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영어 : Muhammad Abduh 아랍어 : محمد عبده |
출생 | 1849년 |
사망 | 1905년 (향년 5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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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함마드 압두는 19세기 이집트의 이슬람 학자이자 사상가로, 인도의 독립운동가 겸 현대 이슬람 사상가 자말룻딘 알 아프가니와 함께 이슬람 모더니즘의 태동을 대표하는 해당하는 인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이집트를 대표하는 명문대학교인 알 아즈하르 대학교[1]의 셰이크였으나, 오늘날에는 그의 사상이 이슬람주의 및 와하비즘과 대척점에 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도 있다.튀르키예인 아버지와 이집트 아랍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쿠르드인 혈통도 일부 물려받았다고 한다.
2. 사상
그의 사상은 중세 이후 순니파에서 이단으로 몰려서 사멸된 무타질라 학파의 복원[2]을 중심으로 했다. 그는 근대 당시 서구가 이슬람권을 한참 앞지른 이유를 비교분석하면서 '중세 이슬람권에서는 사변철학이 발전했으나, 몽골 제국의 침략의 여파로 사변철학이 주류 학계에서 완전히 사멸하였다. 반대로 중세 기독교계는 철학과 과학이 신학에 눌려있었으나 근세 들어서 철학이 신학을 압도한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주류 순니파에서 사멸되었던 무타질라 학파를 복구시켜야만 이슬람권의 신속한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3. 영향
또한 무슬림들이 더 이상 중세 성립된 마드하브 학파의 이슬람 해석을 따를 필요가 없으며 시대에 따라 이슬람 해석이 변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무함마드 압두의 마드하브 부정을 근거로 당시 살라프파는 전통적인 4대 마드하브(한발파, 말리키파, 하나피파, 샤피이파)의 샤리아를 따르는 대신 현대 법과 이슬람 사회의 조화를 추구했다. 즉 오늘날 이슬람 국가 중 상당수가 샤리아 대신 현대식 법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무함마드 압두를 비롯한 이슬람 모더니즘 학자들의 영향이라 하겠다.[3]압두는 일부다처제를 반대했으며 꾸란에 나온 일부다처제 관련한 구절에 따라 여러 부인을 모두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사실상 일부다처제를 양심이 있으면 하지 말라는 구절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당시 이집트의 대법관 카심 이만은 무함마드 압두에 영향을 받아 이슬람권에서 꾸란에 나온 그대로 남녀는 평등하다는 가르침이 원리원칙대로 지켜져야 한다며,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악습들을 타파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카심 이만의 노력은 보수적인 율법 학자들의 커다란 반발을 초래하였으나 이집트 상류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인권 보장이 증진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도/아프가니스탄의 개혁주의 이슬람 사상가 자말룻딘 알 아프가니의 영향을 받아 순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 완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동시에 이집트의 무슬림과 콥트 기독교인들이 힘을 합쳐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양 종교간의 화합을 이끌었다.
4. 한계
무함마드 압두 사후에도 그가 존경받던 동안에는 콥트 기독교계와 무슬림들이 서로 무난하게 지내는 사이였으나, 이후 무함마드 압두가 점차 이단으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이슬람주의가 점차 극우화되면서 오늘날 콥트 기독교계와 무슬림들 사이는 상당히 나빠진 상황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콥트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보이는 적대감이나 증오심이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마드하브의 권위 부정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는데 사이드 쿠틉 등은 중세에 이슬람 해석을 부정한 대신 훨씬 더 과격화된 이슬람 율법 해석을 내놓으며,[4]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 중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이 강했던 사람들은 압두가 기독교인들에게 너무 온건해서 불신자나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5]여기에는 무함마드 압두의 잘못도 없지 않아 있는데, 자신을 반대하던 보수적인 무슬림들과 의견 차이를 좁히는 대신 괜히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가 다른 무슬림들의 의심을 산 것이다. 진보적인 이슬람 신학을 내세웠지만 이집트 정부의 공식적인 서포트를 받는데 실패한 것도 원인이다. 이집트의 무슬림들은 무함마드 압두의 견해가 맞다는 것은 알았지만, 굳이 압두의 견해를 지지해봤자 신상에 이로울 것이 없기에 보수적인 마드하브 학파에 순종하거나 아니면 좀 더 과격하면서도 카타르 등의 지원을 받아서 나름 신분 상승의 기회가 있는 무슬림 형제단으로 향했고, 무함마드 압두의 이른바 신무타질라 학파(Neo-Mu'tazilism)은 철저히 힘 없는 소수 학파로 전락하고 말았다.
[1]
한국인 중에서는 한국 외국어대학교의 손주영 교수가 해당 대학 학위를 딴 것으로 유명하다. 워낙 유명한 대학이다보니 벼러별 이상한 사람들이 해당 대학교 학력을 사칭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2]
물론 예멘의 시아파 중심으로 학파 사상이 보전되기는 했다.
[3]
이 때문에 샤리아 법의 시행을 지지하는 근본주의 무슬림들 중에서 무함마두 압두를 서구 식민주의자의 앞잡이라고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4]
다에시는 사이트 쿠틉의 사상을 직접 물려받은 집단이기 때문에 기존의 이슬람 율법 해석을 부정하고 중세 이슬람 율법이나 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 보수 와하비즘 율법보다 훨씬 더 과격화되고 모순이 많은 자체적인 율법을 제멋대로 하는 편이다.
[5]
원래 이런 극단주의 관종들은
이븐 할둔 같은 중세 대학자조차 별 말도 안되는 트집으로 불신자라고 욕하고
오스만 제국도 전부 불신자라고 욕하며, 서구 이슬람 의학 대신에 하디스에 나온 전통 아랍 민간 요법만으로 사람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등 별별 걸레같은 말을 입에 물고 산다. 문제는 이런 놈들이 우리나라에서 유튜브 관종들이 종종 일반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권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축에 속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