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라콩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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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19대 |
베르나르 라콩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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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
1984 |
베르나르 라콩브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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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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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베르나르 라콩브 Bernard Lacom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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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2년
8월 15일 ([age(1952-08-15)]세) 프랑스 오베르뉴론지방 리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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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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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71cm | |
직업 |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축구행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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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CS 퐁테네스 (1960~1969 / 유스) 올랭피크 리옹 (1969~1978) AS 생테티엔 (1978~1979)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79~1987) |
감독 | 올랭피크 리옹 (1996~2000) | |
행정 |
올랭피크 리옹 (1988~1996 / 디렉터) 올랭피크 리옹 (2000~2019 /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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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38경기 12골 ( 프랑스 / 1973~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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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는
벤제마를 (프랑스)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보지 않는다. 벤제마는 그 세대에서 최고의 스트라이커이다. 창의적인 스타일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오랜 기간 주전으로 뛴다는 게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는 라콩브이다.
장피에르 파팽 (2021년 프랑스의 축구매체 르퀴프에 실린 프랑스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 대한 장피에르 파팽의 의견과 평가.)
프랑스의 축구인이다.장피에르 파팽 (2021년 프랑스의 축구매체 르퀴프에 실린 프랑스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 대한 장피에르 파팽의 의견과 평가.)
리그 1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빛나는 프랑스와 리그앙의 레전드이다.[1]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69년 올랭피크 리옹에서 데뷔한 라콩브는 1987년까지 18년 동안 올랭피크 리옹, AS 생테티엔, FC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 활약하며 총 592경기에 출전하여 304골을 넣었고,[2] 리그 우승 3회, 쿠프 드 프랑스 우승 2회,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2회를 이끌었다. 특히 1971-72 시즌부터 1984-85 시즌까지 부상으로 시즌 절반 이상 결장한 1975-76 시즌 단 1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13시즌 동안 매시즌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장기간 꾸준히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3]2.2. 국가대표 경력
1972-73 시즌 리그 득점 순위 2위에 오르는 활약으로 슈테판 코바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973년 9월 8일 그리스와의 친선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1974년 4월 27일 체코와의 친선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에 참가하여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킥오프 후 1분도 지나기전에 디디에 식스의 크로스를 헤더로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이 경기에서 프랑스는 이탈리아에게 1:2 역전패를 허용하며 활약이 빛을 바랬다. 또한 이후에 치러진 개최국 아르헨티나전에서 편파판정으로 1:2 석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서는 3-4위전까지 7경기 중 3경기에 출전하여 1도움을 기록하며 프랑스가 대회 4위를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UEFA 유로 1984에서는 결승전까지 5경기 중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유고슬라비아전을 제외한 전경기 모두 출전하여 덴마크전에서 1도움을 기록했고 주전으로 프랑스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도왔다.
대회 종료 후 명예롭게 은퇴했다.
3. 감독 경력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기 스테판 감독의 후임으로 친정팀 올랭피크 리옹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4시즌 동안 팀의 리그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고, UEFA 인터토토컵 우승, UEFA컵 8강을 달성했다. 통산 전적은 167전 92승 27무 48패(승률 55%)이다.4. 대회 기록
4.1. 선수
-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79~1987)
- 프랑스 디비시옹 1: 1983-84, 1984-85, 1986-87
- 쿠프 드 프랑스: 1985-86, 1986-87
- 트로페 데 샹피옹: 1987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1973~1984)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1984
4.2. 감독
- 올랭피크 리옹 (1996~2000)
- UEFA 인터토토컵: 1997
5. 여담
- 리그앙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지만 의외로 리그 득점왕 타이틀은 없다.[4] 이는 5대 리그 역대 최다 득점 3위 안에 드는 선수들 가운데 웨인 루니와 더불어 유이하다.
[1]
255골. 최다 득점자인 델리오 오니스(299골)는 아르헨티나인이기 때문에 프랑스 선수들 가운데에서는 최다 득점자이다.
#
[2]
리옹(258경기 149골) + 생테티엔(37경기 18골) + 보르도(297경기 137골)
[3]
1971-72 시즌(19골), 1972-73 시즌(23골), 1973-74 시즌(13골), 1974-75 시즌(17골), 1976-77 시즌(21골), 1977-78 시즌(24골), 1978-79 시즌(14골), 1979-80 시즌(11골), 1980-81 시즌(18골), 1981-82 시즌(17골), 1982-83 시즌(20골), 1983-84 시즌(18골), 1984-85 시즌(22골)
[4]
두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1972-73 시즌과 1984-85 시즌 각각
요시프 스코블라르와
바히드 할릴호지치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둘 모두
유고슬라비아 선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