관련 문서


[1] 오트빌의 탕크레드.(생몰년도: 980년 ~ 1041년) 노르망디 코탕탱 반도의 작은 영주였지만 능력은 꽤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으로 나름대로의 기반을 닦았고, 12명(...)의 아들 중 상당수가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2] 랑고바르드족 영주인 살레르노 공작의 딸이었다. 이후 기스카르의 동로마 원정 때 큰 활약을 한다. [3] 다만 웃을 때는 인상이 변했다고 한다. 이를 잘 그려낸 만화가 바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권은 사실상 그의 이야기다. [4] 동로마 제국의 공주였던 안나 콤니니가 쓴 문헌, 알렉시아스에 의하면 보에몽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외모였다고 하는데, 그의 조상들이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5] 위에 언급되었지만, 바이킹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상속자를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족이 모여 회의를 통해 상속자를 결정했다. [6] 프라녜토는 베네벤토 근처에 있었는데, 보에몽은 여기서 로제르의 군대에 패하여 점령지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타란토로 퇴각한다. [7] 피루즈가 어째서 보에몽의 매수에 넘어갔느냐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는데, 그의 아내가 튀르크인 상관과 불륜 관계라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대야성이슬람 교도들에게 치를 떨던 나머지 도시를 넘겨준 것이란 설도 있다. 또 다른 설로는 그가 곡물을 횡령한 것이 들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도 한다. [8] 과연 황제답게 돈이 많았다. [9] 보에몽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 자신이 공격하겠다고 했는데, 거의 협박에 가깝다. [10] 돈에 더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가장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룸 술탄국과는 휴전이고 나발이고 틈만나면 치고 박았으므로. [11] 댄 존스, 중세인들 1권, 이재황 옮김, 2023, 384p [12] 첫 등장시에는 "으르렁!"하고 포효하는 것으로 등장했다. 기자가 그에게 왜 이번 전쟁에 참가하느냐고 묻자, 잠시 말이 없더니 더 크게 "으르렁!!!" 하고 울부짖는다. 그가 성전이라는 명분 아래 남에게는 말 못할 자신만의 꿍꿍이를 품고 있음을 드러내는 모습. 다만 2권부터는 멀쩡히 말을 한다. [13]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를 따라 종군했을 당시 알렉시오스 1세 황제의 작전을 간파하여, 매복지를 우회해 동로마군을 격파하고, 십자군 원정 때에 룸 술탄국의 클르츠 아르슬란에게 포위당하자 침착한 지휘를 통해 반격을 가해 적을 격퇴하는 등 무지막지한 지략과 전투력이 잘 드러난다. [14] 이런 묘사는 안나 콤니니의 기록을 참조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보에몽은 고전기 그리스 조각상과 같은 당당한 체격의 미남이었으나 웃을 때에는 콧김을 뿜고 몸을 부르르 떨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