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복인(朴福仁) |
본관 | 영암 박씨 |
생몰 | 1878년 ~ 1911년 11월 2일 |
출생지 |
경기도 영평군 서면 소성리 (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1] |
사망지 | 서대문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2. 생애
박복인은 1878년생이며 경기도 영평군 서면 소성리(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출신이다. 그는 1908년 10월 6일 연기우 의병장의 부대에서 활동하던 중 병활동상황을 일경에게 밀고한 궁촌리 이장 김치범(金致範)을 경기도 영평군 서면 산내정리 산속으로 납치하여 처단했다. 이어 1909년 10월 10일 홍경칠(洪敬七)[2]과 함께 영평군 하리면에서 김규묵(金圭默)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했고, 그해 11월 8일 영평군 남면에 거주하는 이시영(李時寧)[3]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11년 9월 15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살해 및 강도 혐의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항소했지만 1911년 10월 6일 경성공소원과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고, 1911년 11월 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박복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