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9 10:21:54

반드레퓌스파

반드레퓌스파
Antidreyfusards[1]
<colcolor=white><colbgcolor=#1f497d,#2d2f34> 영어 <colbgcolor=#f5f5f5,#2d2f34>Anti-Dreyfusards
활동기간 1894년 ~ 1900년대[2]
이념 보수주의
프랑스 민족주의
드레퓌스의 유죄 주장 및 재심 반대
내부 계파:
스펙트럼 우익 빅 텐트 ( 중도우파 ~ 극우)
연관 사건 드레퓌스 사건
반대 세력 드레퓌스파
파일:드레퓌스는 매국노.jpg
" 매국노!"(Le Traître!)
1899년 11월에 만들어진 드레퓌스 풍자화[12]


1. 개요2. 역사3. 정치 스탠스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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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제3공화국에 존재했었던 우익, 보수주의 정파. 드레퓌스 사건 시기에 활동했다.

2. 역사

이들은 당시 반유대주의 분위기에 힘입어서, 박빙이긴 했지만 1898년 프랑스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13] 다만 반유대주의연맹(Ligue antisémitique)을 비롯한 극우파들은 좁은 의미의 반드레퓌스파 우익 정치연합과 별개로 극우 정치세력으로써 따로 활동했기에 좁은 의미에서는 반드레퓌스파에 속하지 않지만 넓은 의미의 반드레퓌스파에는 속한다.

3. 정치 스탠스

드레퓌스 사건 시기 드레퓌스를 간첩이 맞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1894년 재판으로 드레퓌스가 유죄판결 이후 좌익 진영(드레퓌스파)에서 주장한 '드레퓌스는 반유대주의로 억울한 누명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또 다시 재판할 필요가 없다는 재심 반대파였다.

현대 기준에서 보면 반드레퓌스파 자체가 반유대주의에 불과하지만, 당시 재판으로 드레퓌스가 유죄판결이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반드레퓌스가 전부가 극우는 아니었다. 극우파들이 모든 유대인을 싸잡아 욕하며 증오를 퍼부을 때도 중도우파들은 대충 "유대인들을 믿을 수는 없고 드레퓌스는 간첩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들을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된다." 정도의 스탠스를 취했다. 따라서 재심 전까지는 프랑스 우파 거의 대부분이 반드레퓌스파였다고 보면 된다.[14]

4. 여담

반드레퓌스파가 내셔널리즘을 드러내면서, 그 전까지는 좌익에서도 공유되었고 오히려 좌익에서 더 추구했던 내셔널리즘이 되려 우익 이념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부터 프랑스 주류 좌익 진영은 (우익 진영과 비교했을때 상대적으로) 내셔널리즘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 문장 안에 섞어 쓸 때는 첫 글자를 소문자로 쓴다. (antidreyfusards) 또한 프랑스어 위키백과에서는 인물로써 드레퓌스를 칭할때는 D를 대문자로 쓰지만, 반드레퓌스파에서 드레퓌스의 첫글자 d를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쓴다. [2] 다만 사실상의 정치 집단으로써 반드레퓌스파가 소멸되었다는 것이지, 반드레퓌스 정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06년 7월 12일 최고재판소가 렌 군법회의의 유죄판결을 오판으로 파기,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드레퓌스를 복권시킬 시점에 오면 드레퓌스 논쟁은 프랑스 정치에서 점점 주된 이슈에서 멀어지게 되긴 했으나, 상당수 우익들은 드레퓌스의 무고함을 믿지 않았다. 드레퓌스 사후에도 드레퓌스에 대한 의심과 극우 반유대주의가 극성이었으며, 법원의 판결과 별개로 프랑스군은 1995년(!)에서야 드레퓌스가 무고함을 인정했다. [A] 진보연합(Union progressiste)를 비롯한 중도우파. [B] 진보파(Progressistes)와 국민공화연합(온건공화파) 등의 중도우파. 이들은 반유대주의에는 반대했지만 드레퓌스가 반역자는 맞다는 특이한 관점을 취했는데, 후자는 에밀 졸라 등 드레퓌스파에 속한 이들도 있었다. [A] [B] [7] 진보파는 자유주의적 우파 내지 자유보수주의에 가까웠다면, 진보연합은 기독교 민주주의+자유보수주의에 가까웠다. [C] 왕당파(Monarchistes)의 주류는 우파 성향의 오를레앙주의자들이였다. [C] [D] 반유대주의 연맹(Ligue antisémitique)을 비롯한 극우파. [D] [12] 현재 프랑스의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에도 이 포스터가 보관되어 있다. [13] 해당 문서 결과 문단에서 254석을 획득한게 반드레퓌스파 중 B유형에 해당하는 급진공화당의 자유보수주의자들이며, 두번째로 많은 의석을 얻은 독립급진파가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드레퓌스파다. 여기에 오를레앙주의자들이 얻은 54석이 더해지면 급진공화당과 오를레앙주의자 둘만으로도 이미 과반이 넘는다. [14] 특히 위에서 언급된 반유대주의연맹 같은 극우들은 반드레퓌스파보다 더 우측에 위치한 진성 극우파들이였던 반면에 반드레퓌스파 중 온건파들은 드레퓌스와 일반 유대인을 구별하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이성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