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7 21:46:34

무함마드 2세

1. 개요2. 아글라브 왕조의 8대 아미르3. 후우마이야 왕조의 4대 칼리파4. 셀주크 제국의 이라크 술탄5. 아사신의 5대 수장6. 호라즘 왕조의 6대 샤7. 나스르 왕조의 2대 술탄8. 하프스 왕조의 8대 술탄9. 오스만 제국의 3대 술탄10. 크림 칸국의 11대 칸11. 알제 데이국의 9대 데이12. 알라위 왕조의 7대 술탄13. 후사인 왕조의 11대 베이

1. 개요

무함마드가 이슬람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이유로 역사상 무함마드 2세라 불린 인물은 ( 무함마드 1세처럼) 많은 편이다.

2. 아글라브 왕조의 8대 아미르

아랍어: أبو الغرانيق محمد الثاني بن أحمد
생몰: ? ~ 875
재위: 864 ~ 875

아글라브 왕조의 8대 아미르. 6대 아미르 아부 이브라힘 아흐마드의 아들로, 숙부 지야다탈라 2세를 계승하였다. 선대 아미르들에 이어 안정적인 정치와 해상 정복을 이어갔다. 870년 몰타를 점령하였고, 살레르노 포위 등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습격도 이어가 교황 요한 8세로부터 연공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말년에는 메카 순례단에 의해 역병이 퍼져 기근과 인구 감소를 겪으며 아글라브 조의 쇠퇴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포도주와 사냥을 즐기던 무함마드 2세는 11년의 치세 끝에 사망하였다. 사후 동생 이브라힘 2세가 계승하였다.

3. 후우마이야 왕조의 4대 칼리파

아랍어: محمد المهدي بالله
생몰: 976 ~ 1010
재위: 1009

후우마이야 왕조의 11대 군주이자 4대 칼리파.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의 증손자로, 1008년부터 후우마이야 조의 국정을 맡고 있던 알 하지브 알 만수르의 차남 압둘라흐만 알 마흐디 (산추엘로)가 같은해 칼리파 히샴 2세로부터 후계자로 공인받자 불만을 품은 이들을 규합하였다. 그리고 1009년 2월, 산추엘로의 레온 왕국 원정을 틈타 무함마드는 30명의 결사대와 함께 왕궁을 장악하고 산추엘로의 사촌이자 대리인 이븐 아스칼레야를 살해하였다. 이후 민중 봉기가 일어나 꼭두각시 칼리파 히샴 2세가 퇴위하고 무함마드가 칼리파 알 마흐디로 추대되었다. 알 마흐디는 사촌 압둘자베르 이븐 알-무기라를 새 하집 (재상)으로 임명하여 코르도바 외곽 앗-자흐라 궁전의 산추엘로 저택을 장악하게 하였다.

이후 저택은 며칠간 대대적으로 약탈되었다. 3월 초엽 산추엘로는 기독교권으로 망명하라는 측근의 조언을 무시하고 코르도바로 귀환했는데, 도중 병력이 대부분 이탈해버리자 압둘자베르에 항복했다가 처형되었다. 얼마 후 알 마흐디는 7천의 베르베르 부대를 해산했는데, 그들은 칼리파의 6촌인 술라이만 이븐 알 하캄 (술라이만 2세)에 가담하였다. 1009년 11월 술라이만은 알콜레아 전투에서 알 마흐디를 격파하였고, 후자는 톨레도로 도주하였다. 코르도바를 점령한 술라이만은 베르베르, 카스티야 부대에게 도시를 약탈하도록 허가하였다. 감금되어 있던 히샴 2세를 석방하여 칼리파로 대우하던 술라이만은 불과 며칠 후 그를 재차 폐위하고 베르베르 부대로부터 칼리파 알 무스타인으로 선출되었다.

다만 술라이만은 알 마흐디의 톨레도를 점령하지 못하여 안달루스는 분열되었다. 1010년 5월 알 마흐디는 유럽 용병들과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보렐의 도움으로 술라이만을 격파하고 코르도바를 장악하였다. 도시는 재차 외세에 의한 약탈을 겪었다. 알 마흐디는 재차 칼리파에 올랐으나, 같은해 7월 용병대는 그를 암살하고 히샴 2세를 복위시켰다. 1013년 알헤시라스로 피신했던 술라이만이 베르베르 군대와 돌아와 히샴 2세를 죽이고 재차 코르도바를 장악했으나, 1016년 이번에는 세우타 총독인 알리 빈 함무드 앗-나시르에게 폐위되었다. 이후 7년간 함무드 가문이 코르도바 칼리파위를 가져갔고, 안달루스는 여러 토후국들로 분열된 1차 타이파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4. 셀주크 제국의 이라크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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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사신의 5대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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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알리의 이복 동생인 자파르의 손자 }}}}}}}}}

알라무트 아사신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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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Muhammad
생몰: 1148 ~ 1210
재위: 1166 ~ 1210
페르시아 아사신의 제5대 수장이다. 본명은 누르 알 딘 무함마드 (نورالدین محمد)로 하산 2세의 아들이다. 부친에 이어 자신도 이맘이라고 선언했으며, 하산 2세의 키야마 계시를 지속했다. 무함마드 2세는 아버지에게 알리의 혈통을 부여하는 일에 착수해 하산 2세가 부주르구미드의 아들이자 알라무트의 3대 주인인 무함마드 1세의 아들이 아니라 숨은 이맘의 숨겨진 아들이라 선언했다.

이에 하산이 아기였을 때 무함마드의 아들과 은밀하게 뒤바뀌거나 무하마드가 임신한 여자를 자기도 모르게 아내로 맞이한 것이라 믿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는 하산의 어머니가 알라무트가 서 있던 암반 바닥에 살고 있던 숨은 이맘과 간통한 것이라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무함마드 2세는 니자리파의 교리에 반대하는 수니파의 학자인 파흐르 앗딘 알 라지의 강연에 피다이를 참석하게 하면서 몇 달 후에 알 라지를 단도로 위협해 아사신에 반대하는 가르침을 그만두겠다는 맹세를 받았다. 1198년에는 호라즘 왕조의 공격으로 알라무트를 습격받았다가 1199년에는 카즈윈을 공격할 때 요새를 양도하고 조용히 떠나기로 합의했는데, 첫 무리가 방해받지 않도록 떠나도록 허용한다면 두 번째 무리가 성을 넘겨줄 것이라 하면서 첫 번째 무리가 떠날 때 아사신 수비대 전원을 빠져나가게 했다.

1206년에는 호라즘과 대립하면서도 구르 왕조의 군주 시하브 알딘이 암살되었는데, 사람들은 니자리파가 암살을 저지른 것으로 생각해 호라즘인들을 위해 암살했다고 주장하면서 호라즘과 구르 조간에 타협이 이루어졌다. 아들 하산( 하산 3세)은 니자리파를 합병하려고 해 갈등을 빚었는데, 무함마드가 이맘 직계승권의 절대성을 강조해 하산 3세는 차기 이맘으로 선포된 상황이라 아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해 알라무트 주위를 돌아다닐 때 늘 중무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한편 알라무트 아사신에게서 독립하려던 시리아 아사신 지도자 라시드 앗 딘 시난을 암살하려 햇으나 실패했고, 이에 시난은 독립을 선언한다. 1210년에 자연사로 사망하자 하산 3세가 계승했다.

6. 호라즘 왕조의 6대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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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스르 왕조의 2대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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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프스 왕조의 8대 술탄[1]

아랍어 أبو عبد الله محمد أبو عصيدة
생몰: 1279 ~ 1309
재위: 1295 ~ 1309

하프스 왕조의 8대 군주. 3대 군주 야흐야 2세 (알 와시크)의 유복자로, 1279년 베자이아의 아부 이샤크 이브라힘이 아라곤 군의 도움으로 튀니스를 점령하고 벌인 학살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야흐야 소생의 아들이었다. 1282년 이브라힘은 야흐야의 아들이자 마흐디를 칭한 아흐마드 알 무스탄시르에 의해 축출되었고, 1284년 이브라힘의 이복동생 우마르가 튀니스를 장악하고 후자를 처형하였다. 은둔하던 무함마드는 1295년 작은 할아버지 우마르가 사망하자 알 문타시르 칭호와 함께 계승하였다.

알 문타시르는 1301년과 1308년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 2세, 1305년 베네치아 공화국과 무역 협정을 맺었다. 14세기 초엽 하프스 조는 알 문타시르와 이브라힘의 손자 아불 바카 칼리드 앗 나스르가 지배하는 동부의 베자이아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둘은 협상 끝에 먼저 죽는 쪽을 상대방이 계승하여 왕국을 통합하기로 약속하였다. 따라서 1309년 알 문타시르가 사망하자 칼리드가 계승해야 했으나 투니스의 무와히드 셰이크들은 칼리드의 6촌 아부 바크르를 옹립하였다. 불과 17일 후 베자이아에서 당도한 칼리드는 그를 폐위, 처형하고 집권하였다.[2]

9. 오스만 제국의 3대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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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크림 칸국의 11대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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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알제 데이국의 9대 데이

생몰: ? ~ 1710
재위: 1707 ~ 1710

알제의 제9대 데이이자 술탄 엘자자이르. 본명은 모하메드 벡타시로, 1695년 4대 데이 핫지 샤바네가 예니체리 부대에 의해 암살당한 후 들어선 예니체리 정권의 5번째 데이이다. 15년간 6명의 데이가 있었던 예니체리 정권의 혼란기 속에서 그 역시 예니체리에 의해 암살되었다. 사후 같은해 바바 알리 샤우시가 수천의 예니체리를 학살, 파샤를 축출하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을 쟁취한다.

12. 알라위 왕조의 7대 술탄

아랍어 مولاي محمد بن إسماعيل
생몰: 1694 ~ 1738
재위: 1736 ~ 1738

알라위 왕조의 9대 군주이자 7대 술탄. 1694년 메크네스에서 물라이 이스마일과 랄라 할리마 앗-수피아니야의 아들로 태어났다. 1727년 부왕의 사후 벌어진 형제들간의 내전에서 물라이 압둘라가 (4차례의 치세 중) 2번째로 폐위된 후 즉위했으나, 2년 만에 폐위되어 살해되었다. 이후 다른 형제인 물라이 무스타디가 집권했다가, 다시 2년 후 물라이 압둘라가 3번째로 집권하였다.

13. 후사인 왕조의 11대 베이

아랍어: أبو عبد اله محمد باشا باي
생몰: 1811 ~ 1859
재위: 1855 ~ 1859

튀니지 후사인 왕조의 11대 베이로, 8대 베이인 후세인 2세의 아들이다. 1855년 9월 사촌 아흐메드 1세를 계승해 즉위하였고, 1857년 프랑스의 군사적인 압력에 따라 (명목상의)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 탄지마트를 본뜬 개혁을 단행, 모든 신민에 대한 종교의 자유와 법적 평등을 선포하였다. 이듬해에는 튀니스 시정부가 구성되었다. 개혁 도중 1859년 9월 향년 48세로 사망하였고, 동생 무함마드 3세가 계승한다.

[1] 그리고 자칭이긴 하지만 7대 칼리파 [2] 하지만 이내 칼리드는 콩스탕틴의 동생 아부 바크르의 반란에 직면하였고, 칼리드의 지배가 가혹하다 여긴 투니스의 유력자들 역시 그에 편에 섰다. 지지를 잃은 칼리드는 양위하였으나 곧 암살되었다. 그리고 아부 바크르가 베자이아에서 머뭇거리는 틈에 트리폴리에 머물던 왕공 압둘 와히드 자카리야 이븐 알 리흐야니가 현지 부족들과 투니스로 진군하였고, 시칠리아 함대 및 유럽인 구역의 카탈루냐 용병대의 봉기에 힘입어 도시를 장악하였다. 그렇게 1311년 하프스 조는 다시 동서로 분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