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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9년 3월 23일 |
전라북도 정읍군 | |
사망 | 1946년 3월 4일 |
전라북도 정읍군 | |
서훈 | 건국포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그는 1938년 음력 11월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보천교 계열의 '신종교'에 입교했다. 그가 입교한 신종교는 정읍군 입암면 마석리 김언수가 창시한 것으로, 최수운을 교조로 하는 시천교와 강증산을 교조로 하는 증산교 두 교의에 기초해 유불선을 통합한 민족종교였다. 이 신종교는 표면적으로 시천교를 포교한다고 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였다.'신종교'에 입교한 후 배상일은 1940년 5월 10일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 황의붕의 집에서 김언수, 배상일, 신영화 등과 모임을 가졌다. 이때 '신종교'의 창시자 김언수가 말하기를, '신도 12,000명에게 신통력을 가진 도통군자가 되는 수양을 시키는데 있으며, 강증산의 유저인 대순전교에 의하면 가까운 시일에 전 세계에 병재, 전재, 흉재의 3재가 발생하여 부자, 지자, 권력계급은 모두 사멸하고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은 멸망에 임박할 것이다. 그때 위의 도통군자 12,000명은 그 신통력으로 인하여 생존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장래에 오래도록 조선건국의 큰 공로자로 우대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후 배상일은 6임에 임명되어 함경남도 책임자가 되었으며 1940년 5월 11일 오전 1시부터 증산교 본궐에서 결사조직의 맹서식을 갖고 민족독립과 건국사업에 헌신하자고 결의했다.
위와 같은 활동을 하던 그는 1940년 12월 19일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1943년 8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4년 8월 11일 출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