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7:50:16

보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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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onampak.jpg
보남팍의 모습[1]
1. 개요2. 벽화
2.1. 1번 방2.2. 2번 방2.3. 3번 방
3. 관광

[clearfix]

1. 개요

Bonampak
보남팍[2] 멕시코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유적이다. 고전기의 패권국들인 티칼이나 칼라크물, 후고전기의 패권국인 치첸 이트사 등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큰 도시도 아니었고, 역사적으로도 이들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내부의 벽화가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어 그 이름을 알린 도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유적인데, 이 보남팍 벽화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마야 문명이 사제들이 지배하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톱을 뜯어내고 인신공양을 일삼는 내용의 보남팍 벽화가 발견되자 마야 문명이 그 누구보다도 피에 찌들어 살았다는 게 밝혀지면서 마야 문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

보남팍 도시 자체는 인근의 대도시였던 약스칠란의 속국이었다. 고전기 후기(AD 580 ~ 800) 즈음에 가장 번성했던 걸로 추정된다. 원래는 독립적인 도시였으나 보남팍의 왕 새 재규어[3] 약스칠란의 군대에게 대패하면서 속국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보남팍은 60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완전한 신하국이 되어버렸고, 약스칠란은 자소우 찬 무아완 1세를 보남팍의 속왕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약스칠란은 장인들을 보내서 자소우 찬 무아완 1세의 왕권을 인정하고 이를 기념하는 벽화를 그렸는데, 이 벽화가 거의 온전한 채로 살아남으면서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어쨌거나 보남팍은 이후에도 쭉 약스칠란의 속국으로 남아있다가 9세기 경 약스칠란의 쇠퇴와 함께 멸망했다.

2. 벽화

파일:bonampak-mural-model-2.jpg 파일:a83d09f98f549aff6f8372f8ca950b36.jpg
벽화가 그려진 방들을 모형으로 재현한 모습. 1번 방의 실제 모습.
앞서 언급했지만 보남팍 벽화의 내용은 자소우 찬 무아완 1세와 그 자식들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대략 8세기 말에 지어진[4] '1번 건물' 안쪽에 그려져 있다. 건물의 외관은 반쯤 허물어져서 돌무더기에 가깝지만 내부는 완벽한 수준으로 보존되어 있어 벽화가 온전하게 발견될 수 있었다. 1번 건물에는 총 3개의 방이 있고 이 방들마다 연대순으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1번 방에는 공물을 바치는 모습,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있으며, 2번 방에는 전쟁과 인간들을 도살해 제물로 바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3번 방에는 순례객과 방문객들과 함께 춤을 추고 유혈낭자한 의식을 치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 합쳐보면 방 3개에 총 281명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인물들 위에는 해당 인사의 이름 표식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5]

2.1. 1번 방

파일:bonampak murals.jpg
보남팍의 1번 방에 그려진 벽화를 재현하여 한눈에 보기쉽게 펼쳐놓은 모습.

보남팍의 왕 자소우 찬 무아완 1세가 궁전에서 제 아들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다양한 설명들과 함께 총 77명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제일 먼저 벽화의 두 번째 면 최하단, 하늘색 바탕에 세 명의 인물들이 큼직하게 그려진 게 눈에 띈다. 뒤에 거대한 깃털 장식을 달고 있으며 재규어, 케찰코아틀, 뱀 모양의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친 채로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보남팍의 어린 후계자들을 묘사한 것이다. 처음에는 3명 중 가운데 있는 인물이 보남팍의 왕 자소우 찬 무아완 1세라고 여겨졌지만 훗날 연구가 더 진행되면서 알고보니 자소우 찬 무아완 1세의 아들인 추즈 찬 무아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3명의 왼쪽에 서있는 흰 모자를 쓴 인물들은 악사들이다. 북이나 거북 껍데기 같은 것들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3명의 오른쪽에 서있는 8명의 인물들은 지역의 총독이나 고위 신하들이다. 주목할만한 건 이 8명의 총독들 중 HF-71번 인물이다. 길고 가는 담뱃대를 꼬나쥔 채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왕의 행사에 이 정도의 자세를 보였다는 건 아마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걸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 8명의 총독들의 오른쪽에는 더 많은 악사들이 나팔이나 타악기 등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벽화의 주황빛 바탕 두 번째 층에 있는 인물들은 왕과 그에게 공물을 바치러 온 신하들이다. 흰색 망토를 두른 인물들이 바로 신하들이다. 처음에는 남쪽 벽 단 위에 올라가있는 인물이 추즈 찬 무아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추가 연구가 이루어진 결과, 그 어떤 신하들도 단 위에 올라간 인물을 쳐다보고 있지 않으며 단 위에 올라간 인물의 얼굴 표식이 여성의 것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아마 추즈 찬 무아완의 아내거나 첩이 아닐까 짐작된다. 한편 자소우 찬 무아완 1세는 서쪽 벽의 왕좌 위에 올라앉아있다. 자소우 찬 무아완 1세가 앉아있는 왕좌 아래에는 총 5개의 꾸러미들이 놓여있다. 연구결과 이 꾸러미들이 '카카우', 즉 카카오 열매라는 것이 밝혀졌고, 꾸러미 하나 당 8,000개, 총합 40,000개에 달하는 카카오 열매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마야 문명에서 화폐로도 쓰이던 카카오 열매 40,000개면 상당한 금액인데, 아마 신하들이 왕에게 공물로 바친 재물이 아닐까 추정된다.

맨 위쪽 옅은 하늘색 바탕의 세 번째 층은 신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태양신의 얼굴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그려졌고 그 옆에는 거대한 악어 모습을 한 하늘의 신이 태양신을 등에 업고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2.2. 2번 방

파일:Bonampak-Room-2.webp
보남팍의 2번 방에 그려진 벽화를 재현하여 한눈에 보기쉽게 펼쳐놓은 모습.

1번 방에 그려진 벽화가 후계자 의식을 묘사했다면 2번 방에 그려진 그림은 전쟁을 묘사한 벽화다. 3개의 방들 중에서도 가장 크기가 커서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총 139명의 인물들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에서는 두 번째 면에 해당하는 게 남쪽 벽인데, 이 남쪽 벽에는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그려놨다. 자세히 보면 여기서도 재밌는 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마야인들은 왼손잡이는 나약하고 여성적인, 즉 좋지 못한 것으로 여겼고, 반대로 오른손잡이는 강인하고 전사다운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벽화에서도 패배하거나 쓰러진 전사들을 보면 죄다 왼손잡이로 그려놨다. 심지어 어떤 건 두 손을 다 왼손으로 그려넣기도 했다. 반대로 승리한 전사들은 오른손잡이로 묘사했고, 어떤 전사는 두 손 모두 오른손이다.

남쪽 벽 한가운데, 큼직한 검은빛 재규어 모양의 투구를 쓴 인물이 바로 보남팍의 국왕 자소우 찬 무아완 1세이다. 당연히 오른손으로 큰 창을 들고 있으며 재규어 가죽으로 만든 흉갑, 신발로 온 몸을 휘감았다. 그 뒤에는 보남팍의 전사들이 용감한 자세로 그려졌고, 반대편에는 적국의 전사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모두는 아니지만 반대 진영 전사들은 상당수가 이미 패배해 옷이 벗겨진 채로 쓰러져 있으며, 일부는 보남팍 병사들에게 머리채가 잡힌 채로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남쪽 벽 반대편의 북쪽 벽에는 싸움이 끝난 뒤 포로로 잡힌 적국의 병사들이 말그대로 도살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보남팍에서 가장 흥미롭고 잔인한 장면이 바로 이 벽화이다. 포로들은 대부분이 벌거벗겨진 채로 신음하고 있고, 손톱이 뜯겨나가는 등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다. 벌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일부는 아예 이빨이 죄다 뽑혀나갔다. 고문이 끝나고 포로들이 고통을 당할만큼 당하고 난 이후에는 목을 잘라 전시했다. 자소우 찬 무아완 1세는 여기서도 등장한다. 아내와 신하들과 함께 처형식과 고문을 주도하며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참고로 이 2번 방에 그려진 벽화는 마야 세계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뜨린 벽화기도 하다. 이 벽화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야 학자들은 마야인들을 평화로운 문명인으로 생각했다. 천문을 관측하는 신관들이 통치하는, 허구한날 별이나 올려다보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문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벽화가 발견된 이후에는 마야 문명이 아즈텍 제국이나 다른 남미 문명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엄청나게 잔인했던 문명이라는 게 밝혀지며 마야학계에 크나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2.3. 3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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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남팍의 3번 방에 그려진 벽화를 재현하여 한눈에 보기쉽게 펼쳐놓은 모습.

2번 방도 매우 잔인한 모습을 묘사한 벽화지만 3번 방의 벽화도 만만치 않다. 승리를 축하하고 제의를 올리는 내용의 벽화인데, 총 65명의 인물들이 그려졌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산 채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는 끔찍한 의식이다. 보통 이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는 의식은 아즈텍 제국의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이쪽이 원조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즈텍 제국 성립 이전에도 마야 문명으로 대표되는 메소아메리카와 중남미 지방에서는 인신공양 풍습이 보편적이었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자면 하늘색 바탕의 두 번째 층에 그려진 3명의 인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케찰코아틀 형상의 녹색 깃털 장식들을 둘러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피묻은 대퇴골로 만든 제례용 도끼를 손에 들고 있다. 이 3명의 인물들은 앞서 1번 방에서 언급한 3명의 후계자들과 정확히 동일하다. 즉 자소우 찬 무아완 1세의 후계자인 추즈 찬 무아완과 그의 형제 2명을 의미한다. 바로 아래에는 한 인물이 무릎을 꿇은채 엎드려있는데, 원래는 색이 벗겨져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적외선 검사 결과 펄떡이는 심장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두 명의 병사들에 의해 피라미드 아래 계단으로 끌려내려가는 불쌍한 포로의 가슴에서 적출한 심장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3명의 왕자들 아래에 그려진 7명의 인물들은 아마 비슷한 지위의 고위 계급일 걸로 추정된다. 모두 한쪽 발뒤꿈치를 올려세운 채로 제의의 춤을 추고 있다. 아마 전설 상의 신 케찰코아틀이 비행하는 모습을 모방한 게 아닐까 추정만 하는 중이다. 남쪽 벽 맨 위 꼭대기에는 눈 한쌍과 뾰족한 앞니 하나를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 하나가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아마 제물을 받는 신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서쪽 벽에는 제물을 바치는 도중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의 무리가 서있고 동쪽 벽에는 제물 의식을 관람하는 고위층 여성들의 모습이 있다. 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제물 도중 튀기는 피를 막을 수 있게 가림막을 쳐주고 있으며 그 옆에는 10명의 흰 망토를 입은 고위 관료들이 제물 의식을 관람하며 손짓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 관광

  • 관광 자체로는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닌데, 팔렝케 등에 비하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팔렝케에서 광역버스로 환승해서 이동해야하며, 이거 또한 과테말라 방향으로 145km나 떨어져 있다.



[1] 보남팍의 아크로폴리스 건물군의 모습이다. / 오른쪽 비계와 공사용 합판으로 둘러처진 입구 세 개 나 있는 건물이 바로 아래에서 설명할 벽화들이 그려진 건물, 벽화신전이다. [2] 뜻은 마야어채색한 벽이라는 뜻인데, 벽화가 발견됨으로써 이 유적의 이름도 결정된 셈이다. [3] 아직 마야 문자의 뜻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거니와 이름 체계가 워낙 복잡해 고고학자들이 붙인 가명이다. [4] 정확히 말하면 서기 791년 11월 11일이다. [5] 일부 인물의 위에는 이름 표식이 없다. 보남팍이 멸망하기 직전인 8세기 말에 만들어진 터라 마감할 시간이 없어서일수도 있고, 아니면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