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7 22:58:50

묘수좌


묘수좌
白魚

파일:묘수좌.png

1. 개요2. 설명3. 관련 자료

1. 개요

묘수좌 (猫首座 : 높은 고양이 선생님[1])

고양이 스님.

2. 설명


* 수좌는 머리카락 삭발하고 고고하게 도 닦는 사람 처럼 꾸미고 있는 고양이.
* 16세기 초반 기묘사화 이후 조선에서 돌던 우스개 소리 비슷한 우화 속에 등장하는 말로 1530년대 중반의 유행어다.
*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인 늙은 고양이가 기력이 쇠하고 발톱, 이빨도 상해 쥐를 못 잡게 되자 귓속의 털없는 부분을 머리가죽 쪽으로 뒤집어 삭발한 머리 모양처럼 만들고 자신은 이제 스님이 되어 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쥐들을 제자로 거두어 두고는 종교 행사를 한다고 하면서 몰래 한 마리 씩 잡아 먹는다. 이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 묘수좌다.
* 영리하면서도 겉다르고 속다르고 위선적이고 속임수에 능한 스님 모습의 고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 조선왕조실록” 1534년 음력 7월 22일 기록에 당시 김안로를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로 유행했다고 하고 있다.
송인수(宋麟壽)를 경상도 사천(泗川)에 유배시켰다. 사신은 논한다. 인수가 채무택(蔡無擇)과 결탁하여 김안로(金安老)에게 붙었다가 그 뒤에 사당(邪黨)임을 깨닫고 배반했다. 안로가 심히 그를 미워하여 제주 목사로 임명해 쫓아내어 인수가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고을을 버리고 올라왔다. 이 때문에 논죄했는데 해당된 율보다 엄한 율로 다스리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마음아파했다. 당초 안로가 호오(好惡)의 뜻을 밖으로 내보이고 또 기묘 사화(己卯士禍) 때 파산(罷散)된 사람들을 서용(敍用)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는데, 이는 실제로는 그의 본 마음은 아니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사림(士林)들의 환심을 사려는 수작이었다. 인수는 바로 이 술책에 넘어가 그에게 귀부(歸附)했던 것이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묘수좌(猫首座)의 설화를 지어내어 그를 풍자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 과연 들어 맞았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늙은 고양이가 있었다. 발톱이나 어금니도 모두 못 쓰게 되어서 쥐를 잡아먹는 재주도 이미 다했다. 쥐 잡아먹을 계책이 서지 않자 귓속의 털없는 부분을 뒤집어 내어 머리에 덮어쓰고 다니며 부르짖기를 ‘나는 이제 자비심을 발하여 삭발하고 중이 되었노라. 어떻게 부처님을 모시고 함께 정진하는 공부를 지어갈 수 없겠는가?’ 하였다. 쥐들은 그러나 여전히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머리를 깎은 것 같은 모양을 엿보고 나서 크게 그 말을 믿게 되어 나와서 응접하고는 늙은 고양이를 웃자리로 추대하여 묘수좌(猫首座)라 하였다. 수좌는 제일 상석에 자리잡고 쥐들은 대소의 차례대로 서서 법석(法席)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빙둘러 한 바퀴 돌 즈음에 어린 쥐의 행렬이 수좌의 입 앞에 당하고 앞의 행렬이 부처님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게 되면, 잽싸게 후려잡아 냉큼 삼켜 버리곤 하였다. 이렇게 해서 무리들이 날로 줄어들자 어떤 자는 수좌의 소행이라고 의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철석같이 믿게 된 자들은 성을 내기까지 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우겨대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수좌의 똥 속에 쥐의 터럭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늙은 고양이의 술책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 얘기의 작자는 사림(士林)을 쥐에 비유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뜻을 취해서 비꼬았던 것이니, 안로를 고양이에 비유했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그 뜻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 옛날에도 이묘(李猫)가 있었던 것이다.
중종실록 77권, 중종 29년 7월 22일 정해 4번째기사

3. 관련 자료


[1] 수좌는 가장 높은 자리를 말하니 묘수좌라는 말은 “높은 고양이 선생님”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