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0:47:45

박배종(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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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제3회
( 2004년)
제4회
( 2005년)
제5회
( 2006년)
박찬욱
( 올드보이)
박배종
( 웰컴 투 동막골)
봉준호
( 괴물)
박배종
Park Bae-jong
파일:감독박광현.jpg
<colbgcolor=#333><colcolor=#fff> 본명 박광현[1]
출생 1969년 ([age(1969-12-31)] ~ [age(1969-01-01)]세)
충청북도 청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 학사)
데뷔 2002년 묻지마 패밀리 - 내 나이키

1. 개요2. 활동3. 연출 특징4. 필모그래피
4.1. 영화4.2. 드라마4.3. 뮤직비디오
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감독 이전에는 마이클 베이, 잭 스나이더, 데이비드 핀처 처럼 광고 뮤직비디오를 연출했으며, 영상미를 많이 추구한다.

2. 활동

2005년 800만을 동원한[2] 웰컴 투 동막골의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장진 감독이 기획한 묻지마 패밀리를 통하여 데뷔하였지만 옴니버스 영화[3]의 한 에피소드를 맡았을 뿐이고, 장편으로 데뷔한 작품은 웰컴 투 동막골이다. 문제는 이 데뷔작이 너무 큰 대박을 쳐버렸고 그 덕택에 일약 스타 감독이 되어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촉망받던 30대의 감독은 무려 12년이 지나 50대가 되기 직전 조작된 도시로 복귀한다. 성적은 그저 그런 수준.

잠행기간이 길었고 본인은 잠행기간 동안 운이 따르지 않아 영화를 못했다고 하지만 사실 본인이 자초한 문제도 크다. 감독 본인도 인정했지만 웰컴 투 동막골의 성공은 단지 감독이 잘해서 되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일단 원작 자체가 장진이었고 투자를 끌어온 것도 장진의 이름이 컸고 각본도 장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다. 등장하는 배우들인 정재영, 신하균, 임하룡, 류덕환 등은 당대에 유명한 장진사단의 배우였다. 감독은 박광현[4]이었지만 실제로는 장진의 작품이나 다름없었는데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고자 했고 그 것이 잘 풀리지 않았다. 2000년대는 연극계의 거물이었던 장진이[5] 영화계로 넘어오면서 영화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때 였기 때문에 장진 사단에서 계속 자리를 잡았다면 충무로의 스타감독으로 이름을 날렸겠지만 이후의 행보는 매우 어려웠다. 원래는 동막골이 한창 흥행하던 시기에는 장진 감독과 제작자-감독의 관계로 차기작까지 하려고 했었다.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작품은 흥행 및 작품성을 모두 잡은 보기 드문 웰메이드 한국영화로 추앙받고 팝콘씬이나 OST는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지만 당시에 박배종 감독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지 않았다. 굉장히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 스태프를 다룬 것으로 유명했다. 박배종 감독이 한창 동막골로 수없이 인터뷰를 할때 한 얘기였지만 '자기는 항상 아웃사이더였고 충무로에서도 아웃사이더이며 누군가를 통솔하는 것이 어려웠다'라고 밝혔지만 스태프들의 입장에서는 꽤나 고역이었다. 이름을 박광현에서 박배종으로 바꾼 이유 또한 당시 작업했던 스태프들이 10년이 넘도록 자신에 대한 분노와 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죄송스러워서 이름이라도 좀 부드럽게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장기간 잠행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 영화에서 10년 넘게 표류했던 저주받은 영화인 권법[6] 제작비 문제로 어느 순간 한중합작으로 바뀌었는데 캐스팅 문제에서 큰 갈등이 있었고 이 것이 엎어진 주요원인이 되었다. 시나리오의 내용이 우수하다 전해지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사실 또한 묻혀갔다. SF 영화인지라 제작비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결국에 엎어진 망작인데 박배종 감독이 장진 사단을 나오고 이 영화에 매달린 시간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햇수로는 8년에 가깝다. 8년 동안 한 영화에 묶여 있었고 이 영화가 결국 엎어져버리는 12년만에 차기작이 나오는 상황이 생겼다.

조작된 도시가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변요한, 공승연 주연의 별리섬이라는 영화로 1년만에 복귀했는데 이 작품은 장편이 아닌 단편작품이다. 별리라는 단어가 참 많은 의미를 지니는데 바로 본인이 8년 동안 매달린 권법이라는 영화의 주된 배경의 이름이 바로 별리였다.

2019년에는 아이유 주연의 에픽하이 뮤직비디오 '술이 달다'를 감독했다.

2022년 TVING에서 방영된 아일랜드의 연출을 하였다.

3. 연출 특징

강윤성, 백종열 감독과 같이 뮤직비디오와 광고 감독 경력이 있는 영화 감독 중에 인지도나 흥행 면에서 성공한 감독이자, 그런 만큼 비주얼리스트에 속하는 감독이다.

딱히 연출적인 개성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장점으로는 아까 말했다시피 영상미가 좋은 편이고, 무엇보다 현대극과 시대극을 잘 넘나들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영상 감각이다. 백종열 감독이 실용적이면서 세련된 소품 및 배경, 조명을 세련되게 활용해 깔끔하고 세련된 현대적인 화면을 잘 만들고, 강윤성 감독이 한국의 때묻은 시각적 환경과 현실적인 소품 및 연출을 잘 활용해 화려하진 않지만 범죄물에 어울리는 연출을 선보인다면, 박배종 감독은 조성희 감독처럼 판타지나 장르물에 적합한 비주얼을 선보이는 감독이다. 특히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이나, 현대적이고 게임을 보는 것같은 비주얼의 조작된 도시의 액션 및 영상미를 보면 분위기와 장르에 따라 영상미를 만드는 점과 소품 및 감각을 잘 활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출작 모두 판타지건 아니건, 현실성을 일부러 포기하더라도, 장르적 재미 및 비주얼에 집중해 볼 만한 작품을 만든 편이다. 특히 웰컴 투 동막골은 판타지 애니메이션 전문 작곡가인 히사이시 조의 몽글몽글한 음악으로 더욱히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다만 비주얼리스트 감독들이 흔히 그렇듯이 각본 부분에서는 아쉬운 평을 잘 받는 감독이다. 웰컴 투 동막골 또한 개연성의 문제는 있어도, 아름다운 영상미에 슬프고 감성적인 스토리 부분이 완성도와 작품성을 잘 구현된 편이나, 조작된 도시에서는 아무리 의도했다고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개연성이 왔다리갔다리 수준으로 매우 나쁜 편이다. 특히 조작된 도시는 각본과 개연성의 악평 때문에 그리 평가가 나쁜 것도 아님에도 흥행에 실패했다. 그 뒤의 만든 아일랜드란 드라마는 각본 외에도 연출처럼 전반적인 완성도도 떨어진다는 혹평이 많다. 이정범 감독처럼 점차 슬럼프를 겪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도 있는 편.

4. 필모그래피

4.1. 영화

<rowcolor=#fff> 연도 제목 비고
2002년 묻지마 패밀리 - 내 나이키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2013년 안녕 내사랑 단편 영화
2017년 조작된 도시
거미맨[7] 단편 영화
2018년 별리섬

4.2. 드라마

<rowcolor=#fff> 연도 제목 비고
2022년 아일랜드 첫 드라마 연출작

4.3. 뮤직비디오

<rowcolor=#fff> 연도 제목 아티스트 링크
2019년 술이 달다 에픽하이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5. 여담

  • 박배종으로 개명한 이유는 "제가 30대 중반에 영화를 처음 했을 때 독하게 했다. 그 스태프들이 상처받았다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울면서 말을 하더라. 저를 부드럽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바꿨다"고 한다. #


[1] 원래 본명으로 활동했으나 이후 박배종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2] 공식 통계는 800만이었으나 티켓 통계는 650만 정도였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를 기점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영화 관련통계가 그 때만해도 완벽하진 않았다. 2011년부터는 티켓 통계와 공식 통계가 일치한다. 왕의 남자와 같은 2004년 1200만의 대박 작품도 티켓 통계로는 1000만 영화다.물론 그래도 천만 [3] 한 영화가 여러개의 중단편으로 이뤄진 영화. 하지만 각 단편들이 동떨어진 것이아니라 인물 관계에 있어 접접이 있다. 묻지마 패밀리의 경우 한 모텔에 묵은 세 손님을 대상으로 하나씩 이야기가 펼쳐진다. [4] 박광현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박배종이라는 이름은 후술된 여러 논란으로 인하여 반성하는 의미로 최근에 바꿨다고 본인이 직접 방구석 1열에 나와 말했다. [5] 장진은 1971년생으로 박광현 감독보다도 나이가 어렸지만 이미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 택시드리벌, 서툰 사람들, 박수칠때 떠나라, 웰컴 투 동막골을 흥행시키면서 이름값 하나로 티켓 파워를 보장하는 거물이었다. 그야말로 천재. [6] 영화 권법이라고 쳐보면 수많은 기사들이 나오는데 무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제작을 하네마네 했던 영화다. 조인성이 제대할 시점 복귀작으로 유명했고 이 후엔 김수현, 여진구, 송중기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제작되지 못한 영화다. [7] JTBC 예능 전체관람가를 통해 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