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06 01:25:34

미헤일 메스히

조지아의 축구인
파일:external/www.footballtop.com/mixeil_mesxi.jpg
<colbgcolor=#EEE><colcolor=#000> 미헤일 메스히
მიხეილ მესხი
본명 미헤일 샬바제 메스히
მიხეილ შალვას ძე მესხი
Mikheil Shalva dze Meskhi
출생 1937년 1월 12일
그루지야 SSR 트빌리시
(現 조지아 트빌리시)
사망 1991년 4월 22일 (향년 54세)
그루지야 SSR 트빌리시
(現 조지아 트빌리시)
국적
[[소련|]][[틀:국기|]][[틀:국기|]] ( 그루지야 SSR)
신체 169 cm
직업 축구선수 ( 레프트윙 / 은퇴)
소속 <colbgcolor=#EEE><colcolor=#000> 프로 FC 디나모 트빌리시 (1954~1969)
FC 로코모티비 트빌리시 (1970)
국가대표 35경기 4골 ( 소련 / 1959~1966)
1. 소개2. 현역 생활3. 은퇴 이후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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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조지아 가린샤

구 소련 역대 최고의 윙어 중 하나. 레프트 윙으로 드리블 실력이 뛰어났으며 이를 통해 수비진을 괴롭히는데 능했다. 카카 칼라제, 기오르기 킨클라제, 레마즈 센겔리아 등과 함께 조지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

2. 현역 생활

1954년부터 1969년까지 고향의 디나모 트빌리시에서 활약했다. 1970년 잠시 로코모티비 트빌리시로 이적해 활약한 뒤 은퇴했다. 소련 리그는 러시아 혹은 우크라이나 팀들의 독주 무대였으나 메스히가 이끌던 디나모 트빌리시는 1964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국가대표로는 1959년부터 1966년까지 7년간 35경기에 나서 4골을 기록했다. 1차례의 유로,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특히 1960년 유로[1] 대회에서는 주전 레프트 윙어로 레프 야신, 이고르 네토, 발렌틴 이바노프 등과 같은 맴버들과 함께 소련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3. 은퇴 이후

1965년 소련의 명예 스포츠 마스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1969년부터 1991년 사망할 때까지 트빌리시의 Avaza라는 전문 유소년 클럽의 코치이자 이사로 일하였으며, 1998년에는 조지아 축구 협회에 의해 역대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최고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조지아 드림 팀에도 선정되었다. 그가 선수 시절 뛰었던 로코모티브 트빌리시의 경기장 이름이 미헤일 메스히 스타디움으로 개칭되었고, 2014년 11월 이 경기장 주변에 미헤일 메스히의 동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4. 여담

아들인 미헤일 메스히(1961~2003) 역시 축구선수였다. 다만 아버지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참고로 아들 미헤일은 200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조지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미헤일 메스히 스타디움이 있다. 규모 약 2만 7000여석으로 조지아에서 2번째로 큰 구장이다.


[1] 4강 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