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3 19:59:26

말리/역사

말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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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역사를 다루는 항목.

1. 선사시대2. 문명의 시작과 가나 제국3. 말리 제국4. 송아이와 모로코5. 투콜로르 제국 프랑스령 수단6. 현대사

1. 선사시대

기원전 5000년에 이미 나이저 강을 중심으로 농업이 행해졌으며, 그 역사는 나일 강이나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한다.

2. 문명의 시작과 가나 제국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동기는 일찍부터 강력한 문명권을 형성한 지중해 이집트 지역과의 지속적인 교류 덕분으로, 사하라 사막을 낙타를 타고 관통한 캐러밴 무역상들에 의해 북부의 문화와 종교, 물산이 전파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mpire_ghana.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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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소닝케족이 세운 가나 제국[1]이 모리타니 국경 지역에서 존재했으며[2] 가나 제국은 황금과 소금을 교역해서 유럽에서 황금의 땅이라고 불렀을 만큼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와가두(목동의 땅이라는 뜻이다)라고 했으나 유럽 상인들이 가나라 부르면서 가나라 알려져 있다. 가나는 파라오 같은 통치자를 일컫는 말[3]이다.[4] 가나 제국의 수도 쿰비살레에는 3만 명이 거주했으며, 매우 발달된 조세 제도를 갖추고 있었으나 알 모라비드 왕조의 공격[5]에 사막화까지 더해 경제가 시망하여 11세기 사실상 멸망했다. 다만 왕국 자체는 13세기까지 남아 있었다.

3. 말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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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blackholisticlifestyle.com/mansamunsa-parade.jpg
순자타 케이타의 일대기와 말리 제국의 건국을 다룬 <순자타 대서사시>. 해당 공연에선 영어 통역사가 함께 한다.[6]
전통적으로 서아프리카 전통 악기인 발라폰(balafon) 연주와 함께 진행된다.
몇백년 동안 서아프리카 지방의 구전 역사가인 그리오트(griot)들을 통해 전해내려온 문학 작품이다.
말리 제국의 흥망성쇠를 간략히 설명한 Extra Credits의 영상. 5편의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어 자막 있음.

이후 무슬림들이 분열되어 세력이 시망하자 소소 제국이 무슬림을 몰아내고 가나를 완전히 멸망시킨 후 말리 일대를 지배했으나 옛날보다 세가 줄어들었다. 한편 남부 지방에는 만딩카족의 말리 왕국이 13세기에 생겨났다. 소소는 캉가바를 침공해 순자타 케이타의 형제를 모두 죽이고 무능한 통치를 폈다. 이후 캉가바의 왕이 된 순자타 케이타는 말리를 세우고 키리나에서 1235년 소소 왕국을 격파했으며, 이후 말리 제국이 말리를 지배했다.

말리 제국은 농업이 번창하고 이슬람교를 믿었으며, 니제르 강과 사하라 사막 캐러밴 대상로를 이용해 북아프리카의 여타 이슬람 국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니제르 강의 오래된 모스크로 유명한 팀북투는 상코레 대학이 세워져 학문의 전당이 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989년에 세워졌다. 이 대학에는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으로 엄청난 양의 장서를 갖추고 전 세계에서 학생들을 받았는데, 장서가 최소 40만, 최대 70만 권에 달했다고 한다. 상코레 대학에는 외국인 학생 비율이 무척 높았으며, 쿠란은 물론이고 수학, 철학,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의학, 법학을 가르쳤다. 또 대학은 그 자체로 이슬람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도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에서 산출된 막대한 금으로[7]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들과 교역하면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다.

3.1. 만사 무사

말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자세한 것은 만사 무사 문서 참고.

4. 송아이와 모로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0px-SONGHAI_empire_map.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estAfrica1530.png
한편 말리 제국이 번영할 무렵 동부엔 송아이[8] 족이 말리 동부 끄트머리의 가오(Gao)를 중심으로 1340년경 왕국을 형성했다. 이후 송아이인들 외에도 투아레그와 투클로르, 월로프족의 반란 등을 겪으면서 말리 왕국이 차츰 쇠퇴해 갈 무렵 15세기 송아이의 손니 알리는 말리를 밀어내고 말리 지역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아스키아의 치세 동안 송아이는 전성기를 누려 이슬람교가 전파되고 국가 체제가 정비되었다. 그러나 16세기 말 송아이는 내부의 분쟁으로 혼란스러워졌으며, 이후 모로코 사드 왕조의 침략으로 1591년 멸망하게 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estAfrica1625.png

송아이인은 멸망하지 않고 덴디 왕국을 세웠으나 몰락해서 큰 세력을 가지진 못했다. 17세기 모로코인들은 말리의 나이저 강 유역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중부 지방에선 1712년 밤바라인 바마나 제국이 세구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그 외에 카르타나 케네두구 왕국이 존재했으며 풀라족은 19세기 초엽 마시나 제국을 세웠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mars_jihad_state_map_general_c1864.png

5. 투콜로르 제국 프랑스령 수단

알 하지 우마르 이븐 사이드 탈은 이슬람 성직자로, 1848년 풀라니계 이슬람 국가인 투콜로르 제국을 세운다. 투쿨로르는 먼저 카르타 등의 작은 왕국을 점령했으며 이후 바마나 제국을 차지했다. 이어 투쿨로르는 통북투까지 지배영역을 넓혀 대제국을 이룩했으나 제국은 영 부실했으며 밤바라족과 풀라족은 제국에 저항했다. 1864년 알 하지 우마르 이븐 사이드 탈이 살해당했으며 이후 이 제국은 몰락해 갔고 결국 1890년 투쿨로르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이름 역시 프랑스령 수단으로 바뀌었다.

파일:프랑스령 수단 국기(1958-1959).svg.png
프랑스령 시절의 깃발가운데의 사람 모양은 '카나가'라고 하는 아프리카의 전통 문양이다.

6. 현대사

1958년 말리는 공화국이 되었고 1959년에는 세네갈과 잠깐 말리 연방을 이루기도 했으며,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말리의 초대 대통령 모디보 케이타는 1968년까지 집권하여 산업 국유화와 집단농장을 실시했으나 처절하게 망해서 1967년 말리는 1인당 GDP 48$로 르완다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경제가 사망하고 세네갈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1968년 무사 트라오레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1991년까지 독재 정치를 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쳤다. 그는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완화시켰으며, 자연재해 원조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1977년 모디보 케이타가 사망한 후 그의 장례식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자 그는 반발하여 정치 탄압을 시도했고, 그래도 이후 1979년 민정을 실시했으나 말로만 민정이지 독재는 끝나지 않았다. 1980년대 그는 학생운동을 열심히 진압하고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1991년 쿠데타가 일어나 트라오레는 물러나게 되며, 쿠데타의 주동자 아마두 투마니 투레가 집권했다.

1992년 아마두 투레는 코나레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코나레에 의해 말리는 민주화되었으며, 2002년 아마두 투마니 투레가 대통령이 되었다. 말리는 서아프리카에서 베냉과 더불어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2011-12년 언론자유지수는 25위를 기록해 아프리카 2위를 기록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투아레그족과의 분쟁으로 인해 북부 지방과 동부 지방은 영 상태가 좋지 않다.

투아레그족은 1961년 처음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1964년 잔인하게 진압당했고, 1990년 다시 반란을 일으켜 가오를 습격했다. 1994년 투아레그족은 가오를 다시 습격했고 송아이족과 분쟁이 일어났다. 1995년 투아레그족의 반란은 대충 해결되었으나 아직도 내전은 끝나지 않고 있다. 말리의 치안은 아프리카에선 매우 좋은 편이지만 북부 지방에선 투아레그 반군과 알카에다[9]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사헬 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단체이다.

2012년 3월 22일 군사쿠데타가 벌어졌다. 아마두 사노고 대위가 주도한 쿠데타군은 쿠데타를 일으킨 원인이 투아레그족 반군세력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투레 정권을 타도했다고 한다. 원래 쿠데타군은 투레정권을 전복할 생각이 아니었지만 투레 정부는 독재가 아닌 민주정부로서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정권이고 투레 대통령도 2012년 5년 대통령 임기를 다하고 은퇴할 예정이었기에 말리 여론에선 그렇게 나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현 쿠데타 세력에 대한 지지가 낮다. 이런 와중에 유엔까지 비난하고 나섰고 미국은 이런 말리 군부 쿠데타가 되려 알카에다만 좋아할 일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도를 장악한 군부이지만 이들 세력이 그다지 없고, 투레 대통령이 그를 지지하는 다른 군부대 호위 속에서 무사히 피신한 상황이다. BBC 방송은 쿠데타군 규모 및 무장이 빈약하여 정부군이 반격하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사정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쿠데타 주동자 아마두 사노고는 미국 유학파 출신 영어교관이었다가 육사에서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사고가 일어나자 본인이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연대책임으로 전출되었다,

이후 북부에서 군납비리로 1개 중대가 보급도 받지 못하고 맨주먹으로 알카에다와 맞서다 사망해서 군내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국방장관이 사노고 대위가 책임자로 있던 부대에 방문해서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대하자 불만이 쌓인 장병들이 항의, 장관의 경호원들이 공포탄을 쏘자 오히려 격분해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고 대통령에게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는 목적으로 무장하고 수도로 이동했던 것. 이때 항의하러 상경한 군인들의 수는 겨우 1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궁에 가니 대화할 상대인 투레 대통령이 도주하고, 당황한 군인들은 국영방송국으로 가서 대통령이든 관계자든 아무나 나와서 대화 좀 하자고 방송했지만 2시간 넘게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또한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병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아마두 사노고가 인기투표를 통해 정권을 잡은 것이다.

한편, 북동부에서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투아레그족으로 구성된 '전국아자와드 해방운동'이 반란을 일으켜, 2012년 3월 30일에 군사요충지 '키달'을, 31일에는 '가오'를, 4월 1일에 팀북투를 점령, 사실상 말리 북동부를 장악하였다. 말리 정부는 이들 조직이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10] 결국 이들은 4월 6일 가오에서 아자와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말리 공화국 헌법 117조는 아프리카 통합을 위해서는 말리 공화국의 주권을 일부 또는 전부 포기할 수 있다는 대인배적 조항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통합은 커녕 자국의 북동부가 아자와드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한 현실은 시궁창.[11]

투아레그족의 반란과 군사쿠데타가 맞물려 군 전투력의 붕괴를 초래, 중부의 군사요충지인 몹티 코앞까지 반군이 진격하자 결국 프랑스가 군사개입하게 됐다. 말리 정부에서는 알카에다와 투아레그 족이 연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투아레그 족이 점령한 북부지방을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주의자가 먹튀해서 3파전이 벌여졌다고 한다. 자세한 건 말리 내전 항목에서 서술.

2015년 11월 20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 추정되는 무장요원이 수도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170명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였다. 2015년 11월 말리 호텔 인질극 항목 참조.

2017년 1월 18일에 말리의 군기지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면서 1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2018년에는 지난 12일에 현대통령이 재선에 당선되었다는 결과가 나오자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

2018년 12월 13일에 말리 북부의 한 마을에서 무장괴한들의 총격으로 민간인들이 40여명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

2019년 1월 20일에 말리에서는 무장세력에 의한 공격으로 유엔평화유지군 10명이 사망하고 최소 25명이 부상당했다. #

2019년 3월 23일에 말리 중부에서 풀라니족 60여명이 괴한들에게 살해당했다. # 그리고 무장괴한의 공격으로 사망자가 134명으로 늘어났다. # 게다가 풀라니족 160여명이 살해된 사건을 두고 총리와 내각이 전원 사퇴하는 일이 발생되었다. # 새 총리로 시세 前 재무장관이 임명되었다. #

2019년 5월 19일에 말리-부르키나파소 국경지역에서 무장괴한들에 의한 공격으로 민간인 4명을 포함한 7명이 사망했다. # 말리에서 7월 22일에 유엔군 기지를 겨냥한 폭탄테러가 일어나 3명이 부상당했다. #

2019년 9월 30일에 군부대 2곳을 겨냥한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최소 25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

2020년 8월 18일. 말리군이 정부에 반발하며 2020년 말리 쿠데타를 일으켜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과 부부 시세 총리가 수도 바마코에서 반란 군인들에 의해 구금됐다. # 그리고 정부는 무너졌다. # 쿠데타 지지 시위가 있었다. #

8월 27일, 이제는 '前' 대통령이 된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가 석방되었다.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고 한다. #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구호단체의 프랑스인 여성이 4년만에 풀려났다. #

2020년 10월 28일에 말리 법원이 2015년 바마코의 고급 호텔에서 서양인들을 노린 테러 공격과 관련해 모리타니 출신의 주모자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자 시위가 발생했다. #

2021년 3월 17일에 말리 북부에서 군 호송차량에 대한 매복 공격으로 군인 33명이 사망했다. # 4월 2일에는 말리 북부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4명이 기지를 노린 공격으로 인해 사망하고 몇명은 부상당했다. #

10월 30일에 말리군은 말리 서부와 북부에서 테러가 발생해 말리 군인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

12월 4일에 무장반군에 의한 테러공격으로 버스승객 33명이 사망했다. #

2022년 1월 16일에 이브라힘 케이타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

서아프리카 경제통화연합의 제재로 말리는 국가부도에 처했다. #

2월 18일에 말리 국방부는 말리군과 이슬람 무장세력과 충돌한 가운데 말리 군인 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

4월 24일에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서 군인들을 겨냥한 총격과 테러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

6월 20일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로 132명이 사망했다. #

7월 14일에 말리 군정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유엔 평화유지군의 순환 배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


[1] 가나 공화국과는 다르다. 가나 공화국은 중서아프리카에 있고 가나 제국은 북쪽에 있다. 가나 공화국은 가나 제국에서 이름을 따왔을 뿐이다.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과는 다르다. [2] 가나 제국의 수도로 추정되는 쿰비살레는 모리타니에 위치해 있으며, 아직까지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3] 우리나라로 치면 . 그러니까 가나 제국은 직역하면 왕 제국. 이집트를 파라오 제국으로 부르거나 중국을 천자 제국이라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4] 이는 잉카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잉카 제국'이라 하지만 원래 이름은 '타완틴수유(네 방향의 나라)'이며, 잉카는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5] 지배 민족인 소닌케족과 왕들이 이슬람교를 믿지 않고 토착종교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6] 동영상에 따르면 통역사로 참가한 체리프 케이타 씨는 순자타 케이타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 직업은 칼튼 대학교(Carleton College)의 교수라고. [7] 니제르 강이 나일 강처럼 여름에 홍수가 나고 난 뒤에는 물이 빠지면 강바닥에서 막대한 양의 황금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니제르 강의 범람원은 폭 240km, 길이 480km에 달해 그만큼 광범위한 곳에서 황금을 채취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8] 일반적으로 송가이나 송하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발음은 soŋaj로 팀북투나 가오 지방에서는 소ᅌᅡ이라고 한다. 이들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쓰며 만딩카나 소닝케족과는 매우 이질적이다. [9] 둘다 이슬람이지만 모계적인 면이 강한 투아레그족과 수꼴 알카에다는 당연히 사이가 안 좋아서 양쪽이 힘을 합치기 어렵다. [10] 알카에다와 투아레그의 목적은 다르다. 알카에다는 온건 이슬람 국가인 말리 전역에 엄격한 샤리아법으로 통치되는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하는 데 비해 투아레그족은 분리독립을 원한다. [11] 게다가 말리는 서사하라를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있는 나라인데, 아자와드에서 "서사하라도 인정했으니 우리의 독립도 인정하라"고 나오면…