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00:50:57

목진석

목진석
睦鎭碩 / Mok Jin-seok
파일:2015050814581907712_1.jpg
[[챌린지바둑리그/2024시즌|2024 KB국민은행 챌린지바둑리그
바둑의 품격
1지명
]]
직업 바둑기사
소속 한국기원
본관 사천 목씨[1]
출생 1980년 3월 6일([age(1980-03-06)]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가원초등학교 (졸업)
가원중학교 (3학년 / 중퇴)
병역 전시근로역[2]
신체 O형
입단 1994년
단급 九단
별명 괴동[3], 목파고
타이젬바둑 닉네임 야맛있다(P)
페이스북

1. 개요2. 상세3.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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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 기사. 前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

1988년 7월호 소년중앙에서 천재 바둑기사라고 소개된 바 있다.

한국 바둑의 '포스트 이창호' 시대를 연 기사이다. 포스트 이창호 시대는 그 이후 조한승, 박영훈· 최철한· 원성진으로 이어지며 이세돌의 등장으로 완전히 정착했다.

별명은 '괴동'으로 불렸으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후 '목파고(목진석 + 알파고)'로 바뀌었다. TV바둑 해설을 할 때 수읽기와 형세판단을 정확하게 해서 붙은 별명이다. 정작 알파고와 목진석 기풍은 상반되는 게 함정 마지막으로 한국바둑리그에서 활약한 2017년에는 신안천일염 팀에 소속된 바 있다.

2. 상세

1998년에는 다승 1위를 기록, 2000년에는 한창 전성기의 이창호를 꺾고 KBS바둑왕전을 우승하였다![4] 문제는 다음 우승까지 15년이 걸렸다는 것. 2015년 GS칼텍스배에서 35세 나이로 우승한다.

참고로, 35세면 중국에서는 현역 토너먼트 기사로서는 은퇴하고도 남을, 선수로서는 할아버지 나이이다.[5] 이창호의 마지막 우승이 34세였다. #

긴 설명 말고 그의 커리어를 보자.

1999년 기성전 준우승(vs이창호, 0:2)
2000년 KBS 바둑왕전 우승(vs이창호 2:1)
2001년 TV바둑아시아선수권 준우승(vs 조훈현 0:1)
2002년 기성전 준우승(vs이창호 2:3)
2004년 LG배 준우승(vs이창호 1:3)
2008년 십단전 준우승(vs이창호 0:2), 맥심커피배 준우승(vs박영훈 1:2)
2009년 국수전 준우승(vs이세돌 1:3)
2013년 olleh배 바둑오픈 챔피언십 준우승(vs김지석 0:3)
2015년 제20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우승(vs최철한 3:1)

커리어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거의 해마다 하나의 기전에서는 결승에 올라가고, 바둑리그에서도 꾸준히 1지명으로 지명되어 주장급으로 활약하고 있다.[6] 정상급 기사 중의 한 명이라는 이야기. 2007년에는 122국 93승 29패 승률 76.2% 기록으로 연간 최다대국연간 최다승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7]

하지만 준우승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우승한 적이 분명히 있는데도 바둑계의 콩라인 이미지가 강하다. 여기에 국내 기전보다 세계기전 성적이 떨어지고,[8] 후배 신예 기사들이 등장하면서 좀 강한 중견 기사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가 줄기차게 준우승만 찍던 시절은 이창호 九단이 정점을 찍고 점차 쇠퇴해가는 시절과 겹치는데, 이때 주가를 올리고 이창호와도 꿇리지 않는 전적을 보여주는 신예기사들이 하나둘씩 나오건만 자신은 이창호 九단에게 너무 약하다는 사실도 이런 이미지에 한몫했다. 상대전적은 목진석 九단 기준 9승 33패(...) 이창호와 결승전에서 다섯 번 붙어서 1번 이기고 4번 졌으니 결승전 승률도 통산 승률도 비슷하게 20% 가량, 참 정직한 우승률이다.

전투를 즐기는 기풍이다. 어릴 때부터 전투를 즐겨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지금도 무난한 집짓기 바둑보다는 전투바둑을 선호한다.[9] 요즘 프로 기사들 가운데 3연성을 가장 많이 두는 기사이다.[10]

'괴동'이라는 별명은 신예 시절에 모험적이고 괴상한 신수를 많이 두었고, 결정적으로 당시 정상급의 기사이던 녜웨이핑을 꺾은 것을 계기로 붙여진 별명이다. 스스로도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괴동'이라는 ID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KBS 바둑왕전에서는 첫 수를 천원에 두어 5연승을 달린 적이 있다.[11] 여섯 번 대국에서 천원에 첫 수를 두었는데, 여섯 대국 모두 승리하였다. 34세로, 프로기사로써 모두 전성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던 2013년 말에는 외목과 쓸 용자 굳힘(...)[12]을 자주 사용하면서 변상일, 박영훈, 이세돌을 꺾으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결승에서는 아쉽게 김지석에게 3:0으로 졌지만. 사족으로 최철한도 이 수를 박정환에게 사용한 적이 있다.

그래도 '단순히 좀 강한 중견기사'라는 평을 좀 엎고 싶었는지, 2015년 2월에 GS배에서 이세돌을 박살내며 불계승으로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8강전의 백미는 후반에 터진 이세돌의 축을 이용한 묘수로 백이 축을 기어나와 보태준 꼴이 되면서[13] 이세돌이 무난히 이기나 했는데 냉정을 찾고 최소한의 피해로 줄이면서 이세돌이 두터움을 바탕으로 중앙에 큰 집을 짓는 것을 최대한 막으면서 끝까지 우세를 지킨 장면. 저단자 시절 전투로 대마를 모조리 포획하면서 당대 중국 최고 기사 녜웨이핑과 창 하오를 KO시킨 강한 멘탈 어디 안 갔음을 증명한 한 판. 보통 묘수를 당해서 큰 손해를 입으면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14] 묘수를 당해서 잃은 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게 커지기 때문에 냉철한 판단 자체가 매우 힘들어지며, 이건 당연히 형세판단과 수읽기가 흐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묘수는 보통 상대가 전혀 예측하기 힘든 곳에서 터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하는 쪽에서는 아예 새로 형세판단과 계가를 해야 할 판이며, 더욱이 상대는 이세돌이었다. 아무리 이세돌이 한물 갔다지만 그렇게 따지면 목진석은 한 세 물쯤 간 기사인데... 이래저래 목진석의 멘탈을 여실히 증명한 한 판이라 하겠다.

그런데 2015년 4월 2일, 제20기 GS칼텍스 배 프로기전에서 위의 기록에서 보다시피 무려 15년 만에 다시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더군다나 당시 절호조를 보이고 있었으며 상대전적으로도 밀리던 최철한 九단을 상대로 5번기 1국에서는 불계패를 당하였으나 남은 2, 3, 4국을 내리 3연승을 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얼마나 최철한 九단을 연구하고 승부에 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특히 4국의 경우 중후반까지 상대가 중앙에서 세력을 크게 쌓으며 불리했던 국면에서 수를 내며 2집반 역전승을 거두었다.


승리 후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15년만에 우승한 소감을 물었으나 그 전 2, 3국 인터뷰를 덤덤하게 했었던 목진석 九단도 가슴이 뭉클했던지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15년 바둑리그 신안천일염 팀에서 9승을 챙기며 팀의 맏형 역할을 했으며 2015년 10월 25일 바둑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강동윤을 상대로 개인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입단 21년 2개월만에 거둔 쾌거이며 역대 8번째로 달성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사비를 털어 신예기사 발굴을 위한 바둑 기전을 개최하였다. # 목이균 - 목진석 부자가 만든 기전이 바로 미래의 별 신예최강전.

여러 방면에 굉장히 다재다능한 편이다. 운동도 잘하고, 외국어도 수준급이라 국제기전에서 기사들 사이의 통역을 맡는 모습이 자주 사진에 등장한다. 특히 중국어는 원어민 급이라고 한다. 한 번은 기사들과 함께 중국으로 놀러가서 물건을 사게 되었는데, 목진석이 값을 사정없이 깎자 중국인이 "아니 같은 중국인이면서 왜 이렇게 깎아대느냐."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니 말 다 했다. 영어와 일본어도 수준급. 유럽의 여러 나라에 바둑 보급차 몇 번 다녀온 적도 있다. 기계도 굉장히 잘 다루는 얼리어답터라고.

그리고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인 아스날 FC의 팬이라서 종종 아스날 팬사이트에 출몰하기도 했으며, 2015년 4월 GS칼텍스배 우승 직후에는 결승전 전날 그의 우승을 기원하는 글과 댓글들을 남긴 아스날 팬 사이트의 회원들에게 감사하는 인증 글을 남겼다. 더불어 그 글에는 2009년에 아스날의 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방문한 본인의 사진[15]을 올리기도. 링크 단, 글은 회원가입을 해야 읽을수 있다.

박정상 九단과 함께 블로그를 운영한 바 있다.

디시인사이드 바둑 갤러리에 종종 나타난다.고정닉이며 닉네임은 '야맛있다' 타이젬바둑에서도 이 닉네임이다.

일반 언론에서 바둑 관련으로 한국기원 등을 인터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한국기원에서 목진석 九단을 인터뷰 상대로 제안한다. 거의 한국기원 대변인급. 그래서 목진석 9단은 TV에서도 자주 보이는 편이다. 목진석 九단이 언변도 좋고 바둑 외에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밝은 편이라 인터뷰 상대로 많이 추천받는 모양.

파일:Honeycam 2016-09-10 19-34-37.gif
2016년 한국바둑리그 승리 세리머니 박정환 九단처럼 따봉을 날린다. 30대 후반의 나이인데도 귀여움을 발산(...)

바둑TV에서 하호정 四단과 함께 <목진석 & 하호정의 생생레슨>이라는 바둑 강좌방송을 진행한다. 여기서 목진석 九단은 여러 가지로 망가지는 역할인데, 조훈현 九단이나 박정환 九단 등의 성대모사를 잘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7월 1일 방송에서 나옴.

3.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

유창혁 九단이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던 시절 한국 바둑계 성적이 처참했던지라 아무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2016년 말 목진석 九단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목진석 九단이 바둑 국가대표팀(상비군) 감독을 맡게 되면서 한국 바둑 기사들이 서서히 성적이 다시 나기 시작하고 있다. 안국현 八단의 삼성화재배 준우승, 박정환 九단의 몽백합배 우승, 농심신라면배 한국 우승 등. 그리고 바둑 국가대표팀 자체로도 국가대표 상비군 리그를 사이버오로를 통해 중계하고, 조아제약의 후원을 유치하는 등 # 기틀을 잡았다.

2021년부터는 한국바둑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강세를 보이며 농심배 3년 연속 우승, 각종 세계대회 우승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20년 4월 부터는 한국기원과 협의 하에 국가대표팀 감독, 코치는 대회 출전이나 기타 방송활동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국가대표팀 감독 활동에 전념했다. 2023년 12월 31일을 끝으로 국가대표팀 감독 활동을 마치고 홍민표 九단에게 감독직을 넘겨줬다. 동시에 2023-24시즌 바둑리그 부터 해설 활동을 재개했다. #

4. 여담

목진석 九단은 이미 중국인 원어민 급으로 하는[16]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상급 수준이어서 2021년 초에는 영어 유튜브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해 원어민과 함께 바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일본어도 틈틈이 공부한 바 있어 수준급. 이에 일본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일본 바둑기사들의 대국을 조사하고자 유튜브를 켜고 NHK배 TV 바둑 토너먼트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1] 26세손 진(鎭) 항렬 [2] 학력미달 [3] 괴상한 아이. 절대 외모 때문에 생긴 별명이 아니다(...) 입단한 지 1년차에 불과했던 1995년 제2회 롯데배 한·중대항전에서 당시 중국 최강자 녜웨이핑 9단을 꺾으며 얻은 별명이다. 그리고 괴동의 '괴'자가 워낙에 신수를 많이 꺼내드는 목진석 기사와 어울려서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괴동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4] 2000년의 이창호는 기성, 왕위, 명인을 우승하여 국내기전 3관왕이었던데다 응씨배, LG배 본선에 진출한 상태였다. 이는 포스트 이창호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5] 1997년생인 커제가 20대 초반인 나이에 벌써 하향세인 것을 생각해 보라. [6] 한국바둑리그는 e-Sports처럼 각각의 프로팀에 기사가 계약관계로 소속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개막식에서 각 팀에서 1년간 뛸 선수 다섯명을 새롭게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7] 이 기록은 2022년 여자신예기사 김은지 5단에 의해 갱신되었다. [8] 2004년 8회 LG배 준우승이 최고 성적. 여기서도 이창호를 넘지 못했다. 2010년 후지쯔배에서는 환갑이 넘은 일본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에게 패배하여 1회전에서 탈락하였다. [9] 어렸을 적 바둑을 배운 선생님에게 살아있는 돌도 잡으러 간다고 꾸중을 들은 적이 많다고 한다. [10] 한참 신인 시절이던 제2회 농심신라면배에서, 원조 3연성 다케미야 마사키를 상대로 3연성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10집 반 패배... [11] 전략게임으로 비유하면 빌드 없는 즉흥적인 플레이로 했다고 비유하면 된다. 상대적인 맞춤으로 전략하는 바둑으로서는 상당히 이기기 힘든 수이다. [12] 외목에 대외목이다. 가뜩이나 외목도 귀보다는 변과 중앙을 중시하는 착점인데 대외목은 말할 것도 없고, 굳힘이 두 수를 들여 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착점임을 생각하면, 외목에 대외목을 두는 건 아예 굳힘이 성립 안 한다! 화점에서도 두 수를 들여야 귀에 '준공검사'가 떨어지는 판인데 거기서 화점돌이 빠진 꼴이니 이 정도면 거의 바보굳힘 수준인데... 그만큼 포석에서 초반의 한 수가 큼을 증명하는 셈. [13] 보통 축을 한번 기어나올 때마다 7집 손해라는 말이 있는데, 집도 집이거니와 따낸 모양이 전국을 호령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손해가 되는 것. 프로에서 7집 손해는 경우에 따라서는 거기서 바둑이 끝났다라고 할 수 있는 대손해다. 게다가 목진석에게는 더더욱 상황이 나쁜 것이 축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기어나오고 잡혔다. [14] 실제로 목진석도 몹시 후회했다. [15] 무려 유니폼 실착 샷이다. [16] 해설로 복귀한 한국바둑리그/2023-24시즌에서 해설 하는 날에는 용병으로 들어온 중국 선수 인터뷰를 할 경우엔 별도 통역 없이 직접 중국어로 질문을 하고 답변에 대해 통역을 할 정도로 수준급의 중국어 실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