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0:09:03

박진재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朴晋材
? ~ 1207년( 희종 3)

고려의 인물. 최충헌, 최충수의 조카.

2. 생애

1196년에 대정을 지내면서 최충헌이 이의민 일파를 죽일 때 최충헌, 최충수, 노석숭과 함께 했으며, 최충헌이 정권을 잡자 별장이 되었다. 1197년에는 최충수 최충헌에게 명종을 폐위시키자고 제안하면서 사공 왕진을 임금으로 세우려 했으나, 최충헌은 왕민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면서 박진재가 중재해 왕민을 임금으로 세울 것으로 결정했다.

명종이 폐위되고 신종이 즉위하자 형부시랑이 되었으며, 최충수가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던 일로 인해 최충헌이 최충수와 대립하면서 최충헌의 부하들이 박진재와 의논하라고 했다. 박진재는 김약진, 노석숭과 함께 최충헌의 부름을 받자 박진재는 최충헌을 도울 것이라 했다. 최충헌이 최충수를 공격하자 박진재는 김약진, 노석숭과 함께 각자의 군사를 거느리고 최충수를 공격했다.

1202년에 최충헌의 사위 임효명이 과거에 급제하고 합문지후가 되자 축하 연회를 열었으며, 경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김척후가 토벌하러 가면서 박진재는 최충헌, 최이와 함께 길가의 누대에 올라가 군대를 사열하고 병력을 동원해 무력을 시위했다.

1203년에 상서좌승이 되었고 1207년에는 익명으로 박진재가 최충헌을 제거하려고 모의한다는 방이 붙어 최충헌과 사이가 벌어졌으며, 이 때 박진재가 대장군이 되자 문객의 수가 최충헌과 맞먹었고 모두 용감하고 날쌨다. 박진재는 문객 중 관직에 임명된 사람이 적은 것을 한탄하면서 항상 원망하고 불평했으며, 술을 마시면 최충헌의 단점을 말했다.

최충헌이 없다면 국권을 자신이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최충헌을 없애고자 외삼촌이 임금을 없애려고 한다고 퍼뜨렸다. 최충헌은 박진재가 자신을 해칠 것으로 여겨 그를 불러 어찌 자신을 해치려고 하느냐고 했으며, 좌우에 명령하자 박진재는 포박되어 다리의 힘줄을 끊고 백령진으로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후에 병으로 죽었다.

박진재의 문객들도 먼 곳의 섬으로 나누어 유배를 보냈다.

3. 대중매체

  • 2022년 신작인 박시백의 고려사에서는 작은 삼촌인 최충수와 함께 큰 삼촌인 최충헌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처음엔 왕을 누구로 세우는 지에 대해 최충헌과 최충수의 의견이 갈렸지만 박진재가 최충헌의 의견을 지지하자 최충수도 하는 수 없이 한 숨을 쉬고는 최충헌의 의견을 따른다. 얼마 안가 최충헌과 최충수의 골육상쟁이 벌어지자 박진재는 최충헌 편에 들어가 최충수를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욕심이 커진 박진재는 최충헌이 없는 한 술자리에서 자신이 1인자가 되야한다고 말실수를 했는데 결국 이것 때문에 최충헌에게 끌려와 아킬레스건이 잘리고 유배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얼마 후에 유배지에서 객사하면서 등장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