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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2세(셀주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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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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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28b6c6> 셀주크 제국 술탄
무함마드 2세 빈 마흐무드
محمد الثاني بن محمود
본명 루큰 알 둔야 왈딘 아부 슈자 무함마드 이븐 마흐무드
رکن الدنیا والدین أبو شجاع محمد الثاني بن محمود ‎
출생 1128년
사망 1159년
재위 셀주크 제국 술탄
1153년 ~ 11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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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와르 카툰
마흐드 라피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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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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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주크 제국 술탄. 말리크샤 3세를 폐위시키고 술탄에 오른 뒤 셀주크 제국을 상대로 봉기한 아바스 왕조 칼리파 알 묵타피를 무찌르려 했으나 실패했다.

2. 생애

1128년경 셀주크 8대 술탄 마흐무드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형제 말리크샤 3세와 함께 쉬라즈에서 자랐고, 기야스 앗 딘 마수드가 말리크샤 3세를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 후제스탄의 말리크(주지사)로 선임되어 통치를 행사했다. 1152년 마수드가 사망한 뒤 형제 말리크샤 3세가 술탄에 올랐지만, 그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1153년 1월 이라크로 진격해 말리크샤 3세를 제압하여 감옥에 가둔 뒤 하마단에서 술탄에 추대되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의 에미르들이 반발하여 호라산에 있던 마수드의 동생 쉴레이만샤를 옹립하여 내전을 벌였다. 게다가 같은 해에 마흐마드 산자르가 오우즈 인들에게 사로잡히면서, 셀주크 제국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쭉 지켜본 아바스 왕조 칼리파 알 묵타피는 1154년 그동안 양성한 친위군을 이끌고 힐라와 와시트 등 이라크 중남부를 공략했다. 여기에 더해 쉴레이만샤가 이라크에 개입하지 않는 조건하에 술탄으로 인정하고 알 말리크 알 무스타지르 칭호를 선사했다. 1156년 봄, 쉴레이만샤가 하마단으로 남하하다가 그해 초여름에 무함마드 2세에게 참패하고 사로잡혔다. 이와 동시에 이란 서부(지발)에 대한 칼리파 군의 공격 역시 격퇴되었다. 무함마드 2세는 여세를 몰아 알 묵타피를 응징하기로 마음먹고, 1157년 1월 모술의 쿠트브 앗 딘과 함께 바그다드로 진격했다.

1157년 1월 12일, 무함마드 2세는 3만의 병력으로 바그다드를 포위했다. 술탄 측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형세를 관망하던 알 묵타피는 티그리스 강 서안의 구시가지(원형도시)를 포기하고 성벽이 짧아 방어에 용이한 동안의 신시가지로 병력을 옮기도록 지시했다. 이후 양안을 이어주는 교각 모두를 파괴하였고 동안의 성벽을 강화하였다. 무함마드 2세는 서안에 진영을 세우고 여러 개의 투석기와 발리스타 등을 배치하였다. 한편 알 묵타피는 칼리파의 적이자 불신자인[1] 술탄에 맞서도록 호소하며 시민들에게 무기를 주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였다. 또한 재상 아운 앗 딘 이븐 후바이라를 시켜 부상당한 병사들 모두에게 각각 5 디나르를 주도록 지시하였다.

한달 반 가량의 준비와 탐색전 끝에 본격적인 공방전은 1157년 3월부터 일어났다. 3월 4일, 술탄은 모술의 재상 자인 앗 딘과 함께 무자비한 폭격 후에 총공격을 시도했다. 수비대는 시민들의 지원에 힘입어 수비에 매진하고 석유를 이용한 화공을 통해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은 무함마드 2세는 이번에는 끊어졌던 교량들의 복구를 지시했고, 3월 29일에 완공되자 병력을 강 건너로 옮겨 동안의 성벽을 공격했다. 소규모 전투가 벌어진 후 또다시 공성전이 벌어졌는데, 수비군은 화공을 통해 적의 투석기를 파괴했고 성벽의 투석기로 적의 파성추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무함마드 2세는 군대를 재정비한 후 섣부른 공격 대신 도시를 봉쇄하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6월 29일, 공격군은 400개의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넘으려 시도했으나 수비군의 맹렬한 화살 세례에 큰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같은 시기 야곱의 여울 전투에서 십자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리던 누르 앗 딘은 칼리파의 영토를 침공한 동생 쿠트브 앗 딘을 꾸짖었다. 길어지는 전쟁에 염증이 나있던 후자의 재상 자인 앗 딘은 이를 핑계로 전선을 이탈해 모술로 돌아갔다. 이로써 셀주크 제국 장기 왕조 간의 동맹과 주종관계는 사실상 종식되었다. 한편 술탄이 오랜 기간 수도를 비운 사이에 폐위된 말리크샤 3세가 하마단을 점령했다. 이 소식을 접한 무함마드 2세 역시 7월 13일, 바그다드를 포기하고 북상하여 수도를 수복했다. 쫓겨난 말리크샤는 후제스탄을 점령해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1160년 오우즈 계열 군벌 샤라프 알딘 일데기즈에게 살해당했다. 이렇게 수도를 되찾았지만 곧 병에 걸렸고, 1159년 하마단에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기야스 앗 딘 마수드의 딸이자 형제 말리크샤 3세의 아내였던 가와르 카툰을 말리크샤 3세 폐위 후 자기 아내로 삼았다. 또한 아르슬란샤의 아들 키르만 샤의 딸 마흐드 라피 카툰을 아내로 삼았으며, 1158년경 아바스 칼리파 알 묵타피와 화해한 뒤 그의 딸인 케르만 카툰을 또다른 아내로 삼았지만 케르만 카툰은 결혼을 성사하기 전에 사망했다. 그가 이들로부터 자식을 얻지 못했기에, 라이의 아미르 이난츠 순쿠르와 마우두드가 쉴레이만샤를 술탄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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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리파는 움마의 지도자이자 사도 무함마드의 후계자인데 그에 맞서는 것은 무슬림이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